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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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인리히 뵐은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과 전후 독일 사회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나치 치하에서 히틀러 유겐트 가입을 거부하고,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후 작가가 되어, 『열차는 정확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등 사회 비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뵐은 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사회민주당과 빌리 브란트를 지지하며 국제 펜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뵐은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개인의 고통을 묘사하고, 독일 사회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1985년 사망 후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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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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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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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하인리히 테오도어 뵐 |
출생일 | 1917년 12월 21일 |
출생지 | 쾰른,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
사망일 | 1985년 7월 16일 |
사망지 | 랑겐브로이히, 서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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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Heinrich Theodor Böll |
IPA | /ˈhaɪnʁɪç ˈteːodoːɐ̯ ˈbœl/ |
직업 | |
직업 | 소설가 |
국적 | |
국적 | 독일 |
활동 시기 | |
장르 | |
주제 | |
사조 | |
사조 | 폐허 문학 (Trümmerliteratur) 47년 그룹 |
영향 | |
영향 | 토마스 만 |
수상 | |
주요 수상 | 그룹 47 문학상(1951) 게오르크 뷔히너 상(1967) 노벨 문학상(1972) |
2. 생애
하인리히 뵐은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전후 독일 사회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뵐은 나치 시대에 히틀러 유겐트 가입을 거부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 국방군에 징집되어 여러 전선에서 복무하며 네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전쟁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후, 30세에 전업 작가가 되어 '전쟁에서 본 것'과 전후의 '폐허'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1949년 『열차는 정확했다』를 시작으로, 참혹한 참전 경험과 전후 독일의 참상을 그린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수상하고, 1953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9시 반의 당구』, 『어느 광대의 견해』, 『신변 보호』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을 발표했다. 1967년에는 독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흐너 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에는 사회 참여가 더욱 적극적이 되었고, 빌리 브란트를 지지하며 사회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했다. 1971년 국제 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는 작가와 지식인들의 석방을 위해 힘썼다. 1972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독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1985년 동맥경화로 사망할 때까지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에 헌신했다. 그의 사후 독일 녹색당은 그의 저항적 삶을 기리기 위해 당의 정책 연구소 이름을 '하인리히 뵐 연구소'로 짓기로 결정하였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917년 쾰른에서 목공예 가문의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청소년기 나치 하에서 히틀러 유겐트에 참여하지 않았다.[1] 카이저 빌헬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1939년 쾰른대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했으나 곧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었다.독일 국방군에 징집되어 폴란드 침공, 프랑스, 루마니아 왕국, 헝가리 왕국,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 등지에서 복무했다. 1942년 안네마리 체흐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고, 안네마리는 나중에 뵐과 함께 영어 문학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여러 작업을 함께 했다. 뵐은 전쟁 중 네 번 부상을 입었고, 장티푸스에 걸렸다.
2. 2. 전쟁 경험과 작가 데뷔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어 프랑스, 루마니아, 헝가리, 러시아 등지에서 복무했다. 1945년 4월 미군에게 포로로 잡힐 때까지 네 차례 부상을 입었고, 장티푸스에 걸리기도 했으며, 동상으로 발가락을 모두 잃어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1]전후 ‘전쟁에서 본 것’과 ‘폐허’에 대해 쓰기 시작했으며, 30세에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49년 병사들의 절망적인 삶을 묘사한 『열차는 정확했다』(Der Zug war pünktlich)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3]
