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해방함 일마리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핀란드 해방함 일마리넨은 1934년 핀란드 해군에 인도된 Väinämöinen급 연안 경비함으로, 발트해 군도 작전에 최적화된 설계를 갖추었다. 2차 세계 대전 이전 핀란드의 함대 갱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건조되었으며, 254mm 주포 4문과 105mm 부포 8문을 장착했다.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에 참전했으며, 1941년 9월 노르트빈트 작전 중 기뢰에 의해 침몰하여 271명의 사망자를 냈다. 일마리넨의 손실은 핀란드 해군 역사상 단일 함선 최대의 피해로 기록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핀란드의 해군 함정 - 핀란드 해방함 배이내뫼이넨
핀란드 해방함 배이내뫼이넨은 1929년에 기공되어 1932년 핀란드 해군에 인도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1947년 소련에 전쟁 배상으로 넘겨져 해체되었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핀란드 군함 - 핀란드 해방함 배이내뫼이넨
핀란드 해방함 배이내뫼이넨은 1929년에 기공되어 1932년 핀란드 해군에 인도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1947년 소련에 전쟁 배상으로 넘겨져 해체되었다. - 1931년 선박 - 류조 (항공모함)
류조는 일본 제국 해군의 경항공모함으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제한을 피하고자 경량화된 선체와 평갑판 형태를 갖추었으며, 태평양 전쟁 초기에 참전했다가 제2차 솔로몬 해전에서 침몰했다. - 1931년 선박 - USS 인디애나폴리스 (CA-35)
USS 인디애나폴리스는 미국 해군의 포틀랜드급 중순양함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하고 히로시마 투하용 리틀 보이 부품을 운반했으나, 종전 직전 일본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하며 미국 해군 역사상 최대 인명 피해를 냈으며, 2017년 잔해가 발견되었다.
핀란드 해방함 일마리넨 - [배(Ship)]에 관한 문서 | |
---|---|
이미지 | |
![]() | |
함선 정보 | |
함선 국가 | 핀란드 |
함선 깃발 | 핀란드 해군 |
함선 이름 | 일마리넨 |
함선 명명 유래 | 핀란드 신화의 일마리넨 |
함선 종류 | 해방전함 |
함선 발주 | 1927년 |
함선 건조 | 크리크톤-불칸 오위, 투르쿠, 핀란드 |
함선 기공 | 1929년 9월 |
함선 진수 | 1931년 7월 9일 |
함선 취역 | 1934년 4월 17일 |
함선 퇴역 | 해당 없음 |
함선 최후 | 1941년 9월 13일 기뢰에 의해 침몰 |
함선 비고 | 해당 없음 |
함선 제원 | |
함선 등급 | 배이내뫼이넨급 |
함선 배수량 | 3,900 톤 |
함선 길이 | 93.0 미터 |
함선 폭 | 16.864 미터 |
함선 흘수선 | 4.5 미터 |
함선 추진 | 디젤-전기 동력 장치, 크루프 엔진 4개 (875 kW), 샤프트 2개, 3,500 kW |
함선 속도 | 14.5 노트 (시속 약 26.9 킬로미터) |
함선 항속 거리 | 700 해리 (1,300 킬로미터) |
함선 승무원 | 403명 (1941년 9월 11일) |
함선 무장 (설계) | |
주포 | 254 mm/45 구경 보포르스 포 4문 (2 x 2) |
부포 | 105 mm/50 구경 보포르스 양용포 8문 (4 x 2) |
대공포 | 40 mm/40 구경 비커스 대공포 4문 (4 x 1), 20 mm/60 구경 마드센 대공포 2문 (2 x 1) |
함선 무장 (1941년) | |
주포 | 254 mm/45 구경 보포르스 포 4문 (2 x 2) |
부포 | 105 mm/50 구경 보포르스 양용포 8문 (4 x 2) |
대공포 | 40 mm/56 구경 보포르스 대공포 M/36S 4문 (1 x 2, 2 x 1), 20 mm/60 구경 마드센 대공포 4문 (4 x 1) |
기타 정보 | |
자매함 | 배이내뫼이넨 |
2. 건조 배경 및 설계
'''건조 배경'''
1925년 핀란드 해군은 어뢰정 S2가 폭풍우에 침몰하여 승무원 53명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다. 이 사건은 핀란드 해군의 열악한 상태를 드러냈고, 1927년 새로운 해군법이 채택되어 함대 갱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핀란드는 함대 갱신 프로그램을 통해 잠수함 5척, 어뢰정 4척, 그리고 2척의 연안 경비함을 획득하거나 건조했다. 이 중 Väinämöinen급 연안 경비함에 속하는 ''일마리넨''과 Väinämöinen은 발트해 군도 작전에 최적화된 설계로, 네덜란드 회사 NV Ingenieurskantoor voor Scheepsbouw(독일의 대리인)에서 설계를 맡았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군사적 제약을 받던 독일은 이 회사를 통해 핀란드의 연안경비함 건조를 지원했다.
