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코 후지모리
1. 개요
게이코 소피아 후지모리 이구치(Keiko Sofía Fujimori Higuchi)는 일본계 페루인 이민 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장녀로, 1975년 페루 리마에서 태어났다. 1994년 부모의 이혼 후 19세의 나이로 영부인직을 수행했으며, 이후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6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했으며, 2011년, 2016년, 202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후히모리즘을 계승하며, 정치적으로 권위주의, 우익 포퓰리즘 성향을 보인다. 오데브레흐트 스캔들 연루 의혹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페루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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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藤森恵子 (후지모리 게이코) |
|---|---|
| 로마자 표기 | Fujimori Keiko |
| 출생 이름 | 게이코 소피아 후지모리 이구치 |
| 출생일 | 1975년 5월 25일 (49세) |
| 출생지 | 리마 헤수스 마리아, 페루 |
| 정당 | 푸에르사 포풀라르 (2010년–현재) |
| 배우자 | 마르크 빌라넬라 (2004년 결혼, 2022년 이혼) |
| 자녀 | 2명 |
| 아버지 | 알베르토 후지모리 |
| 어머니 | 수사나 이구치 |
| 친척 | 겐지 후지모리 (남동생), 산티아고 후지모리 (삼촌) |
| 학력 | 스토니 브룩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 (BA), 컬럼비아 대학교 (M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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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에르사 포풀라르 대표 | 2009년 7월 22일 – 현재 |
|---|---|
| 국회 의원 | 2006년 7월 26일 – 2011년 7월 26일 |
| 선거구 | 리마 |
| 페루 영부인 | 1994년 8월 23일 – 2000년 11월 22일 |
| 대통령 | 알베르토 후지모리 |
| 이전 영부인 | 수사나 이구치 |
| 이후 영부인 | 닐다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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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리가 -
알베르토 후지모리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일본계 페루인 정치인으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 대통령을 지내며 경제 개혁과 게릴라 척결에 기여했으나, 권위주의 통치와 인권 침해 등으로 논란이 되었고, 실각 후 도피 및 체포, 수감 생활을 거쳐 2024년 사망했다. -
페루의 퍼스트 레이디 -
수사나 히구치
수사나 히구치는 일본계 페루인으로 페루의 영부인이었으며, 남편인 후지모리 대통령의 부패를 비판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2021년에 사망했다. -
일본계 페루인 -
알베르토 후지모리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일본계 페루인 정치인으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 대통령을 지내며 경제 개혁과 게릴라 척결에 기여했으나, 권위주의 통치와 인권 침해 등으로 논란이 되었고, 실각 후 도피 및 체포, 수감 생활을 거쳐 2024년 사망했다. -
일본계 페루인 -
로메로 프랑크
로메로 프랑크는 페루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축구 선수이며, 미토 홀리호크에서 데뷔하여 몬테디오 야마가타, 알비렉스 니가타 등 여러 팀을 거쳐 현재 레이락 시가 FC에서 활약하고 있다.
2. 초기 생애
케이코 소피아 후지모리 이구치는 1975년 5월 25일 페루의 수도 리마의 헤수스 마리아 구에서 일본계 페루인 이민 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와 수사나 히구치의 장녀로 태어났다. 히로 알베르토(1976년 12월생), 사치 마르셀라(1979년 3월생), 켄지 헤라르도 (1980년 5월생)의 세 형제가 있다.
== 교육 ==
케이코 후지모리는 1992년 페루 가톨릭 학교인 콜레히오 사그라도스 코라소네스 레코레타를 졸업했다. 1993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토니브룩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1997년 5월 보스턴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 ==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과 수사나 히구치의 장녀로 리마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히로 알베르토, 사치 마르셀라, 켄지 후지모리가 있다.
2.1. 교육
게이코 후지모리는 1992년 페루 가톨릭 학교인 콜레히오 사그라도스 코라소네스 레코레타를 졸업했다. 1993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토니브룩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1997년 5월 보스턴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 시작하여 2004년에 학위를 취득했다.
