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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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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미륵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독일에서 활동한 작가로, 본명은 이의경이며 미륵보살의 이름을 따 미륵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독일로 망명하여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뮌헨 대학교에서 의학, 동물학, 철학 등을 공부했다. 1946년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출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48년부터 뮌헨 대학교에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가르쳤다. 1950년 한국 전쟁 직전에 사망했으며, 사후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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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이의경 (李儀景)
출생일1899년 3월 8일
출생지황해도 해주 (현재 황해남도)
사망일1950년 3월 20일
사망지독일 뮌헨
직업작가
대학교수
활동 정보
필명이미륵 (李彌勒)
기타
영향을 준 인물톨스토이
괴테
헤르만 헤세

2. 생애

이미륵은 1남 3녀 가운데 외아들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옛 풍습에 따라 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일제의 검거를 피해 안중근의 사촌형 안봉근의 권유로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망명하였다.[3]

문학 활동을 위해 본명인 이의경 대신 미륵보살의 한국 이름인 "미륵"을 사용했다. 한국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3월 20일에 그레펠핑에서 5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묘는 그레펠핑 묘지에 있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의 문학 작품 상당수를 불태웠다.[4]

2. 1. 학창 시절과 3.1 운동

어린 시절, 이미륵은 4명의 형제와 함께 자랐으며, 지주의 막내이자 외아들로 유교 관습에 따라 엄격한 사회 질서 속에서 성장했다. 4살 때 아버지를 통해 한자와 중국 고전을 접했으며, 1905년에는 마을 학교(''서당'')에서 고대 한국식 교육을 받았다. 1910년, 하이주 학교의 교육은 최근 식민지화를 완료한 일본의 방식에 따라 바뀌었다. 11세에 최문호와 결혼했다.

1914년, 이미륵은 "신식 학교"에 다시 다녔지만, 평생 그를 따라다닌 질병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입학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1917년까지 2년 동안 서울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원격으로 의료 기록을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1917년에는 아들이 태어났고, 1919년에는 딸 명주가 태어났다.

이미륵은 일본의 점령을 규탄하는 전단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것을 도왔다. 이로 인해 1919년 어머니의 권유로 중국 상하이로 도피했다. 그곳에서 그는 망명 중인 대한민국 임시 정부 앞에서 시위를 벌인 후 독일로 향했다.[1]

2. 2. 독일 망명과 학문 활동

뷔르츠부르크 대학교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였고, 뮌헨 대학교에서는 동물학, 철학 등을 전공하였다. 1928년에 졸업한 뒤에는 잡지 투고, 기고 및 번역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1920년 5월 독일로 건너가 1922년 뷔르츠부르크로 이사했으며, 1년 후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했다.[4] 그러나 독일에서도 그는 여전히 병을 앓았고, 오랫동안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1925년이 되어서야 그는 뮌헨에서 다시 학업을 재개할 수 있었고, 전공을 동물학, 식물학 및 인류학으로 변경했다. 1928년 "비정상적인 조건에서의 플라나리아 재생 시 조절 현상"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4]

1931년, 그는 ''다메''에 "어느 한국 거리의 밤"과 같은 짧은 기사를 게재했다. 그는 후원자가 된 세일러 교수의 지원을 받았고, 이후 그레펠핑으로 이사했다. 1946년에는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출판했으며, 이 소설은 1959년 대한민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들었다. 한 잡지는 "올해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책은 외국인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그는 이미륵이다"라고 썼다.[4] 독일 문학계에도 알려져 교과서에도 실렸다.

1948년부터 뮌헨 대학교의 동양학부에서 중국일본의 고전, 한국어 등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로 볼프강 바우어(Wolfgang Leander Bauer) 등이 있는데, 이들은 독일의 주요 동양학자가 되었다.[4] 그는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뮌헨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한국어, 중국어 및 일본어 문학, 역사 강사로 일했다.

2. 3. 작가 활동과 《압록강은 흐른다》

뷔르츠부르크 대학교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였고, 뮌헨 대학교에서는 동물학, 철학 등을 전공하였다. 1928년에 졸업한 뒤 잡지 투고, 기고 및 번역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출판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 잡지는 "올해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책은 외국인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그는 이미륵이다"라고 썼다.[4] 이 책은 독일 문학계에도 알려져 교과서에도 실렸다.

