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무라 무라타카
1. 개요
다무라 무라타카는 센다이 번의 번주 다테 요시무라의 아들로, 이치노세키 번의 번주가 된 인물이다. 그는 다테 무라토모의 양자가 된 후, 다무라 무라아키의 양자가 되어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았다. 조카인 다테 시게무라가 센다이 번주가 되자 후견인을 맡았으며, 유학자 아시노 토잔을 사면하도록 조언하여 이치노세키 학관 설립에 기여했다. 하지만 냉해와 한발로 번 재정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46세에 사망하였으며, 양자인 다무라 무라모토가 가독을 상속했다.
| 씨명 | 이타테 씨 → 다무라 씨 |
|---|---|
| 이름 | 다테 무라카쓰/다무라 무라타카 |
| 개명 | 고우노스케 (유명) 이타테 무라토키 무라카쓰 다무라 무라타카 |
| 자 | 시키부 (통칭) |
| 시호 | 해당 없음 |
| 계명 | 게이도쿠인덴 겐곤도유다이코지 |
| 묘소 | 도쿄도미나토구다카나와의 도젠지 |
| 관위 | 종5위하 시모사노카미 사쿄다이부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다테 요시무라 무라무네 도쿠가와 이에시게 이에하루 |
| 번 | 무쓰센다이번 무쓰 이치노세키번 번주 |
| 씨족 | 다테 씨 → 다무라 씨 |
| 출생 | 겐분 2년 5월 23일 (1737년6월 21일) |
| 사망 | 덴메이 2년 2월 6일 (1782년3월 19일) |
| 부모 | 아버지: 다테 요시무라, 어머니: 다카하시 하루마사의 딸・윤 |
| 양부 | 다테 무라토모 다무라 무라아키 |
| 형제자매 | 다테 무라마사 기쿠지로 다테 무라카제 히데히메 가즈히메 도미히메 다치바나히메 사토히메 다테 무라무네 미호히메 유리히메 사토히메 무라타카 모 도미노스케 다테 무라요시 |
| 배우자 | 다테 무라자네의 딸・고치 |
| 자녀 | 양자: 다테 무라요시、무라스케 |
| 직책 | 이치노세키번 번주 |
|---|---|
| 대수 | 4 |
| 임기 | 1755년 ~ 1782년 |
| 전임자 | 다무라 무라아키 |
| 후임자 | 다무라 무라스케 |
-
도메 다테가 -
다테 나리쿠니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12대 번주인 다테 나리쿠니는 이달 가문 양자로서 번주가 되어 기근 대비 정책과 번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잦은 재해와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받았으며, 학문과 문학 장려로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도메 다테가 -
다무라 무라스케
다무라 무라스케는 에도 시대 이치노세키 번의 5대 번주로, 번교 창설과 기근에 대한 발빠른 대처로 백성을 위한 마음을 보여주었으며 양자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하였다. -
이치노세키번주 -
다테 무네카쓰 (에도 시대)
다테 무네카쓰는 에도 시대 센다이 번 초대 번주 다테 마사무네의 아들로, 형의 사후 번주를 보좌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다테 소동으로 인해 개역되어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
이치노세키번주 -
다무라 구니미치
에도 시대 이치노세키 번의 8대 번주인 다무라 구니미치는 번교 재흥, 의학관 및 신세이칸 설립, 서양식 군대 도입 등 번정 개혁을 추진하여 명군으로 칭송받았다. -
1782년 사망 -
다니엘 베르누이
다니엘 베르누이는 스위스 출신의 수학자, 물리학자, 의사로 유체역학, 특히 베르누이 원리로 유명하며, 유체 운동 이론 제시, 기대효용 이론 연구, 천연두 예방 접종 효과 분석 등 다양한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
1782년 사망 -
앤 보니
앤 보니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활동한 아일랜드계 여성 해적으로, 캘리코 잭 랙험과 함께 해적 활동을 했으며 메리 리드와 용맹을 떨쳤고, 사형 선고 후 행적이 묘연하여 대중문화에서 여성 해적의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2. 생애
겐분 2년(1737년) 5월 23일, 무쓰국 센다이 번 제5대 번주 다테 요시무라의 다섯째 아들로 아오바 성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이름은 고고로였다. 간포 2년(1742년) 도메 다테 가문 당주 다테 무라토모의 양자가 되어 다테 무라요시(むらよし)로 이름 지었다가, 이후 무라카쓰로 개명했다.