연안 경비함은 20세기 초 북유럽 국가 해군에서 운용되었으며, 강력한 무장과 우수한 장갑 방호를 갖추었지만 비교적 느린 함선이었다. 핀란드의 연안 경비함은 순양함과 모니터함의 중간 형태로, 3,900 롱톤의 배수량, 93m의 최대 길이, 4.50m의 흘수를 가졌다. 4개의 디젤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 최대 속도는 14.5kn였다. 주 무장은 4문의 254mm Bofors 포였고, 부 무장은 8문의 105mm 이중 목적 Bofors 포와 대공포로 구성되었다.
''일마리넨''은 1933년 9월 9일 투르쿠 조선소에서 진수되어 1934년 4월 17일 핀란드 해군에 인도되었다. 자매함인 ''Väinämöinen''은 2년 먼저 진수되었다.
핀란드 연안 경비함의 목적은 상륙 작전과 해상 봉쇄를 방지하고, 소련 발트 함대의 대형 함선들이 핀란드 해안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설계 특징'''
''일마리넨''을 포함한 Väinämöinen급 연안 경비함은 네덜란드 회사 NV Ingenieurskantoor voor Scheepsbouw(독일 대리인)에서 설계했으며, 발트해 군도에서의 작전에 최적화되었다. 얕은 흘수와 소형 설계를 통해 공해에서의 성능보다는 좁은 해역에서의 기동성과 생존성을 중시했다.
이 함선은 3,900 롱톤의 배수량, 93m의 최대 길이, 4.50m의 흘수를 가지고 있었다. 2개의 전기 엔진에 동력을 공급하는 4개의 디젤 엔진을 장착하여 총 4,800 마력(3,600 kW)의 출력을 냈다. 또한 2개의 소형 100 마력(75 kW) 보조 디젤 엔진이 있었다. 최대 속도는 14.5노트였고, 항속 거리는 93톤의 디젤유 적재 능력에 의해 제한되었다.
주포는 4문의 Boforssv 254mm 포로, 최대 31km까지 225kg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부포는 4개의 포탑에 8문의 105mm 이중 목적 Boforssv 포로 구성되었다. 대공 방어를 위해 4문의 40mm 대공포(처음에는 영국제 "폼폼" 포였지만, 겨울 전쟁에서 성능이 좋지 않아 Boforssv 포로 교체됨)와 2문의 Madsen 20 mm cannon(나중에 8문으로 증가)이 장착되었다.