1931년, 그는 ''다메''에 "어느 한국 거리의 밤"과 같은 짧은 기사를 게재했다. 후원자인 세일러 교수의 지원을 받았고, 이후 그레펠핑으로 이사했다. 1946년에는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출판했으며, 이 소설은 1959년 대한민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미륵은 그의 문학 활동을 위해 본명인 이의경 대신 미륵보살의 한국 이름인 "미륵"을 사용했다.

2. 4. 뮌헨 대학교 교수 생활과 죽음

1948년부터 뮌헨 대학교 동양학부에서 중국일본의 고전, 한국어 등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로는 볼프강 바우어(Wolfgang Leander Bauer) 등이 있는데, 이들은 독일의 주요 동양학자가 되었다.[4]

이미륵은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뮌헨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한국어, 중국어 및 일본어 문학, 역사 강사로 일했다. 한국 전쟁을 앞둔 1950년 3월 20일에 5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묘는 그레펠핑 묘지에 있다. 그는 망명 뒤 죽을 때까지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그의 문학 작품 상당수는 그가 죽기 직전에 불태워져 후세에 전해지지 못했다.

3. 작품 활동

이미륵은 독일에서 활동하며 한국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는 자전적 소설로, 한국의 전통적인 삶과 가치관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일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의 풍습, 전통,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며, 동서양 문화의 차이와 그 속에서 겪는 개인의 정체성 혼란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또 다른 방언》 등에서도 나타난다.

3. 1. 주요 작품 목록


  • 1946년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데어 얄루 플리스트de)
  • 1972년 《이야기》(Iyagi|이야기de)
  • 1982년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Vom Yalu bis zur Isar|폼 얄루 비스 추어 이자르de)
  • 1984년 《또 다른 방언》(Der andere Dialekt|데어 안데레 디알렉트de)
  • 1949년 《일본 시》

3. 2. 작품 세계와 특징

이미륵은 독일에서 주로 활동하며 한국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인 압록강은 흐른다는 자전적 소설로, 한국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일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의 풍습, 전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또한, 동서양 문화의 차이와 그 속에서 겪는 개인의 정체성 혼란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또 다른 방언》 등에서도 나타난다.

이미륵의 작품은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독일어로 쓰여져 독일 문학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한국과 독일 양쪽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제목비고
1946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ßtde)소설
1972이야기 (Iyagide)단편 소설 모음
1982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Vom Yalu bis zur Isarde)단편 소설
1984또 다른 방언 (Der andere Dialektde)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4. 유산 및 평가

이미륵은 사후에도 "문화 간의 대사"로서 친구들과 지지자들에 의해 독일에서 존경받고 있다.

4. 1. 대한민국에서의 평가

이미륵은 1963년 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이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1]

2008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이미륵의 삶을 그린 3부작 TV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가 제작되었다.[2] 이 드라마는 이종한이 연출하고 SBS바이에른 방송이 협력하여 제작했으며, 독일 현지에서 촬영되었다.[2] 하이델베르크,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 뮌헨 등 재현된 장면은 뮌헨 필름 프로덕션 나우만에서 제작했다.[2] 이미륵 역은 세 명의 배우가 연기했는데, 어린 시절은 노민우, 젊은 시절(1920–1932)은 최성호, 사망할 때까지의 장면(1933–1950)은 송벽우가 맡았다.[2] 3시간 분량의 에피소드는 2008년 11월 한국에서 방영되었다.[2]

4. 2. 독일 및 국제적 평가

이미륵은 사후에도 "문화 간의 대사"로서 친구들과 지지자들에 의해 독일에서 존경받고 있다.

2008년 여름/가을, 이미륵의 삶을 그린 3부작 TV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가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는 이종한이 연출하고 SBS바이에른 방송의 협력으로 제작되었다. 독일 현지에서 촬영되었으며, 하이델베르크,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 뮌헨 등지에서 재현 장면을 촬영했다. 이 촬영은 뮌헨 필름 프로덕션 나우만에서 제작했다. 이미륵 역은 세 명의 배우가 연기했다. 어린 시절은 노민우, 젊은 시절(1920–1932)은 최성호, 사망할 때까지의 장면(1933–1950)은 송벽우가 맡았다. 3시간 분량의 에피소드는 2008년 11월 한국에서 방영되었다.

참조

[1] 서적 Transnational Encounters between Germany and Korea: Affinity in Culture and Politics Since the 1880s https://books.google[...] Springer 2017-10-15
[2] 서적 Korea https://books.google[...]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2012-01-01
[3] 서적 韓獨交涉史 홍성사 1983-01-01
[4] 뉴스 독일인도 반한 인품… 다시보는 이미륵의 삶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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