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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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타바군은 1896년 나라하군과 시네하군이 합병되어 설치된 일본 후쿠시마현의 군이다. 현재 후타바 군은 후타바정, 히로노정, 나미에정, 나라하정, 오쿠마정, 토미오카정, 카츠라오정, 카와우치무라를 포함하며, 과거에는 이와키시의 일부 지역도 포함했다. 전국 시대에는 이와키 씨와 소마 씨의 영지였으며, 20세기에는 도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지역이었으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대부분 지역이 귀환 곤란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후쿠시마현과 지역 주민들은 부흥과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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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군 | |
---|---|
지도 | |
기본 정보 | |
국가 | 일본 |
지방 | 도호쿠 지방 |
현 | 후쿠시마현 |
하위 행정 구역 | 하마도리 |
설치 | 1896년 4월 1일 |
폐지 | 해당 사항 없음 |
면적 | 514.91 km² |
인구 | 25,068 명 (2023년 10월 1일) |
하위 행정 구역 | |
정 | 히로노정 나라하정 도미오카정 후타바정 오쿠마정 나미에정 |
촌 | 가와우치촌 가쓰라오촌 |
로마자 표기 | |
로마자 표기 | Futaba-gun |
2. 지리
후타바 군은 후쿠시마현 동부 해안, 즉 하마도리 중앙에 위치한다. 1896년 행정 구역 발족 당시에는 현재의 6정 2촌( 후타바 정, 히로노 정, 나미에 정, 나라하 정, 오쿠마 정, 도미오카 정, 가쓰라오 촌, 가와우치 촌) 외에 이와키시 일부 (구지하마정, 오쿠마정)를 포함했다.[1]
2. 1. 현재의 행정 구역
현재 후타바군은 다음의 6정 2촌으로 구성되어 있다.[1]- 히로노
- 나라하
- 도미오카
- 오쿠마
- 후타바
- 나미에
- 가와우치
- 가쓰라오
2. 2. 과거의 행정 구역
1896년에 행정 구역으로 발족 당시의 군역은, 위에 언급된 6정 2촌에 이와키시의 일부(구지하마정, 오쿠마정)를 더한 지역에 해당한다.[1]3. 역사
1896년 4월 1일에 나라하군(楢葉郡일본어)과 시네하군(標葉郡, しめはぐん일본어)이 합병되어 후타바군이 설치되었다. 전국 시대에 이와키 씨의 영지였고, 에도 시대에는 이와키히라 번의 영지였던 나라하 군(요노모리 이남)과 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소마 씨(소마 나카무라 번)의 영지였던 시네하 군(요노모리 이북)이 합병된 것이다.
구 시네하 군은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무로마치 시대 후기까지 시네하 씨의 영지였으며, 무로마치 시대 후기(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소마 씨 통치 하에서는 나카무라 번의 정책으로 도자기 산업이 장려되었고, 에치고쿠(현 도야마 현)에서 온 개척자들이 이주하였다.
한편 구 나라하 군은 7세기 전반 국조 시대에는 이시키 국조나 다카 국의 영토였고, 전국 시대 이와키 씨 통치 하에서는 이와키 48관과 이와키 씨 가신의 성(고쿠라 성 등)이 산재해 있었으며, 에도 시대에는 푸다이 다이묘인 나이토 씨나 안도 씨가 다스리는 이와키히라 번이었다.
이처럼, 후타바군은 "하마도리", "소소"라고 간단히 묶을 수 없는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요노모리 또는 오쿠마(후쿠시마 제일 원자력 발전소)를 경계로 생활권이 달라, 구 나라하 군은 히라나 미토와, 구 시네하 군은 나카무라나 센다이와의 교류가 밀접하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각지에서 10m가 넘는 높은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유발된 후쿠시마 제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대부분의 지역이 귀환 곤란 지역·거주 제한 지역·피난 지시 해제 준비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3. 1. 근대 이전
후타바군은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무로마치 시대 후기까지 시네하 씨의 영지였다. 무로마치 시대 후기(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소마 씨 통치 하에서는 나카무라 번의 정책으로 도자기 산업이 장려되었다. 에치고쿠(현 도야마 현)에서 온 개척자들이 이주한 지역이다.3. 1. 1. 나라하 군 (요노모리 이남)
1896년 4월 1일에 나라하군(楢葉郡일본어)과 시네하군(標葉郡|시메하군일본어)이 합병되어 설치되었다.3. 1. 2. 시네하 군 (요노모리 이북)
