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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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익노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헌 국회의원부터 제4대 국회의원까지 4선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일군 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며, 이후 제2대, 제3대,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특히 제3대와 제4대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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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대 선거 결과
김익노는 제헌, 제2대, 제3대,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 영일군 을 선거구에 당선되었으나,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였다.
2.1. 제헌 국회의원 선거 (1948년)
김익노는 1948년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영일군 을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3,545표(42.02%)를 얻어 당선되었다. 당시 이승만 계열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한국민주당에 합류하였으나, 김익노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점이 주목할 만하다.
2.2. 제2대 국회의원 선거 (1950년)
김익노는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6,988표(20.80%)를 얻어 당선되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2.3.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김익노는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72.1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4.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김익노는 195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4선에 성공하였다. 당시 자유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과 영일군 을 지역구에서의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32,108표(82.31%)를 얻어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2.5. 제5대 국회의원 선거 (1960년)
김익노는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 영일군 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3,309표(9.14%)를 얻어 6위로 낙선하였다. 이 선거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하고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는 정치적 격변기에 치러졌다. 김익노는 이전까지 자유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4.19 혁명 이후 정권 교체와 함께 치러진 선거에서 민심을 얻지 못하고 낙선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