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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울 리스크누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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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울 리스크누센은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에서 활동하며 네오 나치 사상을 펼친 덴마크의 인물이다. 그는 나치즘을 자연 법칙에 기반한 진리 추구의 정점으로 여기고, 좌익 이념과 융합하려는 시도를 했다.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NSB) 의장을 역임하며 극단적인 발언과 인종차별적 주장을 펼쳤으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동조하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1992년에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DNSB에서 축출되었고,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장하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의 책임을 주장하고, 부차 학살을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판하는 등 논란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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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울 리스크누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포울 하인리히 리스-크누센, DNSB 회의에서 연설 중
이름포울 하인리히 리스-크누센
원어 이름Povl Heinrich Riis-Knudsen
출생일1949년 10월 29일
출생지덴마크
국적덴마크
직업정치인
정치 경력
소속 정당덴마크 국가사회주의 운동
관련 단체국가사회주의자 세계 연합

2. 생애와 사상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유럽 연락책으로 임명했고,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역사적 경험에 제약받고 있다고 느껴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스위스), 라몬 바우(스페인), 빅토르 데체코(이탈리아) 등의 가입을 이끌며 단체 확장에 기여했다.[2] 그러나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직책을 잃었다.[3]

이후 리스크누센은 저술 활동에 집중했다. 1987년 기사 ''민족 사회주의 - 생물학적 세계관''에서 그는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하며 진리 추구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그의 저작은 사비트리 데비의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민족 사회주의 - 좌익 운동''(1984)을 출판하여 나치즘이 혁명적 본성을 지니며, 반동적인 우익과 달리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의 화해를 모색하며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고,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6]

덴마크에서 리스크누센은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의 의장을 역임하며,[7]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 등과 협력하며 유럽 전역에 연락망을 구축했다.[8]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기고했고, 마크 코터릴 등과도 국제적 연락을 유지했다.[9][10]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 추방, 에이즈 감염자 사형,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 설치, 비백인 불임 시술 등을 주장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11]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시에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하기도 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다.[13] 이후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들을 출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15]

최근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리고,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세력'을 위해 일하며 핵전쟁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에게 타이완 침공을 촉구했다.[16]

2. 1.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 활동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유럽 연락책으로 임명했고,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역사적 경험에 제약받고 있다고 느껴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스위스), 라몬 바우(스페인), 빅토르 데체코(이탈리아) 등의 가입을 이끌며 단체 확장에 기여했다.[2] 그러나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직책을 잃었다.[3]

이후 리스크누센은 저술 활동에 집중했다. 1987년 기사 ''민족 사회주의 - 생물학적 세계관''에서 그는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하며 진리 추구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그의 저작은 사비트리 데비의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민족 사회주의 - 좌익 운동''(1984)을 출판하여 나치즘이 혁명적 본성을 지니며, 반동적인 우익과 달리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의 화해를 모색하며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고,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6]

덴마크에서 리스크누센은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의 의장을 역임하며,[7]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 등과 협력하며 유럽 전역에 연락망을 구축했다.[8]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기고했고, 마크 코터릴 등과도 국제적 연락을 유지했다.[9][10]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 추방, 에이즈 감염자 사형,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 설치, 비백인 불임 시술 등을 주장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11]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시에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하기도 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다.[13] 이후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들을 출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15]

최근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리고,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세력'을 위해 일하며 핵전쟁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에게 타이완 침공을 촉구했다.[16]

2. 2. 나치즘의 재해석과 좌익과의 융합 시도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그의 유럽 연락책으로 삼았다.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대륙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미국은 이 경험이 덜하다고 여겨 이 움직임을 환영하여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스위스), 라몬 바우(스페인), 빅토르 데체코(이탈리아) 등과 같은 사람들이 가입하면서 단체의 확장을 이끌었다.[2] 그러나 리스크누센은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욕구를 공유하지 않아 이 직책을 잃었다. 그는 쾨흘의 지지자들을 방문했을 때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3]

