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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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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마야는 일본의 조상숭배 문화에서 조상신을 모시고 공양하는 축조물 또는 사당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시신 매장지 위에 세워진 비석이나 석탑을 지칭하기도 했으며,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안치하고 위패를 보존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최초의 현대식 타마야는 1599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건립되었으며, 에도 시대에 일반 가정으로 확산되어 신토 장례 의식의 중심 부분을 형성했다. 현대의 타마야는 벽에 부착된 선반에 위치하며, 오십일, 백일, 1주년 등 기일마다 제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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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야
개요
유형신토식 조상 숭배를 위한 제단
다른 이름오타마야 (otamaya)
타마야 (tamaya)
소레이샤 (soreisha, 祖霊社)
레이뵤 (Reibyo, 霊廟)
어원
어원 설명미타마 (mitama, 御霊) "죽은 자의 영혼" + 야 (ya, 屋) "집"

2. 역사와 의미

일본의 장례문화는 애니미즘의 영향을 받은 토착 조상숭배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토착 세계관에서 사람은 죽은 뒤 시료우(死霊)가 되어 세상을 난폭하게 떠돌게 되지만, 후손의 공양을 받으면 선한 祖霊/소레이일본어로 승화할 수 있다. 승화된 소레이, 즉 조령은 궁극적으로 그 가문 전체의 조령이 대대에 걸쳐 집합화된 '이에'(家) 조상신의 일부로서 여겨지게 된다. 이는 각각의 조상을 인물마다 분리된 것으로 여기는 한국의 유교적 추모문화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7] 일본인들의 전통문화에서는 이 대대의 집합화된 조상신에게 매년 정월 및 오본에 제사를 지내도록 되어 있으며,[8] 이때 '''타마야''', 즉 영옥은 그렇게 집합화된 조상신을 모시고 공양하는 축조물 내지는 사당을 일컫는 단어로 쓰인다. 이러한 맥락에 있어서는 '祖霊舎/소레이샤일본어' 및 레이뵤우(霊廟, '''영묘''') 등의 단어 역시 유사한 뜻으로 쓰여왔다.[9]

다만 타마야의 의미가 위와 같은 하나의 맥락에서만 사용되어 온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일본은 시신을 매장하기 전까지 오랫 동안 곁에 모시고 추모하는 빈장(殯葬) 문화가 발달해 있었으나 서민들은 그러한 문화를 따를 여력이 부족했으므로 오히려 시신유기가 팽배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결국 이를 개선하기 위해 빈장을 금지하고 사망 후 가능한 즉시 매장하도록 하는 정책으로서 '薄葬令/박장령일본어'이 7세기 다이카 개신에 따라 실행되었는데, 이 박장령에는 죽은 자마다 개별적으로 화려한 무덤을 만드는 현상을 가급적 제한하는 내용 또한 담고 있었다. 귀족들은 이를 우회하기 위해 시신의 매장지 위에 비석이나 석탑 또는 울타리를 세웠고, 그러한 축조물을 부르는 명칭 중의 하나가 타마야, 즉 영옥(霊屋)이었다.[10]

고대에는 사람들은 2월 또는 4월에 기넨사이라고 불리는 가정 의례를, 11월에는 니이나메사이를 거행했다. 이 의례 동안 사람들은 조상, 음식의 신, 부뚜막 신에게 경배했다. 그들은 조상들의 영혼 (오야가미)이 쌀을 통해 그들에게 온다고 믿었다.[1]

헤이안 시대에는 고료 숭배가 발전했고, 사람들은 우라본에를 위해 7월에, 1월에 죽은 자를 기리는 것으로 바뀌었다.[1]

중세 시대에는, 고토바 상황 (1180–1239)과 같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안치하기 시작했고, 그의 기억은 위패를 통해 보존되었다. 근세 초에는 사람들이 신처럼 대우받는 "신토 장례" (신소사이)가 증가했다. 요시다 씨족은 묘진고, 레이샤고, 레이진고와 같은 영적 지위를 죽은 자에게 부여했고, 그들은 때때로 신사에서 숭배받았다.[1]

국학의 확산은 미야마야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조상들을 집에 안치했다.[1]

최초의 현대식 ''미타마야''는 1599년 교토의 도요쿠니 신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건립되었다. 병풍 그림과 그 유적은 이것이 기타노 텐만구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후 도쿠가와에 의해 파괴되었다.[5]

이후 ''미타마야''는 일반적으로 일본 귀족, 군사 영웅 및 평판이 높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립되었다. 이 관습은 에도 시대에 퍼졌다. ''국학'' 운동 동안, 일반 가정에 ''미타마야''를 세우는 것이 더 흔해졌다.[6] 이는 신토 장례 의식 (神葬祭, 신소사이)의 중심 부분을 형성했다.[4]

