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특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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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특전단은 미국 육군 특수 부대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창설된 제1특별임무대의 후신이다. 1957년 일본에서 재창설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특수 작전 임무를 수행했으며, 베트남 전쟁, 냉전, 테러와의 전쟁 등 다양한 분쟁과 작전에 참여했다. 현재는 본부 및 본부중대, 4개의 대대, 그리고 한국에 주둔하는 제39특전분견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리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대테러 작전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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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특전단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
부대 정보 | |
부대명 | 제1특전단 (공수) |
원어 부대명 | 1st Special Forces Group (Airborne) |
![]() | |
창설일 | 1957년 6월 24일 |
해체일 | 1974년 6월 28일 |
재창설일 | 1984년 9월 4일 |
국가 | 미국 |
소속 | 미국 육군 |
상위 부대 | [[파일:SpecialForces Badge.svg|20px]] 제1특전사령부 |
종류 | 특수 작전 부대 |
역할 | 비정규전 (UW) 외국 내부 지원 (FID) 직접 행동 (DA) 대게릴라전 (COIN) 특수 정찰 (SR) 대테러 (CT) 정보 작전 (IO)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CP) 보안군 지원 (SFA) |
규모 | 4개 대대: 도리이 역, 오키나와현, 일본에 1개 대대, 조인트 베이스 루이스-맥코드, 워싱턴주에 3개 대대 |
주둔지 | 조인트 베이스 루이스-맥코드 |
표어 | 아시아에서 첫 번째 |
별칭 | 퍼스트 인 아시아, 퍼스트 어크로스 더 글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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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및 작전 | |
참전 | 베트남 전쟁 테러와의 전쟁 항구적 자유 작전 이라크 자유 작전 내재된 결단 작전 자유 수호 작전 마라위 공성전 |
2. 역사
제1특전단의 기원은 ''악마의 여단''(Devil's Brigade영어)으로도 알려진 제1특별임무대 1연대 1대대 2중대이다.[19] 이 중대는 1942년 7월 9일 몬태나주 포트 윌리엄 헨리 해리슨에서 창설되었고, 1945년 12월 5일 프랑스 망통에서 해산하였다.[19]
1957년 6월 24일 일본에서 제1특전단이 창설되었다. 1974년 6월 30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서 해산하였다가, 1984년 9월 1일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재소집되었다. 2014년 9월 30일, 새로 창설된 제1특전사령부로 전속되었다.
제1특전단은 태평양 지역 작전을 담당한다. 현재 제1대대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으며, 제2, 3, 4대대와 그룹 지원 대대는 조인트 기지 루이스-맥코드에 주둔하고 있다.[7][8]
9.11 테러 이후, 제1특전단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했다.
2. 1. 창설과 초기 활동
제1특전단의 기원은 ''악마의 여단''(Devil's Brigade영어)으로도 알려진 제1특별임무대이다.[19] 이 부대는 1942년 7월 9일 몬태나주 포트 윌리엄 헨리 헤리슨에서 창설되었고, 1945년 12월 5일 프랑스 망통에서 해산하였다.[19]1957년 6월 24일, 일본에서 제1특전단이 창설되었다. A. 스콧 매딩 중령이 사령관을, 로버트 L. 보스 상사가 주임원사로 임명되었다. 제1특전단은 베트남 전쟁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전사한 특전단 군인을 배출했다. 해리 그리피스 크래머 주니어 대위는 1957년 10월 21일에 사망했고, 리차드 M. 리스 대위는 1973년 12월 15일에 사망했다. 제1특전단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특수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9][10][11]
남베트남 전쟁과 동남아시아에서 미군 철수 이후, 군사 작전의 초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과 나토로 이동하면서 1974년 6월 28일 제1특전단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서 활동을 중단했다. 10년 후, 아시아 비정규전 부대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1984년 3월 15일 알파 중대, 제1대대가 포트 브래그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제2 및 제3대대는 본부 및 지원 중대와 함께 1984년 9월 4일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공식적으로 재창설되었다.[14]
2. 2. 베트남 전쟁과 냉전 시기
제1특전단은 베트남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 전쟁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전사한 특전단 군인을 배출했다. 해리 그리피스 크래머 주니어 대위는 1957년 10월 21일에, 리차드 M. 리스 대위는 1973년 12월 15일에 전사했다.[9][10][11] 수십 년 후, 제1특전단의 또 다른 군인 네이선 채프먼 일등상사는 2002년 1월 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적의 공격으로 사망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다.[9][10][11]오키나와에 주둔한 제1특전단은 특전단 그룹을 중심으로 구축된 두 개의 특수 작전 부대/안보 지원 부대(SAF) 중 하나였다. SAF 아시아[12]는 유연성이 뛰어나 제1그룹은 태평양 연안에서 어떤 임무든 수행할 수 있도록 파견대를 편성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6개월 동안 베트남에 팀을 파견하여 임시 근무를 했다. 또한 오키나와 북부 훈련 구역에 있는 캠프 하디 전투 훈련 센터를 운영하여 베트남에 배치되는 특전단, 네이비 실 및 미 해병대를 훈련시켰다. 1973년 한 해 동안의 활동으로 공로 부대 표창을 받았다.[13]
