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순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여자 농구 선수이다. 중학교 시절 최연소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고생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프로에서는 신인왕을 수상했으며, 1994-1995 농구대잔치 MVP를 차지했다. 1997년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 MVP를 공동 수상했으며, 1999년 WKBL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4강 신화에 기여했다. 2003년 은퇴 이후 농구 해설자 및 농구교실 운영 등 농구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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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방콕 단체전 금메달 1999 시즈오카 단체전 금메달 1990 싱가포르 단체전 은메달 1992 서울 단체전 은메달 1994 센다이 단체전 은메달 1995 시즈오카 단체전 은메달
동아시아 경기 대회
1997 부산 단체전 금메달 1993 상하이 단체전 은메달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대회
1986 마닐라 단체전 은메달
2. 선수 경력
정은순은 인천송현초등학교, 인성여자중학교, 인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 삼성생명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중학생 때 최연소 청소년 대표에 발탁되었고, 여고생 국가대표 리스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일찍부터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1]
프로 선수로서 정은순은 여러 차례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실업 데뷔 당시 고교 동창인 유영주와 공동 신인왕을 차지하며 단독 신인왕 관례를 깼다.[1] 1994-1995 농구대잔치에서는 유영주가 정선민, 김지윤과 활약한 SKC가 우승했지만, 최우수선수(MVP)는 우승 팀에 돌아가는 관례를 깨고 정은순이 차지했다.[1]1997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대회)에서는 유영주와 함께 무패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를 공동 수상했다.[1]
1999년에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는데, 이는 남녀 통틀어 센터로서는 첫 기록이었다.[1] 1999년 후반 부상과 체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1]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팀을 4강으로 이끄는 등 노련한 플레이를 선보였다.[1] 특히, 미국팀의 명 포워드 셰릴 스웁스는 정은순의 노룩 백패스를 올림픽 최악의 경험으로 꼽기도 했다.[1]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에도 국내 무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인 정은순은[1]200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1]
2. 1. 학창 시절
인천송현초등학교, 인성여자중학교, 인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생 때 최연소 청소년 대표에 발탁되었고, 여고생 국가대표 리스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1] 이후 곽주영이 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 들었다가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는데도 '정은순 이후 10년 만에 나온 여고생 국가대표 후보'라는 점이 이슈화될 정도였다.[1] 정은순 이후 포지션을 불문하고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에 들어간 여고생은 없었으나 박지수가 그 명맥을 이었다.[1]
2. 2. 프로 경력
실업 데뷔 당시 정은순은 고교 동창인 유영주와 공동 신인왕을 차지하며 단독 신인왕 관례를 깼다.[1]
1994-1995 농구대잔치에서는 유영주가 정선민, 김지윤과 활약한 SKC가 우승했지만, 최우수선수(MVP)는 우승 팀에 돌아가는 관례를 깨고 정은순이 차지했다.[1]
1997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대회)에서 정은순은 동기 유영주와 함께 무패 우승을 일구어냈고, 대회 MVP를 거머쥐었다. (유영주와 공동 수상)[1]
1999년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는데, 이는 남녀 통틀어 센터로서는 첫 기록이었다. (서장훈도 득점, 리바운드, 블록으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긴 했지만, 트리플더블의 기준은 보통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가 10개 이상인 것을 트리플더블로 인정한다.)[1]
1999년 후반 부상과 체력 저하가 겹치면서 팀에서의 활약도가 떨어졌고, 1999년 시즈오카 ABC 대회에서는 저조한 활약으로 평가를 받았다.[1] 그러나 올림픽 출전을 확정하고 부상과 체력 문제를 보완한 뒤,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1]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팀을 완벽하게 조율하고 맏언니로서 이끌며 4강 신화를 만들어 냈다.[1] 이는 박찬숙이 성정아 등을 이끌고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활약과 비견된다.[1]
미국팀의 명 포워드 셰릴 스웁스는 올림픽 최악의 경험으로 한국팀과의 경기에서 상대 센터(정은순)가 바운드된 볼을 골밑 동료(이종애)에게 노룩 백패스로 득점으로 연결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했던 순간을 회상했다.[1]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후에는 국내 무대에서도 드리블 후 완벽한 피벗과 농구 센스로 골밑을 점령하던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외국 용병 센터들을 상대로도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등 기량을 선보였다.[1] 정은순은 농구대잔치 초창기에도 미들슛이 좋았으며, 국제 대회에서 한국 팀을 승리로 이끈 경기가 있을 정도로 미들슛도 좋은 선수였고, 주 공격 방법 중 하나였다.[1]
중학생 때 최연소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고, 여고생 국가대표 리스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후 곽주영이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에 들었다가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는데도 '정은순 이후 10년 만에 나온 여고생 국가대표 후보'라는 점이 이슈가 될 정도였다. 정은순 이후 포지션을 불문하고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에 들어간 여고생은 없었으나 박지수가 그 명맥을 이었다.
1997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대회)에서 유영주와 함께 무패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를 수상했다. (유영주와 공동 수상)
1999년 시즈오카 ABC 대회에서는 활약이 저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을 확정하고 부상과 체력 문제를 보완한 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팀을 이끌어 4강 신화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박찬숙이 성정아 등을 이끌고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것과 비견된다.
미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명 포워드 셰릴 스웁스는 올림픽 최악의 경험으로 한국팀과의 경기에서 상대 센터(정은순)가 바운드된 볼을 골밑 동료(이종애)에게 노룩 백패스를 하여 득점으로 연결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3. 은퇴
鄭恩順|정은순중국어은 2003년7월 7일 공식 은퇴했으나, 구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은퇴가 이루어졌다는 논란이 있었다.[2][3][4][5]
3. 1. 은퇴 논란
鄭恩順|정은순중국어은 2003년7월 7일 공식 은퇴했으나,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구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은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언론 기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2][3][4][5] 이후 소속팀은 2006년 여름 리그까지 우승에 실패했고, 정은순이 없는 동안 2002년 여름 리그부터 2005년 겨울 리그까지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고도 준우승에 그쳐, 일부 여자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정은순 징크스'(혹은 정은순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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