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 정치범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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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회령 정치범수용소는 북한 함경북도 회령군에 위치했던 정치범 수용소로, 1965년경 설립되어 2012년 폐쇄되었다. 약 225km² 면적에 달했으며, 수감자들은 주로 정치범, 종교인, 재일 한국인 출신 등으로, 가혹한 환경 속에서 강제 노동, 영양실조, 고문, 처형 등의 인권 유린을 겪었다. 2012년 폐쇄 전에는 약 5만 명의 수감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폐쇄 이후 수감자들은 다른 수용소로 이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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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령 정치범수용소 | |
|---|---|
| 지도 정보 | |
| 기본 정보 | |
| 유형 | 정치범수용소 |
| 위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회령시 |
| 좌표 | 42°32′17.47″N 129°54′50.47″E |
| 운영 | |
| 운영 기간 | 1969년 ~ 2012년 |
| 폐쇄 사유 | 알려지지 않음 |
| 관할 | 국가보위성 |
| 규모 | |
| 수감 인원 | 약 50,000명 |
| 면적 | 549 제곱킬로미터 |
| 기타 정보 | |
| 별칭 | 22호 관리소 |
| 인권 상황 | 심각한 인권 침해 발생 |
2. 위치
22호 관리소는 북한 북동부의 함경북도 회령군에 위치해 있었으며,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5] 관리소는 여러 개의 지류 계곡이 있는 넓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400–700m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5] 관리소의 남서쪽 정문은 회령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었고, 정문은 중국 지린성의 카이산툰에서 남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5] 관리소의 서쪽 경계는 중국과의 국경을 이루는 두만강과 평행하게 이어져 있었으며, 강에서 5–8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5] 이 관리소는 최근까지 지도에 포함되지 않았으며,[6] 북한 정부는 항상 그 존재를 부인해 왔다.[7][8]
회령 정치범수용소는 1965년경 혜령리에서 설립되었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중봉리와 사울리 지역으로 확장되었다.[1] 1990년대에 함경북도에 있는 다른 세 개의 수용소가 폐쇄되고 수감자들이 22호 관리소로 이송되면서 수감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1989년에 ''관리소 11호(경성)''가, 1992년에 ''관리소 12호(온성)''가, 그리고 1992년에 ''관리소 13호(장평)''가 폐쇄되었다.[1]
22호 관리소는 약 225km² 면적이었다.[9] 3,300볼트의 전기 울타리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두 울타리 사이에는 함정과 숨겨진 못이 설치되어 있었다.[1] 관리소는 약 1,000명의 경비병과 500~600명의 행정 요원에 의해 통제되었다.[10] 경비병들은 자동 소총, 기관총, 수류탄, 곤봉, 채찍, 훈련된 개들을 갖추고 있었다.[11]
3. 역사
4. 구조
관리소는 여러 개의 노동 수용소로 나뉘어 있었다.[1]
수골 계곡, 관리소 가장자리에 처형 장소가 있었다.[5][16]
4. 1. 주요 시설
회령 정치범수용소는 면적이 약 225 km2에 달했다.[9] 내부에는 3,300볼트의 전기 울타리가, 외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으며, 두 울타리 사이에는 함정과 숨겨진 못이 설치되어 있었다.[1] 관리소는 약 1,000명의 경비병과 500~600명의 행정 요원에 의해 통제되었다.[10] 경비병들은 자동 소총, 기관총, 수류탄, 곤봉, 채찍, 훈련된 개들을 갖추고 있었다.[11]
관리소는 여러 개의 노동 수용소로 나뉘어 있었다.[1]
수골 계곡, 관리소 가장자리에 처형 장소가 있었다.[5][16]
5. 수감자
회령 정치범수용소에는 1990년대에 약 5만 명의 수감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50] 수감자들은 주로 정부를 비판한 사람들, 정치적으로 불신임된 사람들(예: 남한 전쟁 포로, 기독교인, 재일 한국인 출신 귀국자), 숙청된 고위 당 간부들이었다. 연좌제에 따라, 아이들과 노인들을 포함한 가족 전체가 함께 수감되었고, 관리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포함되었다. 모든 수감자는 사망할 때까지 구금되었으며, 석방되는 경우는 없었다.
