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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데라 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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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이데라 구장은 1928년 개장한 일본 오사카부 후지이데라시에 위치했던 야구장이다. 오사카 철도가 건설했으며, 1950년부터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1973년 나이트 게임 시설 설치가 주민 반대로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1985년 버팔로즈 스타디움으로 개칭되었다. 1997년 오사카 돔 완공 이후 2군 구장으로 사용되다, 2005년 1월 폐쇄되었고, 2006년 해체되었다. 좁은 구장으로 홈런이 많이 나오는 특징이 있었으며, 응원 도구 사용이 제한되는 독특한 응원 문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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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데라 구장
기본 정보
1992년 9월 외야석에서 촬영
1992년 9월 외야석에서 촬영
전체 이름긴테쓰 후지이데라 야구장
별칭버펄로스 스타디움
위치오사카부후지이데라시
좌표34.570325, 135.590708
개장일1928년 5월 25일
폐장일2005년 1월 31일
철거일2006년 2월 ~ 2006년 8월
소유주긴테쓰 고교 (주식회사긴테쓰 자회사)
운영자알 수 없음
표면잔디
전광판있음
건축가젠타카 주식회사
주요 계약자젠타카 주식회사
수용 인원32,000명
필드 크기좌측 필드: 91m
필드 크기중앙: 120m
필드 크기우측 필드: 91m
면적45,566 제곱미터
경기장 면적12,839 제곱미터
스탠드 면적9,520 제곱미터
펜스 높이5m (펜스 2m, 금망 3m)
사용 팀
임차인긴테쓰 버펄로스 (1984년~1996년)
사용 팀긴테쓰 버펄로스・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1950년 - 2004년)
기타 정보
조명조명탑 - 6기
조명 밝기배터리 간: 2,000 룩스, 내야: 1,600 룩스, 외야: 1,100 룩스

2. 역사

1925년 오사카 철도(대철)는 오사카부 미나미카와치군후지이데라촌오아자 오카(현 후지이데라시 카스가오카)에 "후지이데라 교재원"과 함께 야구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1927년11월 11일 기공하여 1928년5월 25일 준공, 5월 27일 개장식을 거행하고 기념 경기를 열었다. 당시 부지 면적은 약 59,504m2, 총 공사비는 약 70만 엔이었고, 수용 인원은 7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1931년부터 전국 중등 학교 우승 야구 대회 오사카 대회의 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금속류 회수령으로 1943년7월 2일부터 철제 지붕이 해체되었다.

1946년 프로 야구 공식전이 처음 개최되었으며, 5월 3일에는 전후 첫 전통의 일전(오사카 타이거스도쿄 거인군)이 열렸다.

킨테츠는 1949년 2리그 분열 시에 자체 구단을 창설하여, 다음 해 리그 개막을 위해 약 8000만 엔을 들여 스탠드와 그라운드를 개수했다. 1950년부터 킨테츠 펄스 (후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후, 펄스 시대의 킨테츠 광고에서는 본 구장을 "'''펄스 스타디움'''"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명 설비를 갖추지 않은 본 구장에서는 나이트 게임 개최가 불가능했고, 킨테츠는 평일 공식전을 주로 오사카 스타디움 (오사카 구장, 1950년 - 1957년)과 일본 생명 구장 (니세이 구장, 1958년 - 1983년)에서 개최했다. 이 때문에, 본 구장은 야구 협약에 정하는 전용 구장 (=본거지)이었던 한편, 오랫동안 1군의 경기에서는 주말이나 공휴일의 데이 게임밖에 사용되지 않았고, 실질적인 본거지는 니세이 구장이었다.

킨테츠에게 가장 큰 문제는, 본 구장도 니세이 구장도 일본 시리즈나 올스타전의 개최 조건으로 되어 있는 "조명 설비가 있는 수용 인원 3만 명 이상의 구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킨테츠가 첫 리그 우승을 달성한 1979년과 2연패한 1980년의 일본 시리즈는, 난카이 호크스의 본거지였던 오사카 구장을 빌려 개최했다 (상대는 양년 모두 히로시마 도요 카프).

