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왕에게 학살당하는 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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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헤롯왕에게 학살당하는 아기들은 마태복음에 묘사된,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과 그 주변의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사건을 주제로 한 니콜라 푸생의 회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판화와 귀도 레니의 동명 작품에 영향을 받았으며, 전경의 인물을 클로즈업하고 명암 대비를 사용하여 비극적인 장면을 강조한다. 배경에는 헤롯 왕의 궁전이 묘사되어 있으며, 인물들의 움직임은 바로크적이지만, 푸생 특유의 질서에 대한 지향을 보여준다. 푸생의 초기 작품과 비교했을 때, 샹티이 콩데 미술관 소장 작품은 인물 수를 줄이고 구도를 단순화하여 고전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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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왕에게 학살당하는 아기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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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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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幼児虐殺 |
원어 제목 (프랑스어) | Le massacre des Innocents |
원어 제목 (영어) |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
작가 | 니콜라 푸생 |
제작 연도 | 1628년경 |
종류 | 캔버스에 유화 |
사조 | 고전주의 |
크기 (높이) | 147cm |
크기 (너비) | 171cm |
소장 | 콩데 미술관 |
위치 | 샹티이 |
주제 | 종교 미술 |
2. 작품 배경
이 작품은 로마의 수집가 빈첸초 주스티니아니가 의뢰한 것으로 추정된다.[4] 1564년 그의 자녀들이 오스만 제국에 포로로 잡혔던 비극적인 사건을 기리기 위해 주문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로마에서 아직 무명이었던 푸생은 저명한 수집가 주스티니아니의 의뢰를 통해 명성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이 그림은 1804년까지 주스티니아니 궁전에 있다가 뤼시앙 보나파르트에게 팔렸다. 이후 여러 소유자를 거쳐 1854년 런던에서 앙리 달레앙 (오마르 공)이 구입하여 현재는 콩데 미술관 소유이다.[2]
푸생은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원화를 바탕으로 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판화 '유아 학살'을 참고했다.[3][4] 또한 볼로냐 국립 회화관에 있는 귀도 레니의 같은 주제 작품을 의식했지만[2][3][4], 레니의 작품과 달리 전경의 인물 수를 주요 세 명으로 압축하여 극적인 역동성을 강조했다.[2]
이 작품은 푸생의 초기 작품인 프티 팔레 미술관 소장의 '유아 학살'(1626-1627)이나 '사비니 여인의 강탈'(1633-1634년경,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과는 다르게, 전경의 인물을 과감하게 클로즈업하여 격렬한 비극성을 부각시킨다.[3] 특히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아기에게 강한 빛을 비추는 방식은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영향을 보여준다.[4] 절망에 빠진 어머니의 얼굴은 연극 가면처럼 공포로 굳어 있으며, 그녀의 하얀 팔은 애원과 비난하듯 뻗어 있다. 배경에는 죽은 아이를 안고 하늘을 보며 떠나가는 또 다른 어머니가 그려져 있는데, 그녀의 오른손 제스처는 고대 로마의 부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3]
작품 배경에는 코린트식 기둥머리와 오벨리스크가 보이는 헤로데 왕의 궁전이 전경과 평행하게 그려져 있다. 중경과 원경의 인물들도 바닥의 선 원근법과 함께 전경, 중경, 원경의 깊이감을 나타내며 기하학적인 계산이 엿보인다. 인물들의 역동적인 자세는 바로크적 조형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구도적 배려는 푸생 특유의 질서에 대한 지향을 드러내며, 이 작품이 화가의 후기 고전주의 양식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4]
2. 1. 성경 속 유아 학살
마태복음에 따르면, 헤로데 대왕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을 알고, 장차 그리스도가 유대의 왕이 될 것을 두려워했다. 이에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경에는 이때의 상황을 "라마에서 통곡하는 큰 슬픔의 소리가 들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4]3. 예술적 영향
푸생의 《헤롯왕에게 학살당하는 아기들》은 이전 시대와 동시대의 여러 예술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와 그의 판화를 제작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바로크 시대의 카라바조, 그리고 동시대 화가인 귀도 레니 등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3. 1. 라파엘로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푸생의 작품 '헤롯왕에게 학살당하는 아기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원화를 바탕으로 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판화 『유아 학살』을 본보기로 삼아 제작되었다.[3][4] 이 판화는 푸생이 작품의 구도와 인물 배치를 구상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3. 2. 카라바조
프티 팔레 미술관에 있는 푸생의 첫 번째 작품 『유아 학살』은 『사비니 여인의 강탈』 (1633-1634년경) 등과 같이 다소 소란스러운 표현을 가지고 있다.[3] 이와 대조적으로, 이 작품은 전경의 인물을 과감하게 클로즈업하여 격렬한 비극성을 강조한다. 특히,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아기에게 빛을 집중시키는(하이라이트) 연출은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4] 이러한 극적인 명암 대비와 클로즈업 기법은 장면의 비극성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3. 3. 귀도 레니
푸생은 볼로냐의 볼로냐 국립미술관(Pinacoteca Nazionale di Bologna영어)에 소장된 귀도 레니의 동명 주제 작품 『유아 학살』에 대한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2][3][4]귀도 레니의 작품에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푸생은 자신의 작품 전경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을 세 명으로 압축하여 배치했다. 이를 통해 매우 극적인 역동성을 창출하고자 했다.[2]
4. 작품 분석
마태복음에 따르면, 헤로데 대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고 장차 그가 유대의 왕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베들레헴과 그 인근의 두 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모두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성경에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라고 기록되어 있다.[4] 이 작품은 바로 이 비극적인 사건을 주제로 삼고 있다.
