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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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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마다성은 1619년 시마네현 하마다 시에 축성된 성으로, 가메야마 산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에는 도자마 다이묘인 후루타 씨가 성주였으나, 막부가 조슈번을 경계하면서 후다이, 신판 다이묘로 교체되었다. 막말에는 조슈번과 대립하여 조슈 정벌의 거점이 되었으나, 조슈 번군에 함락되어 소실되었다. 현재는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으며, 일부 석벽과 쓰와노 번 무가 저택의 문이 남아 있다. 196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17년에는 속 일본 100명성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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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다성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산노마루 기지의 석벽
다른 이름가메야마성 (亀山城)
위치시마네현하마다시
종류산성
상태유적
재료석벽
역사
건설1620년
건설자후루타 시게하루
철거1866년
과거 지휘관후루타 시게하루
소유 및 관리
소유혼다 씨
구조
구조 형식제곽식 평산성
천수 구조독립식 망루형 3중 (현재는 없음)
문화재 지정
지정 유형시마네현 지정 사적

2. 역사

1619년 하마다 시 중심의 가메야마 산에 축성된 하마다성은 혼마루에 3층의 천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북쪽에는 마쓰하라 만, 동쪽에는 아자이 강, 남쪽과 서쪽에는 하마다 강을 천연 해자로 삼았다. 처음 성주는 도자마 다이묘인 후루타씨(古田氏)였으나, 후다이, 신판 다이묘로 교체되었는데, 이는 막부가 인접한 조슈번모리씨(毛利氏)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막말에는 막부와 도막파의 중심인 조슈 번과 대립하였고, 조슈 정벌에서 막부측 주요 거점이었으나, 조슈 번군에 함락되어 번주 마쓰다이라 다케아키라는 성을 버리고 도주했다. 성과 마을은 패잔병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하마다성 옛 그림

  • 쇼와 37년(1962년) 6월 12일 - 현 지정 사적으로 지정.
  • 쇼와 42년(1967년) - 하마다현 청사 정문(쓰와노 번 무가 저택의 문)을 하마다성 산기슭으로 이전.
  • 헤이세이 29년(2017년) 4월 6일, 속 일본 100명성 (170번)으로 선정.[4]


현재 성터는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으며, 혼마루에서 산노마루에 걸쳐 계단형 석벽이 남아 있다. 등성로에는 쓰와노 번 무가저택에서 이축한 문이 세워져 있으며, 시바 료타로의 비문〈하마다 번 추회비(浜田藩追懐の碑)〉도 있다.[3]

2. 1. 축성 및 에도 시대

1619년 하마다 시 중심의 높이 68m의 가메야마 산에 축성되었으며, 넓이 약 0.3ha혼마루에 높이 14m의 3층의 천수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혼마루 하단에는 니노마루, 산노마루, 데마루가 제곽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성의 북쪽에는 마쓰하라 만이, 동쪽에는 아자이 강을 끼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에 흐르는 하마다 강을 천연의 해자로 삼았다.

처음 하마다 성의 성주는 도자마 다이묘인 후루타씨(古田氏)였지만, 점차 후다이, 신판 다이묘로 교체되었다. 이는 막부에서 인접한 조슈번모리씨(毛利氏)를 경계하기 위한 한 의중으로 볼 수 있다.

막말에는 막부와 도막파의 중심세력으로 볼 수 있는 조슈 번과 격한 대립이 있었고, 조슈 정벌에서는 막부측의 주요 거점이었다. 이 전장에서 하마다 번은 조슈 번군에 공격받아 함락되었고, 하마다 번주 마쓰다이라 다케아키라는 성을 버리고 도주했다. 또, 성과 마을은 패잔병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 겐나 5년(1619년) - 후루타 시게하루가 오사카 전투의 공적으로 하마다에 5만 4000석을 받아 입봉했다.
  • 겐나 6년(1620년) 2월 - 축성 개시.
  • 겐나 9년(1623년) 5월 - 성과 성하 마을이 완성.
  • 게이안 원년(1648년) - 2대 시게쓰네가 가문 내 분쟁(후루타 소동)을 일으켜 개역.
  • 게이안 2년(1649년) 마쓰다이라(마쓰이) 야스에이가 5만 석으로 입봉. 5대에 걸쳐 재봉.
  • 호레키 9년(1759년) - 5대 야스토미가 시모사국고가 번으로 전봉. 혼다 다다히로가 5만 석으로 입봉.
  • 메이와 6년(1769년) - 3대 타다스쿠가 미카와국오카자키 번으로 전봉. 같은 곳에서 마쓰다이라(마쓰이) 야스토미가 다시 55,400석으로 입봉.
  • 덴포 7년(1836년) - 3대 야스니 때 청·조선과의 밀무역(다케시마 사건)이 발각. 야스니는 은거하고 4대 야스타카는 무쓰국다나구라 번으로 전봉. 고즈케국다테바야시 번에서 마쓰다이라(오치) 나리아쓰가 6만 1천 석으로 입봉.
  • 게이오 2년(1866년) - 제2차 조슈 정벌. 조슈 번의 오무라 마스지로가 진군. 번주 타케사토는 싸우지 않고 도주. 이때 패잔병이 하마다성, 하마다 거리에 방화하여 동시에 잿더미로 변했다.