2.2. 가족
게이코 후지모리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과 수사나 히구치의 장녀로 리마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19세의 나이로 2000년까지 영부인직을 수행했다. 1993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에 입학했고, 1997년 보스턴 대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 컬럼비아 대학교 MBA 과정을 졸업했으며, 같은 해 컬럼비아 대학교 동문인 마크 비토 비야네야와 결혼했다. 남편은 2009년 페루 국적을 취득하여 미국과의 복수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슬하에 두 딸 키아라와 카오리를 두고 있다.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 대통령을 역임했다. 어머니 수사나 히구치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형제로는 히로 알베르토, 사치 마르셀라, 켄지 후지모리가 있다.
3. 정치 경력
3.1. 페루의 영부인 (1994-2000)
1994년 부모의 이혼 후, 19세의 나이로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뒤를 이어 페루의 영부인이 되었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 역사상 최연소 영부인 기록이었다. 후지모리는 어머니가 제기한 아버지에 대한 혐의를 축소하고 언론과 국제 단체의 보도를 무시했다.
1994년 4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페루 어린이 재단(Fundación por los Niños del Perú) 대표를 역임했고,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는 어린이를 위해 페루 어린이 심장 재단(Fundación Peruana Cardioinfantil)을 설립했다.
영부인 재직 당시, 후지모리는 세 가지 주요 비난을 받았다. 일본계 페루인들이 기증한 의류 유용 의혹, 페루 정부 청사 방을 분홍색으로 칠하라는 지시, 그리고 아버지가 비난하고 박해했던 어머니를 변호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후지모리는 어머니의 고문 주장을 "전설"이라고 일축했다.
1998년,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3선 연임을 시도하자 후지모리는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5년과 2000년 페루 총선에서 아버지의 재선 운동을 도왔다.
2000년 11월,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부패 스캔들로 인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후지모리는 페루 공화국 의회의 결정에 따라 페루 정부 청사를 떠났다.
3.2. 국회의원 (2006-2011)
2006년 총선에서 게이코 후지모리는 알베르토 후지모리를 지지하는 정당 연합인 '미래를 위한 동맹' 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 후보 중 가장 많은 602,86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는 당시까지 국회의원이 받은 최다 득표수 기록이었다. 그녀는 2006년 7월 26일부터 2011년 7월 26일까지 리마를 대표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당선 이후, 후지모리는 국회에서 반대 입장을 취했지만, 가르시아가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할 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임기 동안 푸히모리즘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다.
후지모리와 그녀의 의회 블록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사형 제도 부활을 위한 형법 개정 등 다양한 정부 정책을 지지했다. 이후 소아성애와 강도에 대한 사형 제도 재도입을 시도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징역형 혜택을 제한하는 법안과 상습범에게 최고 형벌을 부과하도록 판사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을 작성했다.
2007년 9월, 그녀는 재판을 받고 있는 아버지를 지지하는 시위를 조직하고, 언론에 "단단한 증거가 없다"며 그의 무죄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2008년,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아버지에게 대통령 사면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9년 4월,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반인륜적 범죄로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자, 게이코 후지모리는 10,000명의 참석자를 확보한 또 다른 시위를 조직하여 아버지에 대한 증거의 존재를 부정했다.
후지모리는 국회 회의에 500번이나 불참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2006년 8월부터 2010년까지 총 223일 동안 국외에 있었으며,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는 데 100일 가까이 소요되었다. 경제 관련 위원회 위원이었음에도 42번의 회의 중 단 7번만 참석했다.
3.3. 대선 출마 및 낙선
2009년, 게이코 후지모리는 자신의 정당인 인민 권력당(푸에르사 2011, 이후 '푸에르사 포풀라르'로 개칭)을 창당하기 위해 서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2010년 3월 9일, 선거 국가 배심원은 100만 개가 넘는 서명을 수집한 후 공식적으로 이 정당을 인정했다. 이는 요구 서명 수를 85만 4천 개나 초과하는 숫자였다.