2. 3. 문학적 성취와 사회 참여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받으며 문인으로서의 위치를 다진 뵐은, 1953년에 출간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비평가와 독자들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2]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9시 반의 당구』, 『어느 광대의 견해』, 『신변 보호』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2] 1967년에는 독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흐너 상'을 수상했다.[2]1970년대 뵐은 사회 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사회민주당 정권교체를 위해 귄터 그라스와 함께 선거 유세에 참여하며 빌리 브란트를 지지했다.[2] 1971년에는 국제 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는 작가와 지식인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2] 1971년 성취 지향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은 ≪여인과 군상≫을 발표하고,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2] 1929년 토마스 만 이후 43년 만에 독일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다.[2] 그의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독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2]
뵐은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상 이름 |
---|---|
1953년 | 독일 산업 문화상, 남독일 라디오상, 독일 비평가상[4] |
1954년 | 파리 트리뷴 상[4] |
1955년 | 프랑스 최우수 외국 소설상[4] |
1958년 | 부퍼탈 시의 에두아르트 폰 데어 하이디트 상, 바이에른 예술원(Bayerische Akademie der Schönen Künste) 상[4] |
1959년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대예술상, 쾰른 시 문학상, 마인츠 과학예술 아카데미 회원 선출[4] |
1960년 | 바이에른 예술원 회원, 샤를 베이용 상[5] |
1967년 | 게오르크 뷔히너 상[6] |
1972년 | 노벨 문학상 ("그의 시대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인물 묘사의 섬세한 기술을 결합하여 독일 문학의 쇄신에 기여한 그의 작품")[7] |
1974년 | 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 카를 폰 오시에츠키 메달 (세계 인권 옹호와 기여)[8] |
1983년 | 미국 철학회 회원[10] |
1984년 |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10] |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세계 작가 협회인 국제 펜클럽(PEN International)의 회장을 역임했다.[9]
2. 4. 노벨 문학상 수상과 말년
1972년 "그의 시대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인물 묘사의 섬세한 기술을 결합하여 독일 문학의 쇄신에 기여한 그의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29년 토마스 만 이후 43년 만에 독일인이 이 상을 받은 것이다.[1] 그의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독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1]1970년대에는 사회 참여가 더욱 적극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독일 사회와의 갈등도 심화되었다.[1] 1969년과 1972년 뵐은 귄터 그라스와 함께 사회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위해 선거 유세에 직접 참여하며 빌리 브란트를 적극 지지했다.[1] 1971년부터 1973년까지 국제 펜클럽(PEN International) 회장을 역임하며,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는 작가와 지식인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1]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에 힘썼던 뵐은 1985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1] 그의 사후 독일 녹색당은 그의 저항적 삶을 기리기 위해 당의 정책 연구소 이름을 '하인리히 뵐 연구소'로 결정했다.[1]
뵐은 1974년 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 및 카를 폰 오시에츠키 메달(세계 인권 옹호와 기여에 대한 공로)을, 1983년 미국 철학회 회원, 1984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사망할 때까지 여러 명예상을 받았다.
3. 작품 세계
하인리히 뵐의 작품은 그의 고향인 쾰른을 배경으로, 로마 가톨릭적인 가치관과 특유의 유머 감각을 담고 있다. 종전 직후, 그는 전쟁의 기억과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미친 물질적, 심리적 영향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영웅으로 그려진다.
뵐의 작품에 등장하는 악역은 주로 정부, 기업, 교회의 권력자들이다. 뵐은 그들의 권력 남용, 용기 부족, 자기만족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그들을 벌한다. 그의 간결한 문체는 독일어 교과서에 자주 사용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뵐은 나치가 쾰른에 만연했던 것과 연합군의 폭격으로 쾰른이 파괴된 것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전후 재건되어 다시 번성한 쾰른에 대해 그는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동안 쾰른 시민들과 빈부 격차 없이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독일 사회가 보수화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뵐은 관리 사회의 극한을 희화화한 『잃어버린 명예 카타리나 블룸』, 유작이 된 『강가에 있는 여자들』 등을 집필했다. 나치 시대부터 핵탄두 미사일 배치까지 서독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그려온 탓에 '연방 공화국의 비판적 연대기 작가'라고도 불린다.
