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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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채몽인은 1917년 출생하여 1970년 사망한 기업인으로, 평강 채씨이며 애경그룹의 창업주이다. 1954년 애경유지공업을 설립하여 국내 화학공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무역, 해운, 지하자원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1960년대 석유화학, 합성수지, 도료 사업에 진출하여 국내 최초의 제품들을 생산했으며, 사회사업에도 기여했다. 채몽인이 구축한 사업 구조는 현재 애경그룹의 근간이 되었으며, 그의 장녀 채성희, 아들 채형석, 채동석, 채승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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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몽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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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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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채몽인 |
원어이름 | 蔡夢印 |
출생일 | 1917년 2월 10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제주군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사망일 | 1970년 7월 12일 (향년 53세) |
사망원인 | 협심증 |
본관 | 평강 |
직업 | 기업인 |
배우자 | 김혜숙(사별), 장영신(재혼) |
자녀 | 3남 2녀 |
부모 | 채구석(부) |
경력 | 애경그룹 창업주 |
2. 생애
본관은 평강으로, 제주판관과 대정현감을 지낸 채구석의 아들로 1917년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의 명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마쓰시다전기산업에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45년 광복 이후 애경그룹의 모태가 된 무역회사 대륭산업을 시작으로 옥방광업, 동남해운, 애경유지공업 등을 잇달아 설립하여 무역, 광업, 해운업, 화학공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쳤다. 특히 애경유지공업을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유지분해공장을 건설하고, 이후 석유화학, 합성수지, 도료 사업으로 확장하며 국내 화학공업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미향', '트리오' 등 생활용품을 개발하여 국민 생활 향상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에는 애경유화의 전신인 삼경화성을 설립하여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고, 울산국가석유화학단지에 공장 건설을 추진하던 중 급환으로 타계했다.
채몽인과 그가 이끌던 애경그룹은 1970년 매일경제신문의 '경영산맥' 시리즈에 소개될 정도로 당시 주목받는 기업가 및 기업집단이었다. 그가 구축한 사업 구조는 오늘날 애경그룹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2000년대 설립된 제주항공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제주 출신 기업인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 활동 외에도 장학 사업 등에 힘썼다.
2. 1. 초기 생애와 기업 활동
본관은 평강이며, 제주판관과 대정현감을 지낸 채구석의 아들로 1917년에 태어났다. 1944년에는 전매서장과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을 지낸 김한기의 딸 김혜숙과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으나, 김혜숙과 사별한 뒤 1959년 장회근의 딸 장영신과 재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1938년 일본 오사카에 있는 명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마쓰시다전기산업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1945년 해방 이후, 애경그룹의 모태가 되는 무역회사 대륭산업을 설립하였고, 1950년에는 옥방광업을 세웠다. 이를 통해 전후 복구 과정과 산업 근대화 시기에 무역업과 중석 등 지하자원 개발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대륭산업과 옥방광업은 대한상공회의소의 특별의원사였으며, 대륭산업의 전문경영인이 무역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54년에는 외항 해운사인 동남해운을 설립하여 대한민국과 일본 간 화물 정기 항로를 개척하는 등 한국 외항 해운 발전에도 기여했다.
같은 해인 1954년, 애경유지공업을 설립하여 1956년 국내 최초로 종합유지분해공장을 건설했다. 1960년대에는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석유화학, 합성수지, 도료 사업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도료산업용 폴리에스테르수지(1962년), 가소제(1963년), 무수프탈산(1968년), 강관용 방식도료(1969년) 등 여러 제품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며 애경유지공업을 종합화학회사로 성장시켰고, 이는 한국 화학공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애경유지공업은 1968년 국내 최초로 석유화학제품인 무수프탈산 공장을 건설하였고, 이에 따라 1970년 제정 및 공포된 석유화학공업육성법에 의거하여 국내 제1호 석유화학업체로 인증받았다. 또한, 1956년에는 국내 최초의 화장비누 '미향'을, 1964년에는 국내 최초의 백색비누 '우유비누'를 생산했다. 1966년에는 합성세제 사업에 진출하여 국내 최초의 주방세제 '트리오'와 세탁용 합성세제 등을 출시하며 국민 생활 향상에 기여했다.