외야석에서 (1992년 촬영)


3루측 내야석에서 (1993년 촬영)


1973년 2월, 킨테츠가 구장의 대규모 개수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변 주민이 "나이트 게임 공해가 발생한다"고 반발하며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킨테츠는 같은 해 7월에 공사를 착공했지만, 반대 주민은 10월에 오사카 지방 법원에 공사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법이 이를 인정하면서 나이트 게임 설비 공사는 중단되었다. 1981년 3월, 킨테츠는 오사카 지방 법원에 공사 중지에 대한 이의 신청을 했고, 1983년 9월 26일, 법원은 특정 조건하에 나이트 게임 설비 설치를 인정했다. 킨테츠는 같은 해 11월 21일에 공사를 재개하여 1984년4월 6일에 나이트 게임 설비가 완성되어, 명실상부한 본거지가 되었다.

이듬해 1985년에는 약 9억 엔을 들여 구장 시설을 리뉴얼하고, "'''버팔로즈 스타디움'''"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이 해 여름에는 첫 올스타전도 개최되었다.

1997년에 오사카 돔이 완성되면서, 팀의 본거지는 이전. 연습장 및 2군 본거지가 되었고, 그 후에도 1군 공식전이 연간 몇 경기 열렸지만, 1999년10월 7일의 킨테츠 대 지바 롯데 마린스전 (최종전)이 마지막 1군 공식전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는 당시 셋업이었고, 전년에 뇌종양 수술을 한 모리타 사키히가 부활 등판했다). 전용 구장으로서의 지정도 그해에 취소되었고, 만년에는 2군의 경기나 고등학교 야구의 오사카 대회가 주가 되었다.

2004년, 킨테츠는 프로 야구 재편 문제의 당사자가 되어, 같은 해 8월에는 다음 해 봄을 목표로 본 구장의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킨테츠는 이 직전에도 연습장 및 2군 본거지의 기능을 이즈미사노시의 린쿠 타운으로 이전하는 구상을 발표하는 등, 본 구장 주변의 재개발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킨테츠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으로, 2군 본거지 및 합숙소는 효고현고베시의 오릭스 시설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한 외, 본 구장의 노후화 등을 이유로, 2005년 1월 말일을 기해, 구단 주최의 이벤트 등이 열리지 않은 채 본 구장은 폐쇄되었다.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에 의한 파업이 행해진 2004년 9월에는, 외야 스탠드에서 킨테츠의 주력 선수에 의한 사인회가 실시되었다.

본 구장에서의 마지막 프로 야구 경기는 2004년 9월 30일의 웨스턴 리그 우승 결정전의 킨테츠 대 주니치전이었다. 이 경기는 전기에서 킨테츠가 우승했기 때문에 구장 마지막 경기가 된 것으로, 당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경기가 아니었다. 또한, 프로 야구 선수회에 의한 파업으로 인해 일정이 연기되어, 1군 공식전 종료 후 이 날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킨테츠로서는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되었다. 경기는 주니치에 패했기 때문에, 미야자키에서의 팜 일본 선수권 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구장에는 구단과 구장과 작별을 아쉬워하는 팬 약 5,000명이 몰려들었다.

킨테츠로서의 마지막 사용은 2004년 11월 6일의 추계 연습이었고, 프로 야구에서의 마지막 사용은 같은 해 11월 13일부터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구단으로서의 첫 연습이었다. 이것은 배하 선수들이 간사이 지역에 사는 전 킨테츠와 전 오릭스의 선수가 중심이었기 때문으로, 당시 유니폼 디자인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새하얀 임시 유니폼을 입고 연습하는 모습은 "마치 고등학교 야구 같다"고 평했다.

또한, 2005년 6월 4일과 다음 날 5일에 후지이데라시나 시민 등이 주최하여 본 구장에서 "후지이데라 시민 페스타"가 개최되어, 스즈키 케이지 등 OB 선수의 강연이나 운동회 등을 했다. 7만 1천 명의 참가자를 모았고, 이것이 실질적인 폐쇄 이벤트가 되었다.

