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나스 카르바우스키스
1. 개요
라무나스 카르바우스키스는 리투아니아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993년 아그로콘체르나스를 설립하여 CEO를 역임하며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 정치에 참여하여 세 번의 세이마스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는 리투아니아 농민당 당 의장과 세이마스 부의장을 역임했으며, 2009년부터 리투아니아 농민 녹색 연합의 의장을 맡아 2016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또한, 2014년 리투아니아 헌법 국민투표를 조직했으며, 사회 공헌 활동과 논란에도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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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세이마스 의원 |
|---|---|
| 선거구2 | 샤울랴이 시골 지역 |
| 임기 시작2 | 1996년 11월 25일 |
| 임기 종료2 | 2004년 10월 18일 |
| 전임2 | 민다우가스 스타크빌레비치우스 |
| 후임2 | 리마 바슈키에네 |
| 선거구 | 다수 대표 |
| 임기 시작 | 2020년 11월 13일 |
| 임기 종료 | 2020년 11월 24일 |
| 후임 | 아스타 쿠빌리에네 |
| 선거구1 | 실라이나이 |
| 임기 시작1 | 2016년 11월 14일 |
| 임기 종료1 | 2020년 11월 13일 |
| 전임1 | 리만타스 요나스 다기스 |
| 후임1 | 유르기타 슈유그주디니에네 |
| 직책3 | 농민녹색연합 의장 |
| 임기 시작3 | 2009년 4월 15일 |
| 전임3 | 카지미라 프룬스키에네 |
| 직책4 | 세이마스 의장 대리 |
| 임기 시작4 | 2000년 11월 24일 |
| 임기 종료4 | 2001년 5월 15일 |
| 후임4 | 비테니스 안드류카이티스 |
| 출생일 | 1969년 12월 5일 |
|---|---|
| 출생지 | 소비에트 점령 리투아니아 나이시아이 |
| 배우자 | 리나 카르바우스키에네 |
| 자녀 | 2 |
| 모교 | 리투아니아 농업 아카데미 |
| 소속 정당 | 무소속 (1998년 이전) |
|---|---|
| 소속 정당 | 농민당 (1998–2001) |
| 소속 정당 | 농민녹색연합 (2001–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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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기업인 -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소련 태생 리투아니아 사업가이자 투자자인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는 우키오 은행 설립,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와 BC 잘기리스 구단주를 역임했으나, 우키오 은행 파산 후 기소되었고 리투아니아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 박탈되기도 했다. -
리투아니아의 정치인 -
잉그리다 시모니테
리투아니아 정치인 잉그리다 시모니테는 빌뉴스 대학교 경제학 학위 후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세이마스 의원을 거쳐 총리로 재임하며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하고 타이완과의 관계 강화로 중국과의 갈등을 빚었으며, 다수의 훈장을 수상했다. -
리투아니아의 정치인 -
카지미라 프룬스키에네
카지미라 프룬스키에네는 리투아니아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독립을 선포한 리투아니아의 초대 여성 총리를 역임하며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려 노력했고, 농업부 장관과 여러 정당의 지도자를 지냈으며,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펼쳤다. -
1969년 출생 -
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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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출생 -
윌리엄 루이스 (언론인)
윌리엄 루이스는 잉글랜드 출신의 언론인으로, 파이낸셜 타임스,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다우존스 앤 컴퍼니의 CEO를 거쳐 2023년 워싱턴 포스트의 CEO 겸 발행인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1969년 12월 5일 리투아니아 나이시아이에서 태어났다. 1987년 샤울리아이에 있는 율리우스 야노니스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리투아니아 농업 아카데미 농학과에 입학하여 1992년 졸업했다.
젊은 시절 체커에 대한 열정을 보였고, 국제 체커와 러시안 체커에서 마스터 후보 자격을 얻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리투아니아 청소년 국가대표팀 러시안 체커 선수로 활동했다.
1993년 아그로콘체르나스를 설립하고 최고 경영자(CEO)로 활동했다. 20년 동안 아그로콘체르나스는 800명 이상을 고용하며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농업 그룹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카르바우스키스는 회사의 완전한 소유권을 유지하여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69년 12월 5일 리투아니아 나이시아이에서 태어났다. 1987년 샤울리아이에 있는 율리우스 야노니스 중등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리투아니아 농업 아카데미 농학과에 입학하여 1992년 졸업했다.
