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용
1. 개요
고조용은 고구려 왕족 출신으로, 북위 선무제의 후궁이자 문소황후로 추존된 인물이다. 13세에 북위로 이주하여 문성문명황후의 선택을 받아 후궁이 되었으며, 선무제, 광평왕, 장락공주를 낳았다. 496년 낙양으로 이동 중 급군 공현에서 사망했으며, 선무제 즉위 후 문소황후로 추존되었다. 관련 사료로는 위서, 북사, 위문소황태후 산릉지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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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년 사망 -
교황 젤라시오 1세
교황 젤라시오 1세는 교황 수위권을 강조하고 '두 권력' 사상을 제시하며 교황권 강화와 교회 재산 관리 체계 확립에 힘쓴 5세기 로마 교황이다. -
496년 사망 -
장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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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람 -
연남산
연남산은 연개소문의 아들로, 639년에 태어나 701년에 사망했으며, 아들로 천광부를 두었다. -
고구려 사람 -
말갈
6세기경 중국 동북부에 거주하며 수, 당과 관계를 맺고 고구려와 연합하기도 했던 말갈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발해 건국에 참여하거나 여진족의 기원이 되기도 한 부족 연맹체였다. -
5세기 한국 사람 -
고조다
고조다는 고구려 장수왕의 아들이자 문자명왕의 아버지로, 태자와 고추대가를 역임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손자인 문자명왕이 왕위를 이었다. -
5세기 한국 사람 -
이사부
이사부는 신라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우산국 정벌, 병부령 역임, 국사 편찬 건의, 가야 정벌 참여 등 신라의 영토 확장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2. 가계 및 출신
고구려의 고양과 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일가족과 함께 북위로 이주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용성진에 도착하자 진의 관리가 조용의 빼어난 자질을 보고하여 후궁으로 들여야 한다고 상주했다. 조용이 평성에 도착하자 문명태후가 북부조로 나아가 조용의 모습을 보고 후궁으로 들였다.
3. 생애
고조용은 고구려 고양과 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가족과 함께 북위로 이주하던 중,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아 문명태후에 의해 후궁으로 발탁되었다. 483년(태화 7년) 원각(선무제), 488년(태화 12년) 원회 (광평왕), 489년(태화 13년) 원영 (장락공주)을 낳았다. 496년(태화 20년), 평성에서 낙양으로 이동하던 중 급군 공현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풍소의에게 암살되었다는 설이 있다. 처음에는 문소귀인으로 불렸으나, 499년(태화 23년) 아들 선무제가 즉위하면서 문소황후로 추존되었다.
3.1. 북위로의 이주
고구려의 고양과 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일가족과 함께 북위로 이주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용성진에 도착하자 진의 관리가 고조용의 빼어난 자질을 보고하여 후궁으로 들여야 한다고 상주했다. 고조용이 평성에 도착하자 문명태후가 북부조로 나아가 고조용의 모습을 보고 후궁으로 들였다.
3.2. 후궁 생활
고구려 고양의 딸로, 어머니는 개씨이다. 13세 때 일가족과 함께 북위로 이주했다. 용성진에 도착했을 때 진의 관리가 고조용의 빼어난 자질을 보고하여 후궁으로 들여야 한다고 상주했다. 평성에 도착한 고조용을 문명태후가 직접 보고 후궁으로 들였다. 483년(태화 7년) 윤 4월에 원각(훗날 선무제)을, 488년(태화 12년)에 원회(광평왕)을, 489년(태화 13년)에 원영(장락공주)을 낳았다.
3.3. 죽음
496년(태화 20년), 고조용은 평성에서 낙양으로 이동하던 중 급군 공현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사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설에는 풍소의가 보낸 사람에게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 시호는 문소귀인이었으나, 499년(태화 23년) 선무제가 즉위하면서 문소황후로 추존되었다.
4. 사후 추존
고조용은 사후 문소귀인(文昭貴人)으로 추존되었다. 1899년(광무 3년) 아들 의친왕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으며, 선무제 즉위 후에는 문소황후(文昭皇后)로 추존되었다.
5.1. 위서
위서 권13 열전 제1의 내용을 언급한다.
5.2. 북사
북사 권13 열전 제1의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