2006년 2월부터 8월에 걸쳐 해체 공사가 행해져, 약 77년여의 구장의 역사를 마쳤다.

2. 1. 초기 역사 (1928년 - 1949년)

1925년 오사카 철도(대철)는 오사카부 미나미카와치군후지이데라촌오아자 오카(현 후지이데라시 카스가오카)에 "후지이데라 교재원"과 함께 야구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1927년11월 11일 기공하여 1928년5월 25일 준공, 5월 27일 개장식을 거행하고 기념 경기를 열었다. 당시 부지 면적은 약 59,504m2, 총 공사비는 약 70만 엔이었고, 수용 인원은 7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1931년부터 전국 중등 학교 우승 야구 대회 오사카 대회의 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금속류 회수령으로 1943년7월 2일부터 철제 지붕이 해체되었다.

1946년 프로 야구 공식전이 처음 개최되었으며, 5월 3일에는 전후 첫 전통의 일전(오사카 타이거스도쿄 거인군)이 열렸다.

2. 2. 긴테츠 홈구장 시대 (1950년 - 1996년)

킨테츠는 1949년 2리그 분열 시에 자체 구단을 창설하여, 다음 해 리그 개막을 위해 약 8000만 엔을 들여 스탠드와 그라운드를 개수했다. 1950년부터 킨테츠 펄스 (후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후, 펄스 시대의 킨테츠 광고에서는 본 구장을 "'''펄스 스타디움'''"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명 설비를 갖추지 않은 본 구장에서는 나이트 게임 개최가 불가능했고, 킨테츠는 평일 공식전을 주로 오사카 스타디움 (오사카 구장, 1950년 - 1957년)과 일본 생명 구장 (니세이 구장, 1958년 - 1983년)에서 개최했다. 이 때문에, 본 구장은 야구 협약에 정하는 전용 구장 (=본거지)이었던 한편, 오랫동안 1군의 경기에서는 주말이나 공휴일의 데이 게임밖에 사용되지 않았고, 실질적인 본거지는 니세이 구장이었다.

킨테츠에게 가장 큰 문제는, 본 구장도 니세이 구장도 일본 시리즈나 올스타전의 개최 조건으로 되어 있는 "조명 설비가 있는 수용 인원 3만 명 이상의 구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킨테츠가 첫 리그 우승을 달성한 1979년과 2연패한 1980년의 일본 시리즈는, 난카이 호크스의 본거지였던 오사카 구장을 빌려 개최했다 (상대는 양년 모두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73년 2월, 킨테츠가 구장의 대규모 개수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변 주민이 "나이트 게임 공해가 발생한다"고 반발하며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킨테츠는 같은 해 7월에 공사를 착공했지만, 반대 주민은 10월에 오사카 지방 법원에 공사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법이 이를 인정하면서 나이트 게임 설비 공사는 중단되었다. 1981년 3월, 킨테츠는 오사카 지방 법원에 공사 중지에 대한 이의 신청을 했고, 1983년 9월 26일, 법원은 특정 조건하에 나이트 게임 설비 설치를 인정했다. 킨테츠는 같은 해 11월 21일에 공사를 재개하여 1984년4월 6일에 나이트 게임 설비가 완성되어, 명실상부한 본거지가 되었다.

이듬해 1985년에는 약 9억 엔을 들여 구장 시설을 리뉴얼하고, "'''버팔로즈 스타디움'''"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이 해 여름에는 첫 올스타전도 개최되었다.

2. 3. 오사카 돔 이전 이후 (1997년 - 2006년)

1997년 오사카 돔이 완성되면서,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본거지는 이전되었다. 이후 후지이데라 구장은 연습장 및 2군 본거지로 사용되었으며, 1군 공식 경기도 연간 몇 경기씩 열렸다. 1999년 10월 7일 킨테츠 대 지바 롯데 마린스 전은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1군 공식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는 전년도에 뇌종양 수술을 받은 모리타 사키히가 셋업으로 등판하여 부활을 알렸다. 같은 해, 후지이데라 구장은 전용 구장으로서의 지정이 취소되었다.

