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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시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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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갈리시아의 날은 갈리시아의 국경일로, 매년 7월 25일에 기념된다. 1919년 갈리시아주의자들이 모여 7월 25일을 갈리시아의 날로 정했으며, 이날은 갈리시아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 축일이기도 하다. 프랑코 독재 시대에는 해외 갈리시아 이민자 공동체에서 주로 기념되었으며, 민주화 이후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다양한 기념 행사가 열리며, 갈리시아 정부는 이 날을 공식 공휴일로 지정했다. 2013년에는 열차 사고로 인해 축제가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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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시아의 날
개요
갈리시아의 기
갈리시아의 기
공식 명칭es
별칭es, 갈리시아의 날
기념 대상갈리시아
종류지역
날짜7월 25일
주기매년
관련 기념일성 야고보 축일
상세 정보
기념 방식미상
준수 사항미상
지속 기간1일

2. 역사

갈리시아의 날은 1919년 갈리시아주의자 조직인 ''이르만다데스 다 팔라''(Irmandades da Fala)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회의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듬해 갈리시아와 수도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 축일인 7월 25일을 갈리시아 국경일로 제정했다.[3]

프랑코 독재 정권(1939년~1977년) 동안에는 민족주의적 표현이 금지되어 공개적인 기념이 어려웠다.[4] 이 시기에는 주로 해외 이민자 공동체가 명맥을 유지했으며, 갈리시아 내에서는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시인을 기리는 미사를 명분으로 소규모 모임이 이루어졌다. 독재 정권은 오히려 성 야고보 축일을 '스페인의 수호성인' 축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독재 말기인 1968년부터 갈리시아주의자들은 억압 속에서도 기념 시도를 이어갔고, 이는 종종 경찰과의 충돌로 이어졌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시위가 금지되는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기념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역사를 거치며 갈리시아의 날은 단순한 축제를 넘어 깊은 정치적 의미를 지닌 날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여러 정당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대규모 시위와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5]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불꽃놀이, ''Fogos do Apóstolo''라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갈리시아의 날 관련 주요 행사는 대부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열린다. 갈리시아 자치 정부는 이 날을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념하며, 많은 이들이 7월 24일 밤부터 축제를 즐긴다.[3] 2013년에는 기념일 전날 발생한 대규모 열차 사고로 인해 축제가 취소된 바 있다.[6]

2. 1. 제정 배경

갈리시아의 날의 기원은 갈리시아주의자 조직인 ''이르만다데스 다 팔라''(Irmandades da Fala)가 1919년 갈리시아의 수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회의를 연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듬해인 1920년, 이들은 7월 25일을 갈리시아 국경일로 기념하기로 결정했다. 이 날짜는 갈리시아와 수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 축일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3]

프랑코 독재 시대(1939년 ~ 1977년) 동안에는 스페인 중앙 정부 외의 민족주의적 표현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갈리시아의 날을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없었다.[4] 하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갈리시아 이민자 공동체는 꾸준히 이 날을 기념했다. 갈리시아 내에서는 갈리시아주의자들이 갈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문학적 상징인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를 기리는 미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모임을 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코 정권은 성 야고보 축일을 '스페인의 수호성인' 축일로 지정하여 국가적으로 기념했다.

독재 정권 하에서도 1968년부터 갈리시아주의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갈리시아의 날을 기념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갈리시아 사회당''(Partido Socialista de Galicia)과 ''갈리시아 인민 연합''(Unión do Povo Galego)은 매년 7월 25일에 공개적인 정치 시위를 조직했다. 이러한 시위는 매번 스페인 경찰과의 충돌로 이어졌다. 1977년 이후 민주주의가 회복되던 초기에도 ''아셈블레아 나시오날-포풀라르 갈레가''(AN-PG)와 BN-PG(이후 갈리시아 민족주의 블록으로 발전)가 조직한 시위는 여전히 금지되었다. 갈리시아 국경일이 비교적 자유롭게 기념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이러한 사건들은 갈리시아의 날을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깊은 정치적 의미를 지닌 날로 만들었다. 현재는 갈리시아의 여러 정당들(주로 민족주의 정당이지만 다른 성향의 정당도 포함)이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다양한 행사를 열어 이 날을 기념한다.[5]

정치적, 제도적 활동은 대부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열리며, 갈리시아 자치 정부는 이 날을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고 엄숙하게 기념한다. 또한, 7월 24일 밤부터 26일 새벽까지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긴다.[3]

2013년에는 기념일 전날 발생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열차 탈선 사고로 인해 축제가 취소되기도 했다.[6]

2. 2. 프랑코 독재 시대

프랑코 독재 시대의 스페인(1939년~1977년) 동안에는 스페인 중앙 정부 외의 민족주의적 표현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갈리시아의 날을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없었다.[4] 이 시기 동안 국경일은 주로 해외에 거주하는 갈리시아 이민자 공동체에 의해 기념되었다. 갈리시아 본토에서는 갈리시아주의자들이 갈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문학적 상징인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를 기리기 위한 미사를 드린다는 명목 하에 모임을 이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코 정권은 성 야고보 축일을 "스페인의 수호성인" 축일로 지정하여 국가적으로 제도화했다.