후지모리는 2011년 대선에 출마하여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정부가 테러리즘을 물리치고 경제를 안정시킨 업적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권 침해와 부패에 대해서는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를 비난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면은 약속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대통령직을 종식시킨 스캔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2011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후지모리는 23.551%(340만 표)를 기록하여 31.699%의 득표율을 얻은 좌파 민족주의 후보인 오얀타 우말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18.512%로 3위를 차지했으며, 알레한드로 톨레도와 루이스 카스타녜다 전 리마 시장이 그 뒤를 이었다.
| 순위 | 후보자명 | 소속 정당(정당 연합) | 득표수 (득표율) |
|---|---|---|---|
| 1 | 오얀타 우말라 | Gana Perú | 4,643,064 (31.699%) |
| 2 | 게이코 후지모리 | 푸에르사 2011 | 3,449,595 (23.551%) |
| 3 |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 대변화 연합 | 2,711,450 (18.512%) |
| 4 | 알레한드로 톨레도 | 페루 포시블레 | 2,289,561 (15.631%) |
| 5 | 루이스 카스타녜다 | 국민 연대 연합 | 1,440,143 (9.832%) |
결선 투표는 양극화되었다. 페루 교황청 가톨릭 대학교의 시네시오 로페스 교수에 따르면, "우말라의 후보 지명은 그의 정치 프로그램이 소규모 사업을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조장했다. 반면, 게이코의 후보 지명은 그녀의 아버지 정부 시절에 발생했던 부패와 인권 침해로의 회귀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했다."
6월 5일 결선 투표에서 그녀는 51.34%(7,937,704표) 대 48.66%(7,490,647표)로 오얀타 우말라에게 패배했다. 후지모리는 90%의 개표가 완료된 후 패배를 인정하고 우말라의 승리를 직접 축하했다.
2015년 12월 4일, 후지모리는 '인민 권력당'(Fuerza Popular) 후보로 2016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제1부통령 후보는 전 농업 관개부 장관 호세 칠림퍼 아커만이었고, 제2부통령 후보는 전 후닌 주 주지사였던 블라디미로 우아록 포르토카레로였다. 후지모리는 경제 자유화, 투자 유치 확대, 강력 범죄 근절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2016년 1월, 19명의 대통령 후보가 있었지만, 1차 투표까지 9명이 탈락하거나 사퇴했다. 세사르 아쿠냐와 훌리오 구즈만은 주요 경쟁자였지만, 선거 전국 심사원에 의해 배제되었다. 후지모리 역시 비난을 받았으나, JNE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했다.
1차 투표가 다가오면서, 후지모리는 경쟁자들을 앞서 선두를 유지했다. 그녀의 주요 경쟁자는 중도 우파 경제학자이자 전직 장관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PPK), 좌파 성향의 심리학자이자 국회의원 베로니카 멘도사 등이었다.
1992년 자치 쿠데타 기념일에, 5만 명 이상의 시위대가 후지모리의 후보 지명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의 석방을 위해 법정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4월 10일 1차 투표에서 후지모리는 약 40%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와 베로니카 멘도사는 각각 약 20%를 얻었다. 인민 권력당은 국회에서 130석 중 73석을 확보하며 과반수를 차지했다.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6월 5일에 2차 투표가 예정되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호아킨 라미레스 국회의원과의 마약 거래 연루 의혹이 제기되었다. 검찰은 후지모리 캠프의 돈세탁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고, 후지모리는 이를 흠집 내기 캠페인이라고 일축했다.
2016년 6월 5일 결선 투표에서, 후지모리는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재검표는 선거일 이후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6월 10일, 후지모리는 패배를 인정하며, 자신의 정당이 "경계적인" 야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9월 25일, 게이코 후지모리는 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2021년 대선에서 인민 권력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전 국회의장 루이스 갈라레타를 제1부통령으로, 전 변호사이자 국가 연대의 이사인 파트리시아 주아레즈를 제2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후지모리 당은 논란이 많은 마르틴 비스카라 해임을 주도했고, 그의 후임으로 마누엘 메리노가 임명되면서 2020년 페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되었고, 시위대 중 두 명의 대학생이 사망했다. 후지모리는 일어난 일에 대해 애도했고 현재 상황을 "유지 불가능"하다고 간주하며 메리노에게 사퇴를 요구하거나 "지금 당장 여기서 비난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그녀는 의회의 다수가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었다.