수용소에서는 옥수수, 감자, 강낭콩 외에도 채소류 재배가 강요되며, 술과 간장 생산, 탄광에서의 채탄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매년 1,500명에서 2,000명의 수용자가 영양실조로 사망한다.[52] 수확한 농작물을 횡령한 혐의로 처형되거나, 수확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구타당해 사망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결혼은 제한된 사람에게만 허용되며, 그 외의 성관계는 금지되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된 임산부도 있다.[52]
회령 강제 수용소의 경비대원이었던 안명철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에서 온 "귀국 동포"는 종종 "스파이" 혐의를 받고, 수용소 내에서는 특히 벌레 취급을 받으며, 귀국 동포 여성들이 린치를 당하는 현장도 목격했다.[53] 그는 보위원과 교도관들이 정치범들을 구타하고, 채찍질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을 매일 들었다.[53] 한번은 50세 정도의 귀국 여성 수용자가 채찍질을 당하고, 결국 자신을 향한 저주와 이루어질 수 없는 심정을 서툰 조선어로 교도관에게 쏟아내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왜 일본에서 북한에 왔을까", "왜 스파이로 몰려야 해?"라고 외친 후, 곤봉으로 구타당해 사망했다.[53]
6. 가혹 행위 및 인권 유린
회령 정치범수용소의 환경은 매우 가혹하고 생명을 위협했다.[17] 수감자들은 영양실조, 질병, 구타, 고문,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5][18] 전 경비대원 안명철은 죄수들을 걸어 다니는 해골, 난쟁이, 걸레 옷을 입은 불구자들에 비유했다.[19] 죄수의 약 30%가 구타 및 학대로 인해 얼굴에 상처와 흉터가 있는 등 기형을 가지고 있었고, 약 2,000명의 죄수들이 사지를 잃었지만, 목발이 필요한 죄수들조차 강제로 노동해야 했다.
수감자들은 하루 두 끼, 180g의 옥수수를 받았으며, 채소와 고기는 거의 없었다.[1][5][20] 유일한 고기는 쥐, 뱀, 개구리, 곤충이었다.[12] 안명철은 매년 1,500~2,000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으며, 대부분이 어린이였다고 추정했다. 어린이들은 기본적인 교육만 받았고,[1] 6세부터는 채소 따기, 옥수수 껍질 벗기기, 쌀 말리기 등 노동이 배정되었지만, 음식은 하루에 360g밖에 받지 못했다. 노인 수감자들은 다른 성인들과 동일한 노동 요구 사항을 가졌다.[1] 심각하게 아픈 수감자들은 격리되어 방치되었고 죽도록 내버려졌다.[22]
독신 수감자들은 한 방에 100명이 함께 생활하는 숙소에서 생활했다. 가족들은 작은 집 안에서 수돗물 없이 한 방에서 함께 살 수 있었다.[1] 집은 열악한 상태였고, 벽은 진흙으로 만들어졌으며 균열이 있었다.[23] 모든 수감자는 더럽고 붐비는 공동 화장실만 이용할 수 있었다.[24]
수감자들은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겨울에는 오후 7시)까지 농업, 광업, 공장 내부에서 고된 육체 노동을 해야 했으며,[11] 그 후에는 이념 재교육과 자기 비판 시간을 가져야 했다.[1] 신년은 유일한 휴일이었다.[1] 광산에는 안전 장치가 없었고, 수감자들이 거의 매일 사망했다. 수감자들은 원시적인 도구만 사용할 수 있었고, 과로하도록 강요받았다.[1] 화재가 발생하거나 터널이 붕괴되면 수감자들은 안에 버려져 죽도록 내버려졌다.[25] 시신은 석탄과 함께 화물차에 실려 용광로에서 태워졌다.[1]
수용소 경비병들은 수감자들을 뿌리 뽑아야 할 잡초와 같은 파벌주의자이자 계급의 적으로 교육받고,[5] 노예로 여기고[19] 인간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1] 경비병들은 언제든지 명령을 따르지 않는 수감자를 죽일 수 있다.[27][28] 규칙을 위반한 수감자를 죽일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1] 한 가족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5가족 31명을 처형하라고 명령한 적도 있다.[29][1][30]
1980년대에는 공개 처형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있었다.[1] 1990년대에는 비밀 처형으로 대체되었다.[31] 훼손되고 짓눌린 시신들이 발견되었다.[32][33]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경우 수감자들은 조사 과정을 거치며, 식량 감축, 고문, 구타, 성희롱 등 인권 침해가 발생한다.[1] 구금 시설이 있으며,[5] 많은 수감자들이 구금 중에 사망하고[34] 불구로 구금 시설을 떠난다.[35]
안명철과 권혁은 다음과 같은 고문 방법에 대해 보고했다:[19][5]
- 물고문: 수감자는 코까지 물이 찬 통에 발가락으로 서서 24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한다.[1]
- 거꾸로 매달기 고문: 수감자는 옷을 벗겨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심하게 구타한다.[1]
- 상자 고문: 수감자는 매우 작은 독방에 갇히는데, 앉을 공간은 겨우 있지만 사흘 또는 일주일 동안 서거나 누울 공간은 없다.[1]
- 무릎 꿇기 고문: 수감자는 무릎 뒤에 나무 막대기를 넣어 혈액 순환을 막은 채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일주일 후에는 수감자는 걸을 수 없게 되고 몇 달 후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19]
- 비둘기 고문: 수감자는 양손을 60cm 높이로 벽에 묶고 여러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야 한다.[1]