2. 2. 막말 및 근대

1619년 하마다 시 중심의 가메야마 산에 축성된 하마다성은 혼마루에 3층의 천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북쪽에는 마쓰하라 만, 동쪽에는 아자이 강, 남쪽과 서쪽에는 하마다 강을 천연 해자로 삼았다.[3] 처음 성주는 도자마 다이묘인 후루타씨(古田氏)였으나, 후다이, 신판 다이묘로 교체되었는데, 이는 막부가 인접한 조슈번모리씨(毛利氏)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막말에는 막부와 도막파의 중심인 조슈 번과 대립하였고, 조슈 정벌에서 막부측 주요 거점이었으나, 조슈 번군에 함락되어 번주 마쓰다이라 다케아키라는 성을 버리고 도주했다. 성과 마을은 패잔병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3]

  • 겐나 5년(1619년) - 후루타 시게하루가 오사카 전투의 공으로 하마다에 입봉했다.
  • 겐나 6년(1620년) 2월 - 축성 개시.
  • 겐나 9년(1623년) 5월 - 성과 성하 마을 완성.
  • 게이안 원년(1648년) - 2대 시게쓰네가 가문 내 분쟁(후루타 소동)으로 개역.
  • 게이안 2년(1649년) 마쓰다이라(마쓰이) 야스에이 입봉.
  • 호레키 9년(1759년) - 5대 야스토미가 시모사국고가 번으로 전봉. 혼다 다다히로 입봉.
  • 메이와 6년(1769년) - 3대 타다스쿠가 미카와국오카자키 번으로 전봉. 마쓰다이라(마쓰이) 야스토미가 다시 입봉.
  • 덴포 7년(1836년) - 3대 야스니 때 청, 조선과의 밀무역(다케시마 사건)이 발각되어 은거하고, 4대 야스타카는 무쓰국다나구라 번으로 전봉. 고즈케국다테바야시 번에서 마쓰다이라(오치) 나리아쓰 입봉.
  • 게이오 2년(1866년) - 제2차 조슈 정벌에서 조슈 번의 오무라 마스지로가 진군해 오자, 번주 타케사토는 싸우지 않고 도주했다. 이때 패잔병이 하마다성과 하마다 거리에 방화하여 동시에 잿더미가 되었다.
  • 쇼와 37년(1962년) 6월 12일 - 현 지정 사적으로 지정.
  • 쇼와 42년(1967년) - 하마다현 청사 정문(쓰와노 번 무가 저택의 문)을 하마다성 산기슭으로 이전.
  • 헤이세이 29년(2017년) 4월 6일, 속 일본 100명성 (170번)으로 선정.[4]


현재 성터는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으며, 혼마루에서 산노마루에 걸쳐 계단형 석벽이 남아 있다. 등성로에는 쓰와노 번 무가저택에서 이축한 문이 세워져 있으며, 시바 료타로의 비문〈하마다 번 추회비(浜田藩追懐の碑)〉도 있다.[3]

3. 구조

성은 현재 일부 석벽과 토루(土壘)를 제외하고는 폐허로 남아 있다.[3] 2017년에는 속 일본 100명성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4]

