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언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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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룡언월도는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사용하는 무기로 묘사되며, 관우를 상징하는 무기로 여겨진다. 긴 자루에 굽은 칼날이 달린 형태이며, 중국어로는 관도라고 불린다. 소설 속에서는 장세평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으며, 무게가 82근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청룡언월도는 송대 이후에 등장한 무기로, 관우가 실제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으며,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수호전》에서는 관우의 자손인 관승이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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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언월도 | |
---|---|
개요 | |
![]() | |
종류 | 도 |
날 | 82근 (약 49.2kg) |
등장 작품 | 삼국지연의 |
소유자 | 관우 |
명칭 | |
중국어 간체 | 青龙偃月刀 |
중국어 정체 | 靑龍偃月刀 |
병음 | Qīnglóng yǎnyuèdāo |
광둥어 예일 | Cing¹ lung⁴ jin² jyut⁶ dou¹ |
다른 이름 | 냉염거 (冷豔鋸, Lěngyàn jù) Frost Fair Blade (영문) |
유래 및 역사 | |
창작 | 삼국지연의에서 등장 |
실제 역사 |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음 |
특징 | |
외형 | 초승달 모양의 칼날을 가진 자루가 긴 칼 |
무게 | 매우 무거움 (관우만이 사용 가능) |
상징 | 관우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상징 |
2. 명칭 및 형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무장 관우가 '''냉염거'''(冷艶鋸, 렁옌쥐)라고 불리는 청룡언월도를 애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우를 상징하는 무기이며, 중국어로는 '''관도'''(關刀, 구안다오)라고도 한다.[1]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청룡언월도는 유비를 돕는 상인 장세평이 제공한 강철로 만들어졌다.[1] 무게는 82근으로, 후한 시대 도량형으로는 약 18kg에 해당한다.[1] 여몽의 형주 침공으로 관우가 사망한 후, 손권은 관우를 사로잡은 반장에게 청룡언월도를 하사했다.[1] 그러나 이릉 전투에서 관우의 아들 관흥이 관우의 혼령을 보고 놀란 반장을 죽이고 청룡언월도를 되찾는다.[1] 이후 청룡언월도는 관흥에 의해 대대로 가문에 전해지게 된다.
관우가 실제로 청룡언월도를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관우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기록에는 청룡언월도나 그와 비슷한 무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서야 관도(guandao)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관우 시대에 관도가 존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관도는 무겁고 다루기 어려워 널리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칼날의 무게에 대한 전설 때문일 수 있으며 실제로는 더 가벼웠을 수도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상인 장세평 등으로부터 제공받은 강철을 사용하여 유비 등과 거병할 때 마을의 대장장이가 만들었다고 한다. 무게는 82근이었다(후한 시대의 도량형 계산에서는 1근 = 222.4g으로 약 18kg, 《삼국지연의》가 성립된 원말 - 명대에는 50kg 미만). 형주 함락 후 관우는 아들 관평, 주창 등과 함께 맥성에 갇혔지만, 여몽 등에게 사로잡혀 부자 모두 참수되었다. 청룡언월도는 그 후 관우를 사로잡은 반장에게 손권으로부터 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그 후, 반장은 관우의 아들 관흥에게 쫓기다가 그 도중에 관우의 망령과 마주쳐 놀란 틈을 타 관흥에게 참수되었다. 이렇게 관흥은 청룡언월도를 빼앗아 이 무기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계승되었다.[1]
긴 자루 끝에 굽은 칼날이 달려 있는데, 칼날은 폭이 넓고 크다.[1] 자루의 길이는 칼날의 크기에 비해 다소 짧은 편인데, 이는 (주로 말 위에서) 한 손으로 다루기 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
칼날이 크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게가 상당하여 주로 연무나 훈련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실전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적었다.[1]
덧붙여, 일본에서는 칼날 형태가 비슷한 자루가 짧은 중국도를 '''청룡도'''(青龍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류엽도(柳葉刀)라고 불리는 것이며 잘못된 용어이다.[1] "청룡도"라는 명칭은 "청룡언월도"의 약칭이므로, 청룡언월도와는 별개로 청룡도라는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1]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사용하는 청룡언월도는 냉염거(冷艶鋸)라고도 불리며, 중국어로는 관도(關刀)라고도 한다.[1]
긴 자루 끝에 넓고 굽은 칼날이 달린 형태이며, 자루는 한 손으로 다루기 쉽도록 칼날에 비해 짧은 편이다.[1] 칼날이 크고 무거워 주로 훈련이나 의식용으로 사용되었고,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1]
하지만 청룡언월도는 송나라 이후에 등장한 무기이므로, 관우가 실제로 사용했을 리는 없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1]
4. 역사적 사실
《삼국지연의》에서는 청룡언월도의 무게가 82근이라고 묘사한다. 후한과 삼국 시대의 1근은 약 220g이었으므로, 82근은 약 18kg에 해당한다. 오늘날 중국 자운사에는 청룡언월도라고 알려진 무게 약 44kg의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관우는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기 전에 청룡언월도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 등과 거병할 때 마을 대장장이가 상인 장세평 등이 제공한 강철을 사용하여 청룡언월도를 만들었다고 묘사한다. 무게는 82근(후한 시대 도량형으로는 약 18kg, 《삼국지연의》가 성립된 원말·명대에는 50kg 미만)이었다. 형주 함락 후, 관우는 아들 관평, 주창과 함께 맥성에 갇혔으나, 여몽 등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손권은 청룡언월도를 관우를 사로잡은 반장에게 상으로 주었다. 그러나 반장은 이후 관우의 아들 관흥에게 쫓기다 관우의 망령을 보고 놀란 틈에 참수당했다. 관흥은 청룡언월도를 되찾았고, 이 무기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하지만 청룡언월도라는 무기가 등장한 것은 송대 이후이므로, 관우가 실제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없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도 이 칼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관우의 의동생 장비가 사용했다는 사모 역시 명대 이후의 무기이다.
소설 《수호전》에서는 관우의 자손으로 여겨지는 관승이 청룡언월도를 사용했다고 묘사된다. 이는 관승이 관우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이 칼이 특별히 활약하는 것은 아니다. 관승은 정사 《송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지만, 청룡언월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대도(大刀)의 명수였던 것은 사실이다.
5. 기타
그러나 청룡언월도라고 불리는 무기가 출현한 것은 송대 이후이며, 당연히 관우는 이것을 실제로 사용했을 리가 없고,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도 이 칼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의동생인 장비가 사용했다고 하는 사모에 이르러서는 명대 이후의 무기이다.[1]
소설 《수호전》에서는 관우의 자손으로 여겨지는 관승이 청룡언월도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관승이 관우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일종의 기호적인 존재이며, 별도로 이 칼이 활약하는 것도 아니다. 관승은 정사 《송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지만, 청룡언월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대도(大刀)의 명수였던 것은 사실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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