이후 리스크누센은 저술 활동에 집중했다. 1987년 기사 ''민족 사회주의 - 생물학적 세계관''에서 그는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실상 삶의 근본 원리로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그의 저작 중 상당 부분은 사비트리 데비의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나치즘의 혁명적 본성이 반동적인 우익의 방식과 구별된다고 주장하는 ''민족 사회주의 - 좌익 운동''(1984)을 출판했고, 따라서 나치즘은 사실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해당 저서에서 "우익에서 좋은 일이 나온 적은 역사적으로 없다"고 주장하며,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조르다노 브루노,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혁명가들과 마르크스주의를 예시로 들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 더 많은 화해를 모색했고, 장-프랑수아 티리아르와 함께 추상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지만 공산주의의 실천에 매료되었다.[6] 1978년 소련을 방문하여 덴마크 언론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

덴마크에서 리스크누센은 1970년에 설립된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의 의장을 역임했다. 이 운동은 1988년까지 약 1000명의 회원을 보유했다.[7] 그는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연락망을 구축했다.[8]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썼으며, 살바도르 보레고, 빌프레드 폰 오벤, 리처드 에드먼즈도 기고했다.[9] 마크 코터릴과 전 뉴 오더 대변인 마틴 커도 그의 국제적 연락망에 포함되었다.[10]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를 숙청하고, 에이즈 감염자를 사형에 처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를 만들고, 비백인의 불임 시술을 요구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출연은 노르웨이스웨덴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덴마크에서는 방영이 금지되었다.[11] 그는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려는 바람과 균형을 이루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백인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다.[13] DNSB는 WUNS를 탈퇴하고 NSDAP/AO에 충성을 돌렸다.[14] 이후 리스크누센은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을 출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15]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아닌 '세력'을 위해 일하며 핵전쟁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했다. 리스크누센은 중국에게 타이완을 침공할 것을 촉구했다.[16]

2. 3. 반공주의와 친소련 행보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유럽 연락책으로 삼아 WUNS의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1] 리스크누센은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 라몬 바우, 빅토르 데체코 등과 같은 사람들을 영입하며 단체 확장을 이끌었지만,[2]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직책을 잃었다.[3]

이후 리스크누센은 저술 활동에 집중하며, 1987년 ''민족 사회주의 - 생물학적 세계관''이라는 기사에서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하며 진리 추구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그의 저술은 사비트리 데비의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민족 사회주의 - 좌익 운동''(1984)을 출판하여 나치즘이 혁명적 본성을 지니며 우익의 반동적 방식과 구별되는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조르다노 브루노,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혁명가들과 산업 혁명으로 인한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을 예시로 들며, 지난 100년간의 사회 개선은 좌익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의 화해를 모색하며, 장-프랑수아 티리아르와 함께 추상적인 마르크스주의는 거부했지만 공산주의의 실천에 매료되었다.[6] 1978년 소련을 방문하여 덴마크 언론의 논란을 일으켰으며,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

덴마크에서 리스크누센은 1970년 설립된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의 의장을 역임하며 1988년까지 약 1000명의 회원을 확보했다.[7]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하며 유럽 전역에 연락망을 구축했고,[8]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9] 마크 코터릴과 전 뉴 오더 대변인 마틴 커도 그의 국제적 연락망에 포함되었다.[10]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TV에 출연하여 모든 이민자 숙청, 에이즈 감염자 사형,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 설치, 비백인의 불임 시술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11]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시에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하기도 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자신이 "백인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다.[13] 이후 DNSB는 WUNS를 탈퇴하고 NSDAP/AO에 충성했다.[14] 리스크누센은 올보르에서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을 출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15]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리스크누센은 서방 국가들의 책임을 주장하며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세력'을 위해 일하며 핵전쟁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에게 타이완 침공을 촉구했다.[16]

3.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NSB)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그의 유럽 연락책으로 삼았다.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대륙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미국은 이 경험이 덜하다고 여겨 이 움직임을 환영하여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당시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 (스위스), 라몬 바우 (스페인), 빅토르 데체코 (이탈리아) 등과 같은 사람들이 가입하면서 단체의 확장을 이끌었다.[2]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크누센은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욕구를 공유하지 않아 이 직책을 잃었다. 그는 쾨흘의 지지자들을 방문했을 때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3]

