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선사 목조아미타불·대세지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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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도선사 목조아미타불·대세지보살상은 1740년에 제작된 조선 후기 불상으로, 아미타불상과 대세지보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발원문을 통해 제작 및 개금 연대가 확인되며, 1740년 인성, 치준 등 조각장들이 제작에 참여했고, 1856년과 1936년에 개금이 이루어졌다. 아미타불상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대좌와 광배는 유실되었으며, 대세지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이 불상들은 종교적,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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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선사 목조아미타불·대세지보살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문화재 정보 | |
이름 | 도선사 목 아미타불·대세지보살상 |
로마자 표기 | Doseonsa Mok Amitabul·Daesejibosal-sang |
한자 표기 | 道詵寺 木 阿彌陀佛·大勢至菩薩像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164 도선사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191 |
지정일 | 2004년 9월 30일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 | 2구 |
웹사이트 | 도선사 웹사이트 |
문화재청 ID | 21,01910000,11 |
2. 역사
2. 1. 조성 (1740년)
2. 2. 1차 개금 (1856년)
2. 3. 2차 개금 (1936년)
2. 4. 현재
3. 불상 특징
아미타불상은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결가부좌하였는데,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결실되었으며 불신(佛身)만 남아있다. 머리는 둥글고 전체적으로 나발이 촘촘하게 표현되었는데, 육계(肉髻)와의 구분이 없이 둥근 머리 위에는 반원형의 나직한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상투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넓적한 모습으로 가는 눈과 큼직하고 넓은 코, 단정한 입 등이 단정하게 보인다. 체구 역시 얼굴과 마찬가지로 사각형적이다. 목이 짧고 어깨가 각이 져서 움츠린 듯 보인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입었는데 가슴 가운데를 넓게 틔워 수평으로 가로지른 군의(裙衣)를 입고 오른쪽 옷자락을 왼쪽에서 내려온 옷자락 안에 끼워 넣는 등 조선후기 착의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워 넣은 것으로, 오른손은 어깨부근으로 올려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잡고 왼손은 가부좌한 무릎 위에 놓아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잡아 아미타불의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였다. 무릎은 폭과 높이가 다소 낮은 편이지만 무릎이 둥글고 두 무릎 사이의 옷 주름이 유연하게 처리되었다. 특히 왼쪽 무릎 위에는 ‘u’字형의 옷자락이 표현되었는데, 이는 조선후기 불상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다.
대세지보살상은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결가부좌한 목불상이다. 본존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며 목이 짧아 다소 위축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머리에 쓴 보관은 금속제로 만들었는데, 화염형(火焰形) 보주(寶珠)를 가장자리에 배치하고 보관 내부에는 운문(雲文)과 보주(寶珠) 등을 배치하였는데 문양의 가장자리에는 압출문(壓出文)으로 연주문(聯珠文)을 장식하여 무척 화려해 보인다. 관 양 옆에는 리본형의 휘날리는 관대(冠帶)가 장식되었으나 다소 심하게 구불거리고 있다. 얼굴을 비롯한 신체적 특징은 아미타불상과 거의 동일한데, 즉 방형적(方形的)이면서도 둥근 듯한 신체표현, 평판적인 이목구비, 가슴 앞을 넓게 틔워 수평의 군의를 입은 착의법(着衣法) 등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3. 1. 아미타불상
아미타불상은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결가부좌하였는데,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결실되었으며 불신(佛身)만 남아있다. 머리는 둥글고 전체적으로 나발이 촘촘하게 표현되었는데, 육계(肉髻)와의 구분이 없이 둥근 머리 위에는 반원형의 나직한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상투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넓적한 모습으로 가는 눈과 큼직하고 넓은 코, 단정한 입 등이 단정하게 보인다. 체구 역시 얼굴과 마찬가지로 사각형적이다. 목이 짧고 어깨가 각이 져서 움츠린 듯 보인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입었는데 가슴 가운데를 넓게 틔워 수평으로 가로지른 군의(裙衣)를 입고 오른쪽 옷자락을 왼쪽에서 내려온 옷자락 안에 끼워 넣는 등 조선후기 착의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워 넣은 것으로, 오른손은 어깨부근으로 올려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잡고 왼손은 가부좌한 무릎 위에 놓아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잡아 아미타불의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였다. 무릎은 폭과 높이가 다소 낮은 편이지만 무릎이 둥글고 두 무릎 사이의 옷 주름이 유연하게 처리되었다. 특히 왼쪽 무릎 위에는 ‘u’字형의 옷자락이 표현되었는데, 이는 조선후기 불상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다.3. 2. 대세지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은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결가부좌한 목불상이다. 본존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며 목이 짧아 다소 위축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머리에 쓴 보관은 금속제로 만들었는데, 화염형(火焰形) 보주(寶珠)를 가장자리에 배치하고 보관 내부에는 운문(雲文)과 보주(寶珠) 등을 배치하였는데 문양의 가장자리에는 압출문(壓出文)으로 연주문(聯珠文)을 장식하여 무척 화려해 보인다. 관 양 옆에는 리본형의 휘날리는 관대(冠帶)가 장식되었으나 다소 심하게 구불거리고 있다. 얼굴을 비롯한 신체적 특징은 아미타불상과 거의 동일한데, 즉 방형적(方形的)이면서도 둥근 듯한 신체표현, 평판적인 이목구비, 가슴 앞을 넓게 틔워 수평의 군의를 입은 착의법(着衣法) 등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4. 발원문
이 불상들은 복장에서 발견된 3종의 발원문을 통해 조성 및 개금과 관련된 역사를 알 수 있다.