12월 9일 당내 선거에서 승리하여 인민 권력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페루21이 발표한 전국 Datum 여론 조사에서 페루 국민의 63%가 그녀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하면서 선거 운동은 순탄치 않았다.
"강력한 손"과 "권위"를 가진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법 집행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를 제안했다. 과밀 수용을 줄이고 경범죄자에 대한 보호 관찰을 더 많이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도소 건설을 요구했다. 아버지의 사면을 약속하지 않겠다고 했던 이전 선거와 달리, 후지모리는 이번 선거에서 아버지와의 친밀함을 강조하며, 당선 시 아버지를 사면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2021년 4월 11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약 13%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여, 1위인 약 19%의 페드로 카스티요 (자유 페루)와 함께 6월 6일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6월 3일, 리마 근교의 빈곤 지역에서 행한 최종 연설에서, 겐지 후지모리를 등단시켜 단결을 연출했다.
결선 투표 결과, 후지모리는 49.875%의 득표율에 그쳐, 50.125%를 얻은 카스티요가 승리했다. 후지모리는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20만 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페루 선거 당국은 이를 기각했고, 7월 19일 후지모리가 패배를 인정하면서 카스티요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여러 국제 참관인들은 후지모리의 주장에 반박하며 선거 절차가 국제 기준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3.3.1. 2011년 대선
2009년, 게이코 후지모리는 자신의 정당인 푸에르사 2011(이후 '대중의 힘'으로 개칭)을 창당하기 위해 서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2010년 3월 9일, 선거 국가 배심원은 100만 개가 넘는 서명을 수집한 후 공식적으로 이 정당을 인정했다. 이는 요구 서명 수를 85만 4천 개나 초과하는 숫자였다.
후지모리는 2011년 대선에 출마하여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정부가 테러리즘을 물리치고 경제를 안정시킨 업적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권 침해와 부패에 대해서는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를 비난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면은 약속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대통령직을 종식시킨 스캔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2011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후지모리는 23.551%의 득표율(340만 표)을 기록하여 31.699%의 득표율을 얻은 좌파 민족주의 후보인 오얀타 우말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18.512%로 3위를 차지했으며, 알레한드로 톨레도와 루이스 카스타녜다 전 리마 시장이 그 뒤를 이었다.
| 순위 | 후보자명 | 소속 정당(정당 연합) | 득표수 (득표율) |
|---|---|---|---|
| 1 | 오얀타 우말라 | Gana Perú | 4,643,064 (31.699%) |
| 2 | 게이코 후지모리 | 푸에르사 2011 | 3,449,595 (23.551%) |
| 3 |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 대변화 연합 | 2,711,450 (18.512%) |
| 4 | 알레한드로 톨레도 | 페루 포시블레 | 2,289,561 (15.631%) |
| 5 | 루이스 카스타녜다 | 국민 연대 연합 | 1,440,143 (9.832%) |
결선 투표는 양극화되었다. 페루 교황청 가톨릭 대학교의 시네시오 로페스 교수에 따르면, "우말라의 후보 지명은 그의 정치 프로그램이 소규모 사업을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조장했다. 반면, 게이코의 후보 지명은 그녀의 아버지 정부 시절에 발생했던 부패와 인권 침해로의 회귀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했다."
6월 5일 결선 투표에서 그녀는 51.34%(7,937,704표) 대 48.66%(7,490,647표)로 오얀타 우말라에게 패배했다. 후지모리는 90%의 개표가 완료된 후 패배를 인정하고 우말라의 승리를 직접 축하했다.