1970년에는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애경유화의 전신인 삼경화성을 설립하고, 울산국가석유화학단지에 공장 건설을 위한 차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공장 건설에 매진하던 중 급작스러운 병으로 5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채몽인은 기업 활동 외에도 사회 공헌에 힘썼다. 1961년에는 풍한산업 김영구 사장, 신일기업 이봉수 사장과 함께 사회사업기금 2억 환을 한국폴리텍대학의 모태가 된 국립소년직업훈련소 설립 자금으로 기증하여 3.1절 표창을 받았다. 또한, 1968년에는 재경제주장학회를 설립하고 회장을 맡는 등 장학 사업에도 기여했다.
2. 2. 애경유지공업 설립과 화학 산업 진출
1954년 애경유지공업을 설립하며 화학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56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종합유지분해공장을 건설했으며, 같은 해 첫 국산 화장비누인 '미향'을 출시했다. 이후 1964년에는 백색비누 '우유비누'를 선보였다. 1966년에는 합성세제 사업에 진출하여 국내 최초의 주방세제 '트리오'와 여러 세탁용 합성세제를 출시하며 당시 국민 생활 향상에 기여했다.1960년대에 들어서는 석유화학, 합성수지, 도료 사업으로 확장하며 애경유지공업을 종합화학회사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러 화학 제품들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며 한국 화학공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연도 | 제품명 | 비고 |
---|---|---|
1956 | 종합유지분해공장 | 국내 최초 건설 |
1956 | 화장비누 '미향' | 국내 최초 출시 |
1962 | 도료산업용 폴리에스테르수지 | 국내 최초 생산 |
1963 | 가소제 | 국내 최초 생산 |
1964 | 백색비누 '우유비누' | 국내 최초 출시 |
1966 | 주방세제 '트리오' | 국내 최초 출시 |
1968 | 무수프탈산 | 국내 최초 생산 |
1969 | 강관용 방식도료 | 국내 최초 생산 |
특히 1968년 국내 최초로 석유화학 제품인 무수프탈산 공장을 건설한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이를 바탕으로 애경유지공업은 1970년 제정된 석유화학공업 육성법에 따라 국내 제1호 석유화학업체로 인증받았다.
1970년에는 애경유화(당시 삼경화성)를 설립하여 석유화학 사업을 더욱 본격화했다. 울산국가석유화학단지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차관 계약을 체결하고 공장 건설에 매진했으나, 같은 해 갑작스러운 병으로 5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가 추진했던 애경유화 울산공장은 1972년 완공되었고, 이는 울산국가석유화학단지의 최초 입주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채몽인이 구축한 사업 구조는 현재 애경그룹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애경유지공업의 주요 사업 부문은 다음과 같이 분할되어 전문 회사로 성장했다.
- 석유화학 부문 (무수프탈산, 가소제): 애경유화 (1970년 설립된 삼경화성이 계승)
- 합성수지 부문: 애경케미칼 (1979년 분할, 당시 애경화학)
- 도료 부문: AK켐텍 (1985년 분할)
- 생활용품 부문: 애경산업 (1985년 분할)
한편, 사업 부문들을 분할하고 남은 애경유지공업은 1990년대 애경그룹이 기존 공장 부지에 AK플라자를 건설하면서 유통업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 3. 사망
1970년 삼경화성(현 애경유화)을 설립하여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울산국가석유화학단지에 공장 건설을 위한 차관 계약을 체결하고 공장 건설에 힘쓰던 중, 급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향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3. 애경그룹의 성장과 승계
애경그룹의 모태는 1945년 설립된 무역회사 대륭산업이며, 1950년에는 옥방광업을 설립했다. 채몽인은 전후 복구 과정부터 산업 근대화 시기에 무역업과 중석 등 지하자원 개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대륭산업과 옥방광업은 대한상공회의소의 특별의원사였으며, 대륭산업의 전문경영인이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54년에는 외항해운사인 동남해운을 설립하여 한일 화물 정기항로를 개척하는 등 한국 외항해운 발전에도 기여했다.