뵐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 | 작품 제목(원제) |
---|---|
1947 | 열차는 정확했다 (Der Zug war pünktlich) |
1948 | 유언(Das Vermächtnis) |
1950 | 방랑자여, 그대 스파르타로 가거든…… (Wanderer, kommst du nach Spa…) |
1951 | 검은 양들 (Die schwarzen Schafe) |
1951 | 아담, 너는 어디 있었는가? (Wo warst du, Adam?) |
1952 | 천사는 말이 없었다 (Der Engel schwieg) |
1952 | 성탄절 시기에는 안 된다 (Nicht zur Weihnachtszeit) |
1953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Und sagte kein einziges Wort) |
1954 | 문지기 없는 건물 (Haus ohne Hüter) |
1955 | 그 시절의 빵 (Das Brot der frühen Jahre) |
1957 | 아일랜드 일기 (Irisches Tagebuch) |
1957 |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람들 (Die Spurlosen) |
1958 | 무르케 박사의 누적된 침묵과 기타 풍자적 이야기들 (Dr. Murke's gesammeltes Schweigen und andere Satire) |
1959 | 9시 반의 당구 (Billard um halb zehn) |
1962 | 한 움큼의 흙 (Ein Schluck Erde) |
1963 | 어느 어릿 광대의 견해 (Ansichten eines Clowns) |
1964 | 군대에서부터의 이탈 (Entfernung von der Truppe) |
1966 | 어떤 공무여행의 끝 (Ende einer Dienstfahrt) |
1971 | 어느 여인의 초상 (Gruppenbild mit Dame) |
1974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
1979 | 사려깊은 포위 (Fürsorgliche Belagerung) |
1981 | 그 소년이 어떻게 될 것인가?:책들과 관계 있는 어떤 것 (Was soll aus dem Jungen bloss werden? Oder: Irgendwas mit Büchern) |
1982 | 지뢰밭 (Vermintes Gelände) |
1983 | 치명적 부상 (Die Verwundung) |
1985 | 강 풍경을 마주보고 있는 여인 (Frauen vor Flusslandschaft) (사후 출간) |
3. 1. 주요 주제와 특징
하인리히 뵐의 작품은 전쟁, 테러, 정치적 분열, 급격한 경제적·사회적 변화 속에서 개인의 삶을 묘사하며, 국가나 공공 기관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다룬다. 뵐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주의를 옹호했으며,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라는 문구로 이를 요약했다.뵐은 로마 가톨릭 신앙과 유머 감각을 지닌 쾰른 출신으로, 전쟁과 그 영향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작품에 담았다. 그의 작품에서 그레이엄 그린, 조르주 베르나노스와 같이 가톨릭 신앙이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관점을 유지했다.[17]
뵐은 나치즘과 연합군의 쾰른 폭격으로 인한 피해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침묵의 천사''에서 폭격의 여파를 묘사했으며, 재건된 쾰른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정부, 기업, 언론, 교회의 권위주의를 비판했으며, 그의 작품 속 신문들은 등장인물들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아나키스트를 옹호한 혐의를 받은 뵐의 경험을 반영한다.
뵐의 작품은 ''폐허 문학(Trümmerliteratur)''으로 불리며,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맞서는 독일 작가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국가의 양심'으로 불리기도 했다.[19]
뵐은 쾰른과 아이펠 지역, 아일랜드 아킬 섬에서 생활했으며, 아일랜드에서의 경험은 ''아일랜드 일기(Irish Journal)''에 기록되었다.
서독 P.E.N. 회장과 국제 P.E.N. 회장을 역임하며, 동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작품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여겨져 소련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다.[2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소련에서 추방되었을 때 뵐의 별장에 피신했으며, 뵐은 솔제니친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했다.[22] 1976년 뵐은 가톨릭교회를 떠났다.[23]
뵐은 관리 사회의 극한을 희화화한 『잃어버린 명예 카타리나 블룸』, 유작 『강가에 있는 여자들』 등을 통해 서독 역사를 비판적으로 그려 '연방 공화국의 비판적 연대기 작가'로 불린다.
3. 2. 문학적 영향과 유산
뵐의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독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전쟁, 테러, 정치적 분열, 경제적·사회적 변동이라는 배경 속에서 개인적인 삶을 묘사하며, 국가나 공공 기관에 반대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17]뵐은 헌신적인 평화주의자였으며, 그의 작품은 전쟁과 그 재발 방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라는 문구로 이를 요약했다. 또한, 나치 통치 시절 반나치 교사의 영향으로 로마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17]
뵐은 로마 가톨릭 신앙과 쾰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후 시기 전쟁의 영향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억을 작품에 담았다. 그의 가톨릭 신앙은 그레이엄 그린, 조르주 베르나노스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관점을 유지했다.[17] 나치즘과 제2차 세계 대전 중 쾰른 폭격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재건된 쾰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18]
뵐은 아일랜드에 대한 애정으로 아킬 섬에 별장을 두고 생활했으며, 이는 사무엘 베케트와의 작품 연관성, 하인리히 뵐 재단 설립의 동기가 되었다.[18] 그는 정부, 기업, 언론, 교회의 권력 있는 인물들을 비판했으며, 그들의 권력 남용을 고발했다. 그의 작품은 ''폐허 문학(Trümmerliteratur)''으로 불리며,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죄책감에 맞서는 독일 작가들의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그는 '국가의 양심(Gewissen der Nation)'이라는 칭호를 거부하고, 과거에 대한 진정한 책임을 묻고자 했다.[19]
뵐은 국제 P.E.N. 회장을 역임했으며, 동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망명을 돕기도 했으며,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뵐의 작품을 인용했다.[22] 뵐은 1976년 가톨릭교회를 떠났으며,[23] 1985년 사망했다.