2004년, 프로 야구 재편 문제로 인해 킨테츠는 2005년 봄을 목표로 구장 폐쇄를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킨테츠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으로, 2군 본거지와 합숙소는 효고현 고베시의 오릭스 시설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구장 노후화 등의 이유로, 2005년 1월 말일을 기해 구단 주최 이벤트는 열리지 않은 채 구장은 폐쇄되었다.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의 파업이 있었던 2004년 9월, 외야 스탠드에서 킨테츠 주력 선수들의 사인회가 열렸다. 2004년 9월 30일에는 웨스턴 리그 우승 결정전 킨테츠 대 주니치 전이 열렸으며, 이것이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프로 야구 경기였다.

이 경기는 킨테츠의 마지막 공식 경기이기도 했다. 킨테츠로서의 마지막 사용은 2004년 11월 6일 추계 연습이었고, 프로 야구 전체로서는 같은 해 11월 13일부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첫 연습이 마지막 사용이었다.

2005년 6월 4일과 5일, 후지이데라시와 시민 등이 주최한 "후지이데라 시민 페스타"가 구장에서 개최되어, 스즈키 케이지 등 OB 선수들의 강연과 운동회 등이 열렸다. 이는 실질적인 폐쇄 이벤트였다. 2006년 2월부터 8월까지 해체 공사가 진행되어, 약 77년간의 구장 역사가 막을 내렸다.

2. 4. 철거 이후 부지 활용

2005년 8월 4일, 긴테쓰는 구장 부지 중 북쪽 약 33,000m2를 시텐노지 학원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조용한 환경을 지키고 싶다는 지역의 의향을 고려하여 문교 시설로 이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시텐노지 학원은 초등학교 건설과 오사카부 하비키노시 내에 있는 평생 학습 센터를 이전한다고 발표했다.[6] 2009년 4월에 시텐노지 학원 초등학교가 개교했으며, 정문 동쪽에는 후지이데라시, 긴키 일본 철도, 시텐노지 학원의 3자 공동으로 후지이데라 구장 기념 모뉴먼트 "백구의 꿈"(청동상, 타마노 세이조・작)이 설치되었다[6]

부지 남쪽 약 9200m2마루베니가 매입하여 대규모 맨션 "그랑스위트 후지이데라"를 건설했다. 2009년 11월에 준공되었다.

3. 주요 특징



; 구장

원래 양쪽 펜스는 97.6m로, 일본에서는 드문 코미스키 파크와 같은 직선적인 외야 펜스를 가진 필드 형상이었으나, 1953년에 스탠드 사이에 원호상의 두 번째 펜스(럭키 존)를 설치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부채꼴 형태가 되었고, 양쪽 펜스는 공칭 91m로 축소되었다. 단, 1980년대 무렵부터 펜스에 거리 표기가 없어졌다.

; 스코어보드

1973년 - 1974년에 개조된 수동 패널식 스코어보드를 폐장까지 사용했다. 카운트의 전광 표시는 스코어보드 중앙부에 있었지만, 1985년의 개조 시에 투수명 표시 보드를 설치하면서 스코어보드 상부로 이전했다. LED 보드가 생기기 전인 1989년까지는 홈런이 나왔을 경우, 스코어 표시 부분과 선수명 표시 부분 사이에 "HomeRun"이라는 전광 문자가 들어가는 연출도 있었다(이후 광고가 들어가 폐지).

1993년에 호크스의 본거지가 후쿠오카 돔으로 이전하고, 히로시마 시민 구장의 스코어보드가 전광 게시판으로 개수되면서, 본 구장의 스코어보드는 1군 본거지 구장 중 마지막까지 남은 패널식이었다.

또한 나이트 게임에 한해, 긴테츠 선수[긴테쓰 버펄로즈]가 홈런을 쳤을 경우와 긴테츠가 승리했을 경우 불꽃놀이가 백스크린에서 분출되었다.

; LED식 메시지 보드

우중간 외야 스탠드 방음 펜스에 설치되어, 타율・홈런 수, 구속 등을 표시했다.

; 타 구장의 경과 속보판

외야 스탠드 우익 폴 부근에 있으며, 패널식.

