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다카마사
1. 개요
마쓰다이라 다카마사는 마쓰다이라 나오마사의 셋째 아들로, 마쓰에번에서 태어났다. 형인 마쓰다이라 쓰나타카로부터 분지를 받아 모리번을 성립시켰으며, 종5위하 우콘노다이부의 관위를 받았다. 26세에 사망했으며, 후사가 없어 동생에게 가문을 잇게 하려 했으나, 결국 형인 쓰나타카가 가문의 존속을 위해 노력했다.
| 씨명 | 마쓰다이라 다카마사 |
|---|---|
| 원 이름 | 타닌마루 |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출생 | 게이안 원년 7월 8일 (1648년8월 26일) |
| 사망 | 엔포 원년 2월 4일 (1673년3월 22일) |
| 계명 | 도쿠오인 인요 기코 유테쓰 |
| 묘소 | 도쿄도 미나토구 도라노몬 덴토쿠지 |
| 관위 | 종5위하우콘노다이부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쓰나 |
| 번 | 이즈모국마쓰에번, 동국 모리번번주 |
| 씨족 | 에치젠 마쓰다이라 가문(운슈 가문→모리 가문) |
|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나오마사, 어머니: 하세가와 씨 |
| 형제자매 | 쓰나타카, 지카히데, 여성(나오노리 아내), 다카마사, 여성(사타케 요시타카 아내), 나오오카, 그 외 |
| 배우자 | 정실: 마쓰다이라 노리요시 딸 |
| 자녀 | 양자: 나오오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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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번주 (이즈모국) -
마쓰다이라 나오타카 (1665년)
마쓰다이라 나오타카는 1665년에 태어나 1712년에 사망했으며, 마쓰에번 번주 마쓰다이라 나오마사의 넷째 아들로 가독을 상속받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양자를 들인 후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마쓰에 마쓰다이라가 -
마쓰에번
마쓰에번은 세키가하라 전투 후 호리오 타다우지를 시조로 이즈모와 오키 두 국을 할당받아 시작되어, 호리오 가문과 교고쿠 가문 통치 후 1638년부터 마쓰다이라 가문이 다스렸으며, 막말 신정부에 순응하여 폐번치현 후 시마네현에 통합되었다. -
마쓰에 마쓰다이라가 -
마쓰다이라 나오유키 (1682년)
마쓰다이라 나오유키는 1682년에 태어나 1718년에 사망한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며, 이즈모국 히로세번주 마쓰다이라 지카토키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마쓰다이라 나오토모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잇고, 종5위하, 시나노노카미, 오미노카미를 거쳐 1717년 이토이가와번주가 되었다. -
1673년 사망 -
유형원
유형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토지 제도 개혁과 과거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반계수록》을 저술하여 경세치용 실학 사상을 펼쳤다. -
1673년 사망 -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는 얀 2세 카지미에시의 퇴위 후 폴란드 국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으로 선출되어 친프랑스 진영의 반대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등 혼란 속에서 재위하다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후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왕위를 계승했다.
2. 생애
마쓰다이라 나오마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마쓰다이라 다카마사는 어머니가 측실 하세가와 씨였고, 어릴 적 이름은 타닌마루였다. 형 쓰나타카에게서 이름 한 글자를 받아 '다카마사'라 불렸다. 1662년 종5위하 우콘노다이부에 임명되었다.
1666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형 쓰나타카가 가독을 이었다. 같은 해, 다카마사는 1만 석을 받아 모리번을 세웠으나, 처음에는 영지 대신 쌀로 지급받았다.
1673년 26세로 사망한 다카마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나오오카를 양자로 삼으려 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영지는 종가에 반환되었으나, 이후 형 쓰나타카의 청원으로 나오오카가 가명을 잇게 되었다.
2.1. 출생과 가계
게이안 원년(1648년) 7월 8일, 마쓰에번 번주 마쓰다이라 나오마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측실인 하세가와 씨이다. 유아명은 타닌마루였다. 장형 쓰나타카로부터 편휘를 받아 다카마사(「마사」는 아버지 나오마사로부터 한 글자를 따온 것)라고 칭했다.
간분 2년(1662년) 12월 27일, 종5위하 우콘노다이부가 되었다.
2.2. 번주 상속 및 분지
게이안 원년(1648년) 7월 8일, 마쓰에번 번주 마쓰다이라 나오마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측실인 하세가와 씨이다. 유아명은 다닌마루였다. 그는 형인 쓰나타카로부터 편휘를 받아 '다카마사'라고 칭했다. (「마사」는 아버지 나오마사에게서 한 글자를 따온 것이다.)
간분 6년(1666년) 2월 3일, 아버지가 사망하자 같은 해 4월 10일, 형 쓰나타카가 가독을 이었다. 같은 달 29일, 쓰나타카는 다카마사에게 1만 석을 분지하여 지번인 모리번이 성립되었다. 당초에는 영지가 아닌 조미로 지급되었다.