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누마 오키노부
1. 개요
다누마 오키노부는 다누마 오키토모의 넷째 아들로, 1782년에 태어났다. 1800년, 형인 다누마 오키카즈의 요절로 그의 양자가 되어 가문을 이었으나, 1803년에 2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뒤는 양자인 다누마 오키사다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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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무라번주 (무쓰국) -
다누마 오키아키
다누마 오키아키는 에도 시대 인물로 다누마 오키토모의 아들이자 다누마 오키쓰구의 손자이며, 가문 계승 후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숙청으로 고초를 겪다 오사카 가반 임명 후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동생 다누마 오키이치가 가문을 이었다. -
시모무라번주 (무쓰국) -
다누마 오키마사
다누마 오키마사는 에도 시대 인물로 다누마 오키쓰구의 아들이자 미즈노 다다토모의 양자이며, 아버지 실각 후 가문 재건을 위해 노력하여 옛 영지로 복귀했고 막부에서 오반가시라와 와카도시요리를 역임했다. -
다누마씨 -
다누마 오키쓰구
다누마 오키쓰구는 에도 시대 후기 쇼군의 신임을 얻어 로주에 올라 막부 재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부정부패와 농촌 황폐화로 비판받으며 실각한 인물이다. -
다누마씨 -
다누마 오키아키
다누마 오키아키는 에도 시대 인물로 다누마 오키토모의 아들이자 다누마 오키쓰구의 손자이며, 가문 계승 후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숙청으로 고초를 겪다 오사카 가반 임명 후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동생 다누마 오키이치가 가문을 이었다. -
1803년 사망 -
조지 배스
영국의 해군 군의관이자 탐험가인 조지 배스는 매슈 플린더스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해안을 탐험하고 태즈메이니아가 섬임을 확인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배스 해협이 생겨났으나 1803년 항해 중 실종되었다. -
1803년 사망 -
이폴리트 보그다노비치
이폴리트 보그다노비치는 18세기 러시아의 시인이자 번역가, 계몽주의 사상가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을 러시아에 전파하는 데 기여했으며 서사시 《두셴카》가 대표작이고, 초기 사회 개혁적 작품을 쓰다가 궁중 시인으로 활동하며 체제 순응적인 경향을 보였다.
2. 가계
다누마 오키노부는 1782년(텐메이 2년) 다누마 오키토모(다누마 오키쓰구의 적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실은 마쓰다이라 요리마에의 양녀(마쓰다이라 요리아키의 딸)이다.
1800년(간세이 12년)에 둘째 형 오키카즈가 오키아키에 이어 요절했기 때문에, 오키카즈의 양자가 되어 뒤를 이었다. 그러나 1803년(교와 3년) 9월 12일, 오키노부도 2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후 다누마 오키무네의 넷째 아들인 오키사다가 양자가 되어 뒤를 이었다.
2.1.1. 친부
다누마 오키토모
2.1.2. 양부
2.2. 처와 양자
마쓰다이라 요리사키의 양녀이자 마쓰다이라 요리하루의 딸을 정실로 맞이했다. 다누마 오키무네의 넷째 아들 다누마 오키사다를 양자로 들였다.
2.2.1. 정실
마쓰다이라 요리사키의 양녀이자 마쓰다이라 요리하루의 딸이다.
2.2.2. 양자
다누마 오키사다 - 다누마 오키무네의 넷째 아들
3. 생애
텐메이 2년(1782년) 다누마 오키쓰구의 적자 다누마 오키토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실은 마쓰다이라 요리아키의 딸로, 마쓰다이라 요리마에의 양녀이다. 간세이 12년(1800년) 둘째 형 오키카즈가 그보다 앞서 사망한 큰형 오키아키에 이어 요절하자, 그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교와 3년(1803년) 9월 12일, 오키노부 또한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가독은 양자인 다누마 오키무네의 넷째 아들 오키사다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