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만취정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만취정은 1913년 심원표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자이다. 심원표는 감역관을 지냈으며, 만년에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살겠다는 뜻을 담아 정자 이름을 만취(晩翠)로 지었다. 전통적인 한국 건축 양식을 따르며, 해강 김규진과 석촌 윤용구의 편액, 기우만, 오계수 등의 시문이 걸려 있다. 현재 청송 심씨 일문의 종회소로 사용되며, 심원표의 초상화가 있는 사당이 함께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광주 광산구의 문화유산 - 호가정
호가정은 조선시대 설강 유사가 지은 정자로, '호가지의'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고, 내부에는 현판과 편액이 걸려 있으며, 설강 사후에는 경렬사에 배향되었다. - 광주 광산구의 문화유산 - 월봉서원
월봉서원은 박순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578년에 창건되어 사액을 받았고, 기호학파 학통을 이었으나 훼철되었다가 복원되어 기대승 추모 행사와 교육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이다. - 광주광역시의 문화유산자료 - 호가정
호가정은 조선시대 설강 유사가 지은 정자로, '호가지의'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고, 내부에는 현판과 편액이 걸려 있으며, 설강 사후에는 경렬사에 배향되었다. - 광주광역시의 문화유산자료 - 풍암정
풍암정은 조선 시대 김덕보가 형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무등산 원효계곡에 지은 팔작지붕 형태의 정자이다. - 광주광역시의 누정 - 호가정
호가정은 조선시대 설강 유사가 지은 정자로, '호가지의'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고, 내부에는 현판과 편액이 걸려 있으며, 설강 사후에는 경렬사에 배향되었다. - 광주광역시의 누정 - 풍암정
풍암정은 조선 시대 김덕보가 형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무등산 원효계곡에 지은 팔작지붕 형태의 정자이다.
광주 만취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만취정 (晩翠亭) |
한자 표기 | 晩翠亭 |
국가 | 광주광역시 |
유형 | 문화재자료 |
지정 번호 | 26 |
지정일 | 2002년 12월 27일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본촌길 29 (동호동) |
면적 | 1977m2 |
수량 | 1동 |
추가 정보 | |
시대 | 알 수 없음 |
소유자 | 알 수 없음 |
참고 사항 | 알 수 없음 |
전승지 | 알 수 없음 |
전승자 | 알 수 없음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문화재청 ID | 31,00260000,24 |
2. 건립 배경 및 의미
만취정은 조선 말 감역(監役)을 지낸 이 마을 출신 학자 심원표(1853~1939)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13년에 지어졌으며, 정자 정면 처마 끝에는 해강 김규진과 석촌 윤용구가 쓴 만취정(晩翠亭) 편액 2개가 걸려 있다. 정자 이름 '만취(晩翠)'는 늘 푸른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만년을 보내겠다는 심원표의 뜻을 담고 있다.
2. 1. 심원표의 생애와 사상
심원표(沈遠杓: 1853~1939)는 조선 말 감역(監役)을 지낸 학자이다. 1913년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만취정이 지어졌다. 심원표는 한말에 감역관(監役官)을 지내기도 했고, 일본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고 고향에 은둔해 강학과 효도로써 한 평생을 마쳤다.만취정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만취정 소서(晩翠亭小序)라는 글이 걸려 있다. "나의 씨족인 심씨의 본관이 청송(靑松)으로 되어 있고 또 솔(松)이라는 나무가 언제나 울창하여 겨울 추위에도 그의 푸름을 잃지 않는 높은 절개를 갖고 있다. 이 정자를 남쪽에 지어 '만취(晩翠)'라 한 것은 소나무의 이러한 절개를 본받아 나의 만년을 보내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한말의 학자인 송사 기우만, 난와 오계수, 후석 오준선, 석음 박노술 등이 심원표의 덕행을 찬미한 시문들도 볼 수 있다.
3. 건축 양식 및 특징
만취정 정면 처마 끝에는 해강 김규진과 석촌 윤용구가 쓴 만취정(晩翠亭) 편액 2개가 걸려 있다.
정자 안에는 "나의 씨족인 심씨의 본관이 청송(靑松)으로 되어 있고 또 솔(松)이라는 나무가 언제나 울창하여 겨울 추위에도 그의 푸름을 잃지 않는 높은 절개를 갖고 있다. 이 정자를 남쪽에 지어 '만취(晩翠)'라 한 것은 소나무의 이러한 절개를 본받아 나의 만년을 보내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라고 씌어 있는 만취정 소서(晩翠亭小序)가 걸려 있다. 한말의 학자인 송사 기우만, 난와 오계수, 후석 오준선, 석음 박노술 등이 심원표의 덕행을 찬미한 시문들도 볼 수 있다.
4. 주변 경관
만취정 주변에는 정자 건립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수령 100여 년 된 고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5. 관리 현황 및 활용
만취정은 현재 청송 심씨 일문의 종회소로 쓰이고 있으며, 비교적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정자 옆 사당 남동사에는 심원표를 비롯하여 청송 심씨 인물들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 소유 및 관리는 심재규가 맡고 있다.
6. 문화재적 가치
만취정은 조선 말 감역(監役)을 지낸 이 마을 출신의 학자 만취(晩翠) 심원표(沈遠杓, 1853~1939)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13년에 지은 정자이다. 심원표는 한말에 감역관(監役官)을 지내기도 했고, 일본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고 고향에 은둔해 강학과 효도로써 한 평생을 마쳤다.
정면 처마 끝에는 해강 김규진과 석촌 윤용구가 쓴 만취정(晩翠亭) 편액 2개가 걸려 있다.
또 정자 안에는 "나의 씨족인 심씨의 본관이 청송(靑松)으로 되어 있고 또 솔(松)이라는 나무가 언제나 울창하여 겨울 추위에도 그의 푸름을 잃지 않는 높은 절개를 갖고 있다. 이 정자를 남쪽에 지어 '만취(晩翠)'라 한 것은 소나무의 이러한 절개를 본받아 나의 만년을 보내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라고 씌어 있는 만취정 소서(晩翠亭小序)라는 글이 걸려 있다. 한말의 학자인 송사 기우만, 난와 오계수, 후석 오준선, 석음 박노술 등이 심원표의 덕행을 찬미한 시문들도 볼 수 있다.
정자 건립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수령 100여 년 된 고목들이 주변에 빽빽이 들어서 있어서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현재 청송 심씨 일문의 종회소로 쓰이고 있으며 비교적 관리 상태가 좋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