호레키 2년(1752년) 5월 무쓰국 이치노세키 번주 다무라 무라아키의 양자로 입적되어 다무라 무라타카로 개명하고, 도메 다테 가문의 가독은 동복 동생 무라요시에게 양도했다. 호레키 5년(1755년) 9월 24일, 무라아키가 사망함에 따라 가독을 상속하고, 호레키 6년(1756년) 조카인 시게무라가 센다이 번주가 되자 후견인을 맡았다.
호레키 13년(1756년), 센다이 번에 의해 칩거당했던 유학자 아시노 토잔을 사면하도록 시게무라에게 조언하여 실현시켰다. 토잔은 무라타카에게 이치노세키에 학교 설립을 요청했고, 무라타카도 이에 찬성하여 무라타카 사후 덴메이 3년(1783년) 이치노세키 학관 창설로 이어졌다. 그러나 냉해와 한발이 매년 반복되었고, 그로 인해 번 재정이 파탄 직전에 몰려 이치노세키 번사들이 종가인 센다이 번에 직접 호소하는 사건이 3번 발생했다.
덴메이 2년(1782년) 2월 6일 사망했다. 향년 46세. 양자인 무라모토(무라요시의 장남)가 가독을 상속했다.
2.1. 출생과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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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村村隆일본어는 겐분 2년(1737년) 5월 23일, 무쓰국 센다이 번 제5대 번주 다테 요시무라의 다섯째 아들로 아오바 성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이름은 고고로였다.
간포 2년(1742년)에 일문인 도메 다테 가문 당주 다테 무라토모의 양자가 되어 다테 무라요시(むらよし)라고 이름을 짓고, 이후 무라카쓰로 개명하였다.
호레키 2년(1752년) 5월, 무쓰국 이치노세키 번주 다무라 무라아키의 양자로 입적되어 다무라 무라타카로 개명하고, 도메 다테 가문의 가독은 동복 동생 무라요시에게 양도하였다.
2.2. 이치노세키 번주
호레키 2년(1752년) 5월, 무쓰국 이치노세키 번주 다무라 무라아키의 양자가 되어 다무라 무라타카로 개명하고, 도메 다테 가문의 가독은 동복 동생 무라요시에게 물려주었다. 호레키 5년(1755년) 9월 24일, 무라아키가 사망하면서 가독을 상속했다. 호레키 6년(1756년), 조카인 시게무라가 센다이 번주가 되자 후견인을 맡았다. 같은 해, 센다이 번에 의해 칩거당했던 유학자 아시노 토잔을 사면하도록 시게무라에게 조언하여 이를 실현시켰다. 아시노 토잔은 무라타카에게 이치노세키에 학교 설립을 요청했고, 무라타카도 이에 찬성하여 무라타카 사후 덴메이 3년(1783년)에 이치노세키 학관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냉해와 한발이 매년 반복되었고, 그로 인해 번 재정이 파탄 직전에 몰려 이치노세키 번사들이 종가인 센다이 번에 직접 호소하는 사건이 3번 발생했다.
덴메이 2년(1782년) 2월 6일,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양자인 무라모토(무라요시의 장남)가 가독을 상속했다.
2.3. 번 재정의 어려움
호레키 13년(1756년), 센다이 번에 의해 칩거당했던 유학자 아시노 토잔을 사면하도록 시게무라에게 조언하여 실현시켰다. 토잔은 무라타카에게 이치노세키에 학교 설립을 요청했고, 무라타카도 이에 찬성하여 무라타카 사후 덴메이 3년(1783년)에 이치노세키 학관 창설로 이어졌다. 그러나 냉해와 한발이 매년 반복되었고, 그로 인해 번 재정이 파탄 직전에 몰려 이치노세키 번사들이 종가인 센다이 번에 직접 호소하는 사건이 3번 발생했다.
3. 계보
* 정실: 다테 무라자네의 딸 코치(에이주인)
* 양자
다테 무라요시 - 친동생
다무라 무라토모 - 다테 무라요시의 장남
3.2. 정실
다테 무라자네의 딸 코치(에이주인)
3.3. 양자
* 다테 무라요시 - 친동생
* 다무라 무라토모 - 다테 무라요시의 장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