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1950년 국가계획위원회 지도원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당 중앙위원회 과장, 경공업성 부상, 정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등을 지냈으며, 김일성 및 오진우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김복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복신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일1925년
출생지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학력김일성종합대학
중앙당학교
정치 경력
기타 정보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평안북도 출신 - 양세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양세봉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지휘관으로서,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융링제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일본군 밀정의 계략으로 암살당했고 남북한 모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평안북도 출신 - 김계관
    김계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의 고위 외교관으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여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등을 역임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참여, 외무성 부상 및 제1부상 등을 거치며 북한 외교 정책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20세기 한국 사람 - 백낙청
    백낙청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로서, 《창작과비평》 창간, D. H. 로런스 연구, 유신 정권 비판, 남북 화해와 통일 운동 참여, 민족 문학론과 분단 극복론 주창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 20세기 한국 사람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2. 경력

김복신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국가계획위원회, 당 중앙위, 경공업성 등에서 활동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정무원 부총리, 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정치국 후보위원 등을 역임하며 고위직을 맡았다. 김일성오진우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1. 초기 경력 (1950년대 ~ 1970년대 초)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연도직책
1950년국가계획위원회 지도원, 국장
1958년당 중앙위 과장, 길주팔프공장 지배인, 경공업성 부상
1959년당 중앙위 부부장, 함경북도 인민위원회 지방산업관리국 국장
1960년당 중앙위 경공업부 부부장
1961년경공업위원회 부위원장
1966년평양시 지방산업총국 부총국장
1971년방직공업성 부상, 방직공업상
1972년북 · 이라크 친선협회 위원장 겸 피복가공기술협회 위원장, 경공업위원회 방직 및 피복공업총국 총국장
1974년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비서

2.2. 정무원 및 당 고위직 (1980년대 ~ 1990년대)

198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81년 정무원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2년 정무원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장, 당 중앙위 위원을 계속 역임했다.

1983년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었고, 1984년 정무원 부총리 겸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1985년 정무원 부총리 겸 무역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86년 조선국제합영총회사 이사장을 맡았으며, 1988년 다시 정무원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1994년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1995년 오진우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1998년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