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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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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제작된 목조 보살상으로, 현재 팔정사 극락보전에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봉안되어 있다.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가지를 든 대세지보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17세기 말-18세기 초 목불상 양식을 잘 반영한다. 정교한 조각 수법과 보존 상태, 희소성을 인정받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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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
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
이름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
지정 종류유형문화재
지정 번호184
지정일2004년 7월 26일
소재지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31가길 82 (성북동, 팔정사)
시대조선시대
수량1軀

2. 명칭 및 유래

정식 명칭은 '팔정사 목대세지보살상'이다.[1] 보관에 아미타불이 표현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대세지보살상으로 추정된다.[1]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의 한 암자에서 옮겨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

3. 형태 및 특징



팔정사 목대세지보살상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조성된 전형적인 목불상 양식을 보여준다. 현재 팔정사 극락보전에 아미타불의 오른쪽 협시보살로 봉안되어 있으며,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마곡사의 한 암자에서 모셔왔다고 전해진다.[1]

이 보살상은 높고 화려한 보관, 방형(사각형) 얼굴에 턱을 둥글린 점, 사각형적인 체구와 평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오뚝한 코는 1651년 작 신흥사 목아미타삼존상 가운데 대세지보살상과 유사하며, 1706년 작 불갑사 팔상전 석가삼존상, 1710년 작 오대산 북대 불상 등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유행하던 목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1] 조각 수법이 정연하여 당대를 대표할 수 있는 대세지보살상으로 평가되며, 조선 후반기 불상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1] 비록 아미타삼존 중 1구(軀)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보관 및 지물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남아있으며 서울특별시에 남아있는 드문 예 중 하나이다.[1]

보살상의 존명(이름)에 대해서는 보관에 아무런 지물(持物)이 표현되지 않아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관음보살의 경우 보관에 아미타불이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대세지보살상으로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像)의 바닥에는 뒤쪽으로 치우쳐져서 복장공(腹藏孔)이 있으나 현재 복장물은 남아있지 않다.[1]

3. 1. 전체적인 모습

이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寶冠)을 쓴 채 두 손으로 길게 연꽃가지를 들고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신체에 비해 보관을 쓴 머리 부분이 다소 큰 편이다. 머리는 머리카락을 위로 모아 상투식으로 묶었다. 보살상의 상투는 일반적으로 원통형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는 원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살상의 머리카락은 이마 앞부분에 가지런하게 표현되었으며, 그 중 두 가닥이 귀 앞으로 흘러내리고 어깨 위에서 다시 세 가닥으로 갈라져 팔 위 부분까지 늘어져 있다.[1]

머리 위에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듯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양쪽이 낮고 가운데 부분이 높은 산형(山形)을 이루고 있다. 보관은 얇은 금속판을 잘라 문양을 만들어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보관 아래 부분에는 보주(寶珠, 구슬무늬)와 운문(雲文, 구름무늬) 등으로 장식하고 위 부분에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화염보주(火焰寶珠)로 장식하였으며, 보주의 가장자리를 압출기법(壓出技法, 뾰족한 도구로 꾹꾹 눌러가며 문양을 만드는 기법)의 연주문(連珠文, 연속 사슬무늬)으로 장식하여 더욱 화려해 보인다.[1]

이마 양쪽 부분에는 리본형의 관대(冠帶, 관 끈)와 화염부조(火焰浮彫)가 덧붙여져 있다.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이러한 화염보관(火焰寶冠)은 중국 명(明)나라 때부터 보살상의 보관에 애용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보살상의 보관으로 크게 유행하였다.[1]

얼굴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사각형에 가깝다. 궁형(弓形)의 눈썹 사이에는 큼직하게 백호(白毫)가 표현되었고 눈은 거의 감은 듯하다. 코는 큰 편으로 비량(鼻粱, 콧등)이 다소 넓으며 얇은 입술에는 미소가 어려 있다. 목에는 아래 부분에 가늘게 삼도(三道)가 그어져 있고 두 귀는 길게 어깨 부분까지 늘어져 있다.[1]

신체는 단아(端雅)한 편으로, 결가부좌한 무릎 폭이 약간 좁은 듯하나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깨에는 통견(通肩, 두 어깨를 감싸 가사를 입는 방식)의 법의(法衣)를 입고 있으며 넓게 트인 가슴 가운데에는 군의(裙衣)를 입고 있으나, 가슴에는 아무런 영락(瓔珞, 목걸이) 장식이 없어 마치 불의(佛衣)를 입은 듯하다. 수인(手印, 부처나 보살이 짓는 손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왼손은 가슴 위로 들어 두 손으로 길게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데 두 손은 모두 별도로 조성하여 끼운 것이다.[1]

3. 2. 세부 묘사

보살상의 머리카락은 이마 앞부분에 가지런하게 표현되었으며, 그 중 두 가닥은 귀 앞으로 흘러내려 어깨 위에서 다시 세 가닥으로 갈라져 팔 위 부분까지 늘어져 있다. 머리 위에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듯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양쪽이 낮고 가운데 부분이 높은 산형(山形)을 이루고 있다. 보관은 얇은 금속판을 잘라 문양을 만들어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보관 아랫부분에는 보주(寶珠: 구슬무늬)와 운문(雲文: 구름무늬) 등으로 장식하고, 윗부분에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화염보주(火焰寶珠)로 장식하였으며, 보주의 가장자리를 압출기법(壓出技法: 뾰족한 도구로 꾹꾹 눌러가며 문양을 만드는 기법)의 연주문(連珠文: 연속 사슬무늬)으로 장식하여 더욱 화려해 보인다.[1]

