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퍼스
1. 개요
로버트 퍼스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에는 버밍엄 시티, 노팅엄 포리스트, 포트 베일 등에서 활약했으며, 1922년 포트 베일 소속으로 노스 스태퍼드셔 양호배에서 우승했다. 은퇴 후 스페인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며, 라싱 산탄데르를 이끌고 라리가 준우승을 달성했으며,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1932-33 시즌 라리가 우승과 2년 연속 중부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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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로버트 에드윈 퍼스 |
|---|---|
| 출생일 | 1887년 2월 20일 |
| 출생지 | 영국, 버밍엄, 셸던 |
| 사망일 | 1966년 |
| 키 | 5피트 9+1/2인치 |
| 포지션 | 최우측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버밍엄 코퍼레이션 트랜스퍼트, 골더스 그린 |
|---|---|
| 클럽 | 1909–1911: 버밍엄 (25경기, 2골) 1911: 웰링턴 타운 1911–1921: 노팅엄 포리스트 (141경기, 14골) 1921–1922: 포트 베일 (39경기, 5골) 1922–1923: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 (37경기, 1골) |
| 총 출장 및 득점 | 242경기, 22골 |
| 클럽 | 1930–1932: 라싱 산탄데르 1932–1934: 레알 마드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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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남자 축구 선수 -
테디 셰링엄
테디 셰링엄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으로, 프리미어리그 원년 득점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트레블 달성,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극적인 동점골, PFA와 FWA 올해의 선수상 동시 수상, 2002 FIFA 월드컵 참가, 프리미어리그 최고령 득점 기록 등 1983년부터 2008년까지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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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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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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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 예디나크
밀레 예디나크는 은퇴한 호주 축구 선수이자 토트넘 홋스퍼 FC의 수석 코치이며,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79경기 출전 20골을 기록하고 2015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퍼스는 지역 클럽인 버밍엄 코퍼레이션 트랜스포트와 골더스 그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09년 버밍엄에 입단했다. 1909-10 시즌에 프로 데뷔하여 FA컵과 2부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1910-11 시즌 이후 웰링턴 타운과 노팅엄 포리스트를 거쳐 1921년 6월 포트 베일로 이적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리그가 중단되자, 퍼스는 영국 육군 왕립 야전 포병대(RFA)에 복무했다. 1921-22 시즌 이후,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에서 한 시즌을 뛰고 30세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버밍엄 시티 FC (1909-1911)
퍼스는 버밍엄 코퍼레이션 트랜스포트와 골더스 그린을 거쳐 버밍엄에 입단하였다. 1909-10 시즌에 2부 리그와 FA컵을 통틀어 9경기에 출전했다. 1910년 12월 10일, 링컨 시티와의 신실 뱅크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풋볼 리그 개인 첫 골을 기록하였고, 1910-11 시즌에는 18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추가했다.
2.2. 노팅엄 포리스트 FC (1911-1921)
로버트 퍼스(Robert Pirth영어)는 버밍엄을 떠나 웰링턴 타운을 거쳐 노팅엄 포리스트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왕립 야전 포병대(RFA)에서 복무했다. 그는 노팅엄 포리스트에서 1911-12 시즌부터 1920-21 시즌까지 2부 리그 141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했다.
2.3. 포트 베일 FC (1921-192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왕립 야전 포병대(RFA)에서 복무한 퍼스는 1921년 6월 포트 베일에 합류했다. 1921년 8월 29일, 올드 레크리에이션 그라운드에서 열린 클랩턴 오리엔트와의 안방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1921-22 시즌 동안 39번의 2부 리그 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으며, 1922년 노스 스태퍼드셔 양호배 공동 우승을 달성했다.