덴마크 내에서 리스크누센은 1970년에 설립된 공개적인 네오 나치 조직인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 DNSB)의 의장을 역임했다. 이 운동은 1988년까지 약 1000명의 회원을 보유했다.[7] 이 자격으로 리스크누센은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연락망을 구축했다.[8] 그는 또한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썼으며, 여기에는 살바도르 보레고, 빌프레드 폰 오벤, 리처드 에드먼즈도 실렸다.[9] 최근에는 그의 국제적 연락망에 마크 코터릴과 전 뉴 오더 대변인 마틴 커가 포함되었다.[10]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를 숙청하고, 에이즈 감염자를 사형에 처하고,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를 만들고, 비백인의 불임 시술을 요구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출연은 노르웨이스웨덴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덴마크에서는 방영이 금지되었다.[11] 그는 또한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려는 바람과 균형을 이루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그가 "백인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다.[13] 그 결과 DNSB는 WUNS를 탈퇴하고 경쟁 국제 네트워크인 NSDAP/AO에 충성을 돌렸다.[14]

4. 논란

### 극단적 발언과 인종차별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유럽 연락책으로 삼았다.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대륙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미국은 이 경험이 덜하다고 느껴 이 움직임을 환영하여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스위스), 라몬 바우(스페인), 빅토르 데체코(이탈리아) 등과 같은 사람들이 가입하면서 단체의 확장을 이끌었다.[2] 그러나 리스크누센은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욕구를 공유하지 않아 이 직책을 잃었다. 그는 쾨흘의 지지자들을 방문했을 때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3]

그는 1987년 기사 ''민족 사회주의 - 생물학적 세계관''에서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실상 삶의 근본 원리로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그의 저작 상당수는 사비트리 데비의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나치즘의 혁명적 본성이 반동적인 우익의 방식과 구별된다고 주장하는 ''민족 사회주의 - 좌익 운동''(1984)을 출판했고, 따라서 나치즘은 사실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 더 많은 화해를 모색하게 되었고, 장-프랑수아 티리아르와 함께 추상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의 실천에 매료되었다.[6] 그는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

리스크누센은 1970년에 설립된 공개적인 네오 나치 조직인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이 운동은 1988년까지 약 1000명의 회원을 보유했다.[7] 이 자격으로 리스크누센은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연락망을 구축했다.[8]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를 숙청하고, 에이즈 감염자를 사형에 처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를 만들고, 비백인의 불임 시술을 요구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출연은 노르웨이스웨덴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덴마크에서는 방영이 금지되었다.[11] 그는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려는 바람과 균형을 이루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는데, 이는 그가 "백인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 때문이었다.[13] 이후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을 출판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15]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아닌 '세력'을 위해 일하며 젤렌스키의 목표는 핵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리스크누센은 중국에게 타이완을 침공할 것을 촉구했다.[16]

### 반유대주의와 친팔레스타인 행보

포울 리스크누센은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시에,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12]

### 인종 혼합 논란과 DNSB 축출

1992년, 리스크누센은 "백인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NSB)에서 추방되었다.[13] 그 결과 DNSB는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를 탈퇴하고 경쟁 국제 네트워크인 NSDAP/AO에 충성을 돌렸다.[14]

### 홀로코스트 부정

리스크누센은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일련의 책을 출판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15]

###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발언

포울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 국가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16] 그는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가 아닌 '세력'을 위해 일하며 그의 목표는 핵전쟁이라고 주장했다.[16] 또한 리스크누센은 중국에게 타이완 침공을 촉구했다.[16]

4. 1. 극단적 발언과 인종차별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유럽 연락책으로 삼았다.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대륙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미국은 이 경험이 덜하다고 느껴 이 움직임을 환영하여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스위스), 라몬 바우(스페인), 빅토르 데체코(이탈리아) 등과 같은 사람들이 가입하면서 단체의 확장을 이끌었다.[2] 그러나 리스크누센은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욕구를 공유하지 않아 이 직책을 잃었다. 그는 쾨흘의 지지자들을 방문했을 때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3]

