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펜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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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스펜서는 1946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5년 사망한 미국의 배우이다. 1981년 연극 《Still Life》로 오비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워 게임》으로 데뷔하여 《블랙 레인》, 《씨 오브 러브》 등에 출연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텔레비전 드라마 《L.A. 로》에 출연했으며,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웨스트 윙》에서 레오 맥게리 역을 맡아 2002년 에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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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펜서 (배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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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존 스페쇽 주니어 |
출생일 | 1946년 12월 20일 |
출생지 | 미국 뉴욕 시 |
사망일 | 2005년 12월 16일 (향년 58세)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묘지 | 로렐 그로브 메모리얼 파크, 토토와, 뉴저지주 |
국적 | 미국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63년 – 2005년 |
배우자 | 패트리샤 마리아노 (2000년–2005년, 사망 시까지) |
출연 작품 | |
텔레비전 | 레오 맥개리 (《더 웨스트 윙》) |
주요 작품 |
2. 초기 생애
존 스펜서는 1946년 12월 20일 뉴욕 시에서 존 스페쇼크 주니어(John Speshock Jr.)로 태어나 뉴저지주 토토와에서 자랐다.[5] 그는 웨이트리스였던 밀드레드(née Benzeroski)와 트럭 운전사였던 존 스페쇼크 시니어의 아들이었다.[1] 스펜서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과 체코계 미국인 혈통이었고,[2] 그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과 루신계 미국인 혈통이었다.[15][3] 스펜서의 부모는 그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실망했다.[4] 1963년 맨해튼에 있는 프로페셔널 칠드런스 스쿨에 입학하면서 스펜서는 라이자 미넬리와 바이올리니스트 핀차스 주커만과 같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는 페어리 디킨슨 대학교에 다녔지만 학위를 마치지는 못했다.[5] 스펜서는 종종 자신을 "완고한 자유주의자"라고 언급했으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자신의 영웅 중 한 명으로 묘사했다.[6]
스펜서는 텔레비전 드라마 ''패티 듀크 쇼''로 배우 경력을 시작하여, 1983년 영화 ''워 게임''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블랙 레인'', ''씨 오브 러브''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1981년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Still Life''로 오비상을 수상했다. 1990년 영화 ''프레주머티''에서 해리슨 포드의 상대역을 맡았고, 드라마 ''L.A. 로''에 고정 출연했다.
3. 경력
''더 록'', ''코플랜드'', ''네고시에이터'' 등의 영화에서 정부 고위 관료, 경찰, 군 간부 등 역할을 맡았다. 1999년부터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비서실장 레오 맥개리 역을 맡아 2002년 에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웨스트 윙'' 시즌 7 출연 중이던 2005년 12월 16일, 59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심장마비로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22] 그의 죽음으로 ''웨스트 윙'' 시즌 7의 스토리가 변경되었다.[23]
3. 1. 초기 경력
스펜서는 텔레비전 경력을 ''패티 듀크 쇼''에서 시작했으며, 1983년 영화 ''워 게임''을 시작으로 장편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1981년 오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스틸 라이프''에서 오비상을 수상했는데,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 관한 것이었다. ''더 데이 룸''으로 드라마 데스크상 후보에 올랐다. 1986년에는 스탠리 투치, 웨슬리 스나이프스와 함께 하비 밀크의 살인자인 댄 화이트 역으로 브로드웨이에 출연했다. 1990년 법정 스릴러 영화 ''프리즘''에서 주연 해리슨 포드의 상대역으로, 강인한 베테랑 살인 수사관 역을 맡아 조연으로 출연했다. 1995년 비디오 게임 ''윙 커맨더 IV: 프리덤의 대가''에서 휴 폴슨 대위 역을 맡으며 비디오 게임으로도 활동을 확장했다. 이후 ''포겟 파리''에서 빌리 크리스탈의 농구 심판 동료이자 친구 역, 마이클 베이의 영화 ''더 록''에서 까다로운 FBI 국장 역 등 주로 조연 역할을 맡았다.
3. 2. ''L.A. Law'' (1990-1994)
스펜서는 1990년부터 1994년까지 텔레비전 드라마 ''L.A. Law''에서 거리의 변호사 토미 멀라니 역을 맡았다.[7][8] 처음에는 이 역할을 맡지 않으려 했으나, 대본 5페이지를 읽고 "내가 읽은 최고의 대본 중 하나"라며 출연을 결심했다. 스펜서는 극중 캐릭터의 흐트러진 옷차림이 자신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말했으며,[9] 동료 배우 세실 호프만과 함께 배역을 준비하기 위해 뉴욕시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10]
3. 3. ''웨스트 윙'' (1999-2006)
1999년, 스펜서는 NBC 정치 드라마 시리즈 ''웨스트 윙''에서 레오 맥개리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맥개리는 시리즈 전체에서 가상의 미국 대통령 제드 바틀렛의 백악관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 중이었고, 강박적인 워커였으며, 베트남 전쟁 중 미국 공군 조종사였다.[11][12] 맥개리는 나중에 이 쇼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에서 맷 산토스의 러닝 메이트로 선택되었다. 스펜서는 이 쇼에서 그의 역할로 2002년 쇼의 세 번째 시즌 에피소드 "Bartlet for America"와 "We Killed Yamamoto"로 프라임타임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3. 4. 기타 작품 활동
스펜서는 텔레비전 경력을 ''패티 듀크 쇼''에서 시작했으며, 1983년 영화 ''워 게임''을 시작으로 장편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1981년 오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스틸 라이프''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 관한 내용으로 오비상을 수상했고, ''더 데이 룸''으로 드라마 데스크상 후보에 올랐다. 1986년에는 스탠리 투치, 웨슬리 스나이프스와 함께 하비 밀크의 살인자인 댄 화이트 역으로 브로드웨이에 출연했다. 1990년 법정 스릴러 영화 ''프리즘''에서 주연 해리슨 포드의 상대역으로, 강인한 베테랑 살인 수사관 역을 맡아 조연으로 출연했다. 비디오 게임 ''윙 커맨더 IV: 프리덤의 대가''에서 휴 폴슨 대위 역을 맡았다. 이후 영화 및 텔레비전 활동은 주로 빌리 크리스탈의 농구 심판의 동료이자 친구 역의 ''포겟 파리''와 마이클 베이의 영화 ''더 록''에서 까다로운 FBI 국장과 같은 조연 역할로 구성되었다.
