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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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꺽정은 조선 명종 시기에 활동한 의적으로, 양주를 중심으로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며 관아를 습격하고 재물을 빼앗아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백정 출신으로, 정치 혼란과 관리의 부패 속에서 불평분자를 규합하여 활동했으며, 관군의 토벌을 피해 다니다가 1562년에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임꺽정은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 3대 도적으로 꼽히며, 소설 홍길동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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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꺽정 - 임꺽정로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과 소수면을 연결하는 임꺽정로는 문무로와 이어지고, 주요 교차로에서 국도 제34호선, 국도 제37호선과 연결되며, 주변에 괴산군청, 괴산국민체육센터, 괴산북중학교 등의 주요 시설이 위치한다. - 조선의 백정 - 박서양 (의사)
박서양은 백정 출신으로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조교수가 된 의사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로서 만주에서 구세병원을 설립하고 숭신학교를 세워 교육 활동을 펼쳤으며, 대한국민회 군의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한국의 무법자 - 전우치
조선 시대 실존 인물인 전우치는 환술과 도술에 능하며 시에도 재능을 보였으나, 조정에서는 위험인물로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도교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성향과 기이한 행적으로 인해 다양한 설화가 전해지며 대중문화의 소재로 활용된다. - 한국의 무법자 - 홍길동 (조선)
홍길동은 조선 연산군 때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서민을 도운 의적으로, 이익은 그를 조선 3대 도둑 중 하나로, 허균의 《홍길동전》 모델로 보며, 충청도 충주에서 첨지중추부사를 자칭하며 활동했다.
임꺽정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임꺽정 |
원어이름 | 林巪正 |
다른 이름 | 임거정 임거질정 |
출생지 | 조선 |
직업 | 백정 도적 |
사망일 | 1562년 1월 3일 (음력) |
활동 기간 | |
활동 시기 | 조선 명종 시대 |
주요 활동 | |
반란 | 탐관오리 처단 및 민중 구제 |
활동 지역 |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
2. 생애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의 백정 출신으로,[6] 정확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의 형인 가도치(加都致)가 《명종실록》에 언급될 뿐이다.[7] 양주 지역 전설에 따르면, 아버지가 백정이라 마을 사람들에게 천대받았고, 동네 우물물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임꺽정은 집에서 좀 떨어진 불곡산까지 가서 물을 떠다 마셨다고 한다. 일설에는 아버지가 지방관의 탐학으로 살해되면서 의적이 되었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홍길동은 임꺽정보다 2세대 전에, 전우치는 동시대에, 장길산은 숙종 때 활동했다는 점에서 임꺽정과 비교되기도 한다.
2. 1. 활동
경기도 양주의 백정으로,[6] 정확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의 형인 가도치(加都致)가 《명종실록》에 나올 뿐이다.[7] 양주군 주내 지역의 전설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가 백정이라 마을 사람들에게 천대당했고, 동네 우물물도 먹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임꺽정은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양주 불곡산까지 가서 흘러내리는 물을 떠다 마셨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의 아버지가 지방관의 탐학으로 살해되면서 의적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도적이 된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그는 중종, 명종 시기 양주 일대와 철원, 황해도 봉산군과 해주부, 구월산 일대에서 폭넓게 활동하였다.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불평분자를 규합하여 민가를 약탈하였으나, 아전과 백성들이 도와 잡지 못하였다. 1559년(명종 14년)부터는 황해도 구월산 등의 산채를 은신처로 정하고 황해도·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고을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를 살해하는 한편, 관아의 창고를 털어 양곡과 패물을 훔치는 한편 빈민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었다. 황해도 장연·옹진·풍천 등지에서 관군이 토벌을 하려 했으나 백성들이 내응하거나 미리 알려주어 이를 피했다.
개성의 포도관 이억근(李億根)과 남치근, 이흠례 등 당시 조선의 장수들은 그를 체포하려 했지만 그는 번번히 체포되지 않고 달아났다. 1560년(명종 15년)부터 점차 세력이 위축되던 중 1562년(명종 17년) 음력 1월에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인해 구월산으로 철수하여 항전하다가 남치근 등에게 잡혀서 사형을 당했다.[8]
2. 2. 체포와 죽음
1560년(명종 15년)부터 점차 세력이 위축되던 중 1562년(명종 17년) 음력 1월에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인해 구월산으로 철수하여 항전하다가 남치근 등에게 잡혀서 사형을 당했다.[8]3. 평가
정성희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이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임꺽정을 조선의 3대 도적으로 꼽았다고 평가했다. 성호 이익이 이들을 3대 도적으로 꼽은 것은 단순히 큰 도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며, 당시 위정자들은 이들을 도적떼로 몰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위정자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자 신분 해방의 부르짖음이 담긴 의적(義賊)이라는 시각이 담겨있다고 보았다.[9]
임꺽정은 한국 최초의 소설로 여겨지는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의 모티브가 되었다.[2]
4. 대중문화
임꺽정은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 다뤄졌다.
4. 1. 문학
임꺽정은 한국 최초의 소설로 여겨지는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의 모티브가 되었다.[2]- 홍명희가 쓴 북한 작가의 소설 ''임각종''[3][4][5]
4. 2. 영화와 드라마
참조
[1]
서적
The dynamics of Confucianism and modernization in Korean history
East Asia Program, Cornell University
[2]
서적
Historia Korei
Dialog
[3]
서적
South Korea's minjung movement: the culture and politics of dissidence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Center for Korean Studies
[4]
학술지
Illusive Utopia: Theater, Film, and Everyday Performance in North Korea (review)
2011
[5]
학술지
A costume study on the basis of descriptions in the novel Im Kkeok Jeong
한국복식학회
[6]
간행물
국조보감
1562-01
[7]
간행물
명종실록
1561-01-03
[8]
간행물
명종실록
[9]
웹사이트
임꺽정 인물 한국사
http://navercast.n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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