그는 1987년 기사 ''민족 사회주의 - 생물학적 세계관''에서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실상 삶의 근본 원리로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그의 저작 상당수는 사비트리 데비의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나치즘의 혁명적 본성이 반동적인 우익의 방식과 구별된다고 주장하는 ''민족 사회주의 - 좌익 운동''(1984)을 출판했고, 따라서 나치즘은 사실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 더 많은 화해를 모색하게 되었고, 장-프랑수아 티리아르와 함께 추상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의 실천에 매료되었다.[6] 그는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

리스크누센은 1970년에 설립된 공개적인 네오 나치 조직인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이 운동은 1988년까지 약 1000명의 회원을 보유했다.[7] 이 자격으로 리스크누센은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연락망을 구축했다.[8]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를 숙청하고, 에이즈 감염자를 사형에 처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를 만들고, 비백인의 불임 시술을 요구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출연은 노르웨이스웨덴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덴마크에서는 방영이 금지되었다.[11] 그는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려는 바람과 균형을 이루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는데, 이는 그가 "백인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 때문이었다.[13] 이후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을 출판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15]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아닌 '세력'을 위해 일하며 젤렌스키의 목표는 핵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리스크누센은 중국에게 타이완을 침공할 것을 촉구했다.[16]

4. 2. 반유대주의와 친팔레스타인 행보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유럽 연락책으로 임명했고, 리스크누센은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스위스), 라몬 바우(스페인), 빅토르 데체코(이탈리아) 등의 인물들을 영입하며 단체 확장을 이끌었다.[2] 그러나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직책을 잃었다.[3]

그는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하며, 삶의 근본 원리로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또한, 나치즘의 혁명적 본성이 반동적인 우익과 구별되며, 사실 나치즘은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조르다노 브루노,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혁명가들을 언급하며, 우익에서는 좋은 일이 나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이념이 노동 계급을 착취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혁명적 사고의 결과라고 말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의 화해를 모색하며,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다.[6] 그는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

덴마크에서 리스크누센은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의 의장을 역임하며,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했다.[7][8] 그는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9]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를 숙청하고, 에이즈 감염자를 사형에 처하며,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를 만들고, 비백인의 불임 시술을 요구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11] 그는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시에,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다.[13] 이후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들을 출판하여 논란을 일으켰다.[15]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세력'을 위해 일하며 핵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주장했고, 중국에게 타이완을 침공할 것을 촉구했다.[16]

4. 3. 인종 혼합 논란과 DNSB 축출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그의 유럽 연락책으로 찾았다.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대륙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미국은 이 경험이 덜하다고 느껴 이 움직임을 환영하여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당시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 (스위스), 라몬 바우 (스페인), 빅토르 데체코 (이탈리아) 등과 같은 사람들이 가입하면서 단체의 확장을 이끌었다.[2]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크누센은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욕구를 공유하지 않아 이 직책을 잃었다. 그는 쾨흘의 지지자들을 방문했을 때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3]

그의 주요 저작은 1987년 기사 ''민족 사회주의 - 생물학적 세계관''으로, 여기서 그는 나치즘이 자연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실상 삶의 근본 원리로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4] 그의 저술 상당 부분은 사비트리 데비의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나치즘의 혁명적 본성이 반동적인 우익의 방식과 구별된다고 주장하는 ''민족 사회주의 - 좌익 운동''(1984)을 출판했고, 따라서 나치즘은 사실 좌익 이념이라고 주장했다.[5] 리스크누센은 공산주의와의 화해를 모색했고, 장-프랑수아 티리아르와 함께 추상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지만 공산주의의 실천에 매료되었다.[6] 1978년 소련을 방문하여 덴마크 언론의 논란을 일으켰으며, 미국보다는 러시아아리아인의 구원자로 여겼다.[5]

리스크누센은 1970년에 설립된 공개적인 네오 나치 조직인 덴마크 민족 사회주의 운동(Danmarks Nationalsocialistiske Bevægelse, DNSB)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이 운동은 1988년까지 약 1000명의 회원을 보유했다.[7]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연락망을 구축했다.[8]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썼으며, 마크 코터릴과 전 뉴 오더 대변인 마틴 커와도 국제적 연락망을 유지했다.[9][10]

