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민공
1. 개요
노 민공은 춘추 시대 노나라의 제14대 군주이다. 노 장공의 아들이며, 공자 반, 노 희공의 동생이다. 기원전 662년 공자 경보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2년 만에 경보에게 암살당했다. 제 환공과 맹약을 맺어 공자 계우를 귀환시켰으며, 경보에게 휘둘린 삶을 살았다.
-
기원전 609년 사망 -
제 의공
제 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형을 살해하고 즉위했으나 폭정과 사치로 민심을 잃어 재위 4년 만에 살해당한 폭군이다. -
기원전 609년 사망 -
노 문공 (21대)
노 문공은 춘추 시대 노나라의 제21대 군주로, 기원전 625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609년에 사망했으며, 재위 기간 동안 주변 국가들과 복잡한 외교 관계를 맺고 적의 침입을 격퇴했다. -
살해된 사람 -
정인보
정인보는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시기에 활동한 사학자, 시조 작가, 교육자로, 민족주의 역사관과 ‘얼’ 사상을 형성하고, 연세대학교 강사, 동아일보 논설위원, 국학대학교 학장,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사 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살해된 사람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
기원전 7세기 중국 사람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7세기 중국 사람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2. 사적
어머니는 노 장공의 정실 부인 애강의 여동생 숙강이었으나, 아버지는 서장자인 공자 반을 후계자로 정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임금이 될 가능성이 낮았다.
기원전 662년, 공자 경보가 공자 반을 시해하고 민공을 노나라 임금으로 옹립했다. 이때 공자 계우는 진나라로 달아났다.
민공 원년(기원전 661년), 제 환공과 맹약을 맺어 계우를 귀국시켰다. 이때 민공은 낭(郞) 땅까지 나가서 돌아오는 계우를 기다렸다.
계우가 돌아온 후에도 경보는 계속 노나라 임금 자리를 노리고 있었고, 민공 2년(기원전 660년), 민공의 스승 복의(卜齮)가 밭을 빼앗자 경보는 복의를 시켜 민공을 시해했다.
4. 연표
| 연도 | 사건 |
|---|---|
| 기원전 662년 | 공자 경보가 공자 반을 시해하고 민공을 노후로 옹립함. 이때 공자 계우는 진나라로 달아남. |
| 기원전 661년 | 제 환공과 맹약을 맺어 계우를 귀환시킴. 이때 민공은 낭(郞) 땅까지 나가서 돌아오는 계우를 기다림. |
| 기원전 660년 | 민공의 스승 복의(卜齮)가 밭을 빼앗긴 것에 원한을 품자, 경보는 복의를 시켜 민공을 시해함. |
5. 평가
민공은 재위 기간이 불과 2년으로, 경부에게 휘둘린 생애를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5.1. 부정적 평가
민공은 장공의 아들이었지만, 차기 노공은 계우가 추대하는 서자 공자 반이 유력했기 때문에 공위 계승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장공 32년(기원전 662년)에 장공이 사망한 직후 노공이 된 반을 경부가 암살하고, 경부의 추대를 받아 이듬해 민공 원년(기원전 661년)에 노공의 자리에 오른다.
그 후, 제나라로 망명했던 계우를 불러들이기 위해 제나라 환공에게 계우의 귀국을 요청하여, 성공적으로 실현시킨다. 이 때 민공이 직접 귀국 도중인 계우를 맞이하러 갔다는 점에서, 민공은 계우를 경부 이상으로 신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민공 2년(기원전 660년)에 노공의 자리를 노리던 경부에 의해 암살당한다. 재위 기간은 불과 2년으로, 그야말로 경부에게 휘둘린 생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