이돈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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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돈직은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의 조부로,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독립유공자 서훈 및 기념 사업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오마이뉴스는 2003년부터 이돈직의 항일운동 행적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로 인해 이돈직 관련 기념물 철거 및 법적 소송이 진행되었다. 법원은 오마이뉴스 보도가 허위가 아니라고 판결했으며, 관련 기념물은 철거되었다. 이 사건은 독립운동가 관련 공적 부풀리기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오마이뉴스는 2003년부터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의 조부 이돈직의 독립유공자 서훈 및 기념 사업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2003년 12월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을 보도하여, 이돈직의 항일운동 행적이 과장되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1]
2. 오마이뉴스의 가짜 독립유공자 추적
오마이뉴스는 한 달 가까이 현장 취재를 통해 이 사건을 심층 추적했다. 그 결과, 이돈직의 후손들이 1999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하고, 이 과정에서 역사학자 등이 추천 서명에 가담한 사실을 밝혀냈다.
2. 1. 이돈직-이인구 측 주장의 허위성 폭로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전 무소속 재선 국회의원) 측은 조부 이돈직이 일제강점기 당시 만세운동을 하거나 의병 창의군 중군장을 맡았다고 주장했지만,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돈직의 경우, 자손들이 조상을 독립운동가로 만들기 위해 타인의 공적에 끼워 넣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사례로 알려져 있다.[1]
오마이뉴스는 2003년 12월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이라는 기사를 통해, 대전애국지사숭모회 등이 대전 지역 곳곳에 세운 이돈직의 비문에 새겨진 항일운동 행적과 김용원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 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무리하게 끼워넣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대전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은평공원(월평공원)에 세워진 이돈직 생애비와 휘호비는 당초 사업 목적에 맞지 않고, 휘호비는 '불법 조형물'로 확인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인구 명예회장 등은 2004년 4월 <오마이뉴스>와 MBC를 상대로 총 16억원(2심에서는 1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항일운동 행적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허위 내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2]
대전지방법원과 대전고등법원은 이인구 명예회장 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가 반일 항일투쟁을 하고 애국지사 김용원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인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볼 때 기사 내용은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3]
2003년 당시 <오마이뉴스>는 이돈직의 후손들이 1999년 국가보훈처에 이돈직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달라고 신청했으며, 이돈직의 공적 부풀리기에 전 충남대 모 총장을 포함한 역사·철학과 교수 등 5명이 추천서명 등에 가담했고, 중도일보 등 언론의 보도도 관계되었다고 보도했다.
2003년 당시 이돈직이 등장하는 기념물은 다음과 같다.[4]
기념물 종류 | 위치 | 건립/설치 시기 | 비고 |
---|---|---|---|
은평공원(월평공원) 휘호비·생애비 | 은평공원(월평공원) | 2000년 11월 | 앞면: 이돈직의 생애와 휘호, 뒷면: 김용원 선생의 생애와 휘호. 김용원 선생의 후손이 이 비석에서 이돈직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짐. |
김용원 선생 공적비 | 원정동 김용원 선생 묘비 앞 | 1990년 (원판), 1997년 (재설치) | 1990년 대전시장이 새겨넣은 원판 비문을 1997년 떼어내고 다시 새겨 넣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돈직의 이름이 등장. |
이돈직 공덕비 | 효평동 | 1997년 |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이덕산 회장이 세운 비석. |
기미 3·1독립만세기념비건립기와 표지석 | 대덕구 비래동산(무궁화동산) | 1994년 3월 1일 | 대전애국지사숭모회 세운 비석. 이돈직이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김용원 선생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제일 처음 나옴. 하지만 김용원 선생은 만세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음.[5] |
2. 2. 언론 보도 및 소송전
오마이뉴스는 2003년 12월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을 보도했다.[1] 대전애국지사숭모회 등이 대전 지역 곳곳에 세운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의 조부인 고 이돈직 씨 비문에 새겨진 항일운동 행적,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비문 등은 "확인되지 않았고 무리하게 끼워넣어진 것"이라는 내용이다.[2] 특히 대전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은평공원(월평공원)에 세워진 이돈직 생애비와 휘호비는 당초 사업 목적에도 맞지 않는데다 휘호비의 경우 '불법 조형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1]이에 대해 이인구 명예회장 등은 2004년 4월 <오마이뉴스>와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2] 그러나 법원은 이인구 계룡건설산업 명예회장 조부의 항일운동 행적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허위 내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방법원과 대전고등법원은 이인구 명예회장 등이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2]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가 반일 항일투쟁을 하고 애국지사 김용원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인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볼 때 기사 내용은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3]