標葉郡, しめはぐん일본어은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무로마치 시대 후기까지 시네하 씨의 영지였다. 무로마치 시대 후기(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소마 씨 통치 하에서는 나카무라 번의 정책으로 도자기 산업이 장려되었다. 에치고쿠(현 도야마 현)에서 온 개척자들이 이주한 지역이다.3. 2. 근현대
20세기 전반, 구 나라하 군 지역에는 조반탄전이 넓게 분포했고, 구 시네하 군 지역에는 산림 철도가 운영되었다. 후타바 군은 20세기에 걸쳐 도쿄에 에너지를 보내는 "에너지 원산지"였다. 20세기 후반 고도 경제 성장기 이후, 후타바 군은 "전원 지대"로 특징지어졌으며, 나가쓰카 (후타바 정) 이남은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했다. 후타바 군 전역은 헤이세이 대합병에 부정적이었다. 헤이세이 대합병 전부터 발전소 재원을 활용한 지역 진흥책(예: J빌리지. 히로노와 나라하에 걸쳐 위치)을 추진했고, 헤이세이 대합병 후에도 발전소와는 무관한 명산이나 화제(예: DASH 마을. 나미에의 산간부)로 활성화를 도모하는 등, 독립성이 높은 지역 진흥책이 실시되었다.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각지에서 10미터가 넘는 높은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유발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대부분의 지역이 귀환 곤란 지역, 거주 제한 구역, 피난 지시 해제 준비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3. 3. 연혁
- 1896년(메이지 29년) 4월 1일 - 표엽군 및 나라하군의 일부(가와마에촌 제외) 지역을 합쳐 '''후타바군'''이 발족하였다. (19개 촌)[1]
- * 구 표엽군: '''나미에촌''', '''쿠마토촌''', '''오노촌''', '''신야마촌''', '''나가츠카촌''', '''세이도촌''', '''기세교촌''', '''오보리촌''', '''카리노촌''', '''츠시마촌''', '''갓츠오촌'''[1]
- * 구 나라하군: '''후쿠오카촌''', '''쿠노하마촌''', '''오쿠촌''', '''히로노촌''', '''키도촌''', '''류타촌''', '''가미오카촌''', '''가와우치촌'''[1]
- 1897년(메이지 30년) 10월 1일 - 군제 시행.[1]
- 1900년(메이지 33년) 3월 8일 - 나미에촌, 후쿠오카촌이 정으로 승격하여 각각 '''나미에정''', '''후쿠오카정'''이 되었다. (2개 정 17개 촌)[1]
- 1901년(메이지 34년) 6월 13일 - 쿠노하마촌이 정으로 승격하여 '''쿠노하마정'''이 되었다. (3개 정 16개 촌)[1]
- 1913년(다이쇼 2년) 1월 25일 - 신야마촌이 정으로 승격하여 '''신야마정'''이 되었다. (4개 정 15개 촌)[1]
- 1923년(다이쇼 12년) 4월 1일 - 군회 폐지. 군청은 존속.[1]
- 1926년(다이쇼 15년) 7월 1일 - 군청 폐지. 이후 지역 구분 명칭이 됨.[1]
- 1940년(쇼와 15년) 4월 1일 - 히로노촌이 정으로 승격하여 '''히로노정'''이 되었다. (5개 정 14개 촌)[1]
- 1950년(쇼와 25년) 6월 1일 - 가미오카촌이 정으로 승격하고 개칭하여 '''후타바정'''(제1차)이 되었다. (6개 정 13개 촌)[1]
- 1951년(쇼와 26년) 4월 1일 - 신야마정·나가츠카촌이 합병하여 '''표엽정'''이 발족하였다. (6개 정 12개 촌)[1]
- 1953년(쇼와 28년) 10월 10일 - 세이도촌·기세교촌이 나미에정과 합병하여 새로운 '''나미에정'''이 발족하였다. (6개 정 10개 촌)[1]
- 1954년(쇼와 29년) 11월 1일 - 오노촌·쿠마토촌이 합병하여 '''오쿠마정'''이 발족하였다. (7개 정 8개 촌)[1]
- 1955년(쇼와 30년) 3월 31일 - 후쿠오카정·후타바정(제1차)이 합병하여 다시 '''후쿠오카정'''이 발족하였다. (6개 정 8개 촌)[1]
- 1956년(쇼와 31년)[1]
- * 4월 1일 - 표엽정이 '''후타바정'''(제2차)으로 개칭되었다.[1]
- * 5월 1일 - 오보리촌·카리노촌·츠시마촌이 나미에정과 합병하여 다시 '''나미에정'''이 발족하였다. (6개 정 5개 촌)[1]
- * 9월 1일 - 키도촌·류타촌이 합병하여 '''나라하정'''이 발족하였다. (7개 정 3개 촌)[1]
- 1966년(쇼와 41년) 10월 1일 - 쿠노하마정·오쿠촌이 이와키시·우치고시·조반시·히라이시·무쓰라이시 및 이시키군 오가와정·토오노정·요스쿠라정·가와마에촌·타히토촌·미와촌·요마촌과 합병하여 '''이와키시'''가 발족하고, 군에서 이탈하였다. (6개 정 2개 촌)[1]
4.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타바군은 각 지역에서 10m를 넘는 높은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특히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대부분 지역이 귀환 곤란 지역, 거주 제한 구역, 피난 지시 해제 준비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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