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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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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임은 삼국 시대 유장의 신하로, 유비의 익주 침공에 맞서 싸우다 붙잡혀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유비가 익주를 공격해오자 유장의 명을 받아 유비군을 막았으나 패배했고, 낙성이 포위되자 성을 지키다 붙잡혔다. 유비는 장임의 충성심에 감복하여 항복을 권유했지만 거절당하자 죽였다. 장임의 묘는 쓰촨성 광한시에 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장의 충신으로 묘사되어 유비군에 맞서 활약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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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장임 청대 삽화
청대 삽화 속 장임
직책유장 휘하의 종사
사망213년
사망 장소광한, 쓰촨 성
매장 장소광한, 쓰촨 성
출생지청두, 쓰촨 성
주군유장
이름
장(張)
이름임(任)
로마자 표기Jang Im
생몰
출생미상
사망건안 18년 (213년)

2. 생애

장임은 집안이 미천했지만 용기와 충의를 갖춘 인물이었기에 익주에서 종사(從事)로 일했다.[1] 213년, 유비(劉備)가 익주를 공격해 오자 유장의 명령을 받고 유괴, 냉포, 등현과 함께 부(涪)에서 유비 군을 막았으나 패배하고 면죽으로 물러났다.[2]

이후 유비가 낙성(雒城)을 포위하자, 유장의 아들 유순과 함께 성을 지켰다. 장임은 성 밖으로 나와 안교(雁橋)에서 싸우다가 패배하여 포로로 붙잡혔다. 유비는 장임이 충성스럽고 용감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부하가 될 것을 권유했으나, 장임은 "늙은 신하는 결코 두 임금을 섬길 뜻이 없다"라고 말하며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장임은 처형되었고, 유비는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3]

유비는 끝까지 용감하게 싸우고 충의를 굽히지 않은 장임에게 감복하여, 그의 유해를 금안교 옆에 매장하고 경의를 표했다. 현재 쓰촨성 광한시 북외향에는 '장임묘'가 남아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장임

유장유비가 잔치를 벌일 때, 위연방통의 지시를 받고 유장을 죽이려 하자, 장임은 이를 눈치채고 위연을 막았다.[1]

유비가 쳐들어오자, 유장은 장임, 유괴, 냉포, 등현에게 5만 군사를 주어 유비군을 막게 했다. 장임은 유괴자허상인에게 앞일을 묻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2]

유비가 낙성을 공격할 때, 장임은 숲속에 매복해 있다가 방통유비로 오인하여 활을 쏴 죽였다. 이후 장비의 군사와 만나 낙성으로 후퇴하였고,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 사로잡혔다. 장임은 유비의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죽임을 당했다.[3]

삼국지연의에서는 장임이 유비군과 싸운 곳이 금안교(金雁橋)로 나와 있다.

나관중제갈공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방통의 죽음에 신비한 색채를 더하고 방통을 깎아내렸다. 또한, 방통의 죽음을 통해 숙명론적 사상을 주입했다. 이러한 나관중의 묘사로 인해 후세 사람들은 쓰촨성 더양시 나강진(羅江鎭) 부근에 낙봉파라는 지명을 새로 만들었다.

장효범(張曉帆)은 낙봉파가 원래 없던 지명이며, 방통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청나라 사람 왕사진(王士銇)은 낙봉파에서 방사원을 조상하는 시를 지었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중국역사지명사전』에도 낙봉파라는 지명이 수록되어 있어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노신은 『중국소설의 역사적 변천』에서 삼국지연의의 내용이 70%는 사실이고 30%는 허구인데, 사람들이 허구를 진실로 믿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서조는 『소설고증』에서 낙봉파라는 명칭이 소설가가 꾸며낸 말로, 전혀 근거가 없다고 비평했다. 오늘날 전하는 낙봉파라는 지명은 후세 사람들이 억지로 붙여 만든 허위 지명이다.

