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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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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힐은 후한 말 남양태수로,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활약했으나, 강경한 진압 방식과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중평 원년(184년) 장만성을 처단하고 조홍, 한충 등을 토벌했으나, 한충을 함부로 죽여 논란을 일으켰다. 중평 3년(186년) 조자의 반란으로 인해 살해당했다.

2. 생애

진힐은 후한 말의 관료로, 황건적의 난 진압에 참여했다. 강하도위를 지냈으며, 184년 남양태수로 임명되어 황건적의 일파인 장만성을 토벌하였다. 이후 조홍, 한충 등 황건적 잔당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웠으나, 한충을 함부로 죽여 백성들의 원한을 샀다. 186년 강하의 병사 zh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살해당했다.[3][5]

2. 1. 황건적 토벌

중평 원년(184년), 황건적장각이 봉기하였다. 이에 남양장만성도 거병하여 신상사(神上使)를 자칭하고, 병사 수만 명을 모아 태수 저공(褚貢)을 죽였다. 백여 일 후, 강하도위 진힐은 남양태수가 되어 6월에 장만성을 공격하여 목을 베었다.[1][3]

도적들은 다시 조홍을 두령으로 추대하였고, 10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완성(宛城)을 점거하였다. 진적중랑장(鎭賊中郞將) 주준은 진힐·형주자사 서구와 합류하여 1만 8천 명을 이끌고 조홍을 포위하였으나, 6월에서 8월에 이르기까지 함락시키지 못하고 기습으로 간신히 조홍을 죽였다. 도적들은 다시 한충을 두령으로 내세워 완성에서 농성하였다.[4]

주준이 서남쪽 방향에서 공격하기 위해 동북쪽에서 공격하는 척 하자, 한충은 완성을 버리고 소성(小城)에서 농성하여 항복을 청하였다. 진힐은 서구·사마(司馬) 장초(張超)와 함께 이를 받아들이려 하였으나, 주준은 '''"항복을 받아들이면 권선징악(勸善徵惡)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거세게 공격하였다. 결국 도적들이 필사적으로 항전하여 이길 수가 없었다. 이내 포위를 느슨하게 하자 한충이 곧바로 빠져나왔고, 이를 크게 무찔러 1만여 명의 목을 베고 한충 등을 항복시켰다. 진힐은 한충에게 원한을 품어 그를 함부로 죽였다.[4]

2. 2. 한충 토벌과 논란

중평 원년(184년), 황건적장각이 봉기한 후 조홍이 죽자, 잔당들은 한충을 두령으로 추대하여 완성에서 농성했다.[4] 주준이 한충을 공격했으나, 한충은 소성(小城)으로 이동하여 항복을 청했다. 진힐은 서구, 장초(張超)와 함께 항복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주준은 "권선징악(勸善徵惡)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공격하여 한충을 크게 무찔렀다.[4] 진힐은 한충에게 원한을 품어 그를 함부로 죽였다.[4] 이는 백성들의 원한을 사는 결과를 초래했다.

2. 3. 죽음

186년(중평) 2월, 강하의 병사 趙慈|조자중국어가 반란을 일으켜 남양의 여섯 현을 함락시켰고, 진힐은 이때 살해당했다.[3][5]

참조

[1] 서적 습착치
[2] 서적 역도원
[3] 서적 범엽
[4] 서적 범엽
[5] 서적 범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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