2003년 당시 <오마이뉴스>는 이돈직의 후손들이 1999년 국가보훈처에 이돈직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달라고 신청하기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이돈직의 공적 부풀리기에는 전 충남대 모 총장을 포함한 역사·철학과 교수 등 5명이 추천서명 등에 가담했고 중도일보 등 언론의 보도도 관계되었다고 한다.[4]
2003년 당시 이돈직이 등장하는 기념물은 다음과 같다.[4]
기념물 | 내용 |
---|---|
은평공원(월평공원) 휘호비·생애비 | 2000년 11월 건립. 앞면에는 이돈직의 생애와 휘호가, 뒷면에는 김용원 선생의 생애와 휘호가 새겨져 있다. 김용원 선생의 후손이 이 비석에서 이돈직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면서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
원정동 김용원 선생 공적비 | 김용원 선생의 묘비 앞에 세워진 비석. 1990년 대전시장이 새겨넣은 원판 비문을 1997년 떼어내고 다시 새겨 넣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돈직의 이름이 등장한다. |
효평동 이돈직 공적비 | 1997년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이덕산 회장이 세운 비석. |
대덕구 비래동산(무궁화동산) 비문 | 1994년 대전애국지사숭모회 세운 비석. 이 비석에는 이돈직이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김용원 선생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제일 처음 나온다. 하지만 김용원 선생은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적이 없다. |
이돈직을 기리는 기념비는 2003년 당시에만 무궁화동산, 은평공원(월평공원), 효평동 이렇게 3곳이 있었다. 1997년 3월에 대전광역시 동구 효평동에 세운 '이돈직 공덕비'에는 의병활동과 만세운동의 공적이 빼곡히 기재돼 있었다. 효평동 공덕비에는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대덕구 비래동산에 지금도 그 유적비가 남아 있어 옛 시절을 말해주고 있다"는 글귀였다.[5]
대덕구 무궁화동산(비래동산)에 세워진 '기미 3·1독립만세기념비건립기'와 표지석. 1994년 3월 1일 새겨진 이 비문에 "이 지역에 만세운동을 지휘주도한 선열로는 의병인 창의군 일대 중군장 이돈직 선생이었다. … 김용원, 김태원 선생… 등이 만세운동 주도자이시다"라고 새겨져 있었다.[5]
2. 3. 법원 판결
오마이뉴스는 2003년 12월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을 보도했다. 대전애국지사숭모회 등이 대전 지역 곳곳에 세운 이 명예회장의 조부인 고 이돈직 씨 비문에 새겨진 항일운동 행적,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비문 등은 "확인되지 않았고 무리하게 끼워넣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1] 특히 대전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은평공원(월평공원)에 세워진 이돈직 생애비와 휘호비는 당초 사업 목적에도 맞지 않는데다 휘호비의 경우 '불법 조형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이 명예회장 등은 2004년 4월 <오마이뉴스>와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총 16억원(<오마이뉴스> 6억원), 2심에서는 총 12억원(<오마이뉴스> 3억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인구 계룡건설산업 명예회장 조부의 항일운동 행적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허위 내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방법원 제3민사부(재판장 이병렬)는 2006년 2월 이인구 명예회장 등이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2]
2006년 10월 대전고등법원 제2민사부는 이인구 명예회장 등이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원심 판결 그대로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MBC에 대해서도 3000만원을 지급하고 '정정보도' 하라는 원심을 깨고 계룡건설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 측은 고등법원 판결 후 상고를 제기하지 않아 소송이 종결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가 반일 항일투쟁을 하고 애국지사 김용원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인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볼 때 기사 내용은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해당 단체가 국고를 지원받아 엉뚱한 사람의 공적비를 세웠다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서도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대전시로부터 보조금을 신청하면서 계룡건설 이 명예회장 조부에 대해서는 사업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진실에 부합된다"고 덧붙였다.[3]
2. 4.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 및 공적 부풀리기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전직 무소속 재선 국회의원)의 조부인 이돈직은 자손들이 조상을 독립운동가로 만들기 위해 타인의 공적에 끼워 넣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낸 사례로 유명하다.[1] 이돈직의 후손들은 1999년 1월 22일 국가보훈처에 이돈직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달라고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철학과 교수 5명이 추천 서명에 가담했고, 중도일보 등 언론의 보도도 연루되었다.[4]오마이뉴스는 2003년 12월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을 보도했다. 대전애국지사숭모회 등이 대전 지역 곳곳에 세운 이돈직의 비문에 새겨진 항일운동 행적, 김용원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고 무리하게 끼워넣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전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은평공원(월평공원)에 세워진 이돈직 생애비와 휘호비는 사업 목적에 맞지 않고, 휘호비는 '불법 조형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1]
이에 이 명예회장 등은 2004년 4월 <오마이뉴스>와 MBC를 상대로 총 16억원(<오마이뉴스> 6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심에서는 12억원(<오마이뉴스> 3억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항일운동 행적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허위 내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2]