삼중 망루 터


하마다시 중심부에 있는 하마다강에 둘러싸인 해발 약 68m의 독립된 구릉 정상부를 평탄하게 조성하여 본환을 만들었다. 본환 남쪽에 좁은 이의환·삼의환, 서쪽에 출환을 배치한 제곽식 평산성이다. 북쪽은 마쓰바라만, 동쪽은 아사이강, 남쪽·서쪽은 하마다강이 천연 해자 역할을 했다. 성 주변에는 무가 저택을, 하마다강 남쪽에는 촌가를 두었다. 본환에는 천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혼마루의 규모는 남북 약 60미터, 동서 약 50미터로 약 0.3ha이다. 북서쪽 모서리에는 삼중 망루, 남동쪽 모서리에는 혼마루 어문과 육간 나가야가 있었으며, 중앙 부근에는 타마구라(옥고)가 있었다. 주변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혼마루 북서쪽 모서리에는 독립식 망루형 삼중 망루가 있었다. 천수대는 처음부터 조성되지 않았으며, 혼마루에 초석을 놓고 천수가 세워졌다. 천수의 높이는 약 14미터이며 샤치호코의 크기는 약 1.4미터였다. 상층의 넓이는 사방 약 9.1미터, 중층은 사방 약 12.7미터, 하층은 남북 약 9.1미터, 동서 약 16.4미터였다. 메이지 시대 초 무렵까지 존재했다.

혼마루고몬(혼마루 어문)은 하마다성 혼마루의 정문(남쪽) 역할을 하던 문으로, 통칭 혼마루 제일의 문이다. 동쪽에 존재했던 육간 나가야와 인접해 있었으며, 석축이 현존해 있다.

롯켄나가야(육간 나가야)는 혼마루의 남동쪽 모서리에 존재했던 다몬 야구라로, 창고 역할을 했다. 서쪽에 존재했던 혼마루 어문과 인접해 있었다.

타마구라는 혼마루 중앙 부근에 존재했던 창고이다. 넓이는 약 5쓰보로, 뎃포의 탄환 등 무기류를 수납했다.

본환(혼마루)의 남쪽에 위치한 구루와(곽)이다. 산록에도 니노마루가 존재하며, 염초창고(화약고)나 혼마루 상번소, 시타번소(시간 알림소), 나카노몬(중문)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의 마루 남쪽에 위치한 구획이다. 이의 마루와 마찬가지로 산기슭에도 산노마루가 존재하며, 어전, 여러 관청, 어용 미곡 창고, 오테몬 등이 위치해 있었다.

출마루


혼마루의 서쪽에 위치한 구획으로, 별칭은 혼마루 옆 천인 모임터이다. 규모는 동서 약 24.2미터, 남북 23.9미터이다. 출마루로의 통로는 북쪽과, 니노마루로 이어지는 통로가 남쪽에 각각 1곳씩 있다. 니노마루와 마찬가지로 산기슭에도 출마루가 존재하며, 성의 남쪽에 있는 작은 독립식 구릉에 있었다. 통칭, 석양의 마루라고 불리며, 현재는 혼마루의 서쪽에 있는 출마루와 마찬가지로 덤불과 숲이 되어 있다. 출마루의 북쪽에 존재했던 출입구인 출마루 키도를 나가면 혼마루의 석벽 주변을 도는 길로 이어진다. 현재는 덤불과 숲이 되어 있어 도달하기 어렵다.

3. 1. 기본 배치 (나와바리)

하마다시 중심부에 있는 하마다강에 둘러싸인 해발 약 68m의 독립된 구릉 정상부를 평탄하게 조성하여 본환을 만들었다. 본환 남쪽에 좁은 이의환·삼의환, 서쪽에 출환을 배치한 제곽식 평산성이다. 북쪽은 마쓰바라만, 동쪽은 아사이강, 남쪽·서쪽은 하마다강이 천연 해자 역할을 했다. 성 주변에는 무가 저택을, 하마다강 남쪽에는 촌가를 두었다. 본환에는 천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3. 2. 혼마루

혼마루의 규모는 남북 약 60미터, 동서 약 50미터로 약 0.3ha이다. 북서쪽 모서리에는 삼중 망루, 남동쪽 모서리에는 혼마루 어문과 육간 나가야가 있었으며, 중앙 부근에는 타마구라(옥고)가 있었다. 주변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혼마루 북서쪽 모서리에는 독립식 망루형 삼중 망루가 있었다. 천수대는 처음부터 조성되지 않았으며, 혼마루에 초석을 놓고 천수가 세워졌다. 천수의 높이는 약 14미터이며 샤치호코의 크기는 약 1.4미터였다. 상층의 넓이는 사방 약 9.1미터, 중층은 사방 약 12.7미터, 하층은 남북 약 9.1미터, 동서 약 16.4미터였다. 메이지 시대 초 무렵까지 존재했다.