연안 경비함의 목적은 소련 발트 함대와 같은 적 함선들이 핀란드 해안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2. 1. 건조 배경
1925년 핀란드 해군은 어뢰정 S2가 폭풍우에 침몰하여 승무원 53명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다. 이 사건은 핀란드 해군의 열악한 상태를 드러냈고, 1927년 새로운 해군법이 채택되어 함대 갱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제2차 세계 대전 이전 핀란드는 함대 갱신 프로그램을 통해 잠수함 5척, 어뢰정 4척, 그리고 2척의 연안 경비함을 획득하거나 건조했다. 이 중 Väinämöinen급 연안 경비함에 속하는 ''일마리넨''과 Väinämöinen은 발트해 군도 작전에 최적화된 설계로, 네덜란드 회사 NV Ingenieurskantoor voor Scheepsbouw(독일의 대리인)에서 설계를 맡았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군사적 제약을 받던 독일은 이 회사를 통해 핀란드의 연안경비함 건조를 지원했다.
연안 경비함은 20세기 초 북유럽 국가 해군에서 운용되었으며, 강력한 무장과 우수한 장갑 방호를 갖추었지만 비교적 느린 함선이었다. 핀란드의 연안 경비함은 순양함과 모니터함의 중간 형태로, 3,900 롱톤의 배수량, 93m의 최대 길이, 4.50m의 흘수를 가졌다. 4개의 디젤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 최대 속도는 14.5kn였다. 주 무장은 4문의 254mm Bofors 포였고, 부 무장은 8문의 105mm 이중 목적 Bofors 포와 대공포로 구성되었다.
''일마리넨''은 1933년 9월 9일 투르쿠 조선소에서 진수되어 1934년 4월 17일 핀란드 해군에 인도되었다. 자매함인 ''Väinämöinen''은 2년 먼저 진수되었다.
핀란드 연안 경비함의 목적은 상륙 작전과 해상 봉쇄를 방지하고, 소련 발트 함대의 대형 함선들이 핀란드 해안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2. 2. 설계 특징
일마리넨급 연안경비함은 네덜란드 회사 NV Ingenieurskantoor voor Scheepsbouw(독일 대리인)에서 설계했으며, 발트해 군도에서의 작전에 최적화되었다. 얕은 흘수와 소형 설계를 통해 공해에서의 성능보다는 좁은 해역에서의 기동성과 생존성을 중시했다.이 함선은 3,900 롱톤의 배수량, 93m의 최대 길이, 4.50m의 흘수를 가지고 있었다. 2개의 전기 엔진에 동력을 공급하는 4개의 디젤 엔진을 장착하여 총 4,800 마력(3,600 kW)의 출력을 냈다. 또한 2개의 소형 100 마력(75 kW) 보조 디젤 엔진이 있었다. 최대 속도는 14.5노트였고, 항속 거리는 93톤의 디젤유 적재 능력에 의해 제한되었다.
주포는 254mm Bofors 포 4문으로, 최대 31km까지 225kg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부포는 4개의 포탑에 8문의 105mm 이중 목적 Bofors 포로 구성되었다. 대공 방어를 위해 4문의 40mm 대공포(처음에는 영국제 "폼폼" 포였지만, 겨울 전쟁에서 성능이 좋지 않아 Bofors 포로 교체됨)와 2문의 Madsen 20 mm cannon(나중에 8문으로 증가)이 장착되었다.