그의 간결한 문체는 독일어 교과서에 자주 사용된다. 그는 나치 시대부터 핵탄두 미사일 배치까지 서독의 역사를 그려 '연방 공화국의 비판적 연대기 작가'라고도 불린다.
4. 사회적 활동과 논란
1968년, 자유를 억압하는 헌법 개정에 뵐은 반대했다.
4. 1. 언론과의 갈등과 논란
1963년, 소설 『광대』가 출판되자 가톨릭 교회와 기민당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논쟁에 휩싸였다.[11] 뵐은 가톨릭에 헌신했지만, 특히 보수적인 측면에 대해 깊이 비판적이었다. 그는 미래의 교황 비오 12세가 서명하여 나치 정권 초기에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기여한 바티칸과 나치 간의 1933년 7월 협약을 비판했다.[12]뵐의 종교 및 사회 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는 독일 보수주의자들의 분노를 샀다.[11][13] 1972년 뵐의 기사 『Soviel Liebe auf einmal』(Soviel Liebe auf einmal|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랑de)은 타블로이드 신문인 ''빌트''가 언론 조작을 했다고 비난했는데, 출판 당시 뵐의 뜻과 달리 ''슈피겔''에 의해 제목이 바뀌었고, 이 새로운 제목은 뵐을 테러리즘에 동조한다고 비난하는 구실로 사용되었다.[14] 뵐은 바더 마인호프 사건에서 적법 절차의 중요성과 법의 공정한 적용을 강조했기에 이러한 비판은 더욱 거셌다.[15] 뵐은 슈피겔에 기고한 『6천만 대 6』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울리케 마인호프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뵐은 이 일로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슈프링거 언론''의 한 기자는 그를 "폭력의 정신적 아버지"라고 칭했다.[9]
보수 언론은 1972년 뵐의 노벨상에 대해서도 "자유주의자와 좌익 급진주의자"에게만 수여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11]
1974년 2월 7일, 베를린에서 가장 많이 읽히던 신문인 ''BZ''는 뵐의 자택이 수색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문이 배포된 후에야 뵐의 자택이 수색되었다.[16]
1977년, 한스 마르틴 슐라이어 납치 사건 이후, 40명의 경찰이 뵐의 아들이 납치범의 공범이라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뵐의 집을 수색했다. 이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기독교 민주당은 이 사건 이후 뵐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16]
4. 2.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뵐은 가톨릭에 헌신했지만, 특히 보수적인 측면에 대해 깊이 비판적이었다. 그는 미래의 교황 비오 12세가 서명하여 나치 정권 초기에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기여한 바티칸과 나치 간의 1933년 7월 협약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12]1963년 소설 《광대》의 출판은 가톨릭 교회와 기민당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논쟁에 직면했다.[11] 뵐의 종교 및 사회 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는 독일 보수주의자들의 분노를 샀다.[11][13]
5. 주요 작품 목록
연도 | 제목 | 원제 | 비고 |
---|---|---|---|
1947 | 열차는 정확했다 | Der Zug war pünktlich | |
1948 | 유언 | Das Vermächtnis | |
1949 | 기차는 제시간에 | Der Zug war pünktlich | 소설 |
1950 | 방랑자여, 그대 스파르타로 가거든…… | Wanderer, kommst du nach Spa… | 단편 소설 |
1950 | Wanderer, kommst du nach Spa… | 단편 소설 | |
1951 | 검은 양들 | Die schwarzen Schafe | 단편 소설 |
1951 | 아담, 너는 어디 있었는가? | Wo warst du, Adam? | |
1951 | 그대는 어디에 있었는가, 아담? | Wo warst du, Adam? | 소설 |