2.4.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 (1922-1923)
포트 베일에서 방출된 후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퍼스는 1922-23 시즌에 3부 리그 남부에서 37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3. 감독 경력
로버트 퍼스는 선수 은퇴 후 스페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1930년부터 1932년까지 라싱 산탄데르 감독을 맡아 1930-31 시즌에는 아틀레틱 빌바오에 이어 골득실 차로 준우승을, 1931-32 시즌에는 4위를 기록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맡아 1932-33 시즌 우승, 1933-34 시즌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중부 선수권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33년 코파 델 프레시덴테 데 라 레푸블리카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틀레틱 빌바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3.1. 라싱 산탄데르 (1930-1932)
로버트 퍼스는 1930년부터 1932년까지 라싱 산탄데르를 지도했다. 1930-31 시즌 아틀레틱 빌바오에 이어 골득실 차로 준우승을 차지했고, 1931-32 시즌에는 4위를 기록했다. 이후 퍼스는 엘 사르디네로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다.
3.2. 레알 마드리드 CF (1932-1934)
퍼스는 라싱 산탄데르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다. 차마르틴에서 2년 동안 1932-33 시즌에 마드리드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33-34 시즌에는 준우승을 거두었다. 2년 연속으로 중부 선수권 대회 우승도 차지하였다. 1933년에는 코파 델 프레시덴테 데 라 레푸블리카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류이스 콤파니스에서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1-2로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4. 경력 통계
| 구단 | 시즌 | 리그명 | 리그 | FA컵 | 합계 | |||
|---|---|---|---|---|---|---|---|---|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버밍엄 | 1909–10 | 2부 리그 | 8 | 0 | 1 | 0 | 9 | 0 |
| 1910–11 | 2부 리그 | 17 | 2 | 1 | 0 | 18 | 2 | |
| 합계 | 25 | 2 | 2 | 0 | 27 | 2 | ||
| 노팅엄 포리스트 | 1911–12 | 2부 리그 | 31 | 4 | 1 | 0 | 32 | 4 |
| 1912–13 | 2부 리그 | 25 | 1 | 1 | 0 | 26 | 1 | |
| 1913–14 | 2부 리그 | 37 | 6 | 2 | 0 | 39 | 6 | |
| 1919–20 | 2부 리그 | 30 | 2 | 1 | 0 | 31 | 2 | |
| 1920–21 | 2부 리그 | 18 | 1 | 0 | 0 | 18 | 1 | |
| 합계 | 141 | 14 | 5 | 0 | 146 | 14 | ||
| 포트 베일 | 1921–22 | 2부 리그 | 39 | 5 | 1 | 0 | 40 | 5 |
|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 1922–23 | 3부 리그 남부 | 37 | 1 | 4 | 1 | 41 | 2 |
| 경력 합계 | 242 | 22 | 12 | 1 | 254 | 23 | ||
5. 수상
로버트 퍼스는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 모두 우승 경력이 있다. 선수로서는 포트 베일에서 노스 스태퍼드셔 양호배 공동 우승(1922)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 리가 우승(1932-33)과 중부 선수권 대회 우승(1933, 1934)을 차지했다. 감독으로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같은 대회들에서 우승을 달성했다.
5.2. 감독
퍼스는 은퇴 후 지도자가 되어 1930년부터 1932년까지 라리가의 라싱 산탄데르 감독을 맡았다. 1929년에는 강등 플레이오프에서 간신히 잔류한 팀에 새로 초빙된 퍼스는, 전년도 10개 팀 중 최하위였던 라싱을 곧바로 우승 경쟁에 참여시켰다. 최종전까지 우승의 가능성을 남기는 등 크게 약진시켰지만, 득실차로 아쉽게 2위에 그쳤다 . 2년차 1931-1932년 시즌에도 두 계단 내려간 4위였다.
그 후 마드리드 FC (현 레알 마드리드)가 퍼스를 1932-33년 시즌의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했다. 전년도 프리메라 디비시온을 제패한 기존의 견고한 수비에 더해 득점수를 증가시켜 1경기를 남기고 마드리드를 리그 2연패로 이끌었다. 하지만 다음 1933-1934년 시즌에는 2위로 끝나 우승을 놓쳤다. 캄페오나토 레히오날 센트로 2연패나, 1933년 공화국 대통령배(현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등의 결과도 남겼지만, 전국 레벨에서는 무관으로 끝나 2시즌 만에 퇴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