3.3.2. 2016년 대선
2015년 12월 4일, 후지모리는 '대중의 힘'(Fuerza Popular) 후보로 2016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제1부통령 후보는 전 농업 관개부 장관 호세 칠림퍼 아커만이었고, 제2부통령 후보는 전 후닌 주 주지사였던 블라디미로 우아록 포르토카레로였다. 후지모리는 경제 자유화, 투자 유치 확대, 강력 범죄 근절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2016년 1월, 19명의 대통령 후보가 있었지만, 1차 투표까지 9명이 탈락하거나 사퇴했다. 세사르 아쿠냐와 훌리오 구즈만은 주요 경쟁자였지만, 선거 전국 심사원에 의해 배제되었다. 후지모리 역시 비난을 받았으나, JNE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했다.
1차 투표가 다가오면서, 후지모리는 경쟁자들을 앞서 선두를 유지했다. 그녀의 주요 경쟁자는 중도 우파 경제학자이자 전직 장관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PPK), 좌파 성향의 심리학자이자 국회의원 베로니카 멘도사 등이었다.
1992년 자치 쿠데타 기념일에, 5만 명 이상의 시위대가 후지모리의 후보 지명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의 석방을 위해 법정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4월 10일 1차 투표에서 후지모리는 약 40%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와 베로니카 멘도사는 각각 약 20%를 얻었다. 민중의 힘은 국회에서 130석 중 73석을 확보하며 과반수를 차지했다.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6월 5일에 2차 투표가 예정되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호아킨 라미레스 국회의원과의 마약 거래 연루 의혹이 제기되었다. 검찰은 후지모리 캠프의 돈세탁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고, 후지모리는 이를 흠집 내기 캠페인이라고 일축했다.
2016년 6월 5일 결선 투표에서, 후지모리는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재검표는 선거일 이후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6월 10일, 후지모리는 패배를 인정하며, 자신의 정당이 "경계적인" 야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3.3. 2021년 대선
2020년 9월 25일, 게이코 후지모리는 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2021년 대선에서 대중의 힘 후보로 출마하였다. 전 국회의장 루이스 갈라레타를 제1부통령으로, 전 변호사이자 국가 연대의 이사인 파트리시아 주아레즈를 제2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후지모리 당은 논란이 많은 마르틴 비스카라 해임을 주도했고, 그의 후임으로 마누엘 메리노가 임명되면서 2020년 페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되었고, 시위대 중 두 명의 대학생이 사망했다. 후지모리는 일어난 일에 대해 애도했고 현재 상황을 "유지 불가능"하다고 간주하며 메리노에게 사퇴를 요구하거나 "지금 당장 여기서 비난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그녀는 의회의 다수가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었다.
12월 9일 당내 선거에서 승리하여 푸에르자 포풀라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페루21이 발표한 전국 Datum 여론 조사에서 페루 국민의 63%가 그녀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하면서 선거 운동은 순탄치 않았다.
"강력한 손"과 "권위"를 가진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법 집행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를 제안했다. 과밀 수용을 줄이고 경범죄자에 대한 보호 관찰을 더 많이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도소 건설을 요구했다. 아버지의 사면을 약속하지 않겠다고 했던 이전 선거와 달리, 후지모리는 이번 선거에서 아버지와의 친밀함을 강조하며, 당선 시 아버지를 사면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2021년 4월 11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약 13%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여, 1위인 약 19%의 페드로 카스티요 (자유 페루)와 함께 6월 6일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6월 3일, 리마 근교의 빈곤 지역에서 행한 최종 연설에서, 겐지 후지모리를 등단시켜 단결을 연출했다.