남베트남 전쟁과 동남아시아에서 미군 철수 이후, 군사 작전의 초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과 나토로 이동했다. 1963년에 총 7개 그룹으로 성장했던 특전단은 평시 군대에서 심각한 감축에 직면했고, 그 결과 제1그룹은 1974년 6월 28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서 해산되었다.[14] 10년 간의 공백기를 거쳐, 아시아 비정규전 부대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1984년 9월 1일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재소집되었다.[14]
2. 3. 냉전 이후와 테러와의 전쟁
냉전 종식 이후, 제1특전단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세계 각지에서의 분쟁 해결 및 인도적 지원 활동에 참여했다.[15] PACOM 작전 지역 내에서 극장 안보 교전을 지원하고, 아이티, 중앙아시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비상 작전을 지원했다. 작전 파견대 "알파"는 아이티에 배치되어 미국 합동 참모 본부 190 및 다국적군 작전을 지원하는 1993–94년에 유지 민주주의 작전을 지원하는 연합 지원팀 임무를 수행했다. 인도적 지뢰 제거 작전을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수행하여 라오스와 태국에서 노력에 대한 인도주의 봉사 메달을 받았다.[15] 1990년대 중반 지역 평화 유지군인 중앙 아시아 대대(CENTRASBAT)의 발전을 지원하는 구 소련에서 새로 창설된 국가의 군부대와 훈련을 실시했다.[15] 밀레니엄 말까지 제1특전단(A)의 군인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안정화군에 배치되었다.9.11 테러 이후, 제1특전단(A) 대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항구적 자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배치되었고 필리핀에 대한 대대 순환 배치를 지속했다.[16] 2002년 2월부터 필리핀군(AFP)과 함께 필리핀 남부에서 비정규전을 수행하여 필리핀 정부 (GOP)를 지원했다.[16]
그 후 3년 동안, 필리핀에서 6개의 경보병 대대, 필리핀군(AFP)의 3개의 경보병 반응 중대를 훈련시키고, MEDCAP 행사에서 31,000명 이상의 필리핀인을 치료하고, AFP의 전문성을 높이고, 테러 조직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AFP를 지원하기 위한 작전 및 정보 융합 팀을 제공하는 등 훌륭한 기록을 세웠다. 2003–2004년 내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각각 이라크 자유 작전과 항구적 자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군인을 배치했다. 2004년 11월까지 이 부대는 합동 특수 작전 태스크 포스-아프가니스탄(CJSOTF-A)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전체 대대를 배치했다.[17]
오늘날, 제1특전단(A)은 2021년까지 필리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태평양 전역에서 파트너 국가들과의 미국의 안보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했다.[18]
3. 편성
제1특전단은 미 육군 특수부대 중 하나로, 태평양 지역을 담당한다. 1957년 6월 24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창설되었으며, 본부, 지원 중대, 그리고 4개의 대대로 구성되어 있다.[7][8]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필리핀 등에서 작전을 수행했다.[18]
제1특전단은 제1대대 (일본 오키나와현 요미탄촌 도리이 스테이션 주둔), 제2, 3, 4대대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 기지 주둔)로 구성되어 있다.
3. 1. 부대 구성
- 본부 및 본부중대
- 단 지원중대
- 제1대대 - 일본 오키나와현 요미탄촌 도리이 스테이션
- 제2대대 -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 기지
- 제3대대 -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 기지
- 제4대대 -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 기지
- 제39특전분견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캠프 킴
- 제46특전중대[20] - 태국 코랏 캠프 프렌드쉽; 1965년 ~ 1970년
3. 2. 한국 및 기타 지역 주둔 부대
부대 | 위치 | 비고 |
---|---|---|
본부 및 본부중대 | ||
단 지원중대 | ||
제1대대 | 일본 오키나와현 요미탄촌 도리이 스테이션 | |
제2대대 |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 기지 | |
제3대대 |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 기지 | |
제4대대 |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 기지 | |
제39특전분견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캠프 킴 | |
제46특전중대[20] | 태국 코랏 캠프 프렌드쉽 | 1965년 ~ 1970년 |
4. 주요 작전 및 훈련
제1특전단은 창설 이후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다양한 작전 및 훈련에 참여했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6개월 동안 팀을 파견하여 임시 근무를 했고, 오키나와 북부 훈련 구역의 캠프 하디 전투 훈련 센터에서 특전단, 네이비 실, 해병대를 훈련시켰다.[13] 1973년에는 공로 부대 표창을 받았다.[13]
남베트남 전쟁과 동남아시아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군사 작전의 초점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과 나토로 이동하면서 제1특전단은 1974년 6월 28일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10년 후 아시아 비정규전 부대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1984년에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14]
제1특전단은 태평양 사령부 작전 지역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전 세계의 통합 사령관을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 밖으로 정기적으로 배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