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마 지카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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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코마 지카토시는 스루가국 다나카 번주 혼다 마사노리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코마 치카노부보다 먼저 사망한 이코마 치카카타의 양자가 되었으며, 1771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를 알현했다. 같은 해 치카카타의 은거로 가독을 상속받았고, 1780년에 처음으로 영지 방문을 허가받았다. 1782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아들 이코마 치카아키가 가독을 이었다. 정실은 이코마 치카카타의 양녀이며, 1남 4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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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야사에몬 혼다가 - 누마타번
누마타번은 에도 시대 고즈케국 누마타 지역에 존재했던 번으로, 사나다 씨, 혼다 씨, 구로다 씨를 거쳐 도키 씨가 다스렸으며 마지막 번주 도키 요리오키가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군에 협력하여 폐번치현 이후 군마현에 편입되었다. - 산야사에몬 혼다가 - 혼다 마사노리 (1681년)
혼다 마사노리는 혼다 마사타케의 양자이며, 누마타 번과 다나카 번의 번주였고, 마츠노 스케요시의 딸을 정실로 맞이하여 혼다 마사요시 등을 자녀로 두었다. - 야시마 이코마가 - 야시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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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마 다카키요는 에도 시대의 하타모토이며, 아버지와 함께 에도로 이주하여 쇼군을 알현하고 가독을 상속받아 지행 8000석을 받았으며, 츠메소를 관리하다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이코마씨 - 다카마쓰번
다카마쓰번은 에도 시대 사누키국을 다스린 번으로, 이코마 가문에서 시작하여 마쓰다이라 가문이 메이지 유신까지 통치했으며, 릿린 공원 등 문화 시설 보호와 경제 발전에 기여하다가 폐번치현으로 다카마쓰 현이 되었다. - 이코마씨 - 이코마 지카마사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긴 이코마 지카마사는 히데요시에게 사누키국을 받아 다카마쓰 성과 마루가메 성을 축조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문 보존을 위해 아들이 속한 반대편 군에 가담했다.
이코마 지카토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이코마 지카토시 |
다른 이름 | 구마고로 (駒五郎) 가즈에 (主計) |
생몰년 | 간포 원년 (1741년) ~ 분세이 3년 12월 2일 (1821년 1월 5일) |
출생 | 간포 원년 (1741년) 11월 2일 (다른 설 있음) |
사망 | 분세이 3년 (1820년) 12월 2일 |
사인 | 병사 |
묘소 | 도쿄도 스기나미구 에이후쿠의 다이엔지 |
관위 | 종5위하, 가즈에노카미 |
씨족 | 미노 겐지 도키 씨족, 이코마 씨 |
가족 관계 | |
아버지 (추정) | 혼다 마사토모 (또는 혼다 마사치카) |
어머니 | 불명 |
양아버지 | 이코마 지카요시 |
정실 | 마쓰다이라 지카타다의 딸 |
측실 | 오카자키 씨 |
자녀 | 이코마 지카노리 (長男) 이코마 지카타케 (次男) |
경력 | |
에도 소바토리 | 해당 |
소샤반 | 해당 |
지샤부교 | 덴메이 7년 (1787년) ~ 간세이 5년 (1793년) |
오사카 조다이 | 간세이 5년 (1793년) ~ 간세이 10년 (1798년) |
교토 쇼시다이 | 간세이 10년 (1798년) ~ 교와 3년 (1803년) |
와카도시요리 | 교와 3년 (1803년) ~ 분카 4년 (1807년) |
기타 | |
참고 문헌 | 秋田県史 [通史編] 第7巻 (年表索引編) |
2. 생애
스루가국 다나카번주 혼다 마사노리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후에 고타이요리아이 이코마 치카카타의 양자가 되었다.[1] 메이와 8년(1771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를 알현하고 같은 해 양아버지의 은거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안에이 9년(1780년)에는 처음으로 영지에 들어가는 것(오쿠니이리)을 허가받았다. 덴메이 2년(1782년)에 사망하였고, 아들 치카아키가 가독을 이었다.
2. 1. 출생과 가계
스루가국 다나카번주 혼다 마사노리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혼다 마사타다의 서장자라는 설도 있다[1]). 본래 이코마 치카카타에게는 양자 이코마 치카노부가 있었으나, 치카노부가 먼저 사망하자 치카토시가 고타이요리아이인 치카카타의 새로운 양자가 되었다. 메이와 8년(1771년) 3월 25일,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를 알현하였고, 같은 해 8월 8일 양아버지 치카카타가 은거하자 가독을 상속받았다.정실은 이코마 치카카타의 양녀로, 친아버지는 쓰다 노부나리이며 이코마 치카노부의 전 정실이기도 했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딸 중 2명은 양아버지 치카카타의 친딸을 양녀로 삼은 것이다. 이 양녀 중 한 명은 하타모토이자 교토 마치부교 등을 지낸 마키 요시치카와 혼인했고, 다른 한 명은 혼다 마사미네와 약혼했으나 혼인 전에 사망했다. 가독은 아들 치카아키가 이었다.
2. 2. 가독 상속과 활동
고타이요리아이 이코마 치카카타의 양자가 되었다. 메이와 8년 (1771년) 3월 25일,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에게 오메미에했다. 같은 해 8월 8일, 치카카타의 은거로 인해 가독을 상속했다. 안에이 9년 (1780년) 7월 1일, 처음으로 영지로 들어가는 것(오쿠니이리)을 허가받았다. 이코마 가문은 고타이요리아이였지만, 이전까지 산킨코타이를 하지 않았다. 덴메이 2년 (1782년) 2월 12일 사망했으며, 향년 49세였다. 가독은 아들 치카아키가 이었다.2. 3. 사망과 후계
덴메이 2년 (1782년) 2월 12일,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가독은 아들 치카아키가 이었다.2. 4. 가족 관계
정실은 이코마 치카카타의 양녀이다. 그녀의 친아버지는 쓰다 노부나리이며, 이코마 치카노부의 전 정실이기도 했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딸 중 2명은 양녀이다. 이 양녀들은 의붓아버지인 치카카타의 친딸들이다. 양녀 중 한 명은 하타모토이자 교토 마치부교 등을 지낸 마키 요시치카의 부인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은 혼다 마사미네와 약혼했으나 시집가기 전에 사망했다. 가독은 아들 치카아키가 이었다.참조
[1]
서적
秋田県史 [通史編] 第7巻 (年表索引編)
秋田県
1966
[2]
웹인용
歴史の勉強・生駒氏
http://roadsite.road[...]
200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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