; 방음 펜스 (간섭형 방음 장치 부착 승강식 방음벽)

외야 스탠드 후방에 높이 5m (이 중 상부 2m는 승강식), 내야・외야 스탠드 사이에 높이 14m (이 중 상부 5m는 승강식), 폭 35m

; 구우 료

부지 내 라이트 스탠드 뒤에 있던 오사카 긴테츠 버펄로즈의 선수 기숙사. 초대 건물은 노후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2000년 10월에 약 4억 엔의 비용을 들여 재건축되었다. 오릭스와의 구단 합병 후에는 오사카 여자 단기 대학의 교육 연수 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 실내 연습장

부지 내의 구장 동쪽에 인접.

; 주차장

말기까지 선수 전용 주차장은 없었고, 일반 관람객과 공용이었다. 어떤 해의 개막전에서 선발 등판한 노모 히데오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을 때, 긴테츠 본사 관계자가 방문하기 때문에 차를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어, 노모와 긴테츠 구단 간의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3. 1. 좁은 구장

1980년대 이후, 다른 구장들의 대형화가 진행되면서, 후지이데라 구장은 "좁아서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이라고 불렸다. 1980년 10월 3일 긴테쓰 대 롯데 경기에서는 13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한 경기 최다 홈런 프로 야구 타이기록을 세웠다. 높이 2m의 외야 펜스 위에 높이 3m의 철망을 설치했지만, 좁은 구장이라는 이미지는 떨쳐낼 수 없었다.

1986년 8월 6일 긴테쓰 대 세이부 라이온즈 경기 8회 초에는 세이부가 1이닝 6홈런(니시오카 요시히로 - 기요하라 가즈히로 - 이시게 히로노리 - 부코비치 - 아키야마 고지 - 오타쿠지)이라는 일본 기록을 세웠다.

긴테쓰의 에이스로 활약한 스즈키 케이지는 통산 560개 피홈런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 및 MLB를 통틀어 현재까지도 최다 기록이다. 다만, 당시에는 마찬가지로 구장이 좁은 니세이 구장에서도 주최 경기를 했으므로 그것을 포함한 숫자이다.

3. 2. 독특한 응원 문화

인근 주민들이 야간 경기 시설 건설에 반대하면서 소음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이 구장에서는 나팔, , 등 응원 도구 사용이 금지되었고, 반입 또한 규제되었다.[7] 이는 다른 구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었다.

이 조치는 브라스 밴드 응원이 활발한 고교 야구에는 큰 지장을 초래했고, 본 구장을 개최지로 사용하던 전국 고등학교 연식 야구 선수권 대회는 1981년 이후, 모두 현립 아카시 공원 제1 야구장 (현: 아카시 토칼로 구장) 과 다카사고시 야구장으로 개최지를 변경했다.[7]

한편, 오픈전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의 응원단이 트럼펫을 사용하거나[7], 1999년 마지막 1군 공식 경기에서는 경기 후반에 트럼펫을 사용하는 등 몇 가지 예외가 있었다.[7]

3. 3. 구장 시설

원래 양쪽 펜스는 97.6m로, 일본에서는 드문 코미스키 파크와 같은 직선적인 외야 펜스를 가진 필드 형상이었으나, 1953년에 스탠드 사이에 원호상의 두 번째 펜스(럭키 존)를 설치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부채꼴 형태가 되었고, 양쪽 펜스는 공칭 91m로 축소되었다. 단, 1980년대 무렵부터 펜스에 거리 표기가 없어졌다.

