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구 (정치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인구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대전군 출신으로, 육군 중령으로 예편 후 계룡건설을 창업하여 대전 지역의 향토 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인이며, 제13·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국 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육군 소위로 임관,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92년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장학 사업을 펼쳤고, 유림공원 조성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기여했다. 2017년 숙환으로 별세했으며, 조부 이돈직의 독립운동가 조작 논란이 있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 - 이순진
대한민국의 군인인 이순진은 육군3사관학교 출신으로 합동참모본부 출범 이후 첫 3사관학교 출신 합참의장을 지냈으며, 1977년 소위로 임관하여 대장까지 진급, 주요 보직을 역임하고 퇴역 후에는 대학교 교수 및 연구원,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 - 김진영 (1938년)
김진영(1938년)은 대한민국 군인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으나 12·12 군사 반란 관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훈이 박탈되었다. - 한밭대학교 교수 - 염홍철
염홍철은 경남대학교 교수, 청와대 정무비서관, 대전광역시장 3선, 한국공항공단 이사장, 한밭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교수, 시인이며, 대전시장 재임 시절 대덕연구단지 발전에 기여했으나 정책의 불균형성과 을지의과대학교 설립 청탁 관련 자금 수수 사건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한밭대학교 교수 - 홍선기
홍선기는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두 차례 취득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대전직할시장, 제27대 충청남도지사, 민선 1·2기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했으며 자유민주연합 부총재를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육군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인구 (정치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이인구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대전군 동면 효평리 |
사망지 |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서구 건양대학교병원 |
국적 | 대한민국 |
정당 | 무소속 |
별명 | 아호는 유림(裕林) |
본관 | 한산 |
묘소 |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국곡리 한산 이씨 선산 선영 |
종교 | 불교 |
웹사이트 | |
가족 관계 | |
부모 | 이성규(부), 양매순(모) |
친척 | 누나 1명 남동생 4명 둘째 남동생 이헌구 셋째 남동생 이시구 친조부 이돈직 이모부 김태원 |
배우자 | 윤종설 |
자녀 | 1남 8녀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최종 계급 |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령 |
지휘 | 대대장 |
복무 기간 | 1951년 2월 10일~1967년 6월 28일 |
근무 | 육군 제1사단 예하 보병대대 육군 수도사단 예하 공병대대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
서훈 내역 | 국민훈장 동백장 |
학력 | |
학력 |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과정 수료(1986년 8월) |
기타 이력 | |
기타 이력 | 신민주공화당 부대변인 민주자유당 부대변인 자유민주연합 부대변인 계룡건설산업 명예회장 대전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
2. 생애
일제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대전군 동면 효평리(현재의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동구 대청동)에서, 당시 유학자 출신인 아버지 이성규와 어머니 양매순(1904년생~1995년졸) 부부의 슬하 5남 1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10일, 대전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같은 해 8월 18일, 육군종합학교(육종 2기 임관)를 수료하고 육군 공병 소위로 임관, 이후 어언 2년간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다. 전쟁 이후 전후 복구 사업 등에 참여하였다. 1958년 연초에 육군 소령으로 진급했으며 중령 시절이던 1964년 2월, 충남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 했다.
1967년 6월 28일,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1970년 합자회사 계룡건설을 창업, 대전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으로 성장시켰다.[3][4]
13·15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992년 1월 연초에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해, 근 26년간 1만4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사업, 삼학사비 중건사업, 일본 백제 문화 유적 탐사 사업,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독도 우리 땅 밟기 운동, 유림 경로 효친 대상 제정, 유림 공원 사생대회 등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과 전통문화 계승에 헌신했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사재를 탈탈 추리고 털어 내어, 대전 유성구청 인근에 유림공원을 조성, 대전시에 기부했으며, 충남 태안 유류 사고 복구 활동, 대전 시티즌 프로축구단 창단, 나라사랑 보금자리사업 후원, 희망나눔캠페인 후원, 메르스 광역 대책 후원, 와병중 예비역 위문, 유림뜰 조성·기부 등 공익 실현에도 앞장 서 왔다.
2017년 5월 15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장지(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국곡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외동 막내 아들 이승찬 계룡건설 사장 등 비롯한 슬하 자녀 1남 8녀.[5][6]
2. 1. 한국 전쟁 참전과 군 복무
이인구는 일제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대전군 동면 효평리(현재의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동구 대청동)에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10일, 대전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3][4] 같은 해 8월 18일, 육군종합학교(육종 2기 임관)를 수료하고 육군 공병 소위로 임관, 이후 2년간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다. 전쟁 이후 전후 복구 사업 등에 참여하였다. 1958년 육군 소령으로 진급했으며 1964년 2월, 충남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 했다. 1967년 6월 28일,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3][4]2. 2. 계룡건설 창업과 사회 공헌
1967년 6월 28일,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3][4] 1970년 합자회사 계룡건설을 창업, 대전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으로 성장시켰다.1992년 1월 연초에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해, 근 26년간 1만4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사업, 삼학사비 중건사업, 일본 백제 문화 유적 탐사 사업,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독도 우리 땅 밟기 운동, 유림 경로 효친 대상 제정, 유림 공원 사생대회 등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과 전통문화 계승에 헌신했다.
