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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타이중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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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주교 타이중 교구는 대만 타이중시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교회 교구이다. 1859년 필리핀에서 온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대만에서 선교가 시작되었으며, 1913년 포르모사 사도좌 지목구가 설립되었다. 1950년 타이중 지목구로 분리되었고, 1962년 타이중 교구로 승격되었다. 2010년 기준 신자 수는 26,464명이며, 35개의 본당과 34개의 순회 교회가 있다. 초대 교구장은 윌리엄 쿠퍼이며, 현재 교구장은 쑤야오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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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타이중 교구
지도
일반 정보
관할타이중시 및 창화현, 난터우현
관구타이베이
설립해당 정보 없음
주교좌 성당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타이중시 소재)
주보 성인구세주 그리스도
통계
면적7,836km²
총인구 (2010년)4,235,174명
가톨릭 신자26,395명
가톨릭 신자 비율0.6%
본당 수36개
신자 수29,012명
구성원
사제 수74명 (정보 출처에 따라 다름)
지구5개
교구장
교구장마르티노 수야오원 주교
명예 주교왕위룽 (요셉) 명예 주교 (1986-2007)
총대리요셉 황징푸, 베드로 초 라이순 (왈리스 노민)
기타
전례로마 전례
교회라틴 교회
웹사이트타이중 교구 웹사이트

2. 연혁

1859년, 청나라 함풍 9년에, 필리핀에서 스페인도미니코회 소속 선교사가 타이완에 왔다. 같은 해 12월, 현재 가오슝 교구 주교좌 성당 부지에 대만 최초의 활동 거점을 건설하였다. 당초 대만은 푸저우 교구 관할 하에 편입되었다.[1]

1872년(청나라 동치 8년), 도미니코회는 선교사를 가오슝에서 현재의 장화현 융징향 주쯔촌으로 파견했지만, 1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1]

1875년(청나라 광서 원년), 도미니코회는 다시 선교사를 현재의 장화현 푸신향 뤄춰촌으로 파견했다. 빈센트 고마르/Vicente Gomares 신부 (오만복/吳萬福중국어)가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상주하면서 신도가 날마다 늘어났다.[1]

1882년(청나라 광서 8년), 이어서 뤄춰에 파견된 셀레도니오 아란즈/Celedonio Arranzes 신부 (하안자/何安慈중국어)는 기술자를 모아 대만 중부 최초의 성당인 뤄춰 천주당을 건설하였다.[1] 이후 도미니코회는 뤄춰를 거점으로 장화윈린 일대의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1]

1910년 - 일본 통치 시대에 들어선 후, 도미니코회는 후루둔 (현재의 펑위안)을 시작으로 타이중에서의 선교를 시작했다.[1]

1913년 – 7월 19일, 교황청은 포르모사 사도좌 지목구 ()를 설립하고, 그 관할 구역을 일본 통치하의 대만 (대만 및 펑후 제도)으로 하였다.[1]

1914년 - 뤄춰 천주당의 마누엘 프라트/Manuel Prates 신부 (마서우런/馬守仁중국어[1], 후의 샤먼 교구 주교)는 타이중 시내에 토지를 구입하여 대나무 오두막의 전도소를 건설하였다. 이듬해에는 벽돌 2층 건물로 타이중시 최초의 성당으로 개축되었으며, 현재의 구세주 예수 주교좌 성당의 전신이 되었다.[1]

: 일본 통치 종료까지 도미니코회는 대만 중부의 타이중, 뤄춰, 톈중, 더우류 및 푸장룬 (현재의 바오중)의 5개 소교구 및 17개 순회 교회 (비독립 소교구)를 건설했다.[1] 이 중 뤄춰의 발전이 빨랐고, 교회 활동도 활발했기 때문에 대만 중부 선교의 본거지였다.[1]

1949년 - 12월 31일, 교황청은 대만 북부를 이전의 대만 지목구에서 분할하여 타이베이 지목구를 설치했다. 현재의 타이중 교구 관할 구역을 포함하여 남은 현과 시는 대만 지목구에서 명칭을 변경한 가오슝 지목구가 관할했다.[1]

1950년 - 8월 10일, 교황청은 대만 중부의 타이중시, 타이중현 (현재는 타이중시에 통합), 장화현 및 난터우현 (즉 일본 통치 시대의 타이중주의 범위)을 가오슝 지목구에서 분할, '''타이중 지목구'''를 설립했다. 아울러 미국의 메리놀 외방 선교회가 도미니코회로부터 사목을 인수하고, 지목에는 메리놀회 신부 신부 (채문흥/蔡文興중국어)가 임명되었다. 이것이 대만 중부의 교회 관구의 시작이다.[1]

1962년 - 4월 16일, 타이중 지목구가 정식으로 '''타이중 교구'''로 승격되었다. 타이중 지목구의 쿠프퍼 신부가 초대 주교로 취임했다.[1]

2. 1. 초기 선교 활동 (1859년 ~ 1910년)