1952 | 천사는 말이 없었다 | Der Engel schwieg | |
1952 | 성탄절 시기에는 안 된다 | Nicht zur Weihnachtszeit | |
1952 | 단지 크리스마스 때만이 아닌 | Nicht nur zur Weihnachtszeit | 단편 소설 |
1952 | 발레크의 저울 | Die Waage der Baleks | 단편 소설 |
1953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Und sagte kein einziges Wort | |
1953 | 한 마디 말도 없이 | Und sagte kein einziges Wort | 소설 |
1954 | 문지기 없는 건물 | Haus ohne Hüter | |
1954 | 경비 없는 집; 내일과 어제 | Haus ohne Hüter | 소설 |
1955 | 어린시절의 빵 | Das Brot der frühen Jahre | |
1955 | 초년의 빵 | Das Brot der frühen Jahre | 소설 |
1957 | 아일랜드의 일기 | Irisches Tagebuch | |
1957 | 아일랜드 일기 | Irisches Tagebuch | 여행기 |
1957 |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람들 | Die Spurlosen | |
1957 | 우렁찬 말발굽 계곡 | Im Tal der donnernden Hufe | |
1957 | 실종자 | Die Spurlosen | 에세이 |
1958 | 무르케 박사의 누적된 침묵과 기타 풍자적 이야기들 | Dr. Murke's gesammeltes Schweigen und andere Satire | |
1958 | 무르케의 수집된 침묵 | Doktor Murkes gesammeltes Schweigen | 단편 소설 |
1958 | 무르케 박사의 침묵집 | Doktor Murkes gesammeltes Schweigen | 단편집 |
1959 | 9시 반의 당구 | Billard um halb zehn | |
1959 | 9시 반의 당구 | Billard um halb zehn | 소설 |
1959 | 침프렌 역 | Der Bahnhof von Zimpren | 단편집 |
1962 | 한 움큼의 흙 | Ein Schluck Erde | |
1962 | 한 모금의 흙 | Ein Schluck Erde | 희곡 |
1962 | 전쟁이 끝났을 때 | Als der Krieg ausbrach, Als der Krieg zu Ende war | |
1962 | 한 모금의 흙 | Ein Schluck Erde | 희곡 |
1963 | 어느 어릿 광대의 견해 | Ansichten eines Clowns | |
1963 | 광대의 눈으로 | Ansichten eines Clowns | 소설 |
1963 | 생산성 저하에 관한 일화 | Anekdote zur Senkung der Arbeitsmoral | 단편 소설 |
1963 | 광대의 고백 | Ansichten eines Clowns | |
1964 | 군대에서부터의 이탈 | Entfernung von der Truppe | |
1964 | 무단 이탈 | Entfernung von der Truppe | 중편 소설 |
1966 | 어떤 공무여행의 끝 | Ende einer Dienstfahrt | |
1966 | 임무의 종료 | Ende einer Dienstfahrt | 소설 |
1966 | 공무 여행의 종말 | Ende einer Dienstfahrt | |
1971 | 여인과 군상 | Gruppenbild mit Dame | |
1971 | 어떤 부인의 단체 초상 | Gruppenbild mit Dame | 소설 |
1971 | 여자가 있는 군상 | Gruppenbild mit Dame | |
1974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 ![]() |
1974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 소설 |
1979 | 사려깊은 포위 | Fürsorgliche Belagerung | |
1979 | 세이프티 네트 | Fürsorgliche Belagerung | 소설 |
1979 | 당신은 하이델베르크에 너무 자주 간다 | Du fährst zu oft nach Heidelberg und andere Erzählungen | 단편 소설 |
1979 | 세심한 관리 체제 | Fürsorgliche Belagerung | |
1981 | 그 소년이 어떻게 될 것인가?:책들과 관계 있는 어떤 것 | Was soll aus dem Jungen bloss werden? Oder: Irgendwas mit Büchern | 1933–1937년 학교 시절 자서전 |