억압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1968년부터 갈리시아주의자들은 독재 치하에서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갈리시아의 날을 기념하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특히 ''갈리시아 사회당''(Partido Socialista de Galicia)과 ''갈리시아 인민 연합''(Unión do Povo Galego)은 매년 7월 25일에 공개적인 정치 시위를 열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예외 없이 스페인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프랑코 독재가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던 1977년 이후 초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셈블레아 나시오날-포풀라르 갈레가''와 이후 갈리시아 민족주의 블록으로 발전하게 되는 BN-PG 등이 조직한 시위는 여전히 금지되었다. 갈리시아의 날이 어느 정도 정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기념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이러한 저항과 기념의 역사는 갈리시아의 날에 깊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갈리시아의 여러 정당들(대부분 민족주의 성향이지만, 비민족주의 정당도 포함)이 수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5]

2. 3. 민주화 이후

프랑코 독재 시대의 스페인(1939년-1977년) 동안에는 스페인 중앙 정부 외의 민족주의적 표현이 금지되어 갈리시아의 날을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없었다.[4] 이 시기 국경일은 주로 해외 갈리시아 이민자 공동체에 의해 기념되었다. 갈리시아 내에서는 갈리시아주의자들이 시인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를 위한 미사를 드린다는 명분으로 모임을 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코 정권은 성 야고보 축일을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여 기념했다.

독재 시대 말기인 1968년부터 갈리시아주의자들은 콤포스텔라에서 갈리시아의 날을 기념하려는 시도를 재개했다. ''갈리시아 사회당''(Partido Socialista de Galicia)과 ''갈리시아 인민 연합''(Unión do Povo Galego)은 매년 7월 25일에 공개적인 정치 시위를 조직했으나, 이는 매번 스페인 경찰과의 충돌로 이어졌다. 1977년 이후 민주주의가 시작된 초기에도 ''아셈블레아 나시오날-포풀라르 갈레가''와 BN-PG(이후 갈리시아 민족주의 블록으로 발전)가 조직한 시위는 여전히 금지되었다. 국경일이 비교적 자유롭게 기념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이러한 사건들은 갈리시아의 날 기념행사에 깊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현재 갈리시아의 여러 정당들(주로 민족주의 성향이지만, 다른 정당들도 포함)은 수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다양한 기념 활동을 벌인다.[5]

정치 및 제도적 활동은 일반적으로 모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이루어진다. 갈리시아의 날은 갈리시아 정부가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여 엄숙하게 기념하며, 많은 사람들이 24일 밤부터 26일 새벽까지 축제를 즐긴다.[3]

2013년에는 행사 전날 발생한 치명적인 열차 사고로 인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축제가 취소되기도 했다.[6]

3. 현대의 기념 행사

프랑코 독재 시대의 스페인(1939-1977) 동안에는 스페인 외부의 민족주의적 표현이 금지되어 갈리시아의 날을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없었다.[4] 이 시기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갈리시아 이민자 공동체가 주로 기념 행사를 이어갔다. 갈리시아 본토에서는 갈리시아주의자들이 시인이자 문학적 상징인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를 위한 미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모임을 가졌다. 한편, 프랑코 정권은 성 야고보 축일을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여 기념했다.

1968년부터 갈리시아주의자들은 독재 정권 하에서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갈리시아의 날을 기념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갈리시아 사회당''(Partido Socialista de Galicia)과 ''갈리시아 인민 연합''(Unión do Povo Galego)은 매년 7월 25일에 공개적인 정치 시위를 조직했으나, 이는 매번 스페인 경찰과의 충돌로 이어졌다.[5] 1977년 이후 민주주의가 회복된 초기에도 ''아셈블레아 나시오날-포풀라르 갈레가''와 이후 갈리시아 민족주의 블록으로 발전하는 BN-PG가 주도한 시위는 여전히 금지되었다.

갈리시아의 날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기념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 날에 깊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현재 갈리시아의 여러 정당들(주로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들이지만, 다른 정당들도 참여)은 갈리시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수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5]

정치적, 제도적 활동은 대부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이루어진다. 갈리시아 정부는 이 날을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고 엄숙하게 기념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7월 24일 밤부터 26일 새벽까지 축제를 즐긴다.[3]

3. 1. 2013년 행사 취소

201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갈리시아의 날 축제는 행사 전날 발생한 치명적인 열차 사고로 인해 취소되었다.[6]

참조

[1] 뉴스 A orixe da denominación 'Día da Patria Galega' contada por Bautista Álvarez http://www.sermosgal[...] Sermos Galiza 2018-07-15
[2] 웹사이트 Diario Oficial http://www.xunta.es/[...] 1979-01-01
[3] 웹사이트 National Day of Galicia: July 25th https://www.galiciat[...] 2020-11-24
[4] 서적 Vernacular Resistance{{!}} Catalan, Basque, and Galician Opposition to Francoist Monolingualism https://lucris.lub.l[...] Vernaculars in an Age of World Literatures 2022
[5] 뉴스 La larga historia del 25 de julio http://www.elmundo.e[...] El Mundo 2017-10-10
[6] 뉴스 Dozens die as Spanish train derails https://www.bbc.com/[...] BBC News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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