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1년 4월 26일에 발족하여 2002년 9월 30일 개각된 일본의 내각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았으며, 총무대신, 외무대신, 재무대신 등 각료 명단과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부대신, 대신 정무관 등이 구성되었다. 2002년 9월 30일 개각을 통해 일부 각료가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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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일본 - 2002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여 브라질이 우승했으며 아시아 축구 발전의 계기가 된 최초의 아시아 개최이자 2개국 이상 공동 개최 월드컵이다.
2002년 일본 - 제1차 고이즈미 내각 (제1차 개조) 제1차 고이즈미 내각 (제1차 개조)은 2002년 9월 30일 개조되었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아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가와구치 요리코, 시오카와 마사주로 등을 유임하고 스즈키 준이치, 이시바 시게루, 호소다 히로유키 등을 초입각했다.
2001년 일본 - 2001년 월드 게임 2001년 월드 게임은 일본 아키타에서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최된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로,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가 허용되었지만, 과도한 예산, 준비 부족, 정치적 논란 등과 함께 스포츠 인프라 확충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으나 시설 유지 관리라는 과제를 남겼다.
2001년 일본 - 게이요 지진 게이요 지진은 세토 내해 서부에서 발생하는 판 내부 지진으로, 1905년과 2001년에 큰 피해를 입혔으며, 필리핀해판 섭입 과정에서 발생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제3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된 자민당-공명당 연립 정부 내각으로, 차기 총리 후보들을 포함한 새로운 각료들이 임명되었으며, 행정 및 의료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교육, 헌법, 형법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
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2001년 4월 27일~28일, 전화)에서 내각 지지율은 78%로 호소카와 내각의 74%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비지지율은 8%였다.[29]후지 TV 조사(2001년 8월 21일)에서는 지지율 61.8%, 비지지율 34.4%였다.[30]다나카 마키코는 외무성 간부 및 스즈키 무네오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과의 대립 등으로 국회 심의를 혼란에 빠뜨려 2002년 1월 29일 경질되었다.[31] 고이즈미 총리가 외무대신을 겸임한 후, 가와구치 요리코가 외무대신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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