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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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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은 충청북도 괴산군에 위치한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칠보산 중턱에 위치하며, 1965년 발견되어 1982년에 복원되었다. 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갖춘 팔각원당형 석탑으로, 통일대사탑비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독특한 입지와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양식은 산천비보사상과 연관되어 있으며, 통일대사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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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 (槐山 覺淵寺 通一大師塔)
위치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각연길 451 (태성리)
문화재 지정 정보
유형대한민국의 보물
지정 번호1370
지정일2003년 3월 14일
시대고려시대
소유자각연사
추가 정보
참고괴산 각연사
좌표
웹사이트
문화재청
문화재청12,13700000,33

2. 역사

각연사칠보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절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통일대사탑비가 있고, 보개산 주봉을 향해 30분 정도 올라가면 중봉 능선에서 탑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탑은 무너져 있다가 1965년에 발견되어 1982년에 괴산군에 의해 복원되었다.

통일대사탑비는 958년에서 960년 사이(고려 광종 9년 8월에서 11년 3월)에 건립되었고, 탑의 주인공이 통일대사임이 밝혀졌으므로 탑비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탑비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건립되어 위치상으로 특이하며, 주변 및 사찰을 조망하기에 좋은 지점에 탑을 건립하는 것은 9세기 이래 산천비보사상과 같은 사상적 배경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2. 1. 건립 시기 및 배경

각연사칠보산 남쪽 기슭에 있다. 절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통일대사탑비가 있고, 여기서 동남쪽에 있는 보개산 주봉을 향해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중봉의 능선상에 탑이 있다. 이 탑은 원래 무너져 있었는데, 1965년에 발견되어 흩어진 부재를 모으고 찾아내 1982년 6월에서 7월 12일까지 괴산군에서 복원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통일대사탑비는 958년에서 960년 사이(고려 광종 9년 8월에서 11년 3월)에 세워졌고, 이 탑의 주인공이 통일대사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탑비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석탑은 절의 한쪽 한적한 곳에 있고, 탑비 역시 근처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탑은 탑비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세워져 있어 위치상 특이한 점을 보인다. 더욱이 탑이 있는 곳에서는 절로 들어오는 길뿐만 아니라 각연사까지 훤히 보여 다른 탑과는 확연히 다른 위치를 택하고 있다. 이처럼 탑의 위치를 탑비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세운 예는 쌍계사 승탑, 보현사 낭원대사탑, 봉암사 정진대사탑 등 소수의 예에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변과 절을 내려다보기 좋은 지점에 탑을 세운 것은 9세기 이래 산천비보사상에 따라 산 정상부에 석탑을 건립하는 것과 같은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2. 발견 및 복원

각연사칠보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절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통일대사탑비가 있으며, 여기서 다시 동남쪽으로 보개산 주봉을 향해 30분 정도 올라가면 중봉 능선에서 탑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탑은 원래 무너져 있었으나 1965년에 발견되었다. 이후 흩어진 부재들을 모아 1982년 6월부터 7월 12일까지 괴산군이 복원 작업을 진행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

2. 3. 위치 및 입지

각연사칠보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절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지점에 통일대사탑비가 있고, 여기서 동남쪽에 있는 보개산 주봉을 향해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중봉의 능선상에 탑이 건립되어 있다. 이 탑은 본래 무너져 있었으나 1965년에 발견되었고, 흩어진 부재를 모으고 찾아내어 1982년 6월에서 7월 12일에 걸쳐 괴산군에 의해 복원되었다.