사재를 털어 대전 유성구청 인근에 유림공원을 조성, 대전시에 기부했으며, 충남 태안 유류 사고 복구 활동, 대전 시티즌 프로축구단 창단, 나라사랑 보금자리사업 후원, 희망나눔캠페인 후원, 메르스 광역 대책 후원, 와병중 예비역 위문, 유림뜰 조성·기부 등 공익 실현에도 앞장 서 왔다.
2. 3. 정치 활동
이인구는 일제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대전군 동면 효평리(현재의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동구 대청동)에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10일 대전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육군종합학교(육종 2기 임관)를 수료하고 육군 공병 소위로 임관하여 2년간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다.[5][6] 전쟁 이후에는 전후 복구 사업 등에 참여하였다.[5][6] 1958년 육군 소령으로 진급했으며 1964년 2월 충남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1967년 6월 28일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5][6] 1970년 합자회사 계룡건설을 창업하여 대전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으로 성장시켰다.[3][4] 13·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2년 1월 연초에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해, 근 26년간 1만4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사업, 삼학사비 중건사업, 일본 백제 문화 유적 탐사 사업,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독도 우리 땅 밟기 운동, 유림 경로 효친 대상 제정, 유림 공원 사생대회 등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과 전통문화 계승에 헌신했다.
사재를 털어 대전 유성구청 인근에 유림공원을 조성, 대전시에 기부했으며, 충남 태안 유류 사고 복구 활동, 대전 시티즌 프로축구단 창단, 나라사랑 보금자리사업 후원, 희망나눔캠페인 후원, 메르스 광역 대책 후원, 와병중 예비역 위문, 유림뜰 조성·기부 등 공익 실현에도 앞장섰다.
2017년 5월 15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5][6] 장지(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국곡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외동 막내 아들 이승찬 계룡건설 사장 등 슬하 1남 8녀가 있다.[5][6]
2. 4. 사망
이인구 명예회장은 2017년 5월 15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5][6] 장지(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국곡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외동 막내 아들 이승찬 계룡건설 사장 등 슬하 1남 8녀가 있다.[5][6]3. 논란
3. 1. 조부 이돈직 독립운동가 조작 논란
〈오마이뉴스〉는 2003년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첫 보도에서 "대전지역 대표적 독립운동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용원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에 무명의 '이돈직' 끼워넣기로 독립운동가를 만들려는 첫 시도"라고 고발했다.[7]이돈직은 대전 지역의 유지인 고(故) 이인구 전 계룡건설 명예회장의 조부인데, 이돈직의 각종 기념비에 독립운동가 김용원의 행적을 끼워넣기 해서 물의를 빚었고 결국 기념비 철거 소동까지 있었다.[7] 2000년 8월 이후 이돈직을 기리는 기념비는 2003년 12월 당시에만 무궁화동산, 은평공원(월평공원), 효평동 이렇게 3곳이 있었다.[7]
2019년 현재 월평공원 휘호비와 생애비, 무궁화동산 공적비와 휘호비는 이미 폐지 및 철거된 상태이다.[8][9] 그냥 그저 힘있는 후손에 의해 조상의 공적이 부풀려지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더구나 가짜 독립운동가 행세를 했다는데에, 대전의 시민들의 원통함이 섞인 분노 및 공분을 자아냈다.[7]
4. 상훈
5. 역대 선거 결과
wikitable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1988년 | 총선 | 신민주공화당 | 49,114표 (56.17%) | 1위 | 당선 | 초선 |
1992년 | 총선 | 민주자유당 | 31,159표 (39.57%) | 2위 | 낙선 | |
1996년 | 총선 | 자유민주연합 | 40,346표 (49.87%) | 1위 | 당선 | 재선 |
2000년 | 총선 | 무소속 | 26,012표 (30.63%) | 2위 | 낙선 |
참조
[1]
웹사이트
계룡건설산업 홈페이지
http://www.krcon.co.[...]
[2]
뉴스
'뚝심의 노회장' 도전으로 이룬 인생역전
http://www.ggilbo.co[...]
금강일보
[3]
뉴스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한밭대서 박사학위
http://view.asiae.co[...]
아시아경제
[4]
문서
가짜 독립운동가 관련 내용
[5]
뉴스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별세
https://news.v.daum.[...]
뉴시스
[6]
저널
'충청의 거목'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별세
https://news.v.daum.[...]
뉴스1
2017-05-15
[7]
저널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03-12-22
[8]
저널
[사진] 가짜 독립운동가 공적비, 16년 만에 뽑혔다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9-07-26
[9]
저널
'훈장'이 뭐길래... 가짜 독립운동가 비석까지 세운 사람들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9-05-1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