얼굴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사각형에 가깝다. 궁형(弓形)의 눈썹 사이에는 큼직하게 백호가 표현되었고 눈은 거의 감은 듯하다. 코는 큰 편으로 비량(콧등)이 다소 넓으며 얇은 입술에는 미소가 어려 있다. 목에는 아랫부분에 가늘게 삼도가 그어져 있고 두 귀는 길게 어깨부분까지 늘어져 있다.[1]

신체는 단아(端雅)한 편으로, 결가부좌한 무릎 폭이 약간 좁은 듯하나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깨에는 통견(두 어깨를 감싸 가사를 입는 방식)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넓게 트인 가슴 가운데에는 군의를 입고 있으나, 가슴에는 아무런 영락(목걸이) 장식이 없어 마치 불의를 입은 듯하다. 수인(부처나 보살이 짓는 손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왼손은 가슴 위로 들어 두 손으로 길게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데 두 손은 모두 별도로 조성하여 끼운 것이다.[1]

4. 제작 기법 및 양식

팔정사 목대세지보살상은 17세기18세기 초 경에 조성된 전형적인 목(木)보살좌상(木菩薩坐像)으로, 현재 팔정사 극락보전(極樂寶殿)에 아미타불의 오른쪽 협시보살(脇侍菩薩)로 봉안되어 있다. 마곡사(충청남도 공주시에 위치)의 한 암자에서 모셔왔다고 전해진다.

이 보살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寶冠)을 쓴 채 두 손으로 길게 연꽃가지를 들고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신체에 비하여 보관을 쓴 머리부분이 다소 큰 편이다. 머리는 머리카락을 위로 모아 상투식으로 묶었는데, 원통형으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보살상의 상투와 달리 원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카락은 이마 앞부분에 가지런하게 표현되었으며, 그 중 두 가닥이 귀 앞으로 흘러내리고 어깨 위에서 다시 세 가닥으로 갈라져 팔 위 부분까지 늘어져 있다.

머리 위에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듯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양쪽이 낮고 가운데 부분이 높은 산형(山形)을 이루고 있다. 이마 양쪽에는 리본형의 관대(冠帶:관 끈)와 화염부조(火焰浮彫)가 덧붙여져 있다.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화염보관(火焰寶冠)은 중국 나라 때부터 보살상의 보관에 애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보살상의 보관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얼굴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사각형에 가깝다. 궁형(弓形)의 눈썹 사이에는 큼직하게 백호가 표현되었고 눈은 거의 감은 듯하다. 코는 큰 편으로 비량(콧등)이 다소 넓으며 얇은 입술에는 미소가 어려 있다. 목에는 아래 부분에 가늘게 삼도가 그어져 있고 두 귀는 길게 어깨부분까지 늘어져 있다.

신체는 단아한 편으로, 결가부좌한 무릎 폭이 약간 좁은 듯하나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깨에는 통견(두 어깨를 감싸 가사를 입는 방식)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넓게 트인 가슴 가운데에는 군의를 입고 있으나, 가슴에는 영락(목걸이) 장식이 없어 마치 불의(佛衣)를 입은 듯하다. 수인(부처나 보살이 짓는 손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왼손은 가슴 위로 들어 두 손으로 길게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데, 두 손은 모두 별도로 조성하여 끼운 것이다.

보관에 아무런 지물이 표현되지 않아 존명(尊名)을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관음보살의 경우 보관에 아미타불이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대세지보살상으로 봉안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상(像)의 바닥에는 뒤쪽으로 치우쳐져서 복장공(腹藏孔)이 있으나 현재 복장물은 남아있지 않다.

4. 1. 제작 기법

보관은 얇은 금속판을 잘라 문양을 만들어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보관 아랫부분에는 보주(구슬무늬)와 운문(구름무늬) 등으로 장식하고, 윗부분에는 화염보주(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의 구슬)로 장식하였다. 특히 보주의 가장자리는 압출기법(뾰족한 도구로 눌러 문양을 만드는 기법)의 연주문(연속 사슬무늬)으로 장식하여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1]

4. 2. 양식적 특징

팔정사 목대세지보살상은 높고 화려한 보관, 방형(사각형)에 가까운 얼굴, 오뚝한 코 등에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유행하던 목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1651년 작 신흥사 목아미타삼존상 중 대세지보살상, 1706년 작 불갑사 팔상전 석가삼존상, 1710년 작 오대산 북대 불상 등과 유사하다. 정연한 조각 수법으로 보아 당대를 대표할 수 있는 대세지보살상의 예로 손꼽히며, 조선 후반기 불상 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비록 아미타삼존 중 1구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보관 및 지물(持物, 불상이나 보살이 지니는 물건)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남아있으며 서울시에 남아있는 드문 예 중 하나이다.

5. 문화재적 가치

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은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유행하던 목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정교한 조각 수법을 보여주며, 보관(寶冠) 및 지물(持物)에 이르기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오뚝한 코, 높고 화려한 보관, 방형(方形) 얼굴에 둥근 턱, 사각형의 체구, 평판적인 특징 등은 1651년 작 신흥사 목아미타삼존상 중 대세지보살상과 유사하며, 1706년 작 불갑사 팔상전 석가삼존상, 1710년 작 오대산 북대 불상 등 당대의 다른 목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조선 후반기 불상 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아미타삼존 중 1구(軀)만이 남아있지만, 서울시에 남아있는 드문 조선 후기 목조보살상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따라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지정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4-08-05
[2] 간행물 서울특별시 지정 문화재 지정명칭 변경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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