2006년 2월, 대전지방법원 제3민사부(재판장 이병렬)는 <오마이뉴스>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2006년 10월, 대전고등법원 제2민사부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MBC에 대해서도 3000만원을 지급하고 '정정보도' 하라는 원심을 깨고 계룡건설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 측은 상고를 제기하지 않아 소송이 종결됐다.[3]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가 반일 항일투쟁을 하고 애국지사 김용원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인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볼 때 기사 내용은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국고를 지원받아 엉뚱한 사람의 공적비를 세웠다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서도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대전시로부터 보조금을 신청하면서 계룡건설 이 명예회장 조부에 대해서는 사업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진실에 부합된다"고 덧붙였다.[3]
2003년 당시 이돈직이 등장하는 기념물은 다음과 같다.[4]
기념물 | 설립 연도 | 내용 |
---|---|---|
은평공원(월평공원) 휘호비·생애비 | 2000년 11월 | 앞면에는 이돈직의 생애와 휘호, 뒷면에는 김용원 선생의 생애와 휘호가 새겨져 있다. 김용원 선생의 후손이 이 비석에서 이돈직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
원정동 김용원 선생 공적비 | 1990년 (원판), 1997년 (재설치) | 김용원 선생의 묘비 앞에 세워진 비석이다. 1990년 대전시장이 새겨넣은 원판 비문을 1997년 떼어내고 다시 새겨 넣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돈직의 이름이 등장했다. |
효평동 이돈직 공적비 | 1997년 |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이덕산 회장이 세운 비석이다. |
대덕구 비래동산(무궁화동산) 비문 | 1994년 |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세웠다. 이돈직이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김용원 선생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김용원 선생은 만세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 |
이돈직을 기리는 기념물은 여러 곳에 세워졌으나, 오마이뉴스의 보도와 법원 판결 이후 순차적으로 철거되었다. 2004년 대전 서구 은평공원에 세워진 이돈직의 생애비가 철거되었고,[6] 2009년에는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은평공원에 있던 이돈직의 휘호비(높이 4.3m, 폭 1.4m)가 철거되어 건축 폐기물로 처리되었다.[7]
1997년 3월 대전광역시 동구 효평동에 세운 '이돈직 공덕비'에는 의병활동과 만세운동의 공적이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대덕구 비래동산에 지금도 그 유적비가 남아 있어 옛 시절을 말해주고 있다"는 글귀가 있었다.[5] 1994년 3월 1일 대덕구 무궁화동산(비래동산)에 세워진 '기미 3·1독립만세기념비건립기'와 표지석에는 "이 지역에 만세운동을 지휘주도한 선열로는 의병인 창의군 일대 중군장 이돈직 선생이었다. … 김용원, 김태원 선생… 등이 만세운동 주도자이시다"라고 새겨져 있었다.[5]
3. 이돈직 기념물 현황 및 철거 과정
2019년에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무궁화동산에 있던 이돈직의 공적비와 기념비가 철거되었다. 이 기념비는 1994년 계룡건설 고(故) 이인구 전 명예회장(전 국회의원)의 조부인 이돈직의 독립운동 행적을 담아 세워졌으나, 독립운동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가짜 독립운동가' 의혹이 제기된 지 16년 만에 철거된 것이다. 철거된 공적비는 '기미 3.1독립만세기념비건립비'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 내용은 이돈직이 만세운동을 지휘 주도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8]
3. 1. 기념물 현황 (2003년)
2003년 12월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대전광역시 지역 곳곳에 세워진 이돈직 관련 기념물들은 다음과 같다.[4]
오마이뉴스는 이돈직의 후손들이 1999년 국가보훈처에 이돈직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달라고 신청하기까지 했다고 보도했다.[4]
3. 2. 기념물 철거 과정
2004년 은평공원에 세워진 이돈직의 생애비가 철거되었다.[6] 2009년에는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은평공원에 있던 이돈직의 휘호비가 철거되어 건축 폐기물로 처리되었다.[7] 2019년 대전광역시 대덕구 무궁화동산에 있던 이돈직의 공적비와 기념비가 철거되었다. 이 기념비들은 1994년에 세워졌으나, 이돈직의 독립운동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 '가짜 독립운동가' 의혹이 제기된 지 16년 만에 철거된 것이다.[8]
3. 2. 1. 효평동 이돈직 공적비 존치 논란
2019년 대전 대덕구 무궁화동산에 있던 이돈직의 공적비와 기념비가 철거되면서, 이돈직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기념물은 대전 동구 효평동에 있는 비문만이 남게 되었다.[8] 이 비문은 1997년 한국독립유공자협회가 세운 것으로, 이돈직의 의병 활동과 만세운동을 기록하고 있다.[8] 그러나 이돈직의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음에도, 비문을 세운 한국독립유공자협회는 비문 수정을 거부하고 있다.[8]
참조
[1]
저널
"'훈장'이 뭐길래... 가짜 독립운동가 비석까지 세운 사람들"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9-05-17
[2]
저널
계룡건설 이인구씨 <오마이뉴스> 손배소 기각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06-02-13
[3]
저널
앞뒤 다른 독립운동가 비석, '잘못'이지만 '위법' 아니다?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07-01-15
[4]
저널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03-12-22
[5]
저널
'[사진] 가짜 독립운동가 공적비, 16년 만에 뽑혔다'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9-07-26
[6]
저널
대전 서구청,'가짜 독립운동가 생애비' 철거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04-02-18
[7]
저널
9년 만에 철거된 '미확인 독립운동가' 비문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09-07-13
[8]
저널
'[사진] 가짜 독립운동가 공적비, 16년 만에 뽑혔다'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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