푸생은 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원화를 바탕으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제작한 판화 '유아 학살'을 참조했다.[3][4]
4. 1. 구성 및 기법
프티 팔레 미술관에 있는 푸생의 첫 번째 작품 『유아 학살』(1626-1627년)이 『사비니 여인의 강탈』(1633-1634년경,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처럼 다소 소란스러운 표현을 보이는 것과 달리[3], 이 작품은 전경의 인물을 과감하게 클로즈업하여 격렬한 비극성을 강조한다. 또한, 곧 죽임을 당할 아기에게 강한 빛을 비추어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명암 대비 기법을 활용한 연출을 보여준다.[4]푸생은 볼로냐의 볼로냐 국립 회화관에 있는 귀도 레니의 같은 주제 작품 『유아 학살』(1611년)을 의식했지만[2][3][4], 레니의 작품에 그려진 다수의 인물을 전경에서는 주요 세 명(아이를 죽이려는 병사, 아이를 지키려는 어머니, 이미 죽은 아이)으로 줄여 매우 극적인 역동성을 만들어냈다.[2] 절망에 빠진 어머니의 얼굴은 연극 가면처럼 공포로 얼어붙어 있고, 그녀의 하얀 팔은 애원하듯, 또는 비난하듯 뻗어 있다. 배경에는 죽은 아이를 안고 하늘을 보며 슬퍼하는 또 다른 어머니가 그려져 있는데, 그녀의 오른손 제스처는 고대 로마의 부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3]
작품의 배경에는 코린트식 기둥머리와 오벨리스크가 보이는 헤로데 왕의 궁전이 그려져 있으며, 이 궁전은 전경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중경과 원경에도 역시 전경과 평행하게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 인물들은 바닥 선을 이용한 선 원근법과 함께 전경, 중경, 원경의 깊이감을 나타내며 기하학적인 구도 계산을 엿볼 수 있다. 움직임이 큰 인물들의 자세는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구성 방식에는 푸생 특유의 질서 정연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이 작품은 푸생이 후기 고전주의 양식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4]
4. 2. 등장인물
푸생은 볼로냐의 국립 회화관에 있는 귀도 레니의 동 주제 작품과 달리[2][3][4], 전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를 주요 세 명으로 압축하여 매우 극적인 역동성을 창출했다.[2] 푸생은 곧 죽임을 당할 아기에게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처럼 하이라이트를 비추어 격렬한 비극성을 강조했다.[4]절망에 빠진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연극 가면처럼 공포로 굳어 있으며, 그녀의 하얀 팔은 애원하는 동시에 비난하는 듯 앞으로 뻗어 있다. 그림의 뒷편에는 죽은 자신의 아이를 안고 하늘을 우러르며 떠나가는 또 다른 어머니가 보이는데, 그녀의 오른손 제스처는 고대 로마의 부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3] 인물들의 역동적인 자세는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4]
5. 후기 작품과의 비교
푸생이 샹티이 콩데 미술관에 소장된 본 작품 이전에 그린 『유아 학살』(1626-1627년경)은 파리의 프티 팔레 미술관에 있다. 이 초기 작품은 푸생의 다른 작품인 『사비니 여인의 강탈』(1633-1634년경,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처럼 다소 소란스러운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3]
반면, 샹티이의 본 작품은 전경의 인물들을 과감하게 클로즈업하여 격렬한 비극성을 강조한다. 특히, 곧 죽임을 당할 아기에게 빛을 집중시키는 방식은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영향을 보여준다.[4] 푸생은 볼로냐 국립 미술관에 있는 귀도 레니의 같은 주제 작품 『유아 학살』과 경쟁하면서도[2][3][4], 레니 작품의 많은 인물들을 전경에서 주요 세 명으로 압축하여 극적인 역동성을 창출했다.[2]
작품 속 절망한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연극 가면처럼 공포로 굳어 있으며, 그녀의 하얀 팔은 애원하듯, 또는 비난하듯 뻗어 있다. 또한, 배경에는 죽은 아이를 안고 하늘을 보며 떠나가는 또 다른 어머니가 그려져 있는데, 그녀의 오른손 제스처는 고대 로마의 부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3]
배경에는 코린트식 기둥머리와 오벨리스크가 보이는 헤롯 왕의 궁전이 전경과 평행하게 그려져 있다. 중경과 원경의 인물들 역시 전경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바닥의 선 원근법과 함께 공간의 깊이를 나타내 기하학적인 계산을 엿볼 수 있다. 인물들의 역동적인 자세는 바로크적인 조형성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구도적 배려는 푸생 특유의 질서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푸생이 후기의 보다 고전주의적인 양식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4]
참조
[1]
웹사이트
PE 305 Le Massacre des Innocents
http://www.musee-con[...]
2021-11-16
[2]
웹사이트
Le Massacre des Innocents
https://www.musee-co[...]
コンデ美術館公式サイト (フランス語)
2024-10-26
[3]
서적
W.フリードレンダー
1970
[4]
서적
辻邦生・高階秀爾・木村三郎
1984
[5]
웹사이트
Le Massacre des Innocents
https://www.petitpal[...]
プティ・パレ美術館公式サイト (英語)
20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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