결선 투표 결과, 후지모리는 49.875%의 득표율에 그쳐, 50.125%를 얻은 카스티요가 승리했다. 후지모리는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20만 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페루 선거 당국은 이를 기각했고, 7월 19일 후지모리가 패배를 인정하면서 카스티요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여러 국제 참관인들은 후지모리의 주장에 반박하며 선거 절차가 국제 기준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3.4. 오데브레흐트 스캔들 연루 의혹
2011년 페루 대통령 선거 당시 브라질 건설 회사 오데브레흐트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셀로 오데브레흐트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인정했지만, 후지모리는 자신에 대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2018년 10월 10일, 후지모리는 오데브레흐트 스캔들과 돈세탁 의혹을 둘러싼 조사의 일환으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그녀는 항소 후 10월 17일 구류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10월 31일, 리카르도 콘셉시온 카르안초 판사는 인민 권력당(후에르사 포풀라르) 조사 일환으로, 2011년 대선과 관련된 오데브레흐트사로부터 120만 달러의 돈세탁 의혹(카 워시 작전)과 관련하여 그녀에게 36개월의 예방적 구류를 명령했다. 리카르도 판사는 돈세탁과 관련된 "범죄 조직"을 후지모리가 운영했다는 의혹이 있으며, 도주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2019년 11월 29일 헌법재판소 명령에 따라 석방되었고, 12월 18일 정치 활동의 일시 중지를 표명했다. 부패 의혹에 대한 조사는 계속되었으며, 검찰은 재차 예방적 구류를 요구했지만, 2020년 1월 28일 판사는 다시 후지모리에게 15개월의 예방적 구류를 명령했다. 같은 해 5월 4일, 코로나19 감염의 위험 때문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2021년 3월 11일, 검찰은 후지모리를 돈세탁 등의 죄로 기소했다. 검찰은 후지모리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4. 정치적 입장 및 평가
게이코 후지모리는 페루 내에서 아버지의 후히모리즘 이념을 계속 옹호해 왔으며, 그녀의 정치 경력은 아버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그녀의 정치 운동이 아버지 알베르토의 유산을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권위주의적, 중도 우파, 우익 포퓰리즘, 극우 정치 이념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후지모리는 페루를 "강력한 손"으로 이끌고 민주주의는 "약할 수 없으며 ... 확고한 권위 원칙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유럽계 페루 엘리트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미주 대화의 교수이자 회장인 마이클 쉬프터는 후지모리가 "분명한 정치적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많은 측근들이 그녀의 팀에 남아 있는 것이 "인권 침해, 부패, 양극화된 정치 환경으로 정의되는 시기에 매우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회의 일부에서 저항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아버지의 이미지를 온건하게 만들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반-후히모리즘은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세력 중 하나로 여겨진다.
2016년 3월 입소스(Ipsos)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27%가 그녀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19년 2019년 페루 헌법 위기로 해산될 때까지 페루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던 후지모리의 국민의 힘(Popular Force)은 페루에서 대중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다. 2018년 초, 후지모리는 약 30%의 지지율을 보였다. 2018년 7월까지 그녀의 대중 지지율은 14%로 떨어졌고, 비호감도는 88%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지지율 하락은 그녀를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의 중심에 놓이게 한 혐의와 관련이 있었다. 2021년 1차 대통령 선거 전에 실시된 입소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3%가 그녀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7.1%가 아마 투표하지 않겠다고, 16.3%가 아마 투표하겠다고, 7%가 절대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4.1. 후지모리즘 계승
게이코 후지모리는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후히모리즘 이념을 계승하고 옹호하는 정치인으로, 그녀의 정치 경력은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에서 비롯되었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그녀의 정치 운동이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유산을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권위주의적, 중도 우파, 우익 포퓰리즘, 극우 정치 이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후지모리는 페루를 "강력한 손"으로 이끌어야 하며, 민주주의는 "약할 수 없으며 ... 확고한 권위 원칙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유럽계 페루 엘리트층의 지지를 받았다.
미주 대화(Inter-American Dialogue)의 교수이자 회장인 마이클 쉬프터는 후지모리가 "분명한 정치적 기술"을 가지고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측근들이 그녀의 팀에 남아 있는 것은 "인권 침해, 부패, 양극화된 정치 환경"을 경험했던 페루 사회 일각의 저항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반-후히모리즘은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세력 중 하나로 여겨진다.