- 조성원문 (1740년, 건륭 5년): 우바새(優婆夷) 자징(自澄), 천렴(天廉), 신경(信敬), 곤명(坤命) 정씨(鄭氏) 기춘(己春) 등이 발원하여 도봉산 원통암(圓通庵)에서 제작, 삼각산 진관암(津寬庵)에 봉안되었다. 황금대시주 명월사당(明月舍堂) 경신생(庚申生) 성연(性衍) 단신(單身), 부시주 곤명 을미생(乙未生) 김씨(金氏) 영옥(靈玉) 양주(兩主), 체목대시주 목천의(睦天義) 양위(兩位) 등이 시주하였다. 증사(證師) 철선(徹禪), 송주(誦呪) 민한(敏閑), 지전(持殿) 획원(獲遠), 양공(良工) 인성(印性), 치준(緇俊), 지한(智閑), 삼안(三眼), 충신(忠信)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별좌(別座)는 죽능(竺能), 공양주(供養主)는 자순(慈順), 정운(淨雲), 문간(文侃), 굉행(軓行), 인권거사(引勸居士)는 원해(元海) 양주(兩主), 화주(化主)는 명월사당 자증(自證), 명월사당 천렴(天廉), 명월사당 신(信敬), 곤명 신유생(辛酉生) 정씨(鄭氏) 기춘(己春)이다.
- 개금원문 (1856년, 함풍 병진년): 한양 북쪽 삼각산 진관사(津寬寺)의 화사(化士) 비구(比丘) 화월당(華月堂) 원일(圓一) 대사(大師)가 주도하여 개금 불사가 이루어졌다. 불상 도금이 오래되어 훼손되자, 널리 시주를 모아 다시 금을 입혀 새롭게 하였다. 증명(證明) 비구 성파당(性坡堂) 천성(天性), 송주(誦呪) 월송당(月松堂) 도원(道圓)과 성희(性喜), 금어(金魚) 인원당(仁原堂) 체정(軆定), 송암당(松巖堂) 대원(大遠), 월하당(月霞堂) 세원(世元), 선율(善律), 법인(法仁), 유섬(宥暹), 진우(進祐) 등이 참여하였다. 화주(化主)는 화월당 원일, 도감(都監)은 관허당(寬虛堂) 신국(愼國), 별좌(別座)는 무영당(無影堂) 후선(厚善)이다. 황금대시주는 망건명(亡乾命) 병진생(丙辰生) 청신사(淸信士) 현등(懸燈) 사우(査禹) 명인(明仁) 영가(靈駕), 청신녀(淸信女) 신유생(辛酉生) 염불화(念佛華) 박씨(朴氏), 장자(長子) 정해생(丁亥生) 우창원(禹昌元)과 곤명 정해생 장씨(張氏) 양주, 차자(次子) 기해생(己亥生) 우순인(禹順仁)과 곤명 병신생(丙申生) 강씨(强氏) 양주이다.
- 개금원문 (1936년, 세존응화 2963년): 증명 비구 진종(震鐘), 송주 비구 상언(祥彦), 금어 비구 문성(文性), 편수 비구 화경(和景)과 일섭(日燮), 종두 비구 덕삼(德三), 공사 사미 순갑(順甲), 화대(火臺) 김용천(金龍泉), 도감 비구 경화(慶和), 주지 비구 해선(海善), 화주 시주 청신녀 유대일(劉大日) 등이 참여하여 개금 불사가 이루어졌다.
이 발원문들을 통해 1740년(영조 16)에 인성, 치준, 지한, 삼안, 충신 등이 삼각산 원통암에서 불상을 조각하여 삼각산 진관암에 봉안하였고, 1856년(철종 7)에는 인원당 체정, 송암당 대원, 월하당 세원, 선율, 법인, 유섬, 진우 등이 참여하여 개금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1936년에 문성 스님에 의해 다시 개금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5. 의의 및 평가
서울 도선사 목조아미타불·대세지보살상은 1740년에 인성(印性), 치준(緇俊) 등 당대 최고의 조각장들이 제작한 조선 후기 불상 중 수작으로 평가된다. 발원문(發願文)을 통해 불상 조성 및 개금(改金) 연대가 확실하며, 불상 조성에 참여한 조각장들의 지역적 활동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인성과 치준은 보물로 지정된 백담사 목아미타불좌상(1748년)을 조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교적,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및문화재자료지정
서울특별시장
2004-10-05
[2]
간행물
서울특별시 지정 문화재 지정명칭 변경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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