삼국지연의 이전의 창작물들에는 '낙봉파 전설'이 등장하지 않는다. 원나라 잡극인 《삼국지평화》에서는 방통이 낙봉파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정사 삼국지와 동일하게 낙성 공성전 도중 유진(劉珍, 가공의 인물)의 화살에 맞아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사와 달리 삼국지연의의 장임은 노장의 묘사가 없고, 엄안이 노장으로 묘사된다. 장임은 유장 진영에서 매우 화려한 활약을 한다. 유비의 입촉 당시, 장임은 유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입촉에 반대했지만, 유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통위연에게 검무를 추게 하여 유장을 살해하려 했을 때, 장임은 이를 간파하고 유장을 보호했다. 유비가 익주 정복의 야심을 드러냈을 때, 장임은 낙성에 웅거하여 유비군을 막아내며 낙봉파(현재의 쓰촨성 더양시)에서 적로를 탄 방통을 사살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제갈량의 계략에 의해 금안교로 출격했다가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다. 유비는 장임의 살해를 망설였지만, 제갈량의 진언을 받아들여 처형했다.

4. 장임의 묘

쓰촨성 광한시 북외향(北外鄉) 위간촌(桅杆村)에 장임의 묘가 위치해 있다. 청나라 가경제 연간에 지방 정부는 "한 장군 장공임지묘(漢將軍張公任之墓)"라는 글귀가 새겨진 묘비를 세웠다. 1954년에는 "원강 6년 8월에 건립"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벽돌이 묘터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묘가 서진 진 혜제의 원강 연간(291-300)인 296년에 건설되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1990년 7월, 이 묘는 광한시 관할 구역 내에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4]

1964년 발굴 조사에서는 원강 6년의 연호가 쓰인 벽돌이 출토되어, 진대 다른 인물의 묘일 가능성도 있다.[4]

5. 역사적 사실과 소설의 차이

장임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정사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정사에는 노장이라는 묘사가 없지만, 소설에서는 엄안이 노장으로 묘사된다. 반면 정사에서 충의를 높이 평가받은 장임은 소설에서 유장 진영의 인물로 더욱 화려하게 활약한다.

유비의 입촉 당시, 장임은 동료들과 함께 유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입촉에 반대했지만, 유장은 이를 무시했다. 이후 유비의 책사 방통이 연회에서 위연에게 검무를 추게 하여 유장을 암살하려 하자, 장임은 이를 눈치채고 유장을 보호하기 위해 위연과 함께 춤을 추는 등 홍문지회를 연상시키는 활약을 한다.

유비가 익주 정복의 야심을 드러내자, 장임은 낙성에서 유비군에 맞서 싸워 큰 어려움에 빠뜨린다. 이때 낙봉파(현재의 쓰촨성 더양시)에서 백마(소설에서는 적로라고 명확히 언급되지 않음)를 탄 방통을 활로 쏴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 원군으로 온 제갈량의 계략에 의해 금안교(金雁橋)로 출격했다가 패배하여 포로가 된다.

그 후 장임은 정사처럼 유비에게 항복을 권유받지만, "늙은 신하는 결코 두 임금을 섬길 뜻이 없다"라고 말하며 거절한다. 유비는 장임의 죽음을 망설였지만, 결국 제갈량의 진언을 받아들여 그를 처형한다.[1] 유비는 장임에게 감복하여 유해를 금안교 옆에 매장하고 경의를 표했다.[1]

오늘날 전해지는 낙봉파라는 지명은 후세 사람들이 억지로 붙여 만든 허위 지명이다.[1] 명대에 쓰여진 삼국지연의 이전의 중국 삼국시대를 소재로 한 창작물들에는 '낙봉파 전설'이 등장하지 않는다.[1]

원대 잡극 《삼국지평화》에서도 방통은 낙봉파에서 장임의 매복에 걸려 죽는 것이 아니라 정사 삼국지와 동일하게 낙성 공성전 도중 유장의 동생 유진(劉珍, 가공의 인물)의 화살에 맞아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1]

현재 쓰촨성광한시 북외향에는 "장임묘"가 현존하며 현급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1964년 발굴 조사에서 원강 6년의 연호가 쓰인 벽돌이 출토되어, 진대 다른 인물의 묘일 가능성도 있다.[1]

참조

[1] 서적 Yibu Qijiu Zaji annotation in Sanguozhi vol. 32 Sanguozhi
[2] 서적 Sanguozhi vol. 32 Sanguozhi
[3] 서적 Yibu Qijiu Zaji annotation in Sanguozhi vol. 32 Sanguozhi
[4] 웹사이트 广汉张任墓 [Zhang Ren Tomb in Guanghan] http://www.gh.ccoo.c[...] 20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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