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귄터 구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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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인츠 귄터 구데리안은 1914년에 태어나 1933년 독일군에 입대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종전 후 독일 연방군에서 기갑병 총감으로 복무했다. 1974년 소장으로 예편했으며, 아버지 하인츠 구데리안과 함께 체포된 경험이 있다. 주요 상훈으로 철십자 훈장,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독일 연방 공로 훈장 등이 있으며, 저서로 '노르망디에서 루르까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제116기갑사단과 함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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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 귄터 구데리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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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하인츠 귄터 구데리안 |
출생일 | 1914년 8월 23일 |
출생지 |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고슬라어 (현재의 니더작센주) |
사망일 | 2004년 9월 25일 |
사망지 | 독일 본, 바트고데스베르크 |
아버지 | 하인츠 구데리안 |
군 복무 | |
소속 | 나치 독일 (1933년–1945년) 서독 (1956년–1974년) |
복무 기간 | 1933년–1945년 (독일 국방군) 1956년–1974년 (독일 연방군) |
최종 계급 | 참모 중령 (독일 국방군) 소장 (독일 연방군) |
병과 | 육군 (1933–1945) 연방군 (1956–1974) |
지휘 | General der Kampftruppen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부대 | 제116 기갑 사단 |
훈장 | |
주요 훈장 | 기사철십자훈장 |
2. 경력
1933년 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종전 후에는 독일 연방군에 입대하여 기갑병 총감을 역임하고 1974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2. 1. 초기 생애
마르가레테 구데리안과 하인츠 구데리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3년 4월 1일 18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2. 2.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전역에 아버지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과 함께 참전했다. 이후 서부 전선에서 종군했으며, 1944년에는 제116기갑사단의 참모가 되었다.같은 해 10월, 코브라 작전 이후 벌어진 팔레즈 포위전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아헨 전투에서는 미국군에게 패배했지만, 휘르트겐 숲 전투에서는 미국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45년 4월, 루르 지방으로 철수했으나 포위되어 결국 미국군에게 항복했다. 전쟁이 끝날 당시 계급은 중령이었다.
2. 3. 전후
석방 후 독일 연방군에 입대하였다. 기갑여단장에 취임하였고, 이후 아버지 하인츠 구데리안과 같은 직책인 기갑병 총감에 올랐다. 1974년 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3. 체포
아버지 하인츠 구데리안과 함께 체포되어 같은 방에서 지냈다.
4. 상훈
- 철십자 훈장 (1939)
- * 2급 철십자 훈장
- * 1급 철십자 훈장
- *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 국방군 근속 훈장 4급
- 부상장 은장
- 전차장 은장
- 독일 연방 공로 훈장 대십자장 (1972년 12월 21일)
- 스웨덴 검 훈장, 1급 사령관 (1972년 5월 15일)
5. 저서
- ''노르망디에서 루르까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제116기갑사단과 함께'' (애버조나 프레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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