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방면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5방면군은 1944년 3월 일본 대본영 직속으로 창설되어 홋카이도, 사할린, 쿠릴 열도를 작전 지역으로 삼았다. 2차 세계 대전 말기 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예비군, 징병된 학생, 향토 방위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소련의 만주 전략공세작전으로 인해 소련-일본 전쟁이 발발하자 소련군의 공격을 받았다. 종전 후에도 소속 병사들은 소련 지역에서 포로 생활을 하였으며, 사령관은 히구치 기이치로 중장이 역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삿포로시 - 삿포로 도시권
삿포로 도시권은 삿포로시를 중심으로 행정적, 경제적, 교통적 측면에서 다양한 정의와 범위를 가지며, 홋카이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삿포로시 - 제11여단 (육상자위대)
홋카이도 도오 및 도난 지역을 방위하는 육상자위대 제11여단은 1952년 창설된 제7혼성단에서 시작하여 제11사단을 거쳐 2008년 기동여단으로 개편되었으며, 재해 구조, 국제 공헌, 지역 사회 협력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 일본 육군의 방면군 - 제14방면군
제14방면군은 1944년 필리핀 방어를 위해 일본군 육군이 편성한 방면군으로, 야마시타 도모유키 대장이 사령관을 맡아 필리핀 전역을 지휘했으나 많은 사상자를 냈다. - 일본 육군의 방면군 - 제1방면군
제1방면군은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중 만주국 북부 치안 유지를 위해 관동군 예하에 편성한 부대였으나, 전력 부족으로 소련의 만주 침공 당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 1940년 설립 - 김해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위치한 국제공항으로, 1976년 개항 이후 2023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이용객을 기록하며 동남권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시설 부족, 안전 및 소음 문제로 인해 김해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되고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추진 중이다. - 1940년 설립 -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1940년 소련에 강제 병합되어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독립을 재선언할 때까지 공산화, 농업 집단화, 문화적 탄압, 강제 이주, 무장 저항 등 고난을 겪었으며,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시민 저항 운동을 통해 독립을 이루었다.
제5방면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
부대 정보 | |
부대 명칭 | 제5방면군 |
원어 명칭 | 일본어: 第5方面軍 로마자 표기: Dai-go hōmen gun |
통칭 | 달(達, Tatsu = “attain”) |
국가 | 일본 제국 |
군 종류 | 일본 제국 육군 |
역할 | 보병, 야전군 |
주둔지 | 삿포로 |
담당 지역 | 홋카이도, 남사할린, 쿠릴 열도 |
연혁 | |
창설 | 1944년 3월 16일 |
해체 | 1945년 8월 15일 |
주요 참전 | |
전투 | 소련-일본 전쟁 남사할린 침공 쿠릴 열도 침공 소련의 홋카이도 침공 계획 |
지휘부 | |
최종 상급 부대 | 대본영 |
1945년 편제 | |
소속 | 총력전사령부 |
예하 부대 | 제7보병사단 제42보병사단 제77보병사단 제88보병사단 제89보병사단 제91보병사단 제101독립혼성여단 제129독립혼성여단 |
기타 | |
위치 | 홋카이도 삿포로 |
2. 역사
1944년 3월 16일, 대본영 직속으로 제5방면군이 창설되었다. 제5방면군은 일본군 북부군을 개편한 것으로, 홋카이도, 남사할린, 쿠릴 열도를 작전 지역으로 삼았다. 당초 제27군을 지휘 하에 두었지만, 이후 제27군은 폐지되었다. 1945년 2월 이후, 제5방면군 사령관 및 참모장은 북부군관구 사령관 및 참모장을 겸임했다. 제5방면군은 삿포로에 사령부를 두었다.[1]
제5방면군은 일본 제국 육군의 방면군 중 하나였다.
일본군은 결호작전(다운폴 작전)의 일환으로 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하였으나, 훈련 및 장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8월까지 일본군은 본토에 65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을 보유했지만, 40개 사단 분의 장비와 30개 사단 분의 탄약만 보유하고 있었다.[1] 제5방면군은 대부분 훈련이 부족한 예비군, 징병된 학생, 그리고 향토 방위대로 구성되었다. 또한, 일본군은 전투 지원, 궁극적으로는 전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15세에서 60세의 건강한 남성과 17세에서 40세의 여성을 포함하는 국민 의용대를 조직했다. 무기, 훈련, 제복은 일반적으로 부족했다. 일부 병사들은 머스켓총, 장궁, 대나무 창과 같은 열악한 무기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2]
1945년 8월, 소련-일본 중립 조약을 파기한 소련이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시작으로 소련-일본 전쟁이 발발, 가라후토와 쿠릴 열도를 침공하면서 제5방면군은 실질적인 전투에 돌입했다. (남사할린 상륙 작전, 쿠릴 열도 상륙 작전) 붉은 군대는 일본 제88사단보다 세 배나 많은 병력을 투입했지만, 일본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8월 16일에 추가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진격하지 못했다. 실제 전투는 8월 21일까지 계속되었으며, 도요하라의 수도는 8월 25일에 함락되었다.
일본 항복 이후에도 제5방면군 소속 병사들 다수는 1950년대 중반까지 시베리아 등 소련 지역에서 전쟁 포로 생활을 하였다.
3. 조직
히구치 기이치로 중장이 사령관을, 하기 사부로 중장이 참모장을 맡았다. 주요 부대로는 제7사단, 제42사단, 제88사단, 제89사단, 제91사단, 제1비행사단과 독립혼성 제101여단, 독립혼성 제129여단[4] 등이 있었다.
소야, 츠가루, 네무로, 무로란에는 각각 방위 관련 부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야전 부대, 방공 부대, 해상 수송 부대, 통신 부대도 제5방면군 소속이었다.
삿포로와 카미시키카에는 육군 병원이 있었으며, 제5방면군 정보부, 특종 정보부, 교육대, 임시 군법 회의, 하코다테 포로 수용소 등도 제5방면군 직할 부대였다.
3. 1. 지휘부
3. 2. 최종 소속 부대
wikitext
참조
[1]
서적
Downfall
[2]
서적
Downfall
[3]
서적
陸海軍将官人事総覧 陸軍篇
[4]
서적
陸海軍将官人事総覧 陸軍篇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