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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3세 (부르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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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콘라트 3세는 엘더 벨프 가문의 일원으로, 937년 부르군디-아를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는 부르군디 왕국의 첫 번째 통치자인 루돌프 2세의 아들이며, 작센 왕조의 황제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콘라트는 뤼르, 페이에른, 로맹모티에, 무티에-그랑발 수도원 등 부르군디의 지배력을 확대했다. 그는 두 차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993년 사망했다. 그의 아들 루돌프 3세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부르군디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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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3세 (부르군트)
기본 정보
이름콘라트 1세
다른 이름(평화로운 콘라트)
(평화로운 콘라트)
(콘라두스)
통치부르군트 왕
통치 기간937년 7월 11일 – 993년 10월 19일
이전 통치자루돌프 2세
다음 통치자루돌프 3세
왕가벨프 가문
출생(925년경)
사망일993년 10월 19일
매장지비엔
가족
아버지루돌프 2세
어머니베르타 폰 슈바벤
배우자아델라이데 드 벨레
마틸다 드 프랑스
자녀기젤라, 바이에른 공작부인
베르타, 프랑스 왕비
루돌프 3세
게르베르가, 슈바벤 공작부인
화폐
콘라트 평화왕의 데나리우스
콘라트 1세의 이름으로 주조된 데나리우스
비고

2. 생애

엘더 벨프 가문의 일원인 콘라트는 933년부터 상 부르군디와 하 부르군디를 통합한 부르군디-아를 왕국의 첫 번째 통치자인 루돌프 2세와 그의 배우자 슈바벤의 베르타의 아들이었다. 베르타는 슈바벤 공작 부르카르트 2세의 딸이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그를 '''콘라트 3세'''라고 부르는데, 그의 가문에서 세 번째 콘라드였기 때문이다. 그의 증조부는 트란스쥐라 부르군디 공작 콘라트 2세였고, 그의 아버지는 오세르 백작 콘라트 1세였다.

937년 아버지 루돌프 2세의 뒤를 이어 부르군트 왕이 되었다. 작센 왕조의 역대 황제와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재위 기간 동안 비교적 평화로웠다.

부르군트 왕위는 아들 루돌프 3세가 계승했지만, 루돌프 3세는 1032년 후사 없이 사망했고, 부르군트 왕국은 딸 겔베르가와 슈바벤 대공 헤르만 2세 사이의 딸 기젤라와 결혼한 신성 로마 황제 콘라트 2세에 의해 1033년 신성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2. 1. 즉위와 섭정

콘라트는 엘더 벨프 가문의 일원으로, 933년부터 상 부르군디와 하 부르군디를 통합한 부르군디-아를 왕국의 첫 번째 통치자인 루돌프 2세와 슈바벤의 베르타의 아들이었다. 베르타는 슈바벤 공작 부르카르트 2세의 딸이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그를 '''콘라트 3세'''라고 부르는데, 그의 가문에서 세 번째 콘라드였기 때문이다. 그의 증조부는 트란스쥐라 부르군디 공작 콘라트 2세였고, 그의 아버지는 오세르 백작 콘라트 1세였다.

937년 아버지 루돌프 2세의 뒤를 이어 부르군트 왕이 되었다.[1] 콘라드의 미성년 통치 기간 동안 그의 미래의 매형인 독일 왕 오토 1세 (후일 신성 로마 황제)가 섭정을 수행했다.[1] 오토의 섭정 하에 콘라드는 게르만 왕들과 긴밀한 협력을 시작했다.[1] 부르군디는 그레이트 생 베르나르 고개로 인해 오토 1세의 이탈리아 정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1] 콘라드는 뤼르 수도원, 페이에른 수도원, 로맹모티에 수도원 및 무티에-그랑발 수도원을 포함한 중요한 수도원에 대한 부르군디의 지배력을 확대했다.[1] 작센 왕조의 역대 황제와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재위 기간 동안 비교적 평화로웠다.