2. 1.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고대에는 2월 또는 4월에 기넨사이라고 불리는 가정 의례를, 11월에는 니이나메사이를 거행했다.[1] 이 의례 동안 사람들은 조상(오야가미)에게 경배했다.[1] 헤이안 시대에는 고료 숭배가 발전했고, 우라본에를 위해 7월에, 1월에 죽은 자를 기리는 것으로 바뀌었다.[1]

중세 시대에는 고토바 상황 (1180–1239)과 같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안치하기 시작했고, 그의 기억은 위패를 통해 보존되었다.[1] 근세 초에는 사람들이 신처럼 대우받는 "신토 장례" (신소사이)가 증가했다.[1] 요시다 씨족은 죽은 자에게 영적 지위를 부여했고, 그들은 때때로 신사에서 숭배받았다.[1]

국학의 확산은 미야마야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1] 최초의 현대식 ''미타마야''는 1599년 교토의 도요쿠니 신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건립되었다.[5] 이후 도쿠가와에 의해 파괴되었다.[5]

이후 ''미타마야''는 일반적으로 일본 귀족, 군사 영웅 및 평판이 높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립되었고, 이 관습은 에도 시대에 퍼졌다.[6] 국학 운동 동안, 일반 가정에 ''미타마야''를 세우는 것이 더 흔해졌다.[6] 이는 신토 장례 의식 (神葬祭, 신소사이)의 중심 부분을 형성했다.[4]

2. 2. 현대의 미타마야

고대에는 2월 또는 4월에 기넨사이라고 불리는 가정 의례를, 11월에는 니이나메사이를 거행했다. 이 의례 동안 사람들은 조상, 음식의 신, 부뚜막 신에게 경배했다. 그들은 조상들의 영혼 (오야가미)이 쌀을 통해 그들에게 온다고 믿었다.[1] 헤이안 시대에는 고료 숭배가 발전했고, 사람들은 우라본에를 위해 7월에, 1월에 죽은 자를 기리는 것으로 바뀌었다.[1]

중세 시대에는, 고토바 상황 (1180–1239)과 같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안치하기 시작했고, 그의 기억은 위패를 통해 보존되었다. 근세 초에는 사람들이 신처럼 대우받는 "신토 장례" (신소사이)가 증가했다. 요시다 씨족은 묘진고, 레이샤고, 레이진고와 같은 영적 지위를 죽은 자에게 부여했고, 그들은 때때로 신사에서 숭배받았다.[1] 국학의 확산은 미야마야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조상들을 집에 안치했다.[1]

최초의 현대식 ''미타마야''는 1599년 교토의 도요쿠니 신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건립되었다. 병풍 그림과 그 유적은 이것이 기타노 텐만구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후 ''미타마야''는 도쿠가와에 의해 파괴되었다.[5] 이후 ''미타마야''는 일반적으로 일본 귀족, 군사 영웅 및 평판이 높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립되었다. 이 관습은 에도 시대에 퍼졌다. ''국학'' 운동 동안, 일반 가정에 ''미타마야''를 세우는 것이 더 흔해졌다.[6] 이는 신토 장례 의식 (神葬祭, 신소사이)의 중심 부분을 형성했다.[4]

3. 의례

''미타마야''는 벽에 부착된 높이의 선반인 ''미타마-산-노-타나''의 안쪽 방에 놓이며, 가미다나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2] 제사는 오십일까지 매 10일마다, 그 이후에는 100일과 1주년 기념일에 ''미타마야''를 위해 거행된다. 1주년 제사 후에는 영혼이 가족 신사에 있는 조상들과 합류함을 기념하는 또 다른 제사가 뒤따른다.[4]

3. 1. 고대 의례

참조

[1] 웹사이트 Encyclopedia of Shinto詳細 https://d-museum.kok[...] 2023-04-15
[2] 웹사이트 Basic Terms of Shinto: T http://www2.kokugaku[...] Institute for Japanese Culture and Classics, Kokugakuin University 2007-08-09
[3] 서적 Japan, an Attempt at Interpretation http://www.sacred-te[...] The Macmillan Company
[4] 백과사전 Shinsōsai (Shinto Funeral Rites) http://eos.kokugakui[...] Institute for Japanese Culture and Classics, Kokugakuin University 2007-02-24
[5] 웹사이트 reibyou 霊廟 http://www.aisf.or.j[...] Japanese Architecture and Art Net Users System 2007-08-09
[6] 백과사전 Mitamaya http://eos.kokugakui[...] Institute for Japanese Culture and Classics, Kokugakuin University 2005-06-02
[7] 저널 일본의 장묘문화 : 그 다양성과 역사성 https://oak.jejunu.a[...] 2002-02
[8] 저널 일본 전통의 불교식 葬禮文化와 그 변화 양상 https://www.kci.go.k[...] 2011
[9] 백과사전 미타마야 https://d-museum.kok[...] 고쿠가쿠인 대학 2024-04-03
[10] 저널 일본의 화장, 불교식 장례 -그 흐름과 변화- https://www.kci.go.k[...]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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