연안 경비함의 목적은 소련 발트 함대와 같은 적 함선들이 핀란드 해안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3. 기술적 특징
핀란드 해방함 일마리넨은 전장 93.00m, 수선장 90.00m, 최대 폭 7.59m였다.[16] 배수량 및 흘수는 경하 상태에서 3,531톤, 4.071m, 상비 상태에서 3,808톤, 4.332m, 만재 상태에서 4,028톤, 4.537m였다.[17]
주포는 보포스 45구경 25.4cm 연장포 2기였다.[18] 최대 앙각은 45도이며, 앙각 40도에서의 유탄 사거리는 31,172m이다.[19] 부포는 보포스 50구경 10.5cm 포를 연장으로 4기 탑재했다.[20] 최대 앙각 85도, 최대 사정 18.2km, 최대 사고 12,000m였다.[20]
그 외에 비커스 40구경 40mm포 40mm 단장 4기를 탑재했다.[23] 1941년 6월에 보포스 60구경 40mm 기관포 연장 1기, 단장 2기로 교체되었다.[8] 또한, 마드센 60구경 20mm 기관총이 추가 탑재되었다.[8]
디젤-전기 추진 방식, 워드-레오나드 방식으로, 주기는 크루프 게르마니아사(Krupp Germania)제 과급기 부착 6기통 4행정 디젤 기관 4기였다.[21] 주 발전기는 브라운 보베리사(Brown, Boveri & Cie)제 발전기 2기로, 2축 추진이었다.[22] 속력은 계획 14.5노트, 공시에서는 4,100마력으로 15.2노트, 3,200마력으로 14.35노트였다.[16]
장갑은 주포 방패, 바벳, 사령탑이 KC강이며, 그 외는 니켈강이었다.[23] 두께는 수선 장갑대가 55mm, 주포 전면 방패 100mm, 측면 방패 및 후면 방패 50mm, 천개 70mm, 바벳 100mm, 사령탑 측면 120mm, 갑판 15mm였다.[24]
3. 1. 제원
핀란드 해방함 일마리넨의 배수량은 3,900톤, 전장은 93m, 흘수는 4.5m였다.[17] 속도는 14.5노트였으며, 93톤의 디젤유를 적재하여 항속 거리는 제한적이었다. 주포는 보포스 45구경 25.4cm 연장포 2기였으며,[18] 최대 앙각 45도, 앙각 40도에서의 유탄 사거리는 31,172m였다.[19] 부포는 보포스 50구경 10.5cm 포를 연장으로 4기 탑재했으며,[20] 최대 앙각 85도, 최대 사정 18.2km, 최대 사고 12,000m였다.[20]그 외에 비커스 40구경 40mm포 40mm 단장 4기를 탑재했으나,[23] 1941년 6월에 보포스 60구경 40mm 기관포 연장 1기, 단장 2기로 교체되었다.[8] 또한, 마드센 60구경 20mm 기관총이 추가 탑재되었다.[8]
디젤-전기 추진 방식, 워드-레오나드 방식으로, 주기는 크루프 게르마니아사(Krupp Germania)제 과급기 부착 6기통 4행정 디젤 기관 4기였다.[21] 주 발전기는 브라운 보베리사(Brown, Boveri & Cie)제 발전기 2기로, 2축 추진이었다.[22] 속력은 계획 14.5노트, 공시에서는 4,100마력으로 15.2노트, 3,200마력으로 14.35노트였다.[16]
장갑은 주포 방패, 바벳, 사령탑이 KC강이며, 그 외는 니켈강이었다.[23] 두께는 수선 장갑대가 55mm, 주포 전면 방패 100mm, 측면 방패 및 후면 방패 50mm, 천개 70mm, 바벳 100mm, 사령탑 측면 120mm, 갑판 15mm였다.[24]
3. 2. 추진 체계
디젤-전기 추진 방식, 워드-레오나드 방식으로, 주기는 크루프 게르마니아사(Krupp Germania)제 과급기 부착 6기통 4행정 디젤 기관 4기였다.[21] 주 발전기는 브라운 보베리사(Brown, Boveri & Cie)제 발전기 2기로, 2축 추진이었다.[22] 속력은 계획 14.5노트, 공시에서는 4,100마력으로 15.2노트, 3,200마력으로 14.35노트였다.[16]3. 3. 무장