연대기 작가 에케하르트 4세에 따르면, (아마도 외전인) 콘라드는 마자르족과 프락시네툼의 사라센이 모두 자신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양쪽 군대에 서로의 존재를 경고하는 사절을 보냈다고 한다. 사절은 각 침략자에게 상대방에 대항하는 부르군디의 지원을 제안한 다음 상대방의 행방을 알렸다. 마자르족과 사라센이 프락시네 전투에서 만났을 때, 부르군디인들은 물러났고, 상대 세력이 지쳤을 때만 공격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양쪽 침략군은 파괴되었고 포로들은 노예로 팔렸다.

2. 2. 내치와 외교

콘라드는 뤼르 수도원, 페이에른 수도원, 로맹모티에 수도원 및 무티에-그랑발 수도원을 포함한 중요한 수도원에 대한 부르군디의 지배력을 확대했다.[1]

연대기 작가 에케하르트 4세에 따르면, 콘라드는 마자르족과 프락시네툼의 사라센이 모두 자신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양쪽 군대에 서로의 존재를 경고하는 사절을 보냈다고 한다. 사절은 각 침략자에게 상대방에 대항하는 부르군디의 지원을 제안한 다음 상대방의 행방을 알렸다. 마자르족과 사라센이 프락시네 전투에서 만났을 때, 부르군디인들은 물러났고, 상대 세력이 지쳤을 때만 공격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양쪽 침략군은 파괴되었고 포로들은 노예로 팔렸다.

2. 3. 사망

콘라드는 993년 10월 19일에 사망했으며, 비엔에 있는 생 앙드레 르 바 수도원에 묻혔다.[1]

3. 가족 관계

콘라트는 먼저 벨레이의 아델라이드와 결혼했다.[2] 이들 사이에는 적어도 한 명의 딸이 있었다.


  • 기젤라 (950/60년 - 1007년): 바이에른 공작하인리히 2세와 결혼했다.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2세의 어머니이다.


콘라트는 아델라이드와의 사이에서 아들 콘라트(955년경 - 966년 8월 이후)를 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966년까지 콘라트는 프랑스의 루이 4세와 작센의 게르베르가의 딸인 마틸다와 결혼했다. 이 둘 사이에서는 적어도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 베르타 (964년 – 1016년 1월 16일): 블루아 백작 오도 1세와 결혼했고, 그 다음 프랑스의 로베르 2세와 결혼했다.
  • 마틸다 (969년 출생): 제네바 백작 로베르와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루돌프 3세: 부르군디 왕 (971년 – 1032년 9월 6일)
  • 게르베르가 (965년 출생): 슈바벤 공작 헤르만 2세와 결혼했다.


그는 첩 알디우드와의 사이에서 아들 리옹의 부르샤르 대주교를 두었다.

3. 1. 첫 번째 결혼과 자녀

콘라트는 먼저 벨레이의 아델라이드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적어도 한 명의 딸이 있었다.

  • 기젤라 (950/60년 - 1007년): 바이에른 공작하인리히 2세와 결혼했다.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2세의 어머니이다.


콘라트는 아델라이드와의 사이에서 아들 콘라트(955년경 - 966년 8월 이후)를 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3. 2. 두 번째 결혼과 자녀

콘라트는 벨레이의 아델라이드와 먼저 결혼하여 적어도 한 명의 딸 기젤라를 두었다. 기젤라는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2세와 결혼했다.

966년까지 콘라트는 프랑스의 루이 4세와 작센의 게르베르가의 딸인 마틸다와 결혼했다. 이 둘 사이에서는 적어도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 베르타 (964년 – 1016년 1월 16일): 블루아 백작 오도 1세와 결혼했고, 그 다음 프랑스의 로베르 2세와 결혼했다.
  • 마틸다 (969년 출생): 제네바 백작 로베르와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루돌프 3세: 부르군디 왕 (971년 – 1032년 9월 6일)
  • 게르베르가 (965년 출생): 슈바벤 공작 헤르만 2세와 결혼했다.

3. 3. 사생아

그는 첩 알디우드와의 사이에서 아들 리옹의 부르샤르 대주교를 두었다.

4. 부르군트 왕국의 멸망

참조

[1] HDS Conrad 2007
[2] 서적 Otto der Grosse und das Erste Reich der Deutschen Obelisk-Verlag 1937
[3] 서적 The New Cambridge Medieval History: Volume 3, c.900-c.1024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4] 서적 Early History of the House of Savo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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