통일대사탑비는 958년에서 960년(고려 광종 9년 8월에서 11년 3월) 사이에 건립되었고, 이 탑의 주인공이 통일대사임이 밝혀졌으므로 탑비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석조탑은 절의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고, 탑비 역시 근처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탑은 탑비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건립되어 있어 위치상으로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더욱이 탑이 있는 곳에서는 절로 들어오는 진입로뿐만 아니라 각연사까지 조망되고 있어 다른 탑과는 확연히 다른 입지를 택하고 있다. 이처럼 탑의 위치를 탑비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건립한 예는 쌍계사 승탑, 보현사 낭원대사탑, 봉암사 정진대사탑 등 소수의 예에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변 및 사찰을 조망하기에 좋은 지점에 탑을 건립하는 것은 9세기 이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산 정상부에 석탑을 건립하는 것과 같은 사상적 배경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3. 형태

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갖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석조탑으로 전체 높이는 2.3m이다.


  • '''기단부''': 지대석,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 '''탑신부''': 탑신석과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 '''상륜부''': 현재 노반만 남아있다.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하위 섹션을 참조하면 된다.[1]

3. 1. 기단부

기단부는 지대석,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부재(部材)는 완전하다. 지대석과 하대 하단석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지대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하단석 측면에는 좌우로 4개의 괄호 모양인 안상(眼象)이 하나씩 배치되었다. 하대 상단석과 중대석 받침 역시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상단석에는 복엽 16판의 복연(覆蓮)이 조각되었는데, 8각의 각 면과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배치되었다. 꽃잎에는 귀꽃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모두 파손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윗면에는 각형 1단의 받침 위에 굽 모양의 괴임대를 받침으로 삼아 중대석을 놓았다.

중대석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각 모서리에 우주(隅柱, 모서리 기둥)만 새겨져 있다. 상대석 역시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아래 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을, 측면에는 단판 복엽 16판의 앙연(仰蓮)을 배치하였다. 연꽃무늬는 8면의 중앙과 모서리에 각각 8판씩 배치하여 하대 상단석과 같은 양식을 보이고 있다.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만들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3. 2. 탑신부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으로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탑신석의 각 모서리에는 우주(기둥 모양)를 새겼고, 앞면과 뒷면에는 이중선으로 된 장방형 테두리 안에 문양을 새긴 문비형(門扉形)을 표현했다. 옥개석의 아랫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을 만들었고, 처마 밑면에는 각 모서리에 1판씩, 나머지 면에는 3판씩 모두 복엽 32판의 앙연(仰蓮)을 새겼다.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두껍게 조성되었으며, 기왓골은 두툼하게 묘사되었다. 전각(轉角)에는 귀꽃을 배치했는데, 현재 4개는 없어졌고, 나머지 4개는 접착제로 부착되어 있다. 옥개석 정상에는 단엽 16판의 연화문이 조식된 복련대(伏蓮帶)가 있다.

3. 3. 상륜부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어 노반만 남아있는데, 옥개석과 1석으로 조성되었다. 측면에는 단엽 16판의 앙연이 입상형(立狀形)으로 조식되었고 정상에는 찰주공이 남아있다.[1]

4. 의의 및 평가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만들어진 석조 부도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특히, 이 탑은 당시의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4. 1.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갖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석조탑으로 전체 높이는 2.3m이다. 기단부는 지대석,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든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있다. 지대석과 하대 하단석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지대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하단석 측면에는 좌우로 4개의 괄호 모양 안상(眼象)을 1구씩 배치했다. 하대 상단석과 중대석 받침 역시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상단석에는 겹잎 16판의 복연(覆蓮)이 조각되었는데, 8각의 각 면과 모서리에 각각 1구씩 배치하였다. 꽃잎에는 귀꽃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모두 파손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윗면에는 각형 1단의 받침 위에 굽형 괴임대를 받침으로 삼아 중대석을 놓았다. 중대석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 모서리에 우주(隅柱)만을 새겼다. 상대석 역시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아랫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을, 측면에는 단판 겹잎 16판의 앙연(仰蓮)을 배치했다. 연꽃무늬는 8면의 중앙과 모서리에 각각 8판씩 배치하여 하대 상단석과 같은 양식을 보이고 있다.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만들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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