1973년 - 1974년에 개조된 수동 패널식 스코어보드를 폐장까지 사용했다. 카운트의 전광 표시는 스코어보드 중앙부에 있었지만, 1985년의 개조 시에 투수명 표시 보드를 설치하면서 스코어보드 상부로 이전했다. LED 보드가 생기기 전인 1989년까지는 홈런이 나왔을 경우, 스코어 표시 부분과 선수명 표시 부분 사이에 "HomeRun"이라는 전광 문자가 들어가는 연출도 있었다(이후 광고가 들어가 폐지). 1993년에 호크스의 본거지가 후쿠오카 돔으로 이전하고, 히로시마 시민 구장의 스코어보드가 전광 게시판으로 개수되면서, 본 구장의 스코어보드는 1군 본거지 구장 중 마지막까지 남은 패널식이었다. 또한 나이트 게임에 한해, 긴테츠 선수[긴테쓰 버펄로즈]가 홈런을 쳤을 경우와 긴테츠가 승리했을 경우 불꽃놀이가 백스크린에서 분출되었다. 우중간 외야 스탠드 방음 펜스에는 타율・홈런 수, 구속 등을 표시하는 LED식 메시지 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외야 스탠드 우익 폴 부근에는 타 구장의 경과 속보판이 있었으며, 패널식이었다.

외야 스탠드 후방에는 높이 5m (이 중 상부 2m는 승강식), 내야・외야 스탠드 사이에는 높이 14m (이 중 상부 5m는 승강식), 폭 35m의 방음 펜스(간섭형 방음 장치 부착 승강식 방음벽)가 설치되었다. 부지 내 라이트 스탠드 뒤에는 오사카 긴테츠 버펄로즈의 선수 기숙사인 구우 료가 있었다. 초대 건물은 노후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2000년 10월에 약 4억 엔의 비용을 들여 재건축되었다. 오릭스와의 구단 합병 후에는 오사카 여자 단기 대학의 교육 연수 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부지 내의 구장 동쪽에는 실내 연습장이 인접해 있었다. 말기까지 선수 전용 주차장은 없었고, 일반 관람객과 공용이었다. 어떤 해의 개막전에서 선발 등판한 노모 히데오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을 때, 긴테츠 본사 관계자가 방문하기 때문에 차를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어, 노모와 긴테츠 구단 간의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4. 기타

4. 1. 일본 시리즈 개최

1989년 일본 시리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를 상대로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개최되었다. 1차전과 2차전에서 긴테쓰가 연승을 거두었고, 도쿄 돔에서 열린 3차전에서도 승리하여 일본 시리즈 우승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긴테쓰는 4연패를 당했고, 결국 7차전에서 승리한 요미우리의 후지타 모토시 감독이 이 구장에서 헹가래를 받았다. 이 해를 마지막으로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일본 시리즈는 개최되지 않았다.

4. 2. 아마추어 야구 및 소프트볼에서의 사용

후지이데라 구장은 전전, 전후를 통해 아마추어 야구의 무대로 사용되었다. 간사이 6대학의 리그전, 와세다와 간다이와의 정기전, 학동 야구 등에 사용되었다. 1931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 중등 학교 우승 야구 대회(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의 오사카 대회 회장 중 하나였다. 1998년부터는 닛세이 구장 폐쇄로 인해 본 구장에서 결승전이 열렸고, NHK 오사카 방송국과 아사히 방송에서 생중계했다.

1956년부터 1980년까지 전국 고등학교 연식 야구 선수권 대회의 회장으로도 사용되었다. 1946년 9월에는 문부성이 일본 최초의 플레이 그라운드 볼(소프트볼) 강습회를 본 구장에서 개최했다. 1994년1995년에는 일본 여자 소프트볼 리그 결승 라운드가 열렸다.

4. 3. 이벤트

본 구장에서는 1950년대에 일본 프로레슬링 흥행이 열렸다. 1964년 11월 6일 흥행에서는 자이언트 바바, 도요노 미치하루, 요시무라 미치아키가 출전한 6인 태그 매치가 메인 이벤트로 개최되었다.[8]

참조

[1] 서적 南海ホークスがあったころ 紀伊國屋書店 2003
[2] 웹사이트 藤井寺|球場詳細|球場情報 https://npb.jp/stadi[...] 日本野球機構 2024-08-20
[3] 웹사이트 【記録員コラム】伝統の一戦 トリビア「審判員」 https://npb.jp/news/[...] 日本野球機構 2024-08-20
[4] 문서
[5] 문서
[6] 보도자료 藤井寺球場跡地に記念モニュメントを設置します https://www.kintetsu[...] 近畿日本鉄道 2009-02-23
[7] 문서
[8] 간행물 プロレス&ボクシング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19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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