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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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훈락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KIA 타이거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005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좌타 거포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으나, 2014년 자유 계약 선수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경찰 야구단 타격 코치와 선린 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타격 코치로 활동했다. 통산 14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03, 2홈런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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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락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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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선수명 | 최훈락 (Choe Hun-Rak) |
원어명 | Choi Hun-Rak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경기도부천시 |
생년월일 | 1982년 5월 12일 |
신장 | 189cm |
체중 | 82kg |
利き腕 | 왼손 |
타석 | 좌타 |
수비 위치 | 외야수, 중견수, 좌익수, 1루수 |
프로 입단 년도 | 2005년 |
드래프트 순위 | 2005년 2차 3라운드 (KIA 타이거즈) |
계약금 | 1억원 |
선수 경력 | |
선수 | 기아 타이거즈 (2005년 ~ 2014년) 경찰 야구단 (2008년 ~ 2009년) |
첫 출장 | KBO / 2005년 4월 2일 광주 대 한화전 |
마지막 경기 | KBO / 2013년 9월 25일 광주 대 롯데전 |
코치 경력 | |
코치 | 경찰 야구단 (2015년 ~ 2016년) 선린인터넷고등학교 (2017년) 홍익대학교 (2017년 ~ 2019년) 제주관광대학교 (2020년 ~) |
기타 정보 |
2. 선수 경력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최훈락은 좌타 거포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프로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KIA 타이거즈로 복귀했다. 복귀 후 잠시 활약하기도 했으나, 결국 방출되었다.
2. 1. KIA 타이거즈 시절
2005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계약금 1억원을 받고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좌타 거포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프로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8년 경찰청에 배정되어 군 복무를 했다. 2010년 초에 제대하여 그 해 1군에서 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2012년 초반부터 2군에서 3할을 기록하며 6월에 1군으로 승격했다. 이준호, 조영훈 등과 주전 경쟁을 벌였다. 그 해 10월 2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는 6회 말에 이용규를 대신하여 대주자로 출전하여, 다음 이닝부터 우익수 자리를 맡았다. 9회 초 2사 1, 3루 상황에서 황동연의 장타성 타구를 잡아내 김진우의 2656일 만의 완봉승을 지켜내는 결정적인 호수비를 선보였다.
2013년 신종길의 부상으로 5월에 1군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심각한 부진으로 16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시즌 후에는 육성 선수로 강등되었다. 2014년 정식 선수로 복귀하지 못하고 시즌 후 육성 선수 등록이 말소되어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1]
3. 은퇴 이후
은퇴 후 경찰 야구단의 타격 코치로 취임했다.
2017년부터 선린 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의 타격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4. 학력
5. 기타
6. 상세 정보
최훈락한국어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등번호 8번을 사용했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59번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