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하천연
1. 개요
단하천연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승려이다. 그의 법명인 천연은 천진난만한 성품에서 유래되었으며, 스승인 마조도일에게 인사를 드리기 전 나한상을 타고 놀았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혜림사에서 묵게 된 어느 겨울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법당의 나무 불상을 쪼개 불을 지핀 단하소불(丹霞燒佛) 일화는 불교의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진정한 깨달음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 법명 | 천연(天然) |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 | 736년 |
|---|---|
| 사망 | 824년 |
| 속성 | 미상 |
-
736년 출생 -
혼감
혼감은 당나라 군인으로, 11세에 삭방군에 들어가 군공을 세우고 안사의 난과 주차의 난에서 활약하여 좌효위장군, 개부의동삼사, 태상경 등을 거쳐 염주성 수축 공로로 검교사도 겸 중서령이 되었으며, 799년에 사망했다. -
824년 사망 -
교황 파스칼 1세
교황 파스칼 1세는 98대 교황으로, 프랑크 황제 루트비히 1세의 승인 하에 동로마 제국의 성상 파괴 운동을 피해 망명한 수도자들을 보호하고 로마의 여러 성당을 재건 및 장식하는 데 힘썼으며, 특히 성녀 체칠리아의 유해를 찾아 산타 체칠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을 재건하고 산타 프라세데 성당을 보수하는 데 기여한 후 시성되었다. -
824년 사망 -
당 목종
당 목종은 당 헌종의 아들로 환관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절도사들의 반란과 환관의 득세, 잦은 유희와 방탕한 생활로 당나라 쇠퇴의 원인이 된 제13대 황제이다. -
불교 철학자 -
한용운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로,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불교 혁신과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 저항 문학을 대표했다. -
불교 철학자 -
정병욱
정병욱은 한국 국문학자이자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 보관, 한국 고전문학 연구 및 판소리 보존·대중화 기여, 하버드·파리대학교 초빙교수 활동 등 한국 문학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여러 상을 수상하고 그의 가옥은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2. 일화
단하천연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 법명이 천연(天然)이 된 이유: 천연스님이 마조선사에게 인사를 하기 전에 석가모니부처의 제자를 본떠 만든 나한상을 말을 타듯이 올라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마조선사에게 말했고, 마조선사가 이 모습을 보고는 “내 자식아, 천연(天然)스럽구나.”라고 하였다. 이러한 천연덕스러운 행동으로 천연(天然)이라는 법호를 얻게 되었다.
* 단하소불(丹霞燒佛): 단하천연이 부처를 태우다: 어느 겨울, 천연스님이 혜림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절에 늦게 도착하여 공양(식사)을 하지 못한 데다, 방에 불도 때어주지 않아 추위와 배고픔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천연스님은 법당으로 가 나무 불상을 쪼개 불을 피웠다.
2.1. 법명이 천연(天然)이 된 이유
천연스님이 마조선사에게 인사를 하기 전에 석가모니부처의 제자를 본떠 만든 나한상을 말을 타듯이 올라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마조선사에게 말했고, 마조선사가 이 모습을 보고는 “내 자식아, 천연(天然)스럽구나.”라고 하였다. 이러한 천연덕스러운 행동으로 천연(天然)이라는 법호를 얻게 되었다.
2.2. 단하소불(丹霞燒佛): 단하천연이 부처를 태우다
어느 겨울, 천연스님이 혜림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절에 늦게 도착하여 공양(식사)을 하지 못한 데다, 방에 불도 때어주지 않아 추위와 배고픔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천연스님은 법당으로 가 나무 불상을 쪼개 불을 피웠다.
혜림사의 스님들은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 천연스님을 꾸짖었다. 그러나 천연스님은 다비식(화장)을 통해 부처님의 사리를 얻으려 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혜림사 주지가 나무 불상에서 사리가 나올 리 없다고 반박하자, 천연스님은 사리도 나오지 않는 부처라면 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