수감자들은 경비병 앞에서 충분히 빨리 또는 깊이 절하지 않거나,[38]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39] 충분히 빨리 복종하지 않는 경우[1] 매일 구타를 당한다.[36][37] 경비병이 수감자를 무술 연습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빈번한 관행이다.[40] 강간과 성폭력은 수용소에서 매우 흔하며,[1] 여성 수감자들은 보안 요원의 요구에 저항하면 쉽게 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41]
안명철은 매년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비밀 터널, 군사 기지 또는 외딴 지역의 핵 시설과 같은 몇몇 "주요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끌려갔다고 보고했다.[42] 이 수감자들은 누구도 수용소로 돌아오지 못했다.[1] 안 씨는 그들이 이러한 프로젝트의 기밀 유지를 위해 건설 작업을 마친 후 은밀히 살해되었다고 확신한다.[1]
일본에서 온 "귀국 동포"는 종종 "스파이" 혐의를 받고, 수용소 내에서는 특히 벌레 취급을 받으며, 귀국 동포 여성들이 린치를 당하는 현장도 목격되었다.[53] 한번은 50세 정도의 귀국 여성 수용자가 채찍질을 당하고, 결국 자신을 향한 저주와 이루어질 수 없는 심정을 서툰 조선어로 교도관에게 "우리 가족을 일본으로 다시 돌려보내! 그럴 수 없다면 전부 죽여버려!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건 싫어…"라고 외친뒤 곤봉으로 구타당해 사망했다.[53]
6. 1. 강제 노동
6. 2. 고문 및 처형
회령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들은 경비병들에게 잡초나 노예와 같이 취급받으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5][19][1] 경비병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수감자를 즉시 처형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으며,[27][28] 실제로 보안 요원들은 규칙 위반 수감자의 생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1]1980년대에는 공개 처형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빈번하게 발생했다.[1] 그러나 1990년대에는 군중 폭동을 우려한 경비병들에 의해 비밀 처형으로 대체되었다.[31]
수용소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수감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식량 감축, 고문, 구타, 성희롱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다.[1] 구금 시설도 존재했으며,[5] 많은 수감자들이 구금 중 사망하거나 불구로 풀려났다.[34][35]
다음은 보고된 고문 방법들이다.[19][5]
- 물고문: 수감자는 코까지 물이 찬 통에 발가락으로 24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한다.[1]
- 거꾸로 매달기 고문: 수감자는 옷을 벗겨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심하게 구타당한다.[1]
- 상자 고문: 수감자는 앉을 수는 있지만 눕거나 설 수 없는 작은 독방에 며칠 동안 갇힌다.[1]
- 무릎 꿇기 고문: 수감자는 무릎 뒤에 나무 막대기를 넣은 채 무릎을 꿇어야 하며, 이로 인해 혈액 순환이 막혀 걷지 못하게 되고 몇 달 후 사망할 수 있다.[19]
- 비둘기 고문: 수감자는 양손을 60cm 높이로 벽에 묶인 채 여러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야 한다.[1]
수감자들은 경비병에게 충분히 빨리 또는 깊이 절하지 않거나,[38]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39] 빨리 복종하지 않는 등[1] 사소한 규칙 위반으로도 매일 구타당했다.[36][37] 경비병이 수감자를 무술 연습 대상으로 삼는 일도 빈번했다.[40] 강간과 성폭력 또한 만연했으며,[1] 여성 수감자들은 저항할 경우 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41]
6. 3. 생체 실험 의혹
권혁철은 회령리에서 자행된 생체 실험에 대해 보고했다.[1] 그는 너비 3.5m, 길이 3m, 높이 2.2m의 밀폐된 유리 가스실에 대해 묘사했다.[43] 그는 그곳에서 두 자녀를 둔 한 가족이 질식 가스의 실험 대상이 되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44]안명철은 중봉리 병원의 경험 없는 의료진들이 수감자들을 상대로 수술 기법을 연습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그는 불필요한 수술과 의료 과실로 인해 수감자들이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는 수많은 증언을 들었다고 한다.[45]
6. 4. 재일 한국인 차별
안명철 전직 경비병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에서 온 "귀국 동포"는 종종 "스파이" 혐의를 받았으며, 수용소 내에서 특히 벌레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53] 재일 한국인 출신 수감자들은 '스파이' 혐의로 인해 더욱 심한 차별과 박해를 받았으며, 재일 한국인 여성들이 린치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53] 한번은 50세 정도의 귀국 여성 수용자가 채찍질을 당하고, 결국 자신을 향한 저주와 이루어질 수 없는 심정을 서툰 조선어로 교도관에게 쏟아내는 것을 들었다.[53] 그녀는 "왜 일본에서 북한에 왔을까... 내가 왜 스파이로 몰려야 해?... 우리 가족을 일본으로 다시 돌려보내! 그럴 수 없다면 전부 죽여버려!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건 싫어…"라고 외친 후, 곤봉으로 구타당해 사망했다.[53] 하기와라 료는 북한이 "일본의 부락 차별보다 수백 배나 심한 차별 정책"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54]7. 폐쇄