1859년, 스페인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이 필리핀에서 타이완에 도착하여 가오슝에 첫 선교 거점을 마련하였다. 초기에는 푸저우 대리구 관할이었다. 1872년, 도미니코회는 장화현 융징향 주쯔촌에 선교사를 파견했으나 1년 만에 철수했다. 1875년, 도미니코회는 푸신향 뤄춰촌에 선교사를 다시 파견, 빈센트 고마르/Vicente Gomares 신부 등이 상주하며 신자 수가 증가했다. 1882년, 셀레도니오 아란즈/Celedonio Arranzes 신부가 뤄춰에 타이완 중부 최초의 성당인 뤄춰 천주당을 건설했다. 이후 도미니코회는 뤄춰를 거점으로 장화윈린 일대에서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1910년, 일본 통치 시대에 들어선 후, 도미니코회는 후루둔 (현재의 펑위안)을 시작으로 타이중에서의 선교를 시작했다.

2. 2. 일본 통치 시대 (1910년 ~ 1945년)

1910년, 도미니코회는 펑위안을 시작으로 타이중에서 선교를 시작했다.[1] 1913년 7월 19일, 교황청은 포르모사 사도좌 지목구를 설립하고, 그 관할 구역을 일본 통치하의 대만 (대만 및 펑후 제도)으로 설정했다.[1]

1914년, 뤄춰 천주당의 마누엘 프라트 신부(마누엘 프라트/Manuel Prates)는 타이중 시내에 토지를 구입하여 대나무 오두막의 전도소를 건설하였다. 이듬해에는 벽돌 2층 건물로 타이중시 최초의 성당으로 개축되었으며, 현재의 구세주 예수 주교좌 성당의 전신이 되었다.[1] 일본 통치 종료까지 도미니코회는 타이완 중부에 5개 소교구와 17개 순회 교회 (비독립 소교구)를 건설했다.[1] 뤄춰는 발전이 빨랐고, 교회 활동도 활발했기 때문에 타이완 중부 선교의 본거지였다.[1]

2. 3. 타이중 지목구 시대 (1949년 ~ 1962년)

1949년 12월 31일, 교황청은 타이베이 지목구를 설치하면서, 타이중 교구 관할 구역을 포함한 남은 현과 시는 가오슝 지목구가 관할하게 하였다. 1950년 8월 10일, 교황청은 타이중 시, 타이중현(현재 타이중 시에 통합), 장화현, 난터우현을 가오슝 지목구에서 분할하여 '''타이중 지목구'''를 설립하고, 미국의 메리놀 외방 선교회에 사목을 위임하였다. 초대 지목구장으로는 메리놀회 소속 윌리엄 쿠퍼(William F. Kupfer, 차이원싱/蔡文興중국어) 신부가 임명되었다. 이는 타이완 중부 교회 관구의 시작이었다.

1910년 일본 통치 시대에 도미니코회는 펑위안을 시작으로 타이중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1914년 뤄춰 천주당의 마누엘 프라트 신부(마누엘 프라트/Manuel Prates, 마서우런/馬守仁중국어[1], 후의 샤먼 교구 주교)는 타이중 시내에 토지를 구입하여 대나무 오두막의 전도소를 건설하고, 이듬해 벽돌 2층 건물로 개축하여 타이중 시 최초의 성당으로 삼았다. 이는 현재 구세주 예수 주교좌 성당의 전신이다. 일본 통치 종료까지 도미니코회는 타이중, 뤄춰, 톈중, 더우류푸장룬에 5개의 소교구와 17개의 순회 교회 (비독립 소교구)를 건설하였다.

2. 4. 타이중 교구 시대 (1962년 ~ 현재)

1962년 4월 16일, 타이중 지목구가 타이중 교구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교로 윌리엄 쿠퍼(William F. Kupfer, 蔡文興중국어) 신부가 임명되었다.

3. 역대 교구장

윌리엄 프랜시스 쿠퍼(윌리엄 프랜시스 쿠퍼/William Francis Kupfer영어) 신부는 메리놀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1951년 1월 26일 임명되어 1962년까지 타이중 지목구장을 역임하였다.

초대 교구장은 메리놀 외방 선교회 소속 윌리엄 프랜시스 쿠퍼이며, 1962년부터 1986년까지 재임하였다. 2대 교구장은 왕유중으로 1986년부터 2007년까지 재임하였다. 3대 교구장은 쑤야오원으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3. 1. 타이중 지목구장

윌리엄 프랜시스 쿠퍼(윌리엄 프랜시스 쿠퍼/William Francis Kupfer영어) 신부는 메리놀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1951년 1월 26일 임명되어 1962년까지 재임하였다.

3. 2. 타이중 교구장



초대 교구장은 메리놀 외방 선교회 소속 윌리엄 프랜시스 쿠퍼이며, 1962년부터 1986년까지 재임하였다. 2대 교구장은 왕유중으로 1986년부터 2007년까지 재임하였다. 3대 교구장은 쑤야오원으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4. 현황 (2010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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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항목수치
1신자 수26,464명
2주교 및 사제74명
3수도자 및 수녀124명
4본당35곳
5순회 교회34곳



(2010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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