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시오 비스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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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드리시오 비스콘티는 비스콘티 가문의 일원으로, 14세기 이탈리아의 군인이자 콘도티에로였다. 그는 밀라노를 델라 토레 가문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기여했고, 몬차에서 친척들을 감금하는 데 관여했으나, 이후 아초네 비스콘티에게 패하여 세프리오에서 쫓겨났다. 베로나의 영주에게 고용된 후, 1339년 산 조르조 용병단을 창설하여 이탈리아인 콘도티에로가 이끄는 최초의 용병단을 조직했다. 파라비아고 전투에서 패배하여 10년간 감금되었다가, 조반니 비스콘티에 의해 석방되었고, 갈레아초 2세 비스콘티의 지휘관으로 활약하며 반-비스콘티 동맹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로드리시오는 1364년에 사망했다.

로드리시오 비스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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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로드리시오 비스콘티는 밀라노의 유력 귀족 비스콘티 가 출신으로,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야망을 가진 인물이었다. 아버지에게 군사 교육을 받고 친척들과 함께 밀라노 재탈환에 기여했으나, 권력 다툼으로 투옥과 도피를 반복했다.

산 조르조 용병단을 창설해 군사적 명성을 얻었지만, 파라비아고 전투 패배 후 10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석방 후 갈레아초 2세 비스콘티를 도와 군사적 업적을 세웠고, 1364년 사망할 때까지 그의 궁정에서 지냈다.

2.1. 초기 생애와 가문 내 갈등

로드리시오 비스콘티는 밀라노의 유력 귀족 가문 비스콘티 가 출신으로, 피에트로와 안티오키아 크리벨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은 그는 친척인 마테오 비스콘티와 그의 아들 갈레아초를 도와 델라 토레 가로부터 밀라노를 탈환했다. 이후 그는 또 다른 친척 마르코와 함께 갈레아초와 그의 아들 아초네몬차에 감금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들이 석방되자, 로드리시오는 세프리오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피신했다.

아초네가 그를 포위하고 성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드리시오는 비첸차로 탈출하여 베로나의 영주 마스티노 2세 델라 스칼라에게 고용되었다. 1339년 1월, 그는 2,500명의 기병, 800명의 보병, 200명의 쇠뇌병으로 구성된, 대부분 독일 출신의 대규모 군대를 모아 산 조르조 용병단을 창설했다. 이는 이탈리아인 콘도티에로가 이끄는 최초의 용병단이었다.

2.2. 산 조르조 용병단 조직과 파라비아고 전투

1339년 1월, 로드리시오는 2,500명의 기병, 800명의 보병, 200명의 쇠뇌병 등 대부분 독일 출신의 대군을 모집하여 산 조르조 용병단을 조직하였다. 이는 이탈리아인 콘도티에로가 이끄는 최초의 용병단이었다.

밀라노 영토를 침략한 후, 로드리시오의 군대는 2월 초 파라비아고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그는 아들 암브로조와 함께 포로로 잡혀 산 콜롬바노 성의 철제 감옥에 감금되었다.

2.3. 석방과 이후 활동

로드리시오는 아들 암브로조와 함께 포로로 잡혀 산 콜롬바노 성의 철제 감옥에 감금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10년을 있다가, 새롭게 밀라노 영주 자리에 오른 대주교 조반니 비스콘티에 의해 풀려났다. 갈레아초 2세 비스콘티는 밀라노 탈환 전쟁에서 그를 지휘관으로 임명하였으며, 1356년에 콘라트 폰 란다우의 대용병단을 고용한 반-비스콘티 동맹을 상대로 대승리를 거두며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갈레아초의 궁정에서 머물다 1364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