핀란드 해방함 일마리넨의 주포는 254mm 보포스 포 4문으로, 2연장 포탑 2기에 장착되었다.[18] 최대 앙각은 45도이며, 앙각 40도에서의 유탄 사거리는 31,172m이다.[19] 부포는 105mm 보포스 이중 목적 포 8문으로, 2연장 포탑 4기에 탑재되었다.[20] 최대 앙각은 85도, 최대 사정 거리는 18.2km, 최대 사거리는 12,000m였다.[20]초기에는 40mm 보포스 대공포 4문이 탑재되었으나,[23] 1941년 6월에 보포스 60구경 40mm 기관포 연장 1기, 단장 2기로 교체되었다.[8] 20mm 마드센 기관총도 추가 탑재되었다.[8]
장갑은 주포 방패, 바벳, 사령탑이 KC강이며, 그 외는 니켈강이었다.[23] 두께는 수선 장갑대가 55mm, 주포 전면 방패 100mm, 측면 방패 및 후면 방패 50mm, 천개 70mm, 바벳 100mm, 사령탑 측면 120mm, 갑판 15mm였다.[24]
3. 4. 장갑
일마리넨의 장갑은 주포 방패, 바벳, 사령탑에 KC강이 사용되었고, 그 외에는 니켈강이 사용되었다.[23] 수선 장갑대는 55mm, 주포 전면 방패는 100mm, 측면 및 후면 방패는 50mm, 천개는 70mm였다.[24] 바벳은 100mm, 사령탑 측면은 120mm, 갑판은 15mm였다.[24]4. 운용 역사
겨울 전쟁 발발 당시, ''일마리넨''은 자매함인 배이내뫼이넨과 함께 올란드 제도 방어를 위해 파견되었다.[6] 1939년 11월 30일, ''일마리넨''과 ''배이내뫼이넨''은 헤그소라에서 소련군의 폭격을 받았으나, 명중탄은 없었고 ''일마리넨''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6] 12월 25일에는 폭격으로 근접탄을 맞았고, 기관총 사격으로 전사자 1명이 발생했다.[6]
1940년 1월 말, 두 함선은 투르쿠로 이동하여 대공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7] 이때 ''일마리넨''의 선체는 흰색으로 도색되었다.[8]
겨울 전쟁 종전 후, ''일마리넨''은 핀란드의 여러 항구를 항해했으며, 바사 근처에서 좌초되기도 했다.[4]
1941년 계속 전쟁이 발발하자 ''일마리넨''과 자매함 배이내뫼이넨은 5차례에 걸쳐 항코 반도의 소련 기지를 포격했다.[1] 7월 12일에는 Täcktom의 소련 비행장에 20발의 포탄을 발사했는데, 이 비행장은 이전에 독일 융커스 Ju 88 폭격기 ''Küstenfliegergruppe'' 806에 의해 폭격된 적이 있었다.
1941년 9월 13일, ''일마리넨''은 노르트빈트 작전에 참가했다. 이 작전은 독일군의 히우마 섬, 사레마 섬 상륙 작전의 기만 작전으로, 함대를 이용하여 상륙 지점 반대 방향으로 적을 유인하려는 것이었다. "일마리넨"과 "바이나모이넨"은 초계정 4척과 함께 제1부대를 구성했다.[5] 9월 13일 17시 55분에 우토 섬을 출격하여 남하했지만, 소련 측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18시 25분, "일마리넨"과 "바이나모이넨"은 파라반을 전개했다. 19시 51분에 우현으로 변침했을 때 "일마리넨"의 우현 파라반이 수몰되었다. 귀항하기 위해 20시 30분에 선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을 때, "일마리넨"의 좌현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발생했다. 몇 분 만에 전복되어 곧 침몰했다. 132명이 구조되었지만, 271명이 사망했다.[5]
폭발의 원인으로는 기뢰가 가장 유력하다. 19시 51분 변침 시 우현 파라반에 걸린 유동 기뢰가 20시 30분 선수 방향을 바꿀 시 좌측으로 흘러 부딪혔거나, 좌현 파라반에 걸린 기뢰가 선수 방향을 바꿀 시 떨어져 함선 쪽으로 흘러 부딪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일마리넨''의 손실은 현재까지도 핀란드 해군 역사상 단일 함선 최대의 피해이다.[5]
4. 1. 겨울 전쟁 (1939-1940)
