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서원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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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고강서원 유허비는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괴산리에 있던 옛 고강서원 터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이 비석은 서원이 훼철된 후 그 자리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순재(醇齋) 김재화(金在華)가 짓고 글씨는 우인(于人) 조규철(曺圭喆)이 썼습니다.
고강서원은 1713년(숙종 39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건립되었으며, 김정철(金廷哲), 장시행(張是行), 손전(孫佺), 장익정(張翼禎) 네 명의 현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1806년(순조 6년)에는 서원으로 승격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습니다.
현재 고강서원 터에는 서원 건물은 남아있지 않고, 훼철 이후 건립된 간암재(澗巖齋)와 유허비만 남아 있습니다. 훼철 당시 '고강서원' 현판은 두 동강으로 파손되었으며, 현재 하단부 한 조각만 전해지고 있어 그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강서원 유허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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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유형 | 유적 |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73호 |
시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
관리 | 고창군수 |
상세 정보 | |
개요 | 조선시대 고창군에 세워졌던 사립 교육 기관인 고강서원(高岡書院)의 옛 터에 세워진 비석이다. |
역사적 배경 | 고강서원은 숙종 21년(1695)에 지방 유림의 공론으로 김황(金煌)·정개(鄭价)·정윤(鄭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
창건 이후 | 이후 김응수(金應壽)·김양진(金養眞)·정렴(鄭濂)·정홍익(鄭弘益)·오상(吳祥)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730년(영조 6)에 ‘고강(高岡)’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
유허비 건립 | 1925년에 옛 서원 터에 비석을 세워 고강서원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
비석 형태 | 비석은 사각형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
비문 내용 | 비문에는 고강서원의 창건 경위와 배향 인물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앞면에는 ‘고강서원유허비(高岡書院遺墟碑)’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건립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
참고 자료 | |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고창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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