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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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환석수는 동진의 사도좌장사였으며, 환현이 환초를 건국했을 때 좌위장군과 황문랑에 임명되었다. 환현이 유유에게 패배한 후 강서 지역으로 도망가 세력을 키웠다. 이후 여러 차례 거병했으나 유의, 부홍지 등에게 패배하여 사망했다. 환석수의 죽음과 함께 환씨 세력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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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석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환석수 |
한자 표기 | 桓石綏 |
타이틀 | 환초 부흥군 수장 |
휘 | 환석수(桓石綏) |
생애 | |
재위 기간 | 405년 ~ 410년 |
출생 | 불명 |
사망 | 410년 |
매장지 | 불명 |
가족 관계 | |
부친 | 환활(桓豁) |
모친 | 불명 |
기타 | |
이전 황제 | 환진 |
묘호 | 없음 |
시호 | 없음 |
2. 생애
환석수는 환온의 아들 환활의 아들로, 처음 관직은 사도좌장사였다.[1] 원흥 2년(403년) 12월, 환현이 안제에게 양위받아 환초를 건국하자 황족이 되어 황문랑과 좌위장군이 되었다.[1] 그러나 404년 유유에게 패배해 환현이 살해당하자 강서(江西) 지역으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세력을 키워 동진의 군현 역양(歷陽)을 공격했으나 유회숙에게 패배했다.[1]
406년 12월, 사마국번(사마숙번의 형), 진습 등과 병사를 모아 호도산에서 거병했으나, 유의가 보낸 유회숙에게 격파당했다.[1] 410년, 노순이 난을 일으키자 낙구(洛口)에서 다시 군사를 일으켜 형주 자사를 자칭하고, 정양현령 왕천은 양주 자사를 자칭하며 서성을 공략해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양주 자사 부흠의 아들 위흥군 태수 부홍지에게 토벌당해 왕천과 함께 전사했다.[1]
2. 1. 초기 생애와 환초 시기
환석수는 환온의 아들 환활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동진의 사도좌장사였다.원흥 2년(403년) 12월, 환현이 안제로부터 양위받아 황제가 되자, 환석수는 황족으로서 황문랑과 좌위장군에 임명되었다.[1]
원흥 3년(404년) 5월, 환현이 패배하자 도주했다. 이후 건위장군 위영지, 유번 등과 백모에서 싸워 패배했다.
2. 2. 환현 몰락 이후의 행적
404년 유유가 군사를 일으켜 환현이 패배하고 살해되자, 환석수는 강서(江西) 지역으로 도망가 세력을 키운 뒤, 동진의 군현 역양(歷陽)을 공격했으나 유회숙에게 패배하였다.[1]이후 환석수는 410년 해적 노순의 난을 틈타 낙구(洛口)에서 다시 군사를 일으켰으나, 부흠의 명을 받은 부홍지에게 피살당했다. 같은 해 후진으로 도망간 친척 환겸도 유도규에게 살해당하면서 환씨 세력은 완전히 소멸하였다.[1]
2. 3. 환석수의 난과 동진의 혼란
404년 유유가 이끄는 군대에 환현이 살해당하자, 환석수는 강서(江西) 지역으로 도망가 세력을 키웠다. 이후 동진의 군현 역양(歷陽)을 공격했으나 유회숙(劉懷肅)에게 패배하였다.[1]406년 12월, 환석수는 사마국번(사마숙번의 형), 진습 등과 함께 호도산에서 거병하였다. 유의는 사마 유회숙을 보내 환석수를 격파하였다.[1]
410년 해적 노순이 난을 일으킨 틈을 타 낙구(洛口)에서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환석수는 형주 자사를 자칭하고, 정양현령 왕천은 양주 자사를 자칭하며 서성을 공략하여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양주 자사 부흠의 아들 위흥군 태수 부홍지에게 토벌당하여 환석수와 왕천은 전사하였다. 같은 해 후진으로 도망간 친척 환겸도 유도규에게 살해당하면서 환씨 세력은 완전히 소멸하였다.[1]
3. 가계
환석수의 부친은 환활이며, 형제로는 환석건, 환석민, 환석생, 환석강이 있다.
3. 1. 부친
환석수의 부친은 환활이다.3. 2. 형제
- 환석건
- 환석민
- 환석생
- 환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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