겨울 전쟁 발발 당시, ''일마리넨''은 자매함인 배이내뫼이넨과 함께 올란드 제도 방어를 위해 파견되었다.[6] 1939년 11월 30일, ''일마리넨''과 ''배이내뫼이넨''은 헤그소라에서 소련군의 폭격을 받았으나, 명중탄은 없었고 ''일마리넨''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6] 12월 25일에는 폭격으로 근접탄을 맞았고, 기관총 사격으로 전사자 1명이 발생했다.[6]1940년 1월 말, 두 함선은 투르쿠로 이동하여 대공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7] 이때 ''일마리넨''의 선체는 흰색으로 도색되었다.[8]
4. 2. 계속 전쟁 (1941-1944)
겨울 전쟁 종전 후, ''일마리넨''은 핀란드의 여러 항구를 항해했으며, 바사 근처에서 좌초되기도 했다.[4]1941년 계속 전쟁이 발발하자 ''일마리넨''과 자매함 배이내뫼이넨은 5차례에 걸쳐 항코 반도의 소련 기지를 포격했다.[1] 7월 12일에는 Täcktom의 소련 비행장에 20발의 포탄을 발사했는데, 이 비행장은 이전에 독일 융커스 Ju 88 폭격기 ''Küstenfliegergruppe'' 806에 의해 폭격된 적이 있었다.
1941년 9월 13일, ''일마리넨''은 노르트빈트 작전에 참가했다. 이 작전은 독일군의 히우마 섬, 사레마 섬 상륙 작전의 기만 작전으로, 함대를 이용하여 상륙 지점 반대 방향으로 적을 유인하려는 것이었다. "일마리넨"과 "바이나모이넨"은 초계정 4척과 함께 제1부대를 구성했다.[5] 9월 13일 17시 55분에 우토 섬을 출격하여 남하했지만, 소련 측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18시 25분, "일마리넨"과 "바이나모이넨"은 파라반을 전개했다. 19시 51분에 우현으로 변침했을 때 "일마리넨"의 우현 파라반이 수몰되었다. 귀항하기 위해 20시 30분에 선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을 때, "일마리넨"의 좌현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발생했다. 몇 분 만에 전복되어 곧 침몰했다. 132명이 구조되었지만, 271명이 사망했다.[5]
폭발의 원인으로는 기뢰가 가장 유력하다. 19시 51분 변침 시 우현 파라반에 걸린 유동 기뢰가 20시 30분 선수 방향을 바꿀 시 좌측으로 흘러 부딪혔거나, 좌현 파라반에 걸린 기뢰가 선수 방향을 바꿀 시 떨어져 함선 쪽으로 흘러 부딪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일마리넨''의 손실은 현재까지도 핀란드 해군 역사상 단일 함선 최대의 피해이다.[5]
5. 일마리넨의 침몰
''일마리넨''은 노르트윈트 작전에 참가하여 에스토니아의 사레마 섬과 히우마 섬을 점령하려는 독일군을 지원했다. 이 작전은 소련 함대를 전투로 유인하기 위한 기만 작전이었다. 핀란드와 독일 함선들은 소련 함대를 실제 침공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인하려 했다.
1941년 9월 13일, ''일마리넨''은 우토에서 남쪽으로 약 25해리 떨어진 지점에서 회항하던 중, 파라반에 걸린 기뢰가 함체와 충돌하여 폭발했다. 19시 51분에 우현으로 변침했을 때 "일마리넨"의 우현 파라반이 수몰되었고, 20시 30분에 귀항하기 위해 회두를 시작했을 때, "일마리넨"의 좌현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발생했다. 폭발로 인해 함선에 큰 구멍이 생겼고, 곧 심하게 기울어지면서 전복되었다. 함선은 불과 7분 만에 침몰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 403명 중 271명이 사망했으며, 대부분 선체 내부에 갇혔다. 순찰정 ''VMV 1''이 전복된 선체로 이동하여 57명을 구조했다.