4. 사생활
존 스펜서는 1946년 12월 20일 뉴욕 시에서 존 스페쇼크 주니어(John Speshock Jr.)로 태어나 뉴저지주 토토와에서 자랐다.[5] 그는 웨이트리스였던 밀드레드(née Benzeroski)와 트럭 운전사였던 존 스페쇼크 시니어의 아들이었다.[1] 스펜서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과 체코계 미국인 혈통이었고,[2] 그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과 루신계 미국인 혈통이었다.[15][3] 스펜서의 부모는 그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실망했다.[4] 1963년 맨해튼에 있는 프로페셔널 칠드런스 스쿨에 입학하면서 스펜서는 라이자 미넬리와 바이올리니스트 핀차스 주커만과 같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는 페어리 디킨슨 대학교에 다녔지만 학위를 마치지는 못했다.[5] 스펜서는 종종 자신을 "완고한 자유주의자"라고 언급했으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자신의 영웅 중 한 명으로 묘사했다.[6]
스펜서는 1970년대에 한 번 결혼했고 이혼했으며, 자녀는 없었다.[13] 이후 사망할 때까지 패트리샤 마리아노와 함께 살았다. 스펜서는 20년 넘게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린 끝에 1989년에 금주를 시작했다.[14] 그는 드라마 《웨스트 윙》에 함께 출연한 배우 마틴 쉰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무명 시절에는 약물과 알코올 의존증으로 고생했지만 회복했다.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스스로를 "뉴요커"라고 칭하며, 일의 거점이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그곳에 거주지를 옮긴 후에도 뉴욕의 집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원예를 즐겨, 벨에어 자택 정원에서 장미와 라일락을 키웠다.
5. 사망
스펜서는 2005년 12월 16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15] 마틴 쉰, 둘레 힐, 조슈아 말리나, 자넬 몰로니, 리처드 쉬프, 앨런 알다, 지미 스미츠, 아론 소킨, 앨리슨 제니를 포함한 스펜서의 많은 ''웨스트 윙'' 동료 배우들이 그의 장례식에서 그를 추모했다.[16][17] 크리스틴 체노웨스는 위니 홀츠먼과 스티븐 슈워츠의 ''위키드''의 "For Good"을 불렀다. 스펜서의 유해는 그의 고향인 뉴저지 주 토토와의 로럴 그로브 메모리얼 파크에 안장되었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스펜서는 ''웨스트 윙''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의 두 에피소드, "러닝 메이트"와 "더 콜드" (각각 10화와 13화)를 촬영했고, 이 에피소드들은 후반 작업 중이었다.[18] 두 에피소드에서 맥개리는 부통령 후보로 묘사되었다. 이 쇼의 작가들은 스펜서의 부재를 맥개리가 선거일 밤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각색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맥개리는 이미 쇼의 여섯 번째 시즌에서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겪은 적이 있었다. 스펜서의 이름은 그의 사망 후 몇 달 동안 방영된 나머지 모든 에피소드의 오프닝 크레딧에 계속 포함되었다.
1999년부터 방영된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레오 맥개리 비서실장 역을 맡아 2002년 제54회 에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웨스트 윙'' 시즌 7 출연 중이던 2005년 12월 16일, 59번째 생일을 4일 앞두고 심장마비로 인해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사망했다.[22] 향년 58세. 스펜서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웨스트 윙'' 시즌 7의 스토리가 변경되었다. 마틴 쉰은 영국 잡지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스펜서 없이는 드라마를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언급하며, 이 작품에서 스펜서의 존재가 컸음을 이야기했다.[23]
6. 출연 작품
존 스펜서는 《패티 듀크 쇼》로 텔레비전 경력을 시작했으며, 1983년 영화 《워 게임》을 시작으로 장편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1990년 법정 스릴러 영화 《프리즘드 이노센트》에서 해리슨 포드의 상대역으로 출연, 강인한 베테랑 살인 수사관 역을 맡았다. 이후 《포겟 파리스》, 《더 록》 등에서 조연을 맡았다. 1995년 비디오 게임 《윙 커맨더 IV: 자유의 대가》에서 휴 폴슨 대위 역을 맡아 연기 영역을 넓혔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