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아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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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 아메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에세이 작가로, 홀로코스트 생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빈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가톨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으나, 나치 시대에 프랑스로 피신했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고통을 겪었다. 그는 고문 경험을 성찰한 《죄와 속죄의 저편》을 비롯하여, 홀로코스트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작품들을 남겼다. 197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작품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하고,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탐구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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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출신의 하프시코드 연주자 주자나 루치지코바는 홀로코스트 생존 후 음악계에 복귀, 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고 바흐 건반 작품 전곡 녹음으로 "하프시코드의 여왕"으로 불렸다. - 1978년 자살 - 하뤼 마르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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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그 영은 다양한 영화와 텔레비전 역할로 활동한 미국의 배우로, 《그들은 말을 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나 알코올 중독과 비극적인 사건으로 생을 마감했다.
장 아메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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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본명 | 한스 하임 마이어 |
출생일 | 1912년 10월 31일 |
출생지 | 빈, 오스트리아-헝가리 |
사망일 | 1978년 10월 17일 |
사망지 |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
직업 | |
직업 | 작가 |
장르 | |
사상적 경향 |
2. 어린 시절과 교육
장 아메리는 191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가톨릭 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한스 차임 마이어(Hanns Chaim Mayer)로 태어났다.[13][1] 아버지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6년에 전사하였고,[13][1] 어머니에 의해 로마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다.[1] 어린 시절 아메리는 서부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지방, 포어아를베르크 주에 있는 호에넴스에서 자랐다.[13] 이후 빈으로 돌아와 빈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나,[13]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13][1]
아메리 가족은 유대교 전통에서 멀어져 동화된 상태였다.[13][1] 그러나 나치즘의 부상과 1935년 뉘른베르크 법률 공포를 통해, 아메리는 독일이 모든 유대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음을 깨달았다.[13][1]
3. 종교와 정체성
그는 “유대인이 되는 것의 필요성과 불가능성”에서 나타나는 정체성에 대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13][2] 아메리는 어린 시절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대인 의식은 유대교의 신, 역사, 메시아적 민족적 희망과는 무관한 것이었다.[14][2] 그는 자신의 유대인 됨을 과거의 비극, 특히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수형자 번호와 연결시켰다.[14][2]
4. 나치 통치와 저항
1938년에 나치가 ‘더 위대한 제국’을 독일과 함께하기로 한 오스트리아에 환영받으며 들어오자, 장 아메리는 프랑스로 피신했다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유대인 부인과 함께 벨기에로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벨기에에서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해 프랑스 남부로 억류·송환되었다.[3] 그의 아내는 나중에 브뤼셀에서 숨어 지내던 중 심장병으로 사망했다.[4]
피레네자틀랑티크 주에 있는, 구스 수용소에서 탈출한 뒤에 그는 벨기에로 돌아가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독일 점령군에 저항하는 활동에 광범위하게 참여하던 장 아메리는 1943년 나치에게 붙잡힌 뒤 브렌돈크 요새에 있는 벨기에 게슈타포 센터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그에게서 더 이상 뽑아낼 정보가 없다고 확인되자 게슈타포는 장 아메리를 정치범에서 유대인으로‘강등하여’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으므로, 장 아메리는 가혹한 육체 노동을 배정 받았다. 그 일은 아우슈비츠 제3 수용소에 아이쥐 염색 공장(the I.G. Farben factor)과 부나-모노비츠 수용소(the Buna-Monowitz labor camp)를 짓는 일이었다. 소비에트 연방 붉은 군대의 진주를 1년 앞두고, 먼저 부헨발트로 이송되었다가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로 옮겨졌으며, 거기서 1945년 4월 영국군 덕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4. 1. 고문 경험과 영향
1943년 나치에게 붙잡힌 아메리는 브레인동크 요새(Fort Breendonk)에 있는 벨기에 게슈타포 센터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의 체험을 성찰한 《죄와 속죄의 저편》(Jenseits von Schuld und Sühne)에서, 아메리는 “최초의 일격으로 이미 뭔가를 잃어버린다. 뭔가라는 게 무엇인가. 일단 세계에 대한 신뢰라고 해 두자. 바로 그걸 잃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아메리는 고문을 성폭행에 비유하며, “타자에 의한 육체적 강간은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을 때 실존의 절멸 속에 완료된다.”라고 하였다.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이 세상과 친숙해질 수 없다. 굴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첫 일격으로 이미 상처받고 고문당하면서 무너져 간 세계에 대한 신뢰를 두 번 다시 되살릴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15]
5. 전후 활동과 저술
전쟁 뒤 아메리는 이전 이름 한스 마이어에서 프랑스어로 성을 어구전철하여 아메리로 이름을 고쳤다. 이는 독일 문화에서 분리되어 프랑스 문화와 결연하게 되었음을 보이기 위해서였다.[1] 브뤼셀에 정착하여 스위스에 있는 독일어 신문의 문화 저널리스트로 일했다.[1] 오랫동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책을 출간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스위스에서만 했다.[1] 1964년 독일 시인 헬무트 하이셴뷔텔(Helmut Heißenbüttel)의 권유로 《죄와 속죄의 저편》(''Jenseits von Schuld und Sühne'')을 썼다.[1] 이 책은 뒤에 《마음의 극한에서:아우슈비츠와 그 실상에 관한 생존자의 성찰》(''At the Mind's Limits: Contemplations by a Survivor on Auschwitz and its Realities.'')이라는 제목을 달고 영어로 번역되었다.[1] 한국어로는 2012년에 독문학자 안미현이 번역했다. 1976년에 《자살에 대하여:자발적 죽음에 대한 담론》(''On Suicide: A Discourse on Voluntary Death'')을 출간했고, 이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생을 마감했다.