''일마리넨''의 손실은 핀란드 해군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손실이었다. 군 당국은 손실을 비밀로 유지하려 했지만, 스웨덴 신문들이 곧 이 사건을 보도했고, 핀란드 신문에 실린 수많은 수병 부고도 소련에 경고했을 수 있으며, 소련도 곧 손실을 보고했다.
''일마리넨''은 1990년에 발견되었으며, 거꾸로 뒤집힌 채 진흙 속에 깊이 박혀 70m 깊이에 있었다. 이 함선은 전쟁 묘지로 분류된다.
5. 1. 침몰 과정
''일마리넨''은 노르트윈트 작전에 참가하여 에스토니아의 사레마 섬과 히우마 섬을 점령하려는 독일군을 지원했다.[1] 이 작전은 소련 함대를 전투로 유인하기 위한 기만 작전이었다.[1] 핀란드와 독일 함선들은 소련 함대를 실제 침공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인하려 했다.[1]1941년 9월 13일, ''일마리넨''은 우토에서 남쪽으로 약 25해리 떨어진 지점에서 회항하던 중, 파라반에 걸린 기뢰가 함체와 충돌하여 폭발했다.[1] 19시 51분에 우현으로 변침했을 때 "일마리넨"의 우현 파라반이 수몰되었고, 20시 30분에 귀항하기 위해 회두를 시작했을 때, "일마리넨"의 좌현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발생했다. 폭발로 인해 함선에 큰 구멍이 생겼고, 곧 심하게 기울어지면서 전복되었다.[1] 함선은 불과 7분 만에 침몰했다.[1]
이 사고로 승무원 403명 중 271명이 사망했으며, 대부분 선체 내부에 갇혔다.[1] 순찰정 ''VMV 1''이 전복된 선체로 이동하여 57명을 구조했다.[1]
''일마리넨''의 손실은 핀란드 해군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손실이었다.[1] 군 당국은 손실을 비밀로 유지하려 했지만, 스웨덴 신문들이 곧 이 사건을 보도했고, 핀란드 신문에 실린 수많은 수병 부고도 소련에 경고했을 수 있으며, 소련도 곧 손실을 보고했다.[1]
''일마리넨''은 1990년에 발견되었으며, 거꾸로 뒤집힌 채 진흙 속에 깊이 박혀 70m 깊이에 있었다.[1] 이 함선은 전쟁 묘지로 분류된다.[1]
5. 2. 침몰 이후
핀란드 군 당국은 일마리넨의 손실을 비밀로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스웨덴 언론들이 곧 이 사건을 보도했고, 핀란드 신문에 실린 수많은 수병 부고도 소련에 경고했을 수 있으며, 소련도 곧 손실을 보고했다.일마리넨은 1990년에 발견되었다. 거꾸로 뒤집힌 채 진흙 속에 깊이 박혀 70m 깊이에 있었다. 이 함선은 전몰비로 지정되었다.
6. 평가 및 의의
참조
[1]
웹사이트
Finnish coast defence ships
http://users.tkk.fi/[...]
2008-04-12
[2]
서적
海防戦艦
[3]
서적
海防戦艦
[4]
서적
海防戦艦
[5]
서적
海防戦艦
[6]
서적
海防戦艦
[7]
서적
海防戦艦
[8]
서적
海防戦艦
[9]
서적
海防戦艦
[10]
서적
海防戦艦
[11]
서적
海防戦艦
[12]
서적
海防戦艦
[13]
서적
海防戦艦
[14]
서적
海防戦艦
[15]
서적
海防戦艦
[16]
서적
海防戦艦
[17]
서적
海防戦艦
[18]
서적
海防戦艦
[19]
서적
海防戦艦
[20]
서적
海防戦艦
[21]
서적
海防戦艦
[22]
서적
海防戦艦
[23]
서적
海防戦艦
[24]
서적
海防戦艦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