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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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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덕(高重德, 1923년 2월 18일 ~ 몰년 미상)은 일제강점기의 조선 귀족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다음은 고중덕에 대한 자세한 정보입니다.
생애:


  • 1923년 2월 18일에 태어났습니다.
  • 본관은 제주(濟州), 본적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합동입니다.
  • 1939년 아버지 고흥겸이 사망하자 백작 작위를 승계받았습니다. (만 16세)
  • 그의 증조부는 정미칠적 및 경술국적 중 하나인 고영희이며, 조부는 고희경입니다.
  • 게이오기주쿠대학 출신입니다.
  •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지원했습니다.
  • 1949년 8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불구속 송치되었습니다.
  • 이후 충청남도 예산군으로 낙향하여 농촌 유지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1972년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되었습니다.
  • 1974년 당시 예산 군농협 조합장을 맡았습니다.
  • 1977년 12월 9일, 새마을운동근면장을 수여받았습니다.
  • 2011년 3월 8일, 친일재산 반환 소송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으나,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 2011년 4월,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 2016년 4월 15일 성남도시개발공사 대장동 토지조서에서 당시 소유했던 토지가 확인되었습니다.
  • 이후 근황은 불분명합니다.

친일 행적:

  • 조선 귀족 작위 승계 (백작)
  • 일본군 학도병 지원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명
  • 친일재산 반환 소송

기타: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 2002년 7월 26일, 서울역사박물관에 민속품 61건을 기증했습니다.
  • 생존해 있다면 유일하게 생존 중인 조선 귀족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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