5. 1. 반유대주의 비판과 이스라엘
6. 죽음
장 아메리는 1976년에 《자살에 대하여:자발적 죽음에 대한 담론》(''On Suicide: A Discourse on Voluntary Death'')을 출간했다.[6] 1978년, 그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했다.[6]
7. 문학적, 철학적 유산
장 아메리가 홀로코스트와 제3제국의 본질을 탐구한 저서 『정신의 한계에서(At the Mind's Limits)』를 출판하면서 그는 가장 명성 높은 홀로코스트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아메리는 나치를 가학 정부에 비유하며, 가학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세계를 무효화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나치 고문관에게는
아메리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노력에서, 그가 "화해하려는 마음이 거의 없다"고 묘사한 바와 같이 현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사건의 공포와 끔찍함에 초점을 맞추었다.[7] 그의 경험과 나치 시대 고통의 의미와 유산에 대한 탐구는 사건들을 마침내 "역사의 냉장고"에 넣어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8] 추상이나 단순한 글로 후세에 잊히지 않도록 주제를 생생하게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1976년 『죄책감과 속죄 너머(Beyond Guilt and Atonement)』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빈 작가 로베르트 메나세가 받은 오스트리아 국가상(1999년) 상금으로 그는 “유럽 에세이 장 아메리 상(Jean Améry–Preis für Europäische Essayistik)”을 재설립했는데, 수상자로는 로타르 바이어, 바르바라 지히터만 (1985년), 마티아스 그레프라트 (1988년), 라인하르트 메르켈 (1991년), 프란츠 슈 (2000년), 도론 라비노비치 (2002년), 미하엘 아이스만 (2004년, 언론인), 드라고 얀차르 (2007년), 임레 케르테스 (2009년),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 (2012년), 아담 자가예프스키[9] (2016년) 그리고 칼-마르쿠스 가우스 (2018년)가 있다.
7. 1. 주요 작품
장 아메리의 주요 작품으로는 《죄와 속죄의 저편》(Jenseits von Schuld und Sühne), 《정신의 한계에서》(At the Mind's Limits), 《노화에 관하여: 반란과 체념》(Über das Altern: Revolte und Resignation), 《자살에 대하여: 자발적 죽음에 대한 담론》(Hand an sich Legen. Diskurs über den Freitod), 《샤를 보바리, 시골 의사》(Charles Bovary, Landarzt) 등이 있다. 그 외에도, 1955년에는 『경력과 인물: 유명한 동시대인들의 초상화』(Karrieren und Köpfe: Bildnisse berühmter Zeitgenossen)를 출간하였고, 1960년에는 『십대 스타: 우리 시대의 우상』(Teenager-Stars: Idole unserer Zeit)을 출간하였다. 1961년에는 『재즈의 매력: 위대한 재즈 음악가들의 초상화』(Im Banne des Jazz: Bildnisse großer Jazz-Musiker)와 『현재의 탄생: 종전 이후 서구 문명의 모습과 형성』(Geburt der Gegenwart: Gestalten und Gestaltungen der westlichen Zivilisation seit Kriegsende)을 출간하였다. 1963년에는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영원한 독일인』(Gerhart Hauptmann: Der ewige Deutsche)을 출간하였다. 1971년에는 『미숙한 방랑의 세월』(Unmeisterliche Wanderjahre)을, 1974년에는 『르페우 또는 중단』(Lefeu oder der Abbruch)을 출간하였다. 1981년에는 『우리 세기의 젊은 시절의 책들』(Bücher aus der Jugend unseres Jahrhunderts)을 출간하였고, 1985년에는 『통합적 인본주의: 철학과 문학 사이. 독자의 에세이와 비평, 1966-1978』(Der integrale Humanismus: Zwischen Philosophie und Literatur. Aufsätze und Kritiken eines Lesers, 1966–1978)을 출간하였다. 1994년에는 영화에 대한 작업을 모은 『시네마: 영화에 대한 작업』(Cinema: Arbeiten zum Film)이 출간되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는 이렌 하이델베르거-레오나르트가 편집한 총 9권의 『장 아메리: 작품집』(Jean Améry: Werke)이 독일어로 출간되었다.참조
[1]
블로그
Amery: a biographical introduction
http://dgmyers.blogs[...]
[2]
서적
At the Mind's Limits
[3]
서적
Reconciling Community and Subjective Life: Trauma Testimony as Political Theorizing in the Work of Jean Améry and Imre Kertész
A&C Black
2013-02-14
[4]
웹사이트
Jean Améry (Hans Maier) (1912–1978)
http://www.wollheim-[...]
2019-11-22
[5]
웹사이트
Suicide Notes
https://www.asymptot[...]
2019-11-22
[6]
서적
At the Mind's Limits: Contemplations by a Survivor on Auschwitz and Its Realities
https://books.google[...]
Indiana University Press
2009-08-30
[7]
서적
At the Mind's Limits
[8]
서적
Resentment's Virtue
[9]
서적
Warum? Das Vermächtnis des Jean Améry
Buchhandlung R²
[10]
뉴스
Like a Cloud Contains a Storm: Jean Améry's Critique of Anti-Zionism
https://fathomjourna[...]
2016-09-01
[11]
웹사이트
Jean Améry as a Critic of the Anti-Israel Left
https://www.lrb.co.u[...]
2024-10-01
[12]
웹사이트
Jean Améry as a Critic of the Anti-Israel Left
https://fathomjourna[...]
2024-10-01
[13]
블로그
Amery: a biographical introduction
http://dgmyers.blogs[...]
[14]
서적
At the Mind's Limits
[15]
뉴스
고문은 끝났지만…온몸에 박힌 기억이 죽는 날까지 그를 고문하리라
http://www.hani.co.k[...]
20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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