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옥
1. 개요
김청옥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지도자, 코치였다. 1960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입단하여 1962년 전국 아구 선수권 대회 MVP를 수상했다. 1963년 해군헌병감실 야구단 소속으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농협으로 복귀했으나 1970년 초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광주일고 감독과 농협 야구단 감독을 역임했으며, 1984년 LA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투수 코치를 지냈으며, 2021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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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허구연은 대한민국 전 야구 선수이자 해설가, KBO 총재로서, 선수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명성을 얻고 지도자 경력을 거쳐 KBO 총재로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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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1947년)
김인식은 선수 시절 투수로 활동하다 은퇴 후 배문고, 상문고,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거쳐 프로야구 감독으로 활동하며 한국시리즈 우승, 아시안 게임 금메달, WBSC 프리미어12 우승 등을 이끌었고 현재는 KBO 규칙위원회 및 기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2. 선수 시절
김청옥은 1960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입단했다. 1962년 신인 선수로서 제8회 전국 아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 농협의 우승과 함께 대회 MVP를 수상했다. 1963년 해군헌병감실 야구단에 입대하여 196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 발탁, 필리핀전 선발 등판 및 4회 2루타를 기록했고,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대한민국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군 복무 후 농협으로 복귀, 주축 선수로 활동했으나, 1970년 초 은퇴했다.
2.1. 아마추어 야구 선수 (1960-1970)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농협에 입단했다. 1962년 신인 선수로서 제8회 전국 아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농협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를 수상했다. 1963년 입대해 새로 창단한 해군헌병감실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했다. 해헌 소속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196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9월 26일 필리핀전에 선발 등판해 9번 타자로 출전, 4회 2루타를 기록했다. 대회 마지막 날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대한민국은 대회 개최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농협 야구단으로 복귀했다. 농협의 주축 선수로 활동했으나, 1960년대 말 농협이 계속해서 하위권을 기록하자 기존 선수들을 교체하기로 결정하면서 1970년 초 은퇴했다.
2.2. 군 복무와 국가대표 (1963-1960년대 말)
1963년 입대해 새로 창단한 해군헌병감실 야구단 소속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해군 헌병감실(해헌) 소속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196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발탁되었다. 9월 26일 필리핀전에서 선발 투수이자 9번 타자로 출전해 4회 2루타를 기록했다. 대회 마지막 날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대한민국은 대회 개최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농협 야구단으로 복귀하여 주축 선수로 활동했으나, 1960년대 말 농협이 계속해서 하위권을 기록하자 기존 선수들을 교체하기로 결정하면서 1970년 초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2021년 9월 21일에 김청옥은 사망하여 경기도 용인시 평온의 숲에 안장되었다.
3.1.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1976-1985)
은퇴 이후 실업 야구 심판교육을 받아 전속심판으로 경기에 나오기도 했으며, 1976년부터 1979년까지 광주일고 감독직을 역임했다. 이후 실업 야구 농협 야구단의 감독직을 역임했다. 198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1985년 대륙간컵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었고, 1년 뒤에 열린 LA 올림픽에서는 감독을 맡았다. 3, 4위전까지 진출했으나 대만에 0-3으로 패하며 4위를 기록했다.
3.2. 프로 야구 코치 (1986-1989)
1986년 시즌 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투수 코치직을 제안받아 1987년부터 3년간 계약금 30, 연봉 27에 계약했다. 강병철 당시 롯데 감독은 김청옥을 비롯한 코치진 개편에 반대했으나, 롯데가 강병철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하면서 정상적으로 프로 코치직을 역임하게 되었다. 1987년 시즌 뒤 새로 부임한 어우홍 감독은 투수 코치를 2명 두기로 결정하고 재일동포 김정행을 플레잉코치로 승격하려 했다. 그러나 같은 팀 에이스이자 국내파 간판 투수 최동원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실패했다.
1989년 롯데 자이언츠가 최하위를 기록했고, 허구연 타격코치와의 불화설 등이 나오자 코치진 개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김청옥은 1989년 6월 29일부터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어우홍 감독이 1989년 시즌을 끝으로 물러나고 김진영 전 청보 감독이 같은 해 11월 2일부터 2년 계약 형식으로 롯데 감독에 취임하면서 단행된 개편에 따라 팀을 떠나야 했다. 김청옥의 후임으로는 김진영 감독의 삼미-청보 시절 제자인 장명부가 같은 달 30일부터 1년 계약 형식으로 부임했다.
4. 사망
2021년 9월 21일에 사망하여 경기도 용인시 평온의 숲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