2016년 3월 입소스(Ipsos) 여론 조사에서 유권자의 27%가 그녀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19년 2019년 페루 헌법 위기로 해산될 때까지 페루 의회에서 다수당이었던 후지모리의 국민의 힘(Popular Force)은 대중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다. 2018년 초, 후지모리는 약 30%의 지지율을 보였으나, 2018년 7월에는 14%로 하락했고, 비호감도는 88%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지지율 하락은 오데브레히트 스캔들과 관련된 혐의 때문으로 분석된다. 2021년 1차 대통령 선거 전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3%가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4.2. 주요 정책
게이코 후지모리는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후히모리즘 이념을 계승하여 페루 내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왔다. 뉴욕 타임스는 그녀의 정치 운동이 알베르토의 유산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후지모리는 권위주의적, 중도 우파, 우익 포퓰리즘, 극우 정치 이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페루를 "강력한 손"으로 이끌어야 하며, 민주주의는 "약할 수 없으며 ... 확고한 권위 원칙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주 대화(Inter-American Dialogue)의 교수이자 회장인 마이클 쉬프터는 후지모리가 "분명한 정치적 기술"을 가지고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측근들이 그녀의 팀에 남아있는 것은 "인권 침해, 부패, 양극화된 정치 환경"을 경험한 사회 일각의 저항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반-후히모리즘은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세력 중 하나로 여겨진다.
2016년 3월 입소스(Ipsos) 여론 조사에서 유권자의 27%가 후지모리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18년 7월, 그녀의 지지율은 14%로 하락했고, 비호감도는 88% 이상으로 증가했는데, 이는 오데브레히트 스캔들 연루 혐의와 관련이 있었다. 2021년 대선 1차 투표 전 입소스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3%가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주요 정책으로는 시장 경제 옹호 및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성장 촉진,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 및 자유 무역 협정 체결 적극 추진, 강력 범죄 및 테러에 대한 강경 대응, 빈곤 퇴치 및 사회 복지 프로그램 확대, 교육 및 보건 시스템 개선 등이 있다.
4.3. 비판
게이코 후지모리는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후히모리즘 이념을 옹호하며, 그녀의 정치 경력은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에서 비롯되었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그녀의 정치 운동이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유산을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권위주의적, 중도 우파, 우익 포퓰리즘, 극우 정치 이념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후지모리는 페루를 "강력한 손"으로 이끌어야 하며, 민주주의는 "약할 수 없으며 ... 확고한 권위 원칙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미주 대화(Inter-American Dialogue)의 교수이자 회장인 마이클 쉬프터는 후지모리가 "분명한 정치적 기술"을 가지고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측근들이 그녀의 팀에 남아 있는 것이 "인권 침해, 부패, 양극화된 정치 환경으로 정의되는 시기에 매우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회의 일부에서 저항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반-후히모리즘은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세력 중 하나로 여겨진다.
2016년 3월 입소스(Ipsos) 여론 조사에서 유권자의 27%가 그녀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후지모리의 국민의 힘(Popular Force)은 2019년 페루 헌법 위기로 해산될 때까지 페루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했지만, 페루 대중의 지지는 거의 받지 못했다. 2018년 7월, 그녀의 대중 지지율은 14%로 떨어졌고, 비호감도는 88% 이상 증가했는데, 이는 오데브레히트 스캔들 연루 의혹과 관련이 있었다. 2021년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3%가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5. 한국과의 관계
6. 역대 선거 결과
| | 직책명 || 대수 || 정당 || 1차 득표율 || 1차 득표수 || 2차 득표율 || 2차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 2006년 선거 | 국회의원 (리마 선거구) | -대 | 미래를 위한 동맹 | 0% | 602,869표 | 1위 | |||
| 2011년 선거 | 페루의 대통령 | 58대 | 푸에르사 2011 | 23.55% | 3,449,595표 | 48.55% | 7,490,647표 | 2위 | 낙선 |
| 2016년 선거 | 페루의 대통령 | 59대 | 대중의 힘 | 39.86% | 6,115,073표 | 49.88% | 8,555,880표 | 2위 | 낙선 |
| 2021년 선거 | 페루의 대통령 | 63대 | 대중의 힘 | 13.41% | 1,930,762표 | 49.87% | 8,792,117표 | 2위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