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베르헬
1. 개요
그레고리오 베르헬은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오사수나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발렌시아 CF에서 1957-58 시즌 최소 실점률을 기록하며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다. 발렌시아 소속으로 1961-62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우승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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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테투안의 축구 선수 -
라파엘 레스메스
라파엘 레스메스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러피언컵 5연패를 달성하고 라리가에서 263경기에 출전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동하다 2012년에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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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이리온도
라파엘 이리온도는 아틀레틱 빌바오의 전성기를 이끈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의 감독을 맡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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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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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1930년 출생 -
오극렬
오극렬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북한 핵심 요직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군사 및 정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불법 활동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1930년 출생 -
강능수
강능수는 일제강점기 평양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문화상과 내각 부총리를 지낸 북한의 정치인이자 문학가이다.
2. 선수 경력
고요 베르헬은 오사수나와 발렌시아에서 주로 활약한 골키퍼였다. 오사수나에서 1부 리그에 데뷔했지만,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이후 발렌시아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1957-58 시즌 최소 실점률을 기록,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9년부터 후보 선수로 밀려났고, 1961-62 시즌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1. 오사수나
고요 베르헬은 오사수나 소속으로 1953-54 시즌에 1부 리그 신고식을 치렀다. 이 시즌에 그는 1부 리그 경기에 7번 출전했고, 첫 출전 경기는 1953년 9월 13일, 0-2로 패한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였다. 이 시즌에 팜플로나를 연고로 하는 구단은 2부 리그로 강등되었고, 이후 고요 베르헬은 또다른 2부 리그 구단인 카디스의 골문을 지키게 되었다.
2.2. 발렌시아 CF
1956-57 시즌, 발렌시아는 그레고리오 베르헬에게 1부 리그에서 활약할 기회를 다시 부여했다. 고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오 티모르를 제치고 주전으로서 3년을 활약했고, 발렌시아 연고 구단의 수문장으로 활약하면서 1957-58 시즌에 정점에 올랐는데, 최소 실점률을 기록해 훗날 마르카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여했다.
1959년을 기점으로, 호세 마누엘 페수도에 밀려 후보로 밀려났다. 페수도가 1961-62 시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다시 주전 지위를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시즌 초에 호세 히네스타와 주전 수문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리카르도 사모라의 아들이 영입되면서, 고요 베르헬은 자신이 곧 방출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전에서 발렌시아 골문을 지켜 소속 구단의 첫 유럽대항전 우승 주역이 되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3. 수상 내역
그레고리오 베르헬은 인터시티스 페어스컵과 사모라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