1954년 설립된 애경유지공업은 1956년 국내 최초로 종합유지분해공장을 건설하며 화학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60년대에는 석유화학, 합성수지, 도료 사업으로 확장하여 무수프탈산(1968년), 가소제(1963년), 도료산업용 폴리에스테르 수지(1962년), 강관용 방식도료(1969년) 등 다수의 화학 제품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며 애경유지공업을 종합화학회사로 성장시켰고, 이는 한국 화학공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애경유지공업은 1968년 국내 최초로 석유화학제품인 무수프탈산 공장을 건설했고, 이에 따라 1970년 제정된 석유화학공업육성법에 의거하여 국내 제1호 석유화학업체로 인증받았다. 또한, 생활용품 분야에서도 1956년 국내 최초의 화장비누 '미향'과 1964년 국내 최초의 백색비누 '우유비누'를 생산했으며, 1966년에는 합성세제 사업에 진출하여 국내 최초의 주방세제 '트리오'와 세탁용 합성세제 등을 출시하며 국민 생활 향상에 기여했다.
1970년에는 삼경화성(현 애경유화)을 설립하여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울산국가석유화학단지에 공장 건설을 추진하던 중 같은 해 급환으로 타계했다. 애경유화의 울산공장은 1972년 준공된 울산국가석유화학단지의 최초 입주사 8개사 중 하나였다.
채몽인이 구축한 사업 구조는 현재 애경그룹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의 사후 다음과 같이 분할 및 승계되었다.
기존 사업 부문 (애경유지공업) | 분할/승계 회사 | 분할 연도 | 비고 |
---|---|---|---|
석유화학사업 (무수프탈산, 가소제) | 애경유화 | - | 채몽인 타계 전 설립 (1970년 삼경화성) |
합성수지사업 | 애경화학 | 1979년 | |
도료사업 | AK켐텍 | 1985년 | |
생활용품사업 | 애경산업 | 1985년 | |
모기업 (애경유지공업) | 애경유지공업 | - | 1990년대 이후 유통업 (AK플라자 등) 전환 |
기타 초기 회사 | 승계 회사 | 비고 | |
대륭산업 | 애경개발 | 골프장 사업 영위 | |
옥방광업 | - | 1980년 청산 |
애경유지공업은 사업회사들을 분할한 후 지주회사 역할을 하다가, 1990년대 공장 부지에 AK플라자를 건설하며 유통업으로 전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룹의 모태인 대륭산업은 골프장 사업을 영위하는 애경개발로 이어졌고, 옥방광업은 1980년에 청산되었다. 2000년대 설립된 제주항공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채몽인이 제주 출신 기업인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 매일경제신문은 '경영산맥' 시리즈에서 채몽인과 애경그룹을 주요 기업집단 중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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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 이름 | 비고 |
---|---|---|
아버지 | 채구석 | 1850년 ~ 1920년 |
배우자 | 김혜숙 | 1926년 ~ 1951년, 경북여고, 이화여대 약학과 졸업 |
배우자 | 장영신 | 1936년 ~ , 현 애경그룹 회장 |
장녀 | 채성희 | 1946년 ~ , 경기여고, 이화여대 졸업 |
장남 | 채형석 | 1960년 ~ , 현 AK그룹 총괄부회장 |
며느리 | 홍미경 | 채형석의 배우자, AK플라자 문화아카데미 고문 |
차녀 | 채은정 | |
사위 | 안용찬 | 채은정의 배우자, 채형석의 소개로 결혼 |
차남 | 채동석 | 애경그룹 유통·부동산개발부문 부회장 |
며느리 | 이정은 | 채동석의 배우자, AK플라자 크리에이티브전략실 실장전무 |
삼남 | 채승석 | 전 애경개발 사장 |
손녀 | 채문선[1] |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와 결혼 |
손녀 | 채수연 | 2016년 4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손자이자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의 아들 선동욱과 결혼 |
손자 | 채정균 | 채형석의 장남 |
손녀 | 채수경[2] | 채동석의 장녀 |
손녀 | 채문경 | 채동석의 차녀 |
손자 | 채총명[3] | 채승석의 장남 |
손녀 | 채OO | 채승석의 장녀 |
외손녀 | 안리나 | 채은정의 장녀 |
외손녀 | 안세미 | 채은정의 차녀 |
외증손자 | 이기철 | 손녀 채문선과 손서 이태성의 아들 (2014년 출생)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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