젊은 시절 체커에 대한 열정을 보였고, 국제 체커와 러시안 체커에서 마스터 후보 자격을 얻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리투아니아 청소년 국가대표팀 러시안 체커 선수로 활동했다.
2.2. 기업 활동
1993년 카르바우스키스는 아그로콘체르나스를 설립하고 최고 경영자(CEO)로 활동했다. 이후 20년 동안 아그로콘체르나스는 800명 이상을 고용하며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농업 그룹 중 하나로 성장했다. 카르바우스키스는 회사의 완전한 소유권을 유지하여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3. 정치 경력
1996년 리투아니아 의회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세이마스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고, 이후 세 차례 의원직을 역임했다. 1997년과 2000년에는 샤울리아이 구(Šiauliai district municipality) 의회 의원을 지냈다. 2009년부터는 리투아니아 농민 녹색 연합의 전신인 리투아니아 농민 대중 연합의 의장을 맡았다.
3.1. 리투아니아 세이마스 의원
1996년 리투아니아 의회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샤울리아이 (농촌) 단독 선거구 (45)에서 당선되어 제7대 리투아니아 세이마스 의원이 되었다. 1998년 리투아니아 농민당(LVP)에 입당하여 당 의장이 되었다.
2000년 리투아니아 의회 선거에서 LVP를 대표하여 단독 선거구에서 재선되었다. 제8대 리투아니아 세이마스에서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부의장을 역임했다.
2016년 리투아니아 의회 선거에서 리투아니아 농민 녹색 연합은 승리했다. 카르바우스키스 자신은 카우나스의 실라이니아 단독 선거구에서 의석을 얻었다.
3.2. 정당 활동
1990년대 중반부터 정치에 참여한 카르바우스키스는 세 차례나 국회인 세이마스에 당선되었다.
1996년 리투아니아 의회 선거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7대 리투아니아 세이마스에 샤울리아이 (농촌) 단독 선거구 (45)에서 당선되었다. 1998년 리투아니아 농민당(LVP)에 입당하여 당 의장이 되었다. 1997년과 2000년에는 샤울리아이 구(Šiauliai district municipality) 의회 의원도 역임했다.
2000년 리투아니아 의회 선거에서 카르바우스키스는 LVP를 대표하여 단독 선거구에서 재선되었다. 제8대 리투아니아 세이마스에서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부의장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카르바우스키스는 2012년에 리투아니아 농민 녹색 연합으로 개명된 리투아니아 농민 대중 연합의 의장을 맡고 있다. 이 당은 2016년 리투아니아 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카르바우스키스 자신은 카우나스의 실라이니아 단독 선거구에서 의석을 얻었다.
3.3. 기타 정치 활동
카르바우스키스는 1997년과 2000년에 샤울리아이 구 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2014년 리투아니아 헌법 국민투표의 조직자 중 한 명이었는데, 이 국민투표는 유럽 연합 가입 조건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리투아니아에서 외국 시민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려는 시도였다.
4. 사회 공헌 활동
카르바우스키스는 '나이시아이 가족 축제'(알코올 없는 야외 여름 엔터테인먼트 축제)를 시작했다. 그는 또한 카르바우스키스가 태어난 나이시아이 마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TV 시리즈 나이시아이의 여름 (리투아니아어: Naisių vasara)의 작가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2013년 카르바우스키스는 안드리우스 마몬토바스와 협력하여 자선 단체 '아이들을 교육하자'(Švieskime vaikus리투아니아어)를 공동 설립했다.
카르바우스키스는 2006년부터 리투아니아 드래프트 연맹 회장을, 2009년부터 리투아니아 제마이투카스 (리투아니아의 역사적인 말 품종) 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5.1. 불법 사업 관행 의혹
라무나스 카르바우스키스의 회사인 아그로콘체르나스에 대한 언론 조사에 따르면, 카르바우스키스와 그의 가족은 한 법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 양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아그로콘체르나스는 이를 이용하여 유럽 연합(EU)으로부터 추가 자금을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조사에서는 카르바우스키스가 회사의 자금을 개인 주택 건설에 사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세금을 내야 하는 회사의 배당금을 받는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