1980년대 후반, 리스크누센은 덴마크에서 모든 이민자를 숙청하고, 에이즈 감염자를 사형에 처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한 노동 수용소를 만들고, 비백인의 불임 시술을 요구하는 TV 출연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출연은 노르웨이스웨덴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덴마크에서는 방영이 금지되었다.[11]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을 유럽에서 몰아내려는 바람과 균형을 이루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동조를 표명했다.[12]

1992년, 리스크누센은 "백인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의 약혼으로 인해 "인종 혼합"을 이유로 DNSB에서 추방되었다.[13] 그 결과 DNSB는 WUNS를 탈퇴하고 경쟁 국제 네트워크인 NSDAP/AO에 충성을 돌렸다.[14] 이후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책을 출판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15]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밝혀지지 않은 일부 '세력'을 위해 일하며 젤렌스키의 목표는 핵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리스크누센은 중국에게 타이완을 침공할 것을 촉구했다.[16]

4. 4. 홀로코스트 부정

포울 리스크누센은 매트 쾨흘이 세계 민족 사회주의자 연합(WUNS)을 이끌게 되면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쾨흘은 덴마크에서 이미 유력한 네오 나치였던 리스크누센을 유럽 연락책으로 임명했다.[1] 리스크누센은 유럽의 나치즘이 대륙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미국은 이 경험이 덜하다고 여겨 WUNS의 사무총장이 되었다.[1] 당시 그는 가스통-아르망 아마드루즈 (스위스), 라몬 바우 (스페인), 빅토르 데체코 (이탈리아) 등과 같은 사람들이 가입하면서 단체의 확장을 이끌었다.[2] 그러나 쾨흘이 나치즘을 기반으로 종교를 형성하려는 욕구를 공유하지 않아 이 직책을 잃었다.[3]

그는 독일의 미하엘 큔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티에스 크리스토퍼센과 협력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연락망을 구축했다.[8] 그는 또한 CEDADE의 특별판에 글을 썼으며, 여기에는 살바도르 보레고, 빌프레드 폰 오벤, 리처드 에드먼즈도 실렸다.[9] 최근에는 그의 국제적 연락망에 마크 코터릴과 전 뉴 오더 대변인 마틴 커가 포함되었다.[10]

리스크누센은 올보르에서 자신의 출판사 노르드란드-페르라그를 운영하며 덴마크어로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제로 한 일련의 책을 출판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15]

4. 5.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발언

포울 리스크누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 국가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16] 그는 부차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가 아닌 '세력'을 위해 일하며 그의 목표는 핵전쟁이라고 주장했다.[16] 또한 리스크누센은 중국에게 타이완 침공을 촉구했다.[16]

5. 비판과 평가

참조

[1] 서적 The Beast Reawakens Warner Books 1998
[2] 서적 Nation and Race: The Developing Euro-American Racist Subculture 1998
[3] 기타 Lee, op cit
[4] 웹사이트 National Socialism - The Biological World View http://www.aryanunit[...] 2005-06-22
[5] 웹사이트 P. Riis-Knudsen http://www.kss88.com[...] 2009-01-05
[6] 기타 Lee, op cit
[7] 간행물 European Parliament Committee of Inquiry on Racism and Xenophobia - Report on the Findings of the Inquiry
[8] 간행물 Ford, op cit
[9] 웹사이트 Antisemitism and the Extreme Right in Spain (1962–1997) http://sicsa.huji.ac[...] 2013-09-26
[10] 웹사이트 The Ties that Bind http://www.splcenter[...] Southern Poverty Law Center 2007-09-30
[11] 간행물 Ford, op cit
[12] 서적 Confronting Right-Wing Extremism and Terrorism in the USA 2003
[13] 서적 Leaving Terrorism Behind: Individual and Collective Disengagement
[14] 서적 Racist Violence in Europe St Martin's Press 1993
[15] 웹사이트 Overview of Danish far right http://www.axt.org.u[...] 2007-10-08
[16] 뉴스 "В поддержку России Riis-Knudsen Povl Heinrich в статье «Krig er ikke smukt at se på» -19.04.2022-" https://dzen.ru/a/Ym[...] Дзен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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