혼마루고몬(혼마루 어문)은 하마다성 혼마루의 정문(남쪽) 역할을 하던 문으로, 통칭 혼마루 제일의 문이다. 동쪽에 존재했던 육간 나가야와 인접해 있었으며, 석축이 현존해 있다.

롯켄나가야(육간 나가야)는 혼마루의 남동쪽 모서리에 존재했던 다몬 야구라로, 창고 역할을 했다. 서쪽에 존재했던 혼마루 어문과 인접해 있었다.

타마구라는 혼마루 중앙 부근에 존재했던 창고이다. 넓이는 약 5쓰보로, 뎃포의 탄환 등 무기류를 수납했다.

3. 3. 니노마루

본환(혼마루)의 남쪽에 위치한 구루와(곽)이다. 산록에도 니노마루가 존재하며, 염초창고(화약고)나 혼마루 상번소, 시타번소(시간 알림소), 나카노몬(중문)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3. 4. 산노마루

이의 마루 남쪽에 위치한 구획이다. 이의 마루와 마찬가지로 산기슭에도 산노마루가 존재하며, 어전, 여러 관청, 어용 미곡 창고, 오테몬 등이 위치해 있었다.

3. 5. 데마루



혼마루의 서쪽에 위치한 구획으로, 별칭은 혼마루 옆 천인 모임터이다. 규모는 동서 약 24.2미터, 남북 23.9미터이다. 출마루로의 통로는 북쪽과, 니노마루로 이어지는 통로가 남쪽에 각각 1곳씩 있다. 니노마루와 마찬가지로 산기슭에도 출마루가 존재하며, 성의 남쪽에 있는 작은 독립식 구릉에 있었다. 통칭, 석양의 마루라고 불리며, 현재는 혼마루의 서쪽에 있는 출마루와 마찬가지로 덤불과 숲이 되어 있다. 출마루의 북쪽에 존재했던 출입구인 출마루 키도를 나가면 혼마루의 석벽 주변을 도는 길로 이어진다. 현재는 덤불과 숲이 되어 있어 도달하기 어렵다.

4. 유구 및 현존 건조물

게이오 2년(1866년) 제2차 조슈 정벌하마다성의 건조물은 모두 소실되었지만, 현재 일부 석벽과 토루(土壘)는 남아있다.[3] 산록에는 쓰와노번 무가 저택의 문이 이전되었다. 2017년에는 속 일본 100명성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4]

5. 하마다 호코쿠 신사

하마다 호코쿠 신사/濱田護國神社일본어일본에 위치한 신토 신사이다. 벳표 신사[5]이자 호코쿠 신사로, 전쟁 사망자를 모시고 있다.[8] 이러한 신사는 전쟁 사망자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모두 야스쿠니 신사의 "분사"로 여겨졌다. 1939년에 쇼콘샤에서 이름을 변경했다.[6] 하마다성 유적지에 위치하고 있다.[7][8]

6. 교통

6. 1. 철도

JR 서일본 산인 본선 하마다역 (북쪽 출구)에서 서쪽으로 도보 약 20분 거리에 있다. 니시하마다역에서는 북동쪽으로 도보 약 60분 거리에 있다.

6. 2. 자동차

하마다 자동차도・산인 자동차도 하마다 IC에서 서쪽으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산인 자동차도 하마다히가시 IC에서는 서쪽으로 약 15분 소요된다.

참조

[1] 웹사이트 浜田城 http://www.kankou-ha[...] 浜田市観光協会 Official 2019-08-10
[2] 웹사이트 浜田城 https://hamada400.jp[...] 浜田開府400年 2019-08-10
[3] 웹사이트 浜田城跡 https://kojodan.jp/c[...] 攻城団 2019-07-25
[4] 웹사이트 続日本100名城 http://jokaku.jp/jap[...] 日本城郭協会 2017-11-29
[5] 웹사이트 別表神社とは?御朱印めぐりに参考になる「別表神社一覧」とマップ {{!}} 開運戦隊ゴシュインジャー https://jinja-gosyui[...] 2023-04-02
[6] 간행물 Enshrinement and Persistency of Japanese Religion https://www.jstor.or[...] 1990
[7] 웹사이트 Ruins of Hamada Castle http://handejapan19.[...] 2023-10-21
[8] 웹사이트 https://www.kankou-h[...]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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