1982 | 지뢰밭 | Vermintes Gelände | |
1982 | 병사의 유산 | Das Vermächtnis | 소설, 1948년 집필 |
1983 | 치명적 부상 | Die Verwundung | |
1983 | 부상 | Die Verwundung und andere frühe Erzählungen | 1947–1952년 미발표 단편 소설 |
1985 | 강 풍경을 마주보고 있는 여인 | Frauen vor Flusslandschaft | 사후 출간 |
1985 | 강의 풍경에 서 있는 여자들 | Frauen vor Flusslandschaft | 사후 간행 |
1986 | 하인리히 뵐의 단편선 | 미국 출간 | |
1992 | 침묵의 천사 | Der Engel schwieg | 소설, 1949/50년 집필 |
1995 | 창백한 개 | Der blasse Hund | 1937년 & 1946–1952년 미발표 단편 |
2002 | 사랑 없는 십자가 | Kreuz ohne Liebe | 1946–1947년 집필 |
2004 | 교회 변두리에서 | Am Rande der Kirche | 1938년 집필 |
2011 | 수집된 단편선 | The Collected Stories | 번역본 재발행, 미국 출간 |
6. 한국어 번역
Annemariede와 하인리히 뵐의 작품은 1995년 베르너 벨만이 출판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70개 이상 번역되었다. 브렌던 비헌, 에일리스 딜런, O. 헨리, 폴 호건, 버나드 맬러머드, J. D. 샐린저, 조지 버나드 쇼 등의 작품이 번역되었다.
- Das harte Lebende (하드 라이프, 브라이언 오놀란), 하인리히 뵐 번역, 함부르크, 난넨, 1966, 79쪽. 패트릭 스위프트 삽화.
- 기차는 늦지 않았다 (사쿠라이 마사토라 역, 미카사 서방, 1957년)
- 아담, 너는 어디 있었느냐 (고마츠 타로 역, 고단샤, 1958년) 후 고단샤 문고
- 광대의 고백 (칸자키 이와오 역, 후유키샤, 1966년)
- 보호자 없는 집 (고마츠 타로 역, 카도카와 문고, 1969년)
- 카타리나의 잃어버린 명예 언론의 폭력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후지모토 아츠오 역, 사이마루 출판회, 1975년)
- 폐허 문학의 승인 (카토 야스요시 역, 게이리츠 출판, 1975년)
- 여자가 있는 군상 (오자키 코지 역, 하야카와 서방, 1977년)
- 그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와부치 타츠지 역) 기독교 문학의 세계, 슈후노토모사, 1977년)
- 하인리히 뵐 단편집 (아오키 준조 역, 이와나미 문고, 1988년)
- * 『검은 양』수록
- 강 풍경에 서 있는 여자들 (오치 카즈히로 역, 도가쿠샤, 1990년)
- 하인리히 뵐 소품집 (타니야마 토오루 역, 엔츠키야, 2002년)
7. 영향 및 유산
쾰른 시립 역사 기록 보관소는 뵐의 유족에게서 구입한 개인 서류를 보관하기 위해 하인리히 뵐 아카이브를 설립했지만, 2009년 건물 붕괴로 인해 자료 상당수가 손상되어 복구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24] 뵐의 기억은 하인리히 뵐 재단 등 다른 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뵐의 아일랜드 코티지는 1992년부터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로 사용되고 있다.[25]
에릭 앤더슨은 뵐의 책을 바탕으로 ''Silent Angel: Fire and Ashes of Heinrich Böll''(2017, Meyer Records) 등의 음악 작품을 작곡했다.
뵐의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975년, 서독)
- 감독·각본: 폴커 슐뢴도르프,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 주연: 안젤라 윙클러
- 텔레비전 드라마 《화요 서스펜스 극장·아이자와 나츠코의 잃어버린 명예》(1983년, NTV·츠부라야 프로)
- 각본: 나스 마치코
- 감독: 토미모토 소키치
- 주연: 카지 메이코
; 여자가 있는 군상
- 영화 《눈 속에 핀 장미》(1977년, 서독·프랑스)
- 감독: 알렉산다르 페트로비치
- 각본: 하인리히 뵐, 위르겐 콜베, 알렉산다르 페트로비치 외
- 주연: 로미 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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