2012년 말 위성 사진을 통해 회령 정치범수용소와 일부 감시탑이 철거된 것이 확인되었지만, 다른 모든 시설은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다.[2] 27,000명의 수감자가 단기간에 굶어 죽었고, 생존한 3,000명의 수감자는 2012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화성 수용소로 이감되었다고 보도되었다.[3] 6월에 수용소가 폐쇄되었고, 경비병들이 8월까지 구금 시설의 흔적을 제거한 후[46] 공심 광산의 광부들[3]과 새별 및 온성에서 온 농부들이 그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보고도 있었다.[47] 당국은 교도관의 탈북 이후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수용소 폐쇄를 결정했다는 보고도 있다.[4]
수용소 부지는 농장으로 전환되었고, 주변 지역에서 주민들이 이주해 왔으나,[55] 약속되었던 배급이 중단되고, 수용소 설비가 파괴되었거나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죄수용 주택이 할당되었지만 복지 시설이 열악하여 생활 환경이 매우 나빴다. 또한 파괴된 건물 터가 영농에 방해가 되는 등의 이유로 원래 장소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56]
폐쇄 원인으로는 2010년경부터 수용소 외부로의 식량 공출량이 증가하여 죄수에게 배급이 대폭 삭감되어 아사자가 다수 발생하고 수용자 수가 대폭 감소한 것[58] 외에, 간수 1명이 탈북한 것이 꼽히고 있다.[59] 다른 설로는, 회령시가 김정숙 (김정일의 생모)의 출신지이기 때문에, "혁명 성지"에 반동 분자를 모아 수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겨져 폐쇄되었다고도 한다.[51]
생존 수감자들은 요덕 15호 관리소나 화성 16호 관리소로 이송되었는데, 이때 16호 관리소의 원래 죄수가 학살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57]
2024년 현재에도 위성 사진 분석 결과 외곽 펜스가 남아있고,[51] 취조실 등으로 보이는 여러 건물이 철거되어 다른 건물로 개축되었으며, 농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중봉역 주변 탄광도 계속 가동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51] 이러한 작업에는 폐쇄 후 이주해 온 일반인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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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1997)pp.17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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萩原(2006)pp.175-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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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会寧政治犯収容所跡地へ農場員定着
http://dailynk.jp/ar[...]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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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会寧22号収容所跡地の農場中断か
http://dailynk.jp/ar[...]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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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NO FENCE 16 (2012),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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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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